소설리스트

너를 따라 종말까지-160화 (160/257)

160화.

제16장 아리스 구출 작전

“풀어 줘, 이 개자식들아아―!”

날카로운 목소리가 지하 감옥의 단단한 돌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목청도 좋다. 괜히 힘 빼지 마.”

옆 감방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가만히 있습니까? 벌써 6일이나 지났단 말입니다!”

율비네가 신경질적으로 파울로에게 대꾸했다. 평소의 그녀를 알던 사람들이라면 당혹스러워할 만큼 성격 나빠 보이는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율비네는 지금 이성을 반쯤 잃은 상태였다.

“그동안 아리스의 소식이 하나도 들려오지 않는데 지금 가만히 있게 생겼습니까?!”

율비네는 철창을 양손으로 잡아 뜯고 싶었다. 하지만 단단한 자물쇠와 마법으로 이루어진 감옥의 잠금장치는 율비네가 아무리 용을 써도 요지부동이었다.

아리스, 율비네, 파울로가 루아드 황실에 붙잡혀 온 지 6일이나 지났다. 아리스는 따로 끌려갔고 율비네와 파울로는 그가 어디로 가는지도 듣지 못한 상태로 지하 감옥에 갇혔다. 그 이후로 둘은 식사만 배급받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은 일절 듣지 못했다. 앞으로 자신들을 어떻게 할 건지, 아리스는 무슨 상태인 건지,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 둘은 지하 감옥에 방치 당했다.

지하다 보니 해를 볼 수 없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아리송했지만 삼시 세끼가 나오는 것을 세 보니 6일 정도 지났으리라 유추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허송세월하는 것에 질린 율비네가 참다못해 소리를 꽥꽥 지르기 시작했다.

“젠장, 하다못해 아리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라도 해 달라고!”

“아직 죽지는 않았을 거야.”

“그렇게 태평한 소리 하지 마세요! 파울로 씨는 적어도 라슈발렌이란 뒷배가 있잖습니까? 저는 아니라서 오늘 당장 본보기로 처형당해도 이상하지 않단 말입니다! 아니, 저는 그렇다 치고 아리스는 어떻게 됐는지 소식이 하나도 없는데 걱정되는 게 당연하지 않아요?”

율비네는 입 안쪽 여린 살을 이로 잘근거리면서 감옥 안쪽을 서성거렸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라도 해 보란 말이다, 씨발!”

율비네가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잠금장치를 발로 쾅쾅 치자 교도관이 그들을 제지하러 나타났다. 교도관은 둘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율비네가 부르는 것을 무시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상태로 몸을 돌렸다. 이 감옥에는 반 마력 제어 필드를 만드는 마도 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구조를 알 수 없도록 미로 같은 형태로 되어 있었다. 둘이 탈옥이라도 하려면 상당히 애를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까 아리스 소식이라도 들려주면 어디 덧나냐?”

“사기 떨어트리기 용이야. 딱 보면 모르냐? 그러니까 휘말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율비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을 순 없었다. 그런 율비네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울로는 태평하게 감옥 바닥에서 뒹굴뒹굴하며 씻지 않아서 간지럽기 시작한 두피를 벅벅 긁었다.

“넌 행운인 줄 알아.”

“대체 뭐가 말입니까?!”

“라슈발렌 소속인 내가 같이 끌려온 것 말이다.”

“그게 왜 행운인데요?”

파울로는 까슬까슬하게 난 수염을 손으로 쓸면서 중얼거렸다.

“이쯤 됐으면 움직일 때가 됐는데…….”

그와 동시에 마치 일부러 그러기라도 한 듯 아까와는 다른 교도관이 들어왔다.

“파울로 리마.”

다른 교도관들보다 계급이 조금 더 높아 보이는 그는 파울로에게 다소 예의를 차리며 말했다.

“따라오시지요. 당신의 처우가 결정되었습니다.”

그 말에 파울로는 끙차거리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교도관이 열쇠로 잠금장치를 푸는 동안 율비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됐으니 먼저 간다. 너는 여기서 좀 더 쉬라고.”

“뭐, 뭐라고요?”

약이라도 올리는 것 같은 목소리에 율비네가 울컥하며 대답했다.

“파울로, 당신이 제게 그러실 순 없는 겁니다!”

교도관이 파울로의 감방 문을 열어 주자 그는 가벼운 걸음으로 나가며 이죽거렸다.

“아, 빨리 집에 가서 우리 마누라 보고 싶어.”

“파울로 리마! 나만 이렇게 혼자 두고 갈 생각일랑 하지 말란 말입니다!”

“알 게 뭐야.”

파울로는 악을 쓰는 율비네를 뒤로하고 교도관을 따라나섰다. 율비네가 큰소리로 무어라고 외치든 간에 그는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교도관은 컴컴한 지하를 나와 감옥의 중간 방을 지나 대기실로 그를 인도했다.

“라슈발렌 요원은 석방하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밖에 나가시면 당신을 데리러 온 인원이 있을 겁니다.”

그는 감옥에 가둘 때 압수했던 파울로의 물건들을 내어주었다. 거기에는 파울로의 대검도 포함돼 있었다. 총은 탄창을 비운 채 돌려주었지만, 파울로는 대검 하나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파울로는 자신의 물건을 다 챙긴 후 교도관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런 그를 유별나게 보기는 했지만, 교도관은 별다른 의심 없이 파울로가 내민 손을 잡았다. 파울로는 씨익 웃으며 교도관의 손을 꽉 잡고 그대로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몸이 앞으로 기우뚱하는 순간 무릎을 그의 명치에 꽂아 넣었다. 명치를 습격당한 교도관은 억 하는 비명 소리도 못 내고 그대로 쓰러졌다. 기절해서 땅에 나뒹구는 교도관을 내려다보며 파울로는 손을 털었다.

“허술해, 허술해.”

그는 교도관의 주머니를 뒤적거려 감방의 열쇠를 챙긴 후 대검을 뽑아 들고 왔던 길을 돌아갔다. 그리고 중간에 마주친 교도관들은 적당히 죽지 않을 정도로만 봐 주며 나올 때 기억해 둔 대로 좁은 통로를 따라갔다. 통로에선 아직도 혼자 꽥꽥대고 있는 율비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율비네는 창살을 양손으로 흔들고 있다가 무장을 하고 자신의 앞에 다시 나타난 파울로를 놀란 눈을 끔벅거리며 올려다보았다. 파울로는 교도관에게 입수한 열쇠로 율비네의 감방을 열어 주었다.

“내가 행운인 줄 알라 그랬지? 자, 준비해.”

“무슨 준비요?”

파울로가 아주 당연한 것을 묻는단 목소리로 말했다.

“탈옥할 준비.”

파울로가 달려온 쪽에서 시끌시끌한 것이 아무래도 교도관들이 몰려온 듯싶었다. 파울로가 좁은 공간에서 대검을 들고 다수의 인원과 난투극을 할 자신이 없어 조금 생각하는 사이 감옥에서 나온 율비네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그쪽이 아니고 이쪽입니다!”

율비네는 전혀 다른 길로 달렸다. 파울로는 그 뒤를 따르며 소란스러운 쪽을 견제했다.

“너 길 알아?”

“저를 뭐로 보고 계신 겁니까?”

율비네가 광기에 가득 찬 눈으로 대답했다.

“뒷배도 뭣도 없이 실력 하나만으로 기사 작위를 받은 루데키아스 대공자의 최측근이 저입니다. 그가 선봉에 설 때 함께 선 것도 저고요.”

복도를 달리는 율비네와 파울로를 쫓는 발소리들이 복도에 울렸다.

“그러다 보니 황족들과 그 주변인들을 부지런히 두 지하 감옥에 가두어 놓은 역할도 제가 했지요. 이대로 교도관들을 따돌리는 건 일도 아닙니다.”

“오호라.”

지하 감옥의 평면도를 다 꿰고 있는 율비네 덕분에 두 사람은 교도관들도 잘 모르는 곳으로 도주해 마침내 해가 비추는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주변으로 경계경보가 퍼졌는지 무장한 기사들과 경비원들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이리저리 싹싹 피해 다녀 사람들의 기척이 닿지 않는 낡은 창고에 은신했다. 파울로와 율비네는 창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속닥거렸다.

“교도관이 하는 말을 들어 보니 나는 아무래도 마중 나온 사람들이 있나 보던데…… 너는 어떻게 할래?”

파울로는 율비네의 의견을 물었지만, 그녀의 대답은 뻔했다.

“아리스를 구하러 갈 겁니다.”

“혼자?”

“혼자라도 갈 겁니다.”

하지만 지금 율비네에게는 무기는커녕 아무것도 없었다. 파울로는 씩씩거리는 율비네를 말리는 수밖에 없었다.

“진정해 봐. 너는 아리스의 최측근이라고. 본보기로 처형당할 수 있다고 네 입으로 말했잖아.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계획을 세우고 가야 하지 않겠어?”

그 말에 율비네가 끙 하는 소리를 내었다. 파울로는 머리로 열이 몰린 율비네 대신 특수 기동대 대장답게 뛰어나고 냉철한 상황 판단 능력을 이용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런 파울로를 물끄러미 보던 율비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그런데 파울로 씨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렇게 소란을 일으켜서 괜찮겠어요?”

“어쩌겠어. 이미 저질렀는데.”

“아니, 그렇다 해도…… 저를 도와주는 게…….”

율비네가 뒷말을 주저하며 삼키자 파울로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리스가 저런데 어떻게 보고만 있냐? 지금까지 나를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으로 본 거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빼 오려는 시도 정도는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어차피 황궁 지리는 네가 꿰고 있잖아? 그래서 그런데, 무기고는 어디야? 무기고를 먼저 털자.”

“그게 경비원들이 주로 주둔해 있는 곳 가장 안쪽에 있는지라…….”

머릿속으로 황궁 도면을 그려 보던 율비네가 혀를 쯧 찼다. 황궁인 만큼 이쪽에 배치된 인원은 정예 중에 최정예였다. 파울로와 율비네가 개인의 실력으로는 최정상급이라고는 하나 수적으로는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골치가 아픈데 경계경보가 한 번 더 울렸다. 그러자 밖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파울로는 눈만 빼꼼 내밀고 밖의 상황을 파악하며 중얼거렸다.

“음…… 경계가 한층 더 삼엄해졌는데 그냥 바로 빠져나갈 걸 그랬나?”

하지만 율비네가 경보를 듣더니 의아한 얼굴로 파울로에게 말했다.

“이건 단순히 죄수들이 탈옥했을 때 울리는 경보가 아닙니다.”

“그럼?”

“타국에서 적습이 있을 때 울리는 경보입니다.”

“적습? 하지만 대체 어느 나라에서…….”

파울로는 혼자 중얼거리다 이내 깨달은 얼굴을 했다.

“아리스의 외가인 류가에서 움직였구나. 마이련은 중립국이니 함부로 개입할 수 없지만 반대로 중립국이기 때문에 류가에선 움직이기 편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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