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따라 종말까지-159화 (159/257)

159화.

리비엘로의 관은 신전에 3일 동안 안치된 후 3일째 되는 날에 묘지로 옮겨졌다. 원래는 작은 장례식을 치르고 이튿날 무덤에 묻히는 게 관례였지만 리비엘로의 시신은 경찰이 조사해야 한 탓에 시일이 좀 걸렸다. 리비엘로는 신전 뒤편에 있는 공동묘지에 묻혔다. 미레아가 자신의 식구들을 묻은 곳 근처였다.

리비엘로는 생전에 바깥 활동을 활발히 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참석객이 많지는 않았다. 미레아는 리비엘로의 관이 묻힐 때 마당에서 꺾어 온 꽃다발에서 꽃을 하나씩 빼서 뿌려 주었다. 라일라와 진이 그녀의 옆에서 코를 훌쩍거리며 울먹였다.

“일단 다녀올게. 그다음에 너를 이렇게 만든 범인을 찾아볼게.”

미레아는 갓 만들어진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와 휴레오에게 안부 전해 줘.”

구태여 시신을 찾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미레아는 몸을 일으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진과 라일라에게 다가갔다. 루아드 제국으로 가는 비공정을 띄우기까진 시간이 좀 있었다. 그들은 태세를 재정비하기 위해 라슈발렌 본부 건물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 때맞춰 루아드 제국에서 답신이 왔다. 아리스를 포함해서 함께 붙잡힌 이들의 신병을 라슈발렌으로 넘기라는 그들의 요구에 대한 답을 대충 요약하자면, 파울로의 신병은 조만간 넘길 수 있지만 다른 둘을 풀어 주는 것은 웃기지도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 말에 류가 사람들이 뒷목을 부여잡았다. 마음 같아서는 루아드 제국 황궁에 대고 대포를 쏴 갈기고 싶었으나 여러모로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그런 만용을 부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걸로 더는 기다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출발 전 미레아는 라슈발렌 협회의 부회장에게 불려 갔다. 현재 라슈발렌의 일을 총괄하고 있는 것은 용도 오빈도 아닌 인간 출신인 벨로아 부회장이었다. 연락이 두절된 세피로스와 성지를 재건해야 하는 라케드가 함께 자리를 비운 탓에 일이 밀려 그녀는 무척이나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미레아 제인스터.”

“예.”

“류가에서 루아드 제국의 답신을 받은 것은 알고 있다. 이걸로 라슈발렌은 정식으로 루아드 황실에 항의 의사를 표하고 파울로 리마의 신병을 인도할 것을 요구할 예정이다.”

“감사합니다.”

“우리 측 요원의 일이니 내게 감사할 일은 아니고.”

그녀는 뻑뻑한 눈을 비볐다.

“나는 공식적으로 라슈발렌 소속 요원이 루데키아스를 빼 오는 것을 승인할 수 없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미레아는 당돌한 얼굴로 대답했다.

“세피로스 회장께서는 라우노 듀랜트를 라슈발렌의 주적이라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니 아리스를 끌고 간 것이 라우노 듀랜트인 이상 그를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난 그런 명령을 하달받은 적이 없지.”

벨로아가 손깍지를 끼고 턱을 괴었다.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게 다야. 세피로스 회장이 연락 두절인 이상 내게 회장의 권위가 위임되었기는 하나 나는 구체적인 정보를 가진 것이 아니다. 그러니 네 말만 믿고 함부로 병력을 움직일 수 없어.”

미레아는 다 이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현재 한 달 동안 휴가 중입니다. 라케드 님께서 승인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저 휴가 차원에서 루아드로 가는 비행정을 빌려 탈 뿐입니다. 겸사겸사 루아드의 수도인 델루카 구경이라도 하고 오겠습니다.”

그 말에 벨로아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국제 관계에서 명분이란 것은 상당히 중요했다. 특히 전 세계의 여러 국가가 가입된 라슈발렌은 특히 더 그랬다. 타국의 의사를 무시하고 움직였다가는 가입국들에 어떤 반발을 살지 안 봐도 뻔했다. 루아드 제국 측에서 개입할 것을 거절당했으니 공식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글렀다.

하지만 라케드와 대화할 때 그랬듯 미레아는 어느 정도 예상하던 일이었다. 라슈발렌의 지원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벨로아는 미레아가 아무리 류은현을 포함한 류가의 사람들과 함께 행동한다 해도 그녀가 걱정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좋아. 라케드 님께서 승인해 주셨다고 하니 나도 휴가를 허락하마. 겸사겸사 선물도 사 오너라.”

“네. 감사합니다.”

미레아가 인사를 하며 돌아서려는데 벨로아가 덧붙였다.

“그리고 협회 물건의 사사로운 반출은 작작 해.”

그 말에 미레아는 싱긋 웃으며 나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라일라에게 엄지를 척 올려 보였다.

“어떡해? 협회 물건은 반출하지 말라는데?”

라일라의 말에 미레아가 깔깔 웃으며 답했다.

“아냐, 저건 반출해도 눈감아 주겠단 소리야. 지금까지 다 알고 있었는데 눈감아 줬으니 좀 더 봐주겠다는 의미라고.”

그 직후 미레아는 라일라와 기술부의 마도 기구를 이것저것 빼내 오며 키득거렸다.

“아, 맞다.”

열심히 군장을 챙기던 미레아는 뒤늦게 세렌트를 떠올리고는 잠시 구석에 두었던 것을 가져와 라일라에게 보여 주었다.

“아리스의 검이네?”

라일라는 자신이 만든 것이니 한눈에 알아보았다.

“아리스가 나 줬어.”

“왜?”

“잡아 봐.”

라일라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검집 위로 손을 올리자 세렌트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 안녕!

라일라는 비명을 지르면서 검을 집어 던질 뻔했다. 대신 몸을 뒤로 물리며 미레아에게 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방금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는데.”

“인사해. 세렌트라고 해.”

“언제 그런 이름을 지어 줬는데?”

“엊그제 내가 지었어. 아리스 이 미친놈이 이걸 마검으로 만들었더라.”

라일라는 미레아의 말을 한 번에 이해를 못 하고 되물었다.

“뭐라고?”

“마검이라고, 마검. 이게 마검이 되었다고.”

“그러니까…… 페니드란 같은?”

“응, 응.”

미레아가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자 라일라가 혀를 내둘렀다.

“아리스도 참 희한한 놈이네. 그런 짓을 할 거면 미리 언질이라도 하지.”

그리고는 세렌트를 건네받아 훑어보았다.

“확실히 마력이 충만하긴 한데…… 페니드란만큼은 아닌 것 같고…….”

라일라가 혼자 중얼거리는 동안 미레아는 세렌트에게 라일라를 소개해 주었다.

“세렌트, 너를 가장 처음 만든 사람이야. 그러니까 아리스는 마력을 불어넣어 주어 너를 마검으로 만들었고 네 몸이 되는 검을 만든 게 라일라야.”

― 우와, 그러면 라일라는 내 엄마고 아리스는 내 아빠야?

세렌트의 천진난만한 그 말에 둘은 충격에 빠졌다. 그 비유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닌데 막상 둘을 엄마와 아빠로 엮자니 그들은 저 깊은 내면의 무언가로부터 거부감이 들었다.

그 둘의 표정을 본 진이 배를 잡고 웃었다.

“아무튼, 이건 이제 내 검이야. 그래서 나한테 맞게 손을 좀 보고 싶은데…….”

라일라가 검을 양손으로 들어 올려 요모조모 살폈다.

“아리스가 막 쓰는 것 같아도 관리는 은근히 잘했네.”

“응, 그래서 폼멜 쪽을 바꾸고 가드도 바꾸고 싶어.”

“흠…… 그 정도라면 검신만 안 건드리면 되겠지.”

검의 수평을 보던 라일라가 미레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 바스타드 소드도 써? 쌍검으로 쓸 거야?”

“아니, 쌍검으로 쓰자니 역시 무겁더라고. 몸이 둔해져서 당분간은 세렌트 하나만 쓸까 봐. 게다가 내 쌍검 중 하나가 산산조각이 나 버렸거든.”

“으이구, 그렇게 갑자기 스타일을 바꿔서 괜찮겠어?”

“어쩔 수 없지.”

미레아는 대수롭지 않아 하는 듯싶었다.

“내가 쌍검을 쓰는 이유가 뭔지 알아?”

“뭔데?”

“멋있어서.”

그 말에 라일라는 말문이 막혔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일을 하면서 효율과 성능, 안전성을 추구해야 하는 와중에 그 많은 변명보다 멋있다는 이유로 쌍검을 고수해 왔다. 미레아는 그녀가 익힌 모든 검술을 통달한 후 쌍검술로 옮겨 간 것이기 때문에 굳이 쌍검이 아닌 바스타드 소드 하나만 휘두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가드와 폼멜은 세렌트의 검신에 맞는 공산품이 있었기 때문에 그 둘만 교체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미레아는 불꽃 문양이 장식된 폼멜을 옮겨 달아 무게 중심을 새로 맞춘 세렌트를 팔자로 휘둘러 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세렌트의 밋밋했던 가드는 미레아의 취향껏 물결무늬가 새겨진 금색 금속으로 바꾸고 손잡이의 무두질한 가죽을 붉은색으로 교체했다. 그리고는 조금 고민하다 불꽃 모양의 폼멜 끝에 붉은 술을 달아 주었다. 같은 사람이 만든 마검인지라 붉은 술 장식이 있는 페니드란과 한 세트로 보이고 싶었다.

특색이 없었던 검이었지만 가드와 폼멜을 어느 정도 장식이 있는 것으로 바꾸자 나름대로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그것이 포인트가 되어 돋보이는 것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미레아는 시범 삼아 검을 휙휙 휘둘러 몸을 풀었다. 저 멀리서 진이 그녀를 부르며 다가왔다.

“출발할 준비가 다 되었으니까 슬슬 가자.”

검을 갈무리해 검집에 집어넣는 미레아에게 라일라가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아리스를 꼭 데려와. 될 수 있는 한 모두 멀쩡한 상태로.”

“응.”

“그리고 나 대신 시오의 복수도 해 줘.”

그 말에 미레아도 가라앉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미레아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녀올게.”

그들의 목적지는 황궁이 있는 루아드 제국의 수도, 델루카였다. 라일라는 떠나는 비공정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리비엘로도 시오도 마음의 준비 없이 보낸 것이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그로 인해 미레아의 마지막마저 언제가 되었든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이번에야말로 모두 무사히 돌아오길. 그렇게 비공정이 점처럼 작아져 마침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때까지 라일라는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