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따라 종말까지-157화 (157/257)

157화.

“아리스. 너를 만든 사람 이름은 아리스야.”

― 아하, 그렇구나.

하지만 세렌트는 아리스에게 그다지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의 주인이 된 미레아에게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 있잖아, 내 성격은 어때? 마음에 들어?

세렌트는 아까부터 미레아의 마음에 들기 위해 무던한 애를 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미레아가 입원해 있는 동안 한 번도 자신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속으로 속상해하고 있었던 터였다.

“네 성격?”

미레아는 말이 많은 것이 아리스를 닮았다고 말해 주려다 참았다.

“발랄해서 좋아.”

미레아의 입에서 좋다는 소리가 나오자 세렌트는 기뻐했다. 미레아의 생각대로 세렌트는 쉴 새 없이 떠들어 대었다. 이제 막 깨어나서 그런지 궁금해하는 것들이 엄청 많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레아는 하나하나 답해 주는 것이 상당히 귀찮았지만, 적당히 맞춰 주었다. 세렌트 덕분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 * *

한밤이 되어서야 비공정이 록산에 착륙했다. 착륙장에는 라일라와 쿤둘렌이 마중 나와 있었다. 라일라는 진과 미레아를 보자마자 달려와 그들을 끌어안았다.

“리비엘로가…….”

그러면서 울먹이는 라일라에게 미레아는 시오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정말 싫었다. 리비엘로의 소식은 라일라에게 먼저 전달되었지만, 시오의 소식은 라일라가 알기 전이었다. 그저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았다. 미레아는 싫은 일은 뒤로 미뤄 두기로 했다. 대신 이성을 다잡고 라일라에게 물었다.

“내가 어디로 가면 돼?”

그 말이 뜻하는 것은 뻔했기 때문에 라일라는 리비엘로의 관이 안치된 곳을 알려 주었다. 미레아는 말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쿤둘렌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인원을 파악하고는 미레아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그런데, 시오 군은 오지 않았나요? 함께 오는 줄 알았는데요.”

“시오…… 선배는…….”

소식을 전하는 것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던 미레아가 머뭇거리는 기색이자 라일라의 얼굴이 굳었다. 미레아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죽었어요.”

미레아는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미레아에게 그의 죽음을 돌려 말할 정신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완곡하게 돌려 말해 봤자 어차피 쿤둘렌과 라일라가 받는 충격은 똑같을 것이었다.

“시신은 그의 부모님께 인도하고 오는 길이에요. 장례식은 히루카 공화국에서 치러질 예정이고요.”

쿤둘렌은 얼굴을 굳히며 잠시 움직임이 멈췄다가 참담한 심정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런데 라일라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아…….”

그런 신음 같은 소리만 흘리고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소식이 없어서 걱정했었는데 그랬구나…….”

그 반응에 오히려 미레아 쪽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거기에 진까지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여기서 다른 말을 더 보태자니 말문이 쉽게 트이지 않았다. 미레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응.”

넷은 그 이후 말이 없이 리비엘로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리비엘로는 이렇다 할 가족이 없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고 주변에 제대로 된 보호자도 변변치 않아서 먼 친척의 손에 서리 교단의 신녀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운이 좋게 성녀 후보로 이름이 오르기도 했지만, 운은 거기까지였다.

리비엘로가 자신의 능력인 예지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을 때, 루데키아스에게 내린 서리 여신의 말은 예언이 아니라 신탁이라 발언한 것이 고위 사제들 사이에서 문제가 되어 좌천되었다. 여신의 말이 전부인 그들에게 여신 이외의 인간이 가진 예지력은 데르카이드가 여신의 인도 없이 마법을 쓰는 것만큼이나 터부시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록산의 작은 신전까지 흘러들어 왔다.

그런 리비엘로의 장례식은 상당히 조촐했다.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장례는 신전에서 주관하는 절차대로 약소하게 행해졌다. 미레아는 리비엘로의 관 앞에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리비엘로는 원래도 표정 변화가 다양한 편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정말로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숨을 거둘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속상했다. 리비엘로가 살해당한 이유는 미레아를 포함해서 아무도 몰랐다. 미레아는 그것이 너무나도 속상했다. 적어도 시오의 죽음에는 이유와 대의가 있었다. 하지만 리비엘로는 아니었다. 대체 그녀가 왜 죽어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위험한 임무에서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은 비전투원이 겨우 살아서 록산까지 돌아왔다. 그런데 며칠 만에 죽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살해당해서.

경찰들은 수사 중이라는 소리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할 수만 있다면 미레아가 직접 범인을 찾아내 목을 베고 효수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미레아에게는 지금 당면한 과제가 너무나도 많았다. 가장 급한 것은 아리스의 구출 작전이었다.

미레아를 포함한 아리스의 외가 식구들과 동료들의 마음과는 달리 그들은 당장 루아드 황궁으로 쳐들어가지 않았다. 일단 형식적이나마 루아드 황실에 협상해 보자는 말을 전했다. 그것에 대한 답이 아직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늉 정도는 해야 했기 때문에 역으로 리비엘로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미레아는 이것을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화를 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슬펐다. 슬프고, 슬퍼서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쿤둘렌은 경찰에 여러모로 협조하며 리비엘로를 살해한 범인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거기에 임무에 돌아오면서 해야 할 보고가 산처럼 쌓여 몸이 두 개여도 바쁜 상태였다. 지금도 진술을 하러 경찰서에 출두하려던 차에 미레아의 마중을 나온 것이었다.

미레아는 라일라와 진과 함께 장례식장의 맨 앞줄에 앉아 사제들이 망자를 위해 하는 기도를 멍하니 들었다. 여러 감정이 뒤엉켜서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고 라일라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진은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들은 자정이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레아는 리비엘로의 죽음을 겨우 받아들이고 슬픔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니 그녀가 왜, 어쩌다,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미레아의 집 쪽으로 가는 트램의 막차 시간이 지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라슈발렌 본부 건물을 향해 터덜터덜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사인은 심장에 박힌 한 발의 총알 때문이었습니다.”

쿤둘렌의 말에 미레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총알의 출처가 어디지요? 총은 찾았나요?”

“범인은 탄피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현장에 있던 것은 총알 하나뿐이었지요. 상당히 가까운 정면에서 쏜 것입니다.”

미레아가 이를 으드득 갈았다.

“목에는 손으로 졸렸던 흔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생명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고통스럽기는 했겠으나 가볍게 졸린 정도지요.”

쿤둘렌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현장이 너무나도 깨끗해서 많은 정보가 없지만, 굳이 이상한 상황을 꼽자면 방어흔이 없었습니다.”

“비록 총에 맞았다 해도 목이 졸린 것을 보면 방어할 새가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미레아의 날카로운 지적에 쿤둘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면식범의 소행일 가능성도 있지요.”

“아니면 어쩌면…….”

지금까지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진이 주저하며 말했다.

“자신의 죽음을 예지…… 했던 것이 아닐까? 바꿀 수 없는 미래였기 때문에 순순히 받아들였을 수도…….”

하지만 미레아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리비엘로가 자신이 본 미래는 바뀔 수도 있다고 그랬어요. 자신의 죽음을 보고 일찌감치 포기했다니, 그럴 리 없어.”

미레아의 강한 부정에 쿤둘렌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예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실제로 추론기를 작동하고 있었는지 방에 그것을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죽음을 봤으면서 왜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지요? 왜 아무 저항도 하지 않은 거였는데요?”

미레아는 분통을 터트렸다.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리비엘로에게 화가 났다. 더 싸울 수 있었을 텐데 싸우지 않았단 것에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있지도 않은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어쩌면 저항을 하는 것이 먹히지 않은 상대라던가.”

진의 말에 쿤둘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세피로스가 있었더라면…….”

미레아가 탄식했다.

“세피로스에게 연락은 아직도 없는 것이지요?”

“벨로아 부회장이 열심히 알아보고는 있습니다만, 아직은…….”

쿤둘렌의 말에 사람들은 또 시무룩해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있을 분이 아니잖습니까.”

미레아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리비엘로의 죽음이…… 이 일과 관계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레아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

“라우노를 붙잡아 물어보면 원하는 답이 나올까요?”

“일단 붙잡고 생각합시다.”

진이 팔짱을 끼고 생각을 하며 중얼거린 말에 미레아가 대답했다. 이후 쿤둘렌은 여러모로 조사하기 위해 경찰서를 오가야 한다며 그들을 본부 건물까지 데려다주고 헤어졌다. 미레아는 본부에 보관 중이던 자신의 바이크를 끌고 오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진과 라일라도 같은 방향이었기 때문에 미레아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걸었다.

그러는 사이 미레아와 진은 라일라의 눈치를 보았다. 라일라가 시오의 부고를 듣고 이 정도 반응에서 그친 것이 신경 쓰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건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낼 용기도 없었고, 그것으로 라일라의 마음을 들쑤실 생각도 없었다.

대부분의 인원이 퇴근했기 때문에 복도에 불이 듬성듬성 켜진 본부 건물에 들어가려다 멈칫한 라일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미레아, 나 오늘 너희 집에서 자고 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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