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미레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아메나 대륙에 무슨 일이 있나, 혹시 습격이 있던 때 라슈발렌 본부로 피신하지 못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래서 신전 직통 전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신전을 통해서라면 리비엘로의 소식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연결이 안 되면 어떡하나 싶던 미레아의 걱정과는 달리 신전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통신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 미레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상대방의 목소리가 익숙했다. 자잘한 일을 도맡아 하는 수습 사제였다. 미레아는 신전을 들락거리는 동안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미레아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였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미레아 제인스터라고 하는데 리비엘로 람 신녀님과 통화 가능할까요?”
― …….
그런데 상대방에게서 대답이 없었다. 미레아는 의아해져서 자신의 말이 제대로 전달된 건지 다시 확인하려 그런 순간 수습 사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혹시 무슨 용건 때문에 그러세요?
“리비엘로와 친구인데 그냥 근황이 궁금해서요. 왜, 저 보신 적 있지 않으세요? 리비엘로랑 같이 다니던 빨간 머리…….”
― …….
미레아가 열심히 자신에 대해 서술하자 상대방은 다시 말이 없었다. 미레아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멋쩍게 물었다.
“리비가 지금 통화하기 곤란한가요?”
― 그게…….
수습 사제는 머뭇거리면서 운을 뗐다.
― 소식을 모르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기 참으로 조심스럽습니다만…… 람 신녀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네?”
미레아는 상대방의 말을 잘못 들은 것 같아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리비가 지금 어떻다고요? 돌아갔다니 어디로…….”
― 서리 여신의 품으로 말입니다.
서리 여신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말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명을 다해 여신에게 돌아갔다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뭐라고요?”
미레아는 실감 나지 않아 평소와 다름없는 어투로 재차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리비엘로가 서리 여신의 품으로 돌아갔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 이틀 전, 밤중에 살해당하셨습니다.
미레아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수습 사제의 말을 간신히 이해한 미레아는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저기, 제가 지금 이해가 안 가서…… 살해요? 대체 누구에게? 아니, 그렇다는 소리는 이틀 전까지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는 소리인가요? 그런데…… 살해?”
― 저기, 일단은 진정하시고…….
상대방은 미레아를 달래기 위해 애를 썼지만, 고작 기계를 사이에 두고 전해져 오는 말 따위에 진정될 리 없었다. 미레아는 수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이해가 되질 않아요. 하나도! 리비엘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사실대로 말해 봐요!”
― 그러니까, 그게……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당황하신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일단 침착하세요.
“빨리 말이나 해!”
미레아의 다그침에 수습 사제가 지레 놀란 말투로 허겁지겁 말을 이었다.
― 자세한 정황은 지금 경찰이 조사하고 있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만 말씀드리자면 리비엘로 신녀님께서는 그제 신전을 침입한 괴한의 총탄에 맞아 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라슈발렌 임무에서 돌아오고 쉬시던 중에 여신께 기도를 올리겠다면서 기도실로 향한 것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고……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고, 그래서…….
수습 사제가 그 뒤에도 이것저것 두서없이 설명했지만, 미레아의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뭐야, 그게…….”
미레아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지금 이 상황 뭔데?”
수화기가 손에서 툭 떨어졌다. 그녀는 송화기와 연결된 줄에 매달려 덜렁거리고 있는 수화기를 초점 없는 눈으로 보다가 그것을 낚아채서 쾅 소리가 나도록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헉헉거리며 몰아쉬었다.
“거짓말이야.”
미레아가 손을 더듬거리면서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아니야, 거짓말이야.”
그녀는 자신의 양 뺨을 손으로 세게 때렸다. 철썩거리는 소리가 매섭게 울렸고 전기라도 흐른 것 같은 통증이 볼에 퍼졌다.
“꿈이 아니야?”
미레아가 헛웃음을 들이키며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꿈이 아니라고? 현실이라고?”
리비엘로가 죽어? 왜? 살해? 대체 누구에게? 그래서 죽었다고? 그 리비엘로가?
의문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시오의 죽음과는 다른 무게의 충격이었다. 아직 리비엘로의 시신을 직접 보지 못했다.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녀의 죽음을 믿고 싶지 않았다. 고작 전화로 전달된 소식이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리비엘로는 예지 능력이 있었다. 자기 죽음을 알고 있었다면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한 가설을 세우자 미레아는 더더욱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직접 확인해야 했다.
미레아는 비틀거리며 병실을 나오다 은현과 마주쳤다.
“미레아 양!”
은현은 미레아를 보고 당황했다.
“무슨 일 있어요? 얼굴이 백지장보다 더 창백하고 식은땀도 많이 나고…….”
“아니, 아니. 그게요…….”
미레아가 두서없이 말을 내뱉었다.
“제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확인해야 하거든요? 제가 확인해야 해요.”
하지만 은현이 봤을 때 미레아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진정해 봐요, 미레아 양. 무엇을 확인한다는 건가요?”
“그러니까, 확인이…….”
그렇게 중얼거리던 미레아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은현이 미레아의 몸에 손을 댔다가 깜짝 놀라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미레아의 몸이 불덩어리 같았다.
“미레아 양!”
은현이 애타게 불렀지만, 미레아는 여전히 과호흡을 멈출 수 없었다. 확인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록산으로 돌아가야 했다. 미레아는 은현의 팔을 꽉 잡았다.
“록산으로 돌아가야 해요. 지금 당장!”
미레아가 간절하게 말하자 은현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록산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비공정으로 이동하거나 초장거리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야 하는데 전자는 당장 비공정을 띄울 수 없었고 후자는 상부의 허가가 필요했다. 게다가 아이나 지부에서는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는 것을 쉽게 허락을 내주지 않았다.
애초에 워프 게이트는 그렇게 남용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미레아가 탈출에 이용했던 워프 게이트는 주기적으로 게이트가 열릴 좌표에 마력 신호를 보내는 마도 기구를 설치했기 때문에 손쉽게 게이트를 열 수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상시국에나 이용 가능한 수단이었다. 대부분의 비상용 워프 게이트는 추적을 피하고자 할 때 쓰는 일회용이었다. 지금처럼 비상시국이 아닌 이상 게이트 사용의 허가를 받아 낼 수도 없었고 게이트를 열어 줄 마법사도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비공정 하나밖에 없었다. 라슈발렌의 비공정을 이용할 수 없다면 사설 비공정을 통해서라도 록산에 가야 했다. 그렇게 계산을 마친 미레아는 은현에게 징징거리는 것을 그만두고 혼자서라도 움직이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레아 양, 잠시만요.”
은현은 미레아의 손을 꽉 쥐어 그녀를 멈춰 세우고 남은 손으로는 미레아의 뺨을 살짝 감쌌다.
“일단 진정해요. 무슨 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빨리 록산에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러니 제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이 이야기를 하려고 찾아왔어요.”
그제야 미레아는 은현과 눈을 맞췄다.
“비공정은 제 친정에서 준비할 수 있어요. 말했잖아요? 그러니 록산까지 가는 것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내일이면 떠날 수 있을 거예요. 그사이 미레아 양이 해야 할 일은 딱 하나예요. 체력과 건강을 챙기는 것이지요. 회복 속도가 빠르다고는 하나 미레아 양의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잖아요. 지금도 이렇게 열이 나고 얼굴이 하얀데…….”
“하지만, 저는 지금 바로 가야 해요!”
미레아의 말에 은현이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고는 해도 저는 당신마저 잃을 수 없습니다.”
그 말에 미레아는 고개를 젓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은현의 앞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속에 있던 말을 내뱉었다.
“록산에 있는 제 친구가 죽었대요. 이틀 전 밤에 살해당했대요. 하지만 제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어요. 그래서 록산에 가야 해요. 그런데 또 기다리라니…….”
그런 미레아를 은현이 말없이 안아 주었다. 미레아는 은현의 품으로 파고들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싫어요. 친구가 살해당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제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어요?”
은현은 미레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달랬다.
“때로는 기다리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는 거예요.”
은현 역시 가만히 있는 것은 충분했다. 남편을 잃었을 때도 그랬고, 지금 황제에게 끌려간 아리스를 생각해도 그랬다. 하지만 가만히 숨을 죽이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이었다.
“우리 함께 아리스를 구하러 가기로 했었죠?”
은현의 품 안에 얼굴을 묻은 미레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리스뿐만이 아니었다. 파울로와 율비네도 구해야 했다. 그나마 희망적인 가정을 하자면 파울로는 라슈발렌 소속인지라 황실의 이름으로 처형당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율비네는 달랐다. 아리스의 최측근이었고 심지어 여자였다. 포로로 붙잡힌 여성들이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는 미레아와 은현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저 역시 아리스를 구하러 가고 싶어 마음이 급하기는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따듯한 목소리로 미레아의 귓가에 소곤거리며 은현이 달래 주자 미레아는 딸꾹거리며 눈물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