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따라 종말까지-152화 (152/257)

152화.

“선배……?”

미레아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 …….

“선배!”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때, 미레아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라케드가 미레아를 자신의 등에 태우고 고속으로 이동했다.

“그 미련한 놈한테 계속 말 걸어. 전파로 위치를 잡게.”

“선배, 들었어? 라케드 님이랑 구하러 가고 있어. 조금만 버텨 봐!”

시오에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때, 하늘에서 거대한 비구름이 순식간에 만들어지더니 굵은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라케드가 만들어 낸 비였다. 그 강한 비에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시오가 벼랑에 은신하고 있다가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하니 그들은 일단 불이 붙은 지형에서 절벽을 찾았다.

미레아는 끝이 조금 그을린 연하늘빛 머리카락을 찾는 데 성공했다.

“선배!”

미레아가 라케드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시오 선배!”

시오는 엎어져 누워 있었는데 그 옆으로는 저격용 소총이 뒹굴고 있었다. 미레아가 달려가 시오의 몸을 돌려 눕혔다. 시오는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숨을 쉬어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가슴은 고요했다. 시오의 목 정맥이 지나는 자리에 손가락을 대어 맥박을 확인해 보았지만,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그저 빗물에 젖어 차갑게 식어 가는 시오의 체온뿐이었다.

미레아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시오의 고개를 살짝 젖혀 기도를 확보한 후 가슴 위에 양손을 올려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심폐소생술을 하는 기본적인 지식은 알고 있는 터였다. 가슴을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압박하며 미레아가 처절하게 외쳤다.

“선배, 돌아와……!”

미레아는 뭐에 홀린 것처럼 미칠 듯이 연신 시오의 가슴을 압박했다. 심폐소생술을 하다 가슴에 귀를 대어 심장이 뛰는지 확인하고, 다시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심폐소생술은 지속해서 손에 힘을 주어 꾹꾹 압박해야 했기 때문에 팔 근육이 아릿해져 왔고 땀이 비가 오듯 흘러내렸다.

미레아의 호흡이 흐트러지자 라케드가 자리를 바꿨다. 미레아는 덜덜 떨면서 라케드가 시오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거리면서 씹은 통에 아랫입술에서 피가 나와 혀끝에서 쇠 맛이 났다.

“선배, 제발…….”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항상 유서를 품고 다니고 차가운 냉기를 뿜는 죽음은 우리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항상 눈앞까지 칼날과 총알이 날아드는 처지였고, 그러는 자신도 검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거두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케이드도 그래서 행방불명이 되었고, 카스카디아도 그래서 눈을 잃었다.

하지만 미레아가 라슈발렌에 들어온 이후 이렇게 가까운 사람이 위기에 빠진 적은 얼마 없었다. 그들은 최정예 부대였고 그만큼 위험이 도사리는 임무들을 수행했지만 그만큼 쉽게 죽을 위인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으며 오만이었다. 그래, 그마저도 알고 있었다. 눈을 스스로 가리고 있었을 뿐. 우리는 일부러 밝게 웃었고 일부러 농담 따먹기를 던졌다. 진지한 상황에서도 진지하지 않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척. 그렇지 않고서야 다들 미쳐 버리기에 십상이었고 두려움을 보이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여기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무서웠다. 죽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죽음이 두려웠다. 지금까지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이 좋아 살아남았을 뿐이었다. 시오에게는 지금 그 운이 없었던 바람에 이런 상황에 몰리게 된 것이다.

라케드가 가슴을 압박할 때마다 양팔이 힘없이 흔들거렸다. 미레아는 제자리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선배, 선배. 시오 선배. 내 어깨를 팔걸이로 사용해도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제발 돌아와. 라일라한테는 대체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제발.

기계 같은 움직임으로 한참 심폐소생술을 하던 라케드가 손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미레아가 라케드와 교대 하기 위해 얼른 그가 있던 자리를 채우려 하자 라케드가 팔을 들어 그녀를 막았다. 미레아가 라케드의 다른 뜻은 생각지도 않는 듯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라케드는 숨을 헐떡이며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만해.”

“예?”

“30분 넘게 했어. 그만할 때라는 소리다.”

“네……?”

미레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라케드의 말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무슨 뜻인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멀거니 라케드를 바라보다 갑자기 정신이 돌아오기라도 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아니죠. 아니죠! 아직 30분밖에 되지 않은 거잖아요! 지금 멈출 수 없어요!”

“30분이나 된 거야.”

“아직 안 돼요!”

“미레아.”

“조금, 조금만 더 해 봐요. 네? 딱 10분만…… 아니, 5분이라도, 하다못해 1분이라도……!”

미레아는 라케드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제발, 제발 포기하지 말아 줘요! 시오 선배는 아직……!”

“편하게 떠날 수 있게 해 줘.”

라케드의 말에 미레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조금 전까지 저와 제대로 대화를 할 정도로 의식이 있었단 말이에요.”

“유감이다.”

미레아의 몸이 풀썩 앞으로 꺾여 손으로 땅을 짚었다. 시오의 얼굴은 생각보다 평안해 보였다. 미련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좀 더 미련을 가져 주었으면 싶었다. 조금만 더 버텨 주었다면…….

미레아는 덜덜 떨리는 몸을 땅 위에 웅크렸다. 눈물보다 비명 같은 울음이 먼저 터져 나왔다.

“아아악……!”

그렇게 소리를 지른 미레아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라케드가 자신의 옷자락으로 시오의 머리카락과 얼굴에 엉겨 붙은 피를 닦아 주며 고개를 저었다. 그로서는 시오에게 처음으로 가장 다정하게 대해 주는 순간이었다.

“미련한 것.”

두개부의 출혈이 적지 않았었다. 두개골 골절로 인해 뇌진탕과 뇌부종이 오고 혈전이 생겨 뇌혈관을 막기도 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움직이지 않는 다리 대신 팔로 땅을 기어가 저격 자세를 잡고 3발이나 같은 곳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명중시켰다. 덕분에 남은 이들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전까지 본인은 구조 요청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호를 보내는 순간 미레아가 반응이라도 하면 마니샤에게 들켰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정말로 죽은 듯 숨죽이고 흩어지려는 집중력을 한데 모아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저격했다. 그럴 정신이 있었던 것이 기적이었을 만큼 시오의 상태는 공격을 받은 직후부터 좋지 않았다. 즉사하지 않은 게 기적인 몸이었기에 처음부터 시오에게 달려갈 시간이 부족했었다.

“미련한 것.”

라케드가 한 번 더 중얼거렸다. 시오 같은 저격수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이번 저격이 끝난 후 그는 대륙에서 한 손가락으로 꼽히는 최고의 저격수가 되어 있었다. 미레아는 오열하며 시오의 몸을 더듬었다. 물에 젖은 몸은 더 빨리 식어 갔다.

그러다 뒤늦게 그의 오른손에서 권총을 발견했다. 타 죽기 싫으니 자살하겠단 소리를 지껄인 것이 떠올라 확인해 보자 탄창이 비어 있지는 않았다. 적어도 불에 타는 고통 없이 잠들 듯 숨을 거두었단 소리였다. 미레아는 그의 손가락을 펴서 권총을 떨어트리면서 코를 훌쩍였다.

시오. 시오 미도르. 아이나 대륙에 위치한 히루카 공화국 출신. 키가 크고 인물이 훤칠했으며 그 특유의 유들유들한 얼굴로 팀 내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고 동료들의 등 뒤를 믿음직스럽게 지켜 준 저격수. 물빛을 닮은 하늘색 머리카락은 부들거렸고 짙은 회색 눈동자는 저 먼 세상까지 볼 수 있던 그.

마치 그의 외향처럼 하늘빛이 맑고 회색 재가 흩날리는 곳에서 시오 미도르는 그의 나이 향년 25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 * *

리비엘로는 록산의 서리 여신 신전에서 지급된 자신의 방에서 추론기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상당히 늦은 밤 시간이었지만 오늘 아침에 두통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 리비엘로의 머릿속에는 그 어느 때보다 정보가 가득 차올라 흘러넘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녀는 예지 능력을 끌어 올려 주는 추론기로 끊임없이 연산 작업을 하고 있었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수많은 예지를 정리하면서 추론기를 두드리던 그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추론기를 통해 나타난 것 중 믿을 수 없는 정보들이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이 미래가 아니다. 저 미래도 아니었다. 아무리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그녀의 끝이 되는 미래를 바꿀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주변인들의 미래도.

이대로라면 자신은…… 리비엘로는 허탈하게 웃었다. 고작 12시간이었다. 12시간 만에 리비엘로가 알고 있던 미래가 바뀌어 버렸다. 심지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바뀐 것은 처음이었다. 예지는 만능이 아니었다. 현재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영소의 흐름과 의지들을 읽어 미래를 추론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요소가 바뀐다면 그 역시 바뀐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전조 없는 변화는 당혹스러웠다. 이 미래를 바꾼 사람은, 지금까지 철저하게 그들을 속였다. 리비엘로조차 미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본인마저 완벽하게 속였다. 모든 것이 리비엘로를 속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수 시간이 지난 후 리비엘로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있는 사실은 부정한다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참 추론기를 조작하던 리비엘로는 어느 순간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기분이 불쾌했다.

리비엘로는 남들에게 말하지 않고 주변인들이 가진 영소의 흐름을 하나씩 쥐고 있었다. 당사자가 알면 기분 나빠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함구했지만 그들의 주변에 닥칠 위험 중 예지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미리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쥐고 있던 인과율의 흐름 중 하나가 방금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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