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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따라 종말까지-148화 (148/257)

148화.

마니샤 역시 자신의 술식을 세워 결계의 술식을 하나하나 파훼해 가자 결계가 무너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나 라케드가 그것을 잠잠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내가 있는 한 이 성지에는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해.”

대피하는 인원들이 어느 정도 달아난 것을 확인한 라케드의 눈이 금색으로 빛나더니 그가 있던 자리에 녹색 스파크가 눈부시게 휘몰아쳤다. 그러더니 그 속에서 채도가 낮은 금색 비늘을 가진 용이 긴 꼬리를 괴물들에게 휘둘렀다. 꼬리에 맞은 괴물 몇이 미레아가 달리고 있던 복도 벽 쪽으로 날아와 부딪히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떨렸다. 그 바람에 미레아는 넘어질 뻔했지만, 얼른 자세를 바로잡아 마저 달렸다.

그러는 사이 세피로스가 용으로 현신한 몸과 비교하면 세 배나 더 큰 용이 피막으로 된 날개를 움직여 육중한 몸을 공중에 띄웠다. 이제 결계는 완전히 부서졌고 괴물들이 우수수 하강하기 시작했다. 라케드는 사나운 눈으로 그것을 노려보았다. 꼬리에 치여 처박힌 괴물을 앞발로 깔고 뭉개고 그 목을 이빨로 물어뜯었다.

라케드가 괴물들의 시선을 끄는 사이 미레아는 오래 걸리지 않아 배아의 방에 다다랐다. 그 주변을 서성거리며 접근하려는 괴물들을 견제하고 있는데 창을 통해 밖을 보니 괴물들은 라케드에게 달라붙어 그의 몸을 잡아 뜯으려 그랬다.

“라케드 님, 그놈들의 마력을 조심하세요! 결계를 부순 것을 보면 이미 아시겠지만, 그 녀석들은 단순히 마력을 방출하는 것만으로도 마법 술식을 파훼할 수 있어요!”

복도에 난 창밖으로 머리를 내민 미레아의 경고에 라케드는 딱 필요한 만큼만 마력을 끌어다 썼다. 온 사방에서 전류가 흐르며 번개가 내리쳤다. 미레아는 바닥에 엎드려 그것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까맣게 그을린 괴물들이 우수수 하늘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벼락을 맞아 살은 물론 내장까지 탔어도 왼쪽 눈에 있는 마석 덕분인지 괴물들의 회복이 빨랐다. 미레아는 그것을 마냥 손 놓고 보고만 있지 않았다. 배아의 방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미련하게 그 앞에만 죽치고 있어 봤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견제할 수 있는 거리를 가늠한 미레아는 창틀을 넘어 밖으로 나가서 새까맣게 익어 떨어진 괴물들의 왼눈에 검을 박아 넣으며 하나하나 처리하였다. 그러는 사이 나머지 녀석들이 벌떡벌떡 일어나고 있었다.

“제기랄!”

기절한 괴물들의 중앙에 있던 미레아는 얼른 가장자리로 몸을 물렸다. 미레아는 초조하게 하나둘 일어나고 있는 괴물들을 바라보았다. 회복 속도가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어쩌지?”

이 길목에서 저지하지 않으면 배아의 방까지는 금방이었다.

그때, 미레아의 옆쪽에서 덤벼드는 괴물의 다리에 마탄이 관통했다. 일단 괴물의 움직임을 봉쇄한 사이 왼눈을 정확하게 노린 마탄이 괴물의 마석을 파괴했다.

― 하나.

시오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들렸다. 미레아는 무전기에 대고 대꾸했다.

“난 셋.”

― 양심적으로 라케드 님이 기절시킨 놈을 뒤처리한 건 세지 말자.

그러더니 미레아에게 좀 떨어진 거리에 있는 마수의 왼쪽 눈이 터져 나갔다.

― 둘.

“내가 죽인 건 죽인 게 맞잖아. 억울하면 선배도 하든가.”

미레아가 키득거리면서 자신의 근처에 있는 괴물의 입안에 검을 박아 주었다. 그대로 검을 사선으로 가르며 왼쪽 눈에 있던 마석을 함께 베었다.

“넷!”

미레아는 코앞에 접근하는 괴물들을 한 손으로는 원래 쓰던 검으로, 반대편 손으로는 아리스가 준 검을 휘두르며 견제했다. 검신이 기니까 그만큼 견제할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났다는 장점이 있었다. 미레아는 새 검을 마음껏 휘두르며 긴 검신이 주는 느낌을 만끽했다.

어딘가에서 시오의 마탄을 맞은 괴물들이 땅에 뚝 떨어졌다.

― 셋.

저편에서는 라케드가 괴물들의 머리를 쥐어 터트리고 있었다. 라케드가 놓친 괴물이 용들이 도망간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이런!”

그때, 금빛 섬광 같은 것이 괴물을 베며 지났다. 긴 흑발이 나부끼며 우아한 몸짓으로 괴물의 목을 벤 것은 은현이었다. 금색 검기가 두른 환도를 고쳐 잡으며 은현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렸다. 그녀는 다른 용들의 대피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 대피하는 쪽으로 흘러들어온 괴물들과 사투를 벌였다.

“이쪽은 걱정하지 마세요!”

은현은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였지만 괴물 한두 마리 정도 처리하는 것 정도는 자신 있었다.

“도망치시라니까요!”

미레아가 저 멀리서 외친 말이 거리 때문에 들리지는 않았지만, 은현은 미레아에게 검을 쥔 손을 올려 보였다.

“수로로 도망간 무리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게이트 쪽으로 대피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저는 이쪽으로 오는 것들만 처리하고 바로 수로를 통해 대피하겠습니다. 당신들이야말로 무리하지 마세요! 이쪽으로 오는 것들을 제가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라케드와 은현이 용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 주고 미레아는 배아의 방을 지켰으며 시오는 그들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괴물을 처리한다. 나름대로 이상적인 그림이긴 했다.

“이놈들이 마법을 쓰는 것이 문제라면 마법을 쓸 시간을 안 주면 되는 거지?”

용으로 변한 라케드의 주변으로 다시 번개가 내리쳤다. 사방이 번쩍거리며 낙뢰에 맞은 괴물들이 떨어졌다. 그 공격은 괴물들의 혼을 빼놓기 좋았다. 땅으로 떨어진 괴물들은 라케드의 마법이 멈춘 틈에 미레아가 달려들어 마석을 파괴했다. 번개를 피해 수로 방향으로 도망간 괴물들은 은현이 베어 내었다. 은현과 라케드는 홀로 열이 넘는 괴물들을 상대하는 데도 지친 기색이라고는 없었다.

그때, 라케드의 입가에 진녹색의 스파크가 튀었다. 그가 입을 쩍 벌리며 마력을 방출하자 하늘을 향해 눈부신 빛이 치솟았다. 그 주변에 있던 괴물들은 날개가 타서 괴물들이 추락했고, 그 빛의 정면에 있던 것은 마니샤였다.

마니샤는 황급히 방어막을 쳤지만, 눈이 타들어 갈 것 같은 빛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그사이 라케드가 마니샤에게 접근하여 꼬리를 휘둘러 그녀를 갈겼다. 마니샤는 그대로 건물에 처박혔다.

“네가 사령탑인 모양이니 너부터 없애 주마.”

라케드는 마니샤가 처박힌 건물의 중력을 변환시켜 마니샤가 자신의 몸무게에 찌그러지도록 하여 그녀의 움직임을 막았다. 마니샤는 자신의 마력으로 마법을 파훼했다. 서로 마법을 주고받으며 전투가 이어졌고 서로의 기세가 거세어 미레아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대신 미레아는 라케드가 마니샤를 상대하는 사이 땅에 떨어진 괴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 내가 그거 반칙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시오는 아직 공중에서 퍼덕거리고 있는 괴물들을 노려 라케드가 마니샤를 상대하는데 훼방을 놓지 않도록 엄호했다.

라케드가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마니샤를 찍어 누르자 건물 벽이 우르르 무너졌다. 그것이 운이 좋게도 수로와 워프 게이트가 있다는 방향으로 향하는 복도를 막았다.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는 길목이 막혔지만, 그것은 반대로 저쪽으로 갈 수 없는 건 괴물들도 마찬가지란 소리였다.

수로로 가는 방향에 있던 은현이 무너지는 잔해에 깔리지 않게 몸을 물려 피했다.

“은현 님!”

미레아가 잔해 너머로 은현을 불렀다.

“저는 괜찮아요!”

다행히도 멀쩡해 보이는 은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되었으니 저는 이곳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다들 조금 있다 뵙도록 하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미레아의 말에 짧게 대답한 은현의 기척이 저 멀리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간신히 정신을 놓지 않은 마니샤가 마구잡이로 마법을 난사하며 공격하자 라케드 역시 마법으로 응대했다. 마니샤는 세피로스와 거의 호각으로 싸웠지만, 라케드는 세피로스와 달랐다. 세피로스 역시 1세대 용으로서 마수와 전쟁 한복판의 가장 격전지에서 싸웠지만, 그래 봤자 고작 300년 묵은 애송이였다.

2,000년 동안 살아온 용이 갈고 닦은 경험치는 그 이상으로 상당히 무서운 것이었다. 라케드의 연계 공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던 마니샤는 인상을 쓰며 괴물들을 부려 라케드를 공격하게 했다. 괴물들은 입을 쩍 벌리더니 라케드가 썼던 마법을 흉내 내어 전류를 사방에 내뿜었다.

덕분에 미레아까지 그 빛에 휘말려서 눈을 뜰 수 없어 공격이 주춤한 틈을 타 괴물들이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든든한 엄호 군이 있었다. 미레아에게 접근하던 괴물의 왼쪽 눈이 하나씩 꿰뚫렸다.

― 넷, 다섯.

시오의 진가는 이런 곳에서 발휘된다. 이틀 전에는 적과 아군이 뒤섞인 난투극이었기 때문에 저격이라고 할 만한 공격을 할 수 없었고 안전하게 은신할 거리조차 확보하지 못했었다. 기껏해야 기관단총을 휘갈기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전거리를 확보했고, 자신의 목표물을 노리는 시야에 들어오는 아군이 없으니 방아쇠를 당기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시오는 윗입술을 혀로 쓸었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짜릿한 쾌감이 들었다.

“아홉! 더 분발해 봐, 시오 선배!”

미레아의 도발에도 시오는 침착한 목소리로 수를 셌다.

― 여섯.

시오가 노리는 것은 다른 것에 있었다.

― 일곱.

시오는 저격을 위해 은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괴물들도 그의 위치는커녕 그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지가 없으니 자신들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 이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 여덟.

그것은 마니샤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앞의 라케드와 미레아에게 정신이 팔려 누군가 괴물들을 저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 아홉.

그러나 마탄은 개수에 제한이 있었다. 시오는 이곳으로 피신할 때 그다지 많은 탄환을 챙기지 못했다. 그에게는 고작 탄창을 한 번만 갈 수 있는 기회밖에 없었다. 그러니 더 신중해야 했다. 한 발, 한 발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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