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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따라 종말까지-143화 (143/257)

143화.

본격적인 은거에 들어가자 예상대로 사람들이 도시 전설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백익 니콜라우스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괴물이라고. 그나마 니콜라우스의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소문으로 그쳤다.

그 바람과는 달리 세피로스는 니콜라우스의 이상을 눈치채고 있었다. 니콜라우스는 마력을 다량으로 쓴 날은 종종 이성을 잃었고 세피로스는 그것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세피로스와 함께 있을 때마다 니콜라우스는 습관처럼 허기진다고 말했다. 공복일 때도, 충분한 식사 후에도, 잠들기 전에도 언제나.

세피로스는 그 허기가 위장이 비거나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여 하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피로스는 다른 핑곗거리를 만들어 니콜라우스와 함께 지냈지만, 사실은 그의 감시, 관찰이 목적이었다.

니콜라우스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개인보다 강대한 힘을 지녔고 그런 그가 폭주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세피로스는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그도 이런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의 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니콜라우스의 광증은 조금씩 심해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정신을 놓고 있어도 누군가 니콜라우스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저 생명이 충만한 영소들을 봐. 군침 나지 않아?’

그때마다 니콜라우스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이건 환청이다. 자기 자신이 아니었다. 흘려들어야 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어느 날,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해진 목소리에 니콜라우스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세피로스가 달려와 주었다.

“세피로스! 나는 마수와 달라!”

니콜라우스는 자신의 말을 긍정해 달라는 의미로 세피로스에게 매달렸다. 세피로스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쓰며 달래 주었다.

“알고 있어. 너는 마수가 아니야.”

“그래, 아니야…… 나는 마수 따위가 아니야…… 마수와 달라…….”

“나와 함께 마수와 싸웠잖아. 그 누구보다 마수를 증오했잖아.”

“맞아. 그 말이 맞아, 세피로스. 나는 마수가 아니야. 마수 따위 꼴도 보기 싫어…….”

“그러니 자기 자신을 잊지 마. 너는 백익 니콜라우스야. 마수 대전의 영웅, 이 세계의 구원자. 이 세상에는 네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많잖아.”

“그렇지. 내가 마수 따위와 같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게 어디 있겠어.”

니콜라우스는 끊임없이 그 말을 되뇌었다.

하지만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니콜라우스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덜덜 떨며 지냈다. 자신의 정신을 누군가가 갉아먹는 기분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살 수 없었다. 끊임없이 목소리를 외면했지만, 종국에는 자신의 정신마저 통제할 수 없었다.

“나는 마수가 아니야!”

‘하지만 사실은 먹고 싶잖아?’

타인의 영소를.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 저항하고 또 저항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못했다.

‘너 정말로 방해된다.’

니콜라우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이제 어느 쪽이 진짜 자신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20년 동안 자신 안의 또 다른 존재와 싸우며 고민에 빠졌다.

* * *

여느 때처럼 밤늦게까지 책을 읽던 세피로스는 거대한 마력의 흐름을 느꼈다. 기색이 심상치 않았다. 고개를 들고 정확한 기척을 느끼려 한 순간 폭발음이 들렸다. 니콜라우스의 방이 있는 쪽이었다.

세피로스는 지체 없이 그쪽을 향해 달렸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불길했다. 막연하게 일이 잘못되었단 기분이 들었다. 세피로스는 니콜라우스의 방문을 다소 거칠게 노크한 다음 대답도 듣지 않고 벌컥 열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열렸다.

“아, 세피로스 왔어?”

니콜라우스가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는 해사하게 웃으며 세피로스를 맞이했다. 세피로스는 느리게 눈을 깜박이며 그를 보았다. 그의 새하얀 백발과 새하얀 피부 위에 유일한 색채를 지닌 것은 보석처럼 빛나는 붉은 눈동자였다.

분명 니콜라우스인데, 그가 아니다. 그가 아닌 무언가였다. 불길한 것…… 세피로스가 지금까지 수없이 마주했던 그런 불길한 것. 저도 모르게 목울대가 울렸다.

니콜라우스의 발치에는 어린아이가 누워 있었다. 세피로스의 시선을 따라간 니콜라우스는 아이를 보면서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아, 이것 봐. 세피로스.”

니콜라우스가 어린아이의 몸에 발을 올리는 것을 본 세피로스는 숨을 들이켰다. 익숙한 붉은 머리카락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아이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이었는데 비쩍 말랐고 기운 없이 늘어져 있었지만, 가슴이 일정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니 분명 살아 있는 상태였다.

“겨우 내 몸에서 나갔어.”

니콜라우스는 후련한 얼굴로 세피로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의 발아래에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하하, 너는 이제 필요 없어.”

니콜라우스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필요 없다고!”

그러면서 아이를 발로 걷어찼다. 아이는 쿨럭거리면서 몸을 웅크렸다.

“니콜라!”

세피로스가 달려가 그를 붙잡았다.

“아아, 목소리가 멈췄어. 머리가 개운해. 그래, 진작에 이랬어야 했어…… 진작에…….”

그러더니 소리 높여 웃었다. 세피로스는 오싹한 기운을 느꼈다. 그는 침착하고 싶었지만, 저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정말 니콜라야?”

“당연하지, 세피로스.”

그러면서 웃는 니콜라우스의 얼굴은 세피로스가 모르는 얼굴이었다. 세피로스는 심장이 차가워지는 것 같아 그를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았다. 세피로스의 기분은 알 바 아니라는 듯 니콜라우스는 환하게 웃으며 바닥에 있는 어린아이를 가리켰다.

“내 안에 있던 불순물 같은 저 녀석을 떼어 내었으니 나는 정말 니콜라우스가 맞아. 그래! 내가 바로 니콜라우스야!”

어린아이가 몸을 부르르 떨자 니콜라우스가 벌레라도 보는 얼굴로 그를 걷어차려 그랬다. 세피로스가 니콜라우스를 밀쳐 떨어트리지 않았다면 어린아이는 그의 발에 짓밟혔을 것이다.

“나를 말리지 마! 불순물이던 저 녀석을 죽여야 진짜 내가 나로 남을 수 있어!”

하지만 세피로스는 니콜라우스를 가로막고 아이의 상체를 받쳐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아이는 기억 속에 있는 그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눈을 깜박이며 뜨고는 선명한 자색 눈동자로 세피로스를 응시했다.

“페…… 이릭…….”

세피로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의 이름을 곱씹었다. 기억보다 훨씬 어린 모습이고 살이 많이 빠졌어도 그 얼굴을 잊을 리 없었다. 아이는 페이릭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피로스, 당장 그 녀석을 내놔!”

니콜라우스가 사납게 소리쳤다. 세피로스는 아연한 얼굴로 아이와 니콜라우스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넌 누구지?”

세피로스의 질문에 니콜라우스는 기가 막힌단 얼굴을 했다.

“난 니콜라우스야! 내가! 니콜라우스라고!”

니콜라우스는 악을 쓰며 갑자기 물건을 부수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가 진짜 내가 되었어! 그래! 나는 백익 니콜라우스!”

양팔을 펼치며 광적으로 웃음을 터트리는 니콜라우스를 보는 세피로스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세피로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넌 니콜라우스가 아니야.”

그리고 차갑게 웃었다. 세피로스는 이 상황의 모든 것을 전부 한눈에 이해했다. 그는 품 안의 아이를 더 꽉 끌어안았다.

“이 아이를 버린 그 순간, 너는 이제 니콜라우스가 아니야.”

그 말에 세피로스의 머리 옆으로 무거운 문진이 스치고 지나갔다. 니콜라우스의 주변에는 방 안에 있던 물건들이 둥실 떠올라 있었다. 개중에는 가위와 나이프 같은 날붙이도 있었다. 세피로스가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니콜라우스 역시 눈물을 터트렸다. 그는 세피로스가 자신을 부정했다는 것이 분해서 씩씩거리며 세피로스를 노려보았다.

“왜 나를 부정해?”

이번에는 세피로스가 품에 안고 있는 아이 쪽으로 두꺼운 책이 날아들었다. 세피로스는 그것을 쳐 내었다.

“세피로스! 세피로스! 당신은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니콜라우스는 연달아 다른 물건들을 세피로스에게 집어 던졌다. 하지만 세피로스는 그것들을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전부 옆으로 쳐 내었다. 니콜라우스도 이런 같잖은 공격 따위는 세피로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이것은 그저 항의 표시에 불과했다.

“세피로스는 내 유일한 가족이잖아! 나를 이해해 줬잖아! 그런데 왜 그런 쓰레기를 죽이는 것을 말리는 거야?”

니콜라우스는 순식간에 손안에서 거대한 대검을 만들어 내더니 그것을 세피로스에게 힘껏 휘둘렀다. 이번에는 세피로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피로스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마법을 펼쳐 검의 움직임을 막았다. 힘의 대치가 이루어지는 동안 세피로스가 조소했다.

“네가 페이릭을 부정한 순간, 내게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세피로스가 거대한 마력의 흐름을 방출해 내자 방의 외벽이 무너졌다. 니콜라우스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몸으로 세피로스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는 충격을 받아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긁어내렸다.

“내가, 내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니콜라우스는 더듬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나는 여태 세피로스한테 뭐였는데?! 지금까지, 지금까지 내게서 그……!”

니콜라우스는 세피로스의 품 안에서 두려운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붉은 머리의 아이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나를 당신의 가족 놀음에 동참시켰을 뿐이었어……?”

세피로스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점점 더 기가 막혀진 니콜라우스가 손에 들고 있던 대검 끝을 내렸다.

“고작 페이릭의 그늘에 가려서는 지난 50년간…… 나를 기만했어?”

니콜라우스는 울면서 웃었다.

“당신에게 나는 페이릭의 대체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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