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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따라 종말까지-133화 (133/257)

<133화>

그들은 하늘을 비행하다 페니드란을 둥글게 포위하며 땅에 내려앉을 곳을 노려보며 그 위를 선회했다. 그것을 보자마자 세피로스가 아리스를 제외한 다른 일행들을 자신의 몸 뒤로 숨겼다. 거대한 용의 몸은 그 어떤 방패보다도 튼튼했다.

게이트 안에서는 하얀 날개를 가진 데르카이드들이 비명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우르르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아래에 있는 아리스를 덮쳤고 그는 대응할 새도 없이 괴물들에게 깔려 버렸다.

“아리스!”

미레아를 포함한 몇몇이 아리스에게 뛰어가려 했지만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하얀 괴물들이 아리스 이외의 사람들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것은 개별적인 개체라기보단 하나의 덩어리처럼 움직였다. 게이트는 끊임없이 괴물들을 꾸역꾸역 토해 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상황을 파악하고 싶어도 흡사 해일처럼 밀려오는 괴물들 먼저 상대해야 했다. 괴물들이 그들의 시야를 가렸기 때문에 아리스의 안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아리스는 지금 마력을 쓸 수 없었다. 클라인을 정화하는 데 이미 많은 힘을 써 버린 탓에 이 이상 마력을 사용하면 마력 고갈이 일어나 죽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육탄전으로 버틸 수 있을 만한 것도 아니었다.

미레아는 눈앞에 있는 괴물을 베려다 흠칫 놀랐다. 괴물들은 일전에 어느 마을에서 본 쥬드와 인간이 변한 것으로 추정된 괴물들과 흡사했다. 회백색의 피부와 기괴하게 변형된 신체 기관, 오직 식욕이란 본능에만 사로잡혀 인간을 잡아먹고자 하는 행동만 하는 괴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을에서 본 괴물들은 날개가 없었던 반면 이번에 나타난 괴물들은 전부 쥬드처럼 하얀 날개를 가지고 있었고, 하늘을 날 수 있었다.

세피로스가 정의한 라우노의 손에서 만들어진 인공 데르카이드인 그것들은 엄청나게 많은 수가 모여들고 있었다.

“아아, 아아…….”

리비엘로가 그 광경을 보고 신음했다. 머릿속으로 괴물들의 뚜렷한 의지가 흘러들었다. 이것들의 목적은 상당히 단순했다.

“배. 고. 파.”

괴물 중 하나가 리비엘로의 코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인공적으로 만들었고 어설프다고는 하나 데르카이드는 데르카이드. 의지의 흐름은 뚜렷했고 거세었다. 그 방대한 유속의 흐름이 리비엘로의 머릿속을 때리고 지나가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애썼다. 세피로스가 마법으로 만들어 낸 검으로 괴물의 머리를 날려 버리며 리비엘로를 보호했다. 그런데 목이 날아간 괴물의 머리 아래로 새 몸뚱어리가 자라났다.

“배, 배가 고파…….”

괴물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사람들에게 달려드는 꼴을 본 미레아는 피가 식는 기분을 느끼며 몸을 뒤로 물렸다. 흔들리는 눈으로 괴물을 멍하니 보고 있는 미레아에게 덤벼드는 괴물을 율비네가 창으로 꿰뚫으며 말했다.

“미레아, 뭐 하는 겁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그 말에 간신히 정신이 돌아온 미레아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것들은 인간이에요!”

“네?”

“쥬드가 변한 것과 비슷해요! 이것들은 그때 그 마을에서 본 괴물들처럼 생겼어요!”

“젠장, 지금은 그런 거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야!”

파울로가 대검을 휘두르며 라일라와 리비엘로에게 외쳤다.

“비전투원들은 대피해!”

“리비엘로, 이쪽!”

라일라가 트럭 안으로 리비엘로를 떠밀 듯이 태웠다. 그리고 운전석 옆에 설치해 둔 비상 버튼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그러자 트럭 주변으로 결계가 만들어졌다. 그 앞을 세피로스가 지키고 서서 괴물들이 트럭으로 덤벼들지 못하게 그르렁거렸다. 이것으로 트럭은 한동안 안전할 것이었다.

시오는 결계의 보호를 받으며 트럭 위에서 총구를 겨누었다. 외부 충격은 흡수하지만, 내부에서 발생한 충격은 외부로 방출되도록 설계했기 때문에 안쪽에서 공격하는 것이 가능했다. 괴물들의 왼쪽 눈을 조준해서 쏴 맞추자 바로 행동 불능이 되어 나가떨어졌다.

“역시!”

시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왼쪽 눈이야! 이놈들 왼쪽 눈에 마석이 박혀 있을 거야! 그게 약점이야! 왼쪽 눈을 노려!”

그렇게 말한다 한들 왼쪽 눈을 노리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누구도 아리스를 덮친 괴물들을 함부로 공격할 수 없었다. 저 괴물들 사이에 아리스가 어디 있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 자칫하면 그까지 공격에 휘말릴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아리스가 있던 방향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폭발에 휘말린 괴물들의 살점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주변의 괴물들을 겨우 남아 있는 소량의 마력을 이용해 마법으로 순식간에 정리하고 페니드란을 뽑아 든 아리스가 형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 그렇구나. 알겠어, 페니드란.”

페니드란으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하늘을 향해 외쳤다.

“여기 있는 거 다 알아! 모습을 드러내, 백익 니콜라우스!”

아리스의 말에 세피로스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허공에서 붉은색의 스파크가 작게 일더니 이내 어른 한 사람 크기만큼 커졌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새하얀 날개였다. 자신의 몸을 감싼 날개를 활짝 펴며 라우노가 눈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이네요, 루데키아스 레민나 류 파니드라우.”

한때 영웅으로 추대 받으며 백익 니콜라우스라 불리던 사내가 그들의 눈앞에 강림했다.

* * *

부식 지역 안은 데르카이드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 중 하나이며, 그 안에서 데르카이드가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마치 신과도 같다.

일전에 라우노가 미레아에게 했던 설명이었다. 지금까지 마검 페니드란을 아무도 손대지 못한 이유는 그와 같았다. 아리스의 권능을 일부 옮겨 받은 페니드란은 암흑 지대 안의 결계를 유지하며 그 지역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동안 페니드란은 마수들이 자신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부식 지역 안쪽만 골라 다녔다. 그 안에서는 다른 영소가 없었기 때문에 마수도 없었고, 설령 마수가 흘러들어 온다 해도 수가 적었기 때문에 페니드란이 가진 힘만으로 충분히 퇴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기척을 지웠다. 마검에 접근하는 사람이 없도록 말이다.

정신 일부를 공명하고 있는 아리스가 아니라면 페니드란을 찾을 수도 없었고, 설령 다른 이가 페니드란에게 접근한다 해도 페니드란이 거부하면 부식 지역 안에서는 손도 댈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라우노가 마검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페니드란이 자신의 의지대로 힘을 행사하고 있는 부식 지역 안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가령, 페니드란이 있는 부식 지역이 정화되는 순간이라던가.

* * *

괴물들에게 떠밀리는 와중에 페니드란과 정신을 공유하며 그런 이야기를 단시간에 들은 아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라우노를 바라보았다.

“리비엘로에게 미리 경고를 받긴 했지만 이렇게 바로 나타날 줄은 몰랐네. 그래, 우리를 미행했어?”

라우노는 대답 대신 붉은 루비라도 박은 것처럼 붉은 눈을 반달 모양으로 떴다. 그가 손짓하자 괴물들이 그의 사방으로 모여들었다. 하늘 위에 열렸던 게이트는 이제 닫혔지만 상당한 수의 괴물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어림잡아 100여 마리…… 아니, 명으로 단위를 바꿔야 했다. 저것들도 한때는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왼쪽 눈의 마석을 핵으로 삼아 인공으로 만든 데르카이드들은 마수 같은 괴물 형상이었다. 예상하긴 했어도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저 괴물들을 만들어 낸 것은 라우노였다. 쥬드가 괴물로 변한 이후 고작 두 달도 안 지났는데 그사이 저렇게 많이도 만들어 낸 것이다.

“라우노!”

세피로스가 라우노를 보자마자 사납게 일갈하며 날아들었다. 라우노는 날갯짓하며 그를 피하고는 섭섭하단 얼굴로 세피로스에게 대답했다.

“뭐야. 이제는 나를 니콜라라고 불러 주지 않는 건가?”

“네가 먼저 그 이름을 버렸다.”

“완전히 버리진 않았어. 라우노란 이름은 니콜라우스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 해도 네가 니콜라우스란 이름에서 도망친 것은 변하지 않아.”

그 말에 라우노는 언제 웃고 있었냐는 듯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맞아. 내가 잊고 있었어. 당신은 항상 그런 식이었지. 내게서 당신이 원하는 모습만 찾으려 그랬어. 나는 그저 나일뿐이었는데. 100년 전에도, 지금도.”

“아니. 너는 케이드도 죽였어. 그를 죽인 이상 스스로를 니콜라우스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거다.”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죽인 건 아니지.”

“하, 그래? 하지만 네가 케이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데 일조했다는 건 사실이지.”

“슬프네, 세피로스. 당신은 이제 더는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군.”

그렇게 말하는 라우노는 진심으로 상처받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금세 표정을 바꾸더니 세피로스에게서 등을 돌렸다.

“미안해, 세피로스. 오랜만에 만나 반갑기는 한데 지금은 이쪽이 더 급해서 말이야.”

그 말에 미레아와 파울로, 율비네가 아리스를 비호하듯 그의 앞을 막아섰다. 아리스가 긴장한 기색을 숨기고 물었다.

“나를 데리러 왔나?”

“네, 황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를 데려가서 무얼 하려고?”

“글쎄요. 당신이 제게 협력한다면 굳이 죽일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죠.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리스 당신이 아니고 페니드란을 원합니다.”

라우노는 새빨간 혀로 윗입술을 훑었다.

― 웃기지 말라고 전해 줘, 아리스.

페니드란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아리스와 페니드란은 오랜만에 만났지만 재회의 기쁨을 나눌 새가 없었다. 아리스가 삐뚜름하게 웃자 라우노가 어깨를 으쓱였다.

“페니드란이 충성심 높은 마검이란 건 익히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러모로 고민해 봤는데, 페니드란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아리스 당신이 있어야겠더군요. 번거롭게도 말입니다. 그러니 어떻습니까? 저와 손을 잡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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