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발록은 그것들을 보고 눈을 찡그렸다. 마수라 여기기 쉬운 외양이었지만 마수의 종류를 줄줄 꿰고 있는 그 역시 이러한 형태의 마수는 생전 처음 보았다.
“이게 무엇인가요? 마수는 아닌 것 같고…….”
“그걸 모르겠으니 묻는 겁니다. 대령께서 보시기엔 무엇 같습니까?”
발록은 그들의 기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되겠습니까?”
“대령님의 솔직한 말을 듣고 싶어서 찾아온 겁니다.”
쿤둘렌의 말에 발록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데르카이드…… 그렇게 보입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일단, 날개의 형태. 데르카이드들의 그것과 거의 일치합니다. 게다가 사진에 있는 이 해부학 구조. 인간의 것이로군요. 신체의 변형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마수에게서 보이는 특성이 보이기도 합니다. 가령, 이 골격이 자란 방향이 최근 유키타에 나타난 마수 유형과 유사합니다. 그래서 데르카이드인지 확신이 가지는 않습니다.”
세피로스는 턱을 괴고 앉아서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주로 말하는 것은 파울로와 쿤둘렌이었다.
“왼쪽 눈에서 마석처럼 보이는 것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마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돌이었죠.”
그 말에 발록은 더더욱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의 반응에 파울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러한 것은 처음 본다는 소리로군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대체 이것들은 어디서 나타난 괴물이랍니까?”
“클라인의 남동쪽 어느 마을에서 이러한 것들이 연달아 나타났습니다.”
“저는 전혀 모르는 정보로군요. 이 일에 대해서는 제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발록의 말을 듣고 있던 세피로스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텔라인에서 연구하고 있던 것이 있지 않소?”
“무엇을 말입니까?”
“데르카이드와 마수의 상관관계.”
그 말에 발록이 덤덤하게 말했다.
“100년 전부터 관습처럼 하던 연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난 100년간, 그 둘의 연관 관계가 있다고 확신하니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지 않소.”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발록은 그들의 말에 휘둘려 긍정할 생각이 없었지만 세피로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당신이 그 연구에 정보를 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소, 발록 대령. 그러니 알고 있는 것을 말하시오. 나는 이것들이 그 연구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말이오.”
“……그쪽에 류진이 있다는 것을 잠시 잊었군요. 비밀 엄수 조항이 있었거늘.”
“류진은 이쪽 일로 돌아올 생각은 없다 하니 본인 평판은 신뢰를 잃어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말이오. 그리고 루데키아스의 신변 보호를 우선으로 생각하니…….”
발록이 끙하며 가볍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세피로스는 멈추지 않았다.
“데르카이드가 생기는 원인은 인간의 영소에 마수의 영소가 뒤섞인 결과라는 것을 당신이라면 알고 있지 않소이까.”
그 말에 발록의 얼굴이 굳었다.
“본래라면 마수의 영소와 인간의 영소는 매우 결이 달라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이 정상이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마수의 영소가 인간의 영소와 결합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오. 그래서 인간의 영소에 뒤섞인 마수의 영소가 인간의 태를 빌어 태어난 것이 데르카이드. 텔라인에서 데르카이드를 배척하는 이유가 그 때문 아니오? 마수는 서리 여신의 발아래 있지 않기 때문에 마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으며, 그와 같은 이치로 데르카이드 역시 증폭기 없이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지 않소이까.”
세피로스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내 말이 틀렸소?”
“라슈발렌의 정보력은 제 생각 이상이었군요.”
발록이 콧수염을 손가락으로 비비며 혀를 찼다.
“거기까지 알고 있는 분이 왜 이런 이야기를 제게 꺼내는 겁니까?”
“난 이것들을 보고 인공적으로 데르카이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소. 당신의 소견을 묻고 확답을 얻고 싶어서 찾아왔소이다.”
발록이 그렇지 않아도 무서운 얼굴을 인상을 팍 썼다.
“누가 그런 반인륜적인 미친 짓을 하겠습니까.”
“니콜라우스라면 믿겠소?”
“결국 또 니콜라우스로군요.”
발록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발록은 세 사람이 건네준 사진을 자세히 살피며 중얼거렸다.
“일단…… 마수의 영소를 추출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누군가의 영소를 인위적으로 붙잡아 두는 것은 라슈온에 원래 흐르고 있던 영소나 마수의 영소나 방법은 동일합니다.”
그 말에 쿤둘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왼쪽 안구에서 나온 돌이 마석이 맞다면…… 마석을 매개로 영소를 혼합하거나 마력을 다룰 수 있게 증폭할 수 있지요. 그것은 용이신 세피로스께서 더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맞소.”
“그렇다면 이론상…… 마수의 영소를 인간에게 주입할 수만 있다면 인위적으로 데르카이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봅니다.”
“역시…….”
세피로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에게 이러한 정보를 공유하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발록의 질문에 세피로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신의 의지는 아니었다 하나 저희 쪽이 정보를 얻은 만큼 공유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오. 이 정보는 독식한다 해서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오.”
“그렇다면 제 의견을 물었으니 저 역시 당신들에게 질문해도 괜찮겠습니까?”
세피로스는 말해 보라는 얼굴로 고개를 까닥거렸다.
“니콜라우스는 대체 무엇입니까?”
“무엇…… 인지 말이군요.”
“마력의 양이 방대하단 것은 그만큼 마수의 영소를 많이 지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발록은 세피로스의 속내를 꿰뚫어 보겠다는 듯 그를 응시했다.
“니콜라우스 그는 정말로 인간입니까?”
세피로스는 손 위에 턱을 올리고 말했다.
“니콜라우스의 영소는 인간의 것보다 마수의 것이 더 많소. 아니, 대부분의 영소가 마수의 영소이오. 인간의 영소는 거의 남지 않았소.”
“거의 남지 않았다?”
발록이 세피로스의 말에서 의미심장한 행간을 짚어 냈다.
“이전에는 인간의 영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란 소리로 들리는군요.”
“비슷하오. 그는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했소. 내가 말한 지금의 니콜라우스는 100년 전 영웅으로 불렸던 그가 아니오.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마수 같은 존재외다. 스스로 백익 니콜라우스임을 포기하고 현재는 라우노 듀랜트, 그런 이름을 쓰고 있소.”
“라우노 듀랜트라…….”
발록이 그 이름을 곱씹자 세피로스는 단호한 목소리로 조언했다.
“그리고 만약 그와 마주친다면 그를 마수에 준하여 대응하시길 바라오.”
그 말에 발록이 그래도 되냐는 듯 말했다.
“텔라인은 단 한 마리의 마수도 남겨 두지 않고 섬멸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겠소.”
“예.”
세피로스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기 때문이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셋은 발록과 헤어졌다.
“원래라면 저는 절대 알 일 없었던 일에 휘말렸군요.”
파울로가 한탄하듯 말했다.
“파울로, 자네의 역할은 미레아의 좋은 삼촌이야.”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그 애도 기댈 수 있는 곳이 하나는 있어야지. 이 일들을 알고 있으면 언젠가는 미레아가 벽에 부딪혔을 때 도움이 될 거야.”
파울로가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건 둘째 치고…… 미레아에게는 저 말고도 세피로스 회장님이 있잖아요? 대부시잖아요.”
그 말에 세피로스는 대답 대신 의미를 알 수 없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태도는 어딘가로 멀리 떠나 버릴 것 같은 분위기라 파울로의 속에서 무언가가 덜컹거렸다. 파울로가 재차 입을 여는 것을 고민하는 사이 쿤둘렌이 말했다.
“파울로 씨는 그렇다 치고 제가 이런 정보를 알아도 될까요?”
쿤둘렌은 보비네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 얻은 정보들은 상당히 귀중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정보이기도 했다. 오빈과는 관련이 크게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세피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보비네를 모시는 자네라면 알아 두어야 할 정보야.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니…….”
쿤둘렌은 알듯 모를 듯한 얼굴을 했다. 그때, 첼시를 선두로 복도를 걷고 있던 미레아와 마주쳤다.
“첼시 씨가 새벽 호를 구경시켜 주고 있었어요.”
미레아가 해맑게 웃으며 자랑하듯 말했다. 라일라와 시오, 리비엘로는 신성력 결계를 구경하기 바빴다. 진과 율비네, 아리스 쪽은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나돌아 다니는 것을 자제한다면서 자기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고맙게도 첼시가 안내를 자처했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떠들었다.
“너무 폐 끼치지는 마라.”
파울로의 만류에 첼시가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둘은 세 사람을 지나쳐 갔다. 미레아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세피로스와 파울로의 표정을 보며 쿤둘렌이 작게 웃었다.
“미레아 군은 앞으로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본인은 괜찮아도 옆 사람들을 더 걱정시키는 유형이지.”
세피로스의 말에 옆에 있단 둘이 동의했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파울로가 소곤거렸다.
“마수의 영소 량으로 마력의 힘이 결정되는 거라면 아리스 녀석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전에 쿤둘렌은 아리스의 마력의 양을 니콜라우스에게 비견할 정도라고 평한 적이 있었다. 세피로스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답했다.
“무얼 걱정하는 건지 알겠지만 아리스는 괜찮아. 니콜라우스와 같은 절차를 밟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이미 한번 의지에 먹힐 뻔했잖아요.”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야.”
세피로스는 제법 단호하고 결의에 찬 목소리였다.
“내가 그렇게 두지 않아.”
마치 자신에게 다짐하듯 세피로스는 그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