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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따라 종말까지-127화 (127/257)

127화.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들은 기동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 보기로 했다. 텔라인에서 신성력으로 결계를 세웠다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고 시간이 지나면 결계의 신성력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 전에 정화기를 전부 설치해 버려야 한다. 리비엘로를 제하고 엄호해야 하는 인력을 줄여 파울로, 아리스, 미레아, 진, 율비네가 정화기를 설치하며 이동하고 남은 사람들은 트럭으로 천천히 뒤따라오기로 했다.

미레아가 바이크를 끌고 선두에 섰고, 아리스를 제한 나머지 인원은 지프 두 대로 따라왔다. 아리스는 공중이었다. 라일라가 계측기로 신성력이 관측되는 곳을 점찍으면 그것을 따라 이동했다.

오염 지역 한가운데로 들어왔지만, 그동안 마수와 마주치지도 않았다. 두 번째 신성력 결계에 도착했을 땐 처음 본 기둥과 똑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다. 먼저 도착한 미레아가 주변부를 살펴 안전을 확보하고 지프를 세웠다. 라일라가 정화기를 설치하면 아리스가 땅으로 내려와 그것을 가동했다.

“이런 결계를 몇 개나 만들었을까요?”

땅이 정화된 것을 보며 시오가 목 뒤를 양손으로 받치고는 건들거렸다.

“최대한 많이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네.”

“신성력의 양이 먼저 결계보다 더 많아. 이게 더 최근에 설치한 건가 봐.”

그래서 정화할 수 있는 범위가 처음 것보다 더 넓었다. 라일라는 정화기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다시 점검하며 계측기를 여기저기 들이밀어 보았다.

“다음은 저쪽이에요.”

“직선으로 움직이네요.”

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대로 직선으로만 움직인다면 마검이 있는 곳에서 살짝 경로가 벗어나는데 괜찮을까요?”

파울로는 지형과 경로를 가늠하고는 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로에서 다소 이탈한다 해도 정화 속도가 전보다 더 빨라서 시간 계산을 해 보자면 이쪽 경로에서 수정하는 쪽이 더 나아. 그리고 이쪽으로 가면 저쪽 지형과 연결해서 원을 만들어 그 안쪽을 정화하기도 쉽고…….”

처음 것과 두 번째, 세 번째 기둥까지 이동하면서 재 보니 기둥은 50km 간격으로 설치한 듯싶었다. 바꿔 말하면 신성력 기둥은 지름 50km나 신성력 결계를 칠 수 있는 도구라는 소리였다. 현재 시점에서 그만한 기술을 가진 곳은 텔라인 이외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돈이 정말 많구나.”

세 번째 기둥을 구경하며 미레아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자, 어떠십니까. 천재 마도 공학자 라일라 퍼블킨즈 씨. 텔라인의 기술을 본 소감 한 말씀 해 주시죠.”

시오가 장난스럽게 라일라에게 묻자 그녀는 다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로 만든 사람 얼굴을 보고 싶네. 여러모로 공부가 될 것 같아. 신성력을 일정한 농도로 효율적으로 유지하면서 지속 시간이 전혀 짧지 않고…… 거기에 이만한 크기의 기둥을 어떻게 옮기고 설치한 건지도 궁금하고.”

그 뒤로 라일라는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말을 주절주절하며 신성력 기둥 주변을 돌아다녔다.

여섯 번째 기둥에 도착해 정화 작업을 끝내고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쿵’ 하고 땅이 연달아 울렸다.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잠시 멈추었다. 공중에서 상황을 살피던 아리스가 황급히 땅으로 내려왔다.

“텔라인의 대형 비공정이 있어요.”

아리스는 조금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저쪽도 저를 발견한 것 같아요.”

땅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저 하늘 위에 점처럼 있는 비공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은 망원경으로 그것을 들여다보고는 혀를 쯧 찼다.

“저건 텔라인의 대형 비공정 중 가장 큰 놈인 ‘새벽 호’잖아? 원래는 아이나 전대에 소속된 비공정인데 왜 이런 곳에…… 이대로 걸리면 골치 아플 것 같은데, 튈까?”

진의 말에 율비네가 미간을 찡그렸다.

“이대로 튀는 건 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저쪽이 우리를 발견했으면 어차피 추적이 따라붙을 수도 있으니 그냥 여기서 결판을 짓는 게 어떻습니까?”

율비네의 말대로 텔라인의 비공정은 그들을 무시하고 넘어갈 생각이 없는지 점점 가까워져 왔다. 아리스와 일행들은 율비네의 말대로 일단 이동하는 것을 멈추고 텔라인이 접근하는 것을 기다렸다. 가까이 접근한 비공정은 제법 커다랬기 때문에 거리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일행들은 그 위용에 감탄하며 구경하고 있는데 외부 스피커가 쩌렁쩌렁 울렸다.

― 지상에 있는 인원들은 행동을 멈추고 소속과 이곳에 온 목적을 밝혀라!

그 말에 아리스가 쯧 혀를 찼다.

“뭐 저렇게 당당해? 남이 들으면 이곳이 자기네 구역인 줄 알겠네.”

그렇게 말한 아리스는 어느새 밝은 갈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한 모습으로 위장해 있었다. 마이련의 시골 구석에 처박혀 있을 때 썼던 마법이었다.

“저쪽은 황제의 허가를 받았고 우리는 아니잖아.”

파울로는 일단 싸울 의사가 없다는 몸짓을 취해 보였다. 그러자 비공정이 하강했다. 거대한 덩치와는 달리 땅에는 제법 부드럽게 착륙했다.

비공정의 한쪽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 순식간에 그들을 포위했다. 그들이 일행들에게 무기를 겨누었지만, 파울로는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행들은 못마땅한 얼굴로 무기를 내린 채 텔라인의 병사들을 견제했다.

“미안한데, 아리스.”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진이 아리스에게 속닥거렸다.

“네 위장이 소용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리스가 이유를 묻기 전에 텔라인 병사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류진.”

“아하하, 첼시 웨이드! 잘 지냈어?”

진은 자신을 아는 체한 사람에게 다소 과장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는 사이야?”

아리스가 진에게 속삭였다.

“같은 아이나 전대 소속이었어. 지금도 아이나에 있는 줄 알았는데…….”

진이 첼시라고 부른 금발 머리 여성은 총구를 거두고 다소 사무적인 어투로 질문을 했다.

“네가 여긴 무슨 일이지?”

“나를 보고 별로 놀라지도 않네. 우리의 우정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

진은 첼시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딴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놀라는 중이다. 여기서 너를 마주칠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부대 배치가 바뀌었나 봐? 아직 아이나에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 다른 사람들도 너 말고는 모르는 얼굴들인 걸.”

하지만 첼시는 진의 말에 그다지 흥미 없는 표정이었다.

“이곳까지 어떻게 들어온 거지?”

“너희가 설치한 신성력 기둥을 따라왔지. 이야, 난 그거 시제품도 구경 못 하고 나왔는데 실제로 보니 어마어마하더라.”

진이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너스레를 떠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첼시는 진과 동행한 일행들의 얼굴을 살펴보며 말했다.

“데르카이드가 한 명 있던데.”

“예, 그게 전데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리스가 고글을 벗지 않고 능청스럽게 대답했지만, 첼시는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쪽에서 관측한 보고에 따르면 검은 날개였다고.”

‘젠장, 역시 봤구나.’

아리스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외관을 조금 바꿀 수는 있어도 날개의 색은 감출 수 없었다.

“너와 함께 있는 검은 날개의 데르카이드라면 정체가 너무 뻔하지 않을까?”

“에이, 세상에 검은 날개의 데르카이드가 내 사촌 동생만 있겠어?”

류진이 뻔뻔하게 받아치자 파울로가 손가락으로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어 이목을 자신에게로 돌리게 했다.

“여기 책임자는 저니까 저와 이야기하시죠?”

첼시는 의심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저는 텔라인 마수 대응 팀 제5 번대 첼시 웨이드입니다. 소속이 어떻게 됩니까.”

그녀는 류진이 했던 설명을 반복했다.

“저는 라슈발렌 전투부 특수 기동대 소속 파울로 리마. 이 지역은 조사차 나왔습니다.”

“라슈발렌이요? 라슈발렌이 이런 곳에 무슨 조사로 나오신 거죠?”

“인근 주민들의 구출 작전 투입 전에 주변 환경을 파악하기 위해 투입되었습니다.”

“루아드 정부의 허가는 받았습니까?”

“당연하죠.”

파울로는 위조 서류를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텔라인은 이 지역 치안대도 아니고 정부 소속은 더더욱 아닌데 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는 거죠?”

하지만 첼시 역시 당당했다.

“저희 임무에 지장이 갈 수 있으니 여쭤 봤습니다. 저희 역시 정부 측에서 허락을 받고 활동하던 중이었으니 말입니다.”

“그쪽은 무슨 활동을 하던 중이었나요?”

“그건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파울로와 첼시 사이에 무언의 기 싸움이 오갔다. 그러다 첼시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 쪽 비공정을 이용하시겠습니까? 공중에서 조사하면 지상의 사정이 더 자세히 보일 것입니다.”

그 말에 일행들은 저게 무슨 꿍꿍이일까 고민하며 시선을 교환했다. 이쯤에서 치고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에 일행들은 거절하고 싶었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런데 파울로가 진과 무언가를 속삭이더니 선뜻 고개를 끄덕이며 그 제안을 냉큼 받아들였다.

“그럼 실례지만 도움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일행들은 텔라인 병사들의 뒤를 따르며 이게 무슨 짓이냐는 얼굴로 파울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파울로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도움을 주겠다는 걸 굳이 마다하고 싶지 않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율비네가 말한 쑥대밭 작전을 쓸 생각이었다. 뒤따라오던 인원들에게는 통신기의 전파를 이용해 미리 경고 신호를 보냈다. 일이 틀어질 땐 용으로 현신한 세피로스가 비공정을 박살 내는 진귀한 광경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리스의 일행들과 그들의 탈것들까지 수용하자 비공정의 출입문이 닫혔다. 비공정의 규모가 큰 만큼 안쪽 역시 상당히 넓었다. 첼시는 그들을 관측소로 안내했다. 한쪽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밖의 상황을 보기 편했다. 진은 조금 어색한 얼굴로 첼시에게 말을 걸었다.

“네 권한으로 우리를 이런 곳으로 들여보내도 괜찮은 거야, 웨이드 상사?”

“지금은 소위다.”

“오우, 못 본 사이 장교로 출세하셨네.”

“그리고 흑익을 발견하면 그에게 협조를 부탁해 보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

그 말에 진이 모르쇠로 시치미를 뚝 떼고 고개를 저었다.

“얜 흑익이 아니라니까.”

“일단 그렇다고 해 두지.”

“그런데 흑익에게 협조? 당신들은 루아드 정부에 협력하고 있는 사이 아닌가요?”

율비네가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세진까지 찾아와서 루데키아스 대공자를 내놓으라며 감히 무기를 들이민 자들에게 협조? 잘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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