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따라 종말까지-121화 (121/257)

121화.

“힐데 씨와 시안은 물론 그 폴라라는 여자아이도 데르카이드인 거죠?”

리비엘로의 물음에 힐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성이 마녀의 성이라 불리는 건가요? 데르카이드들이 모여 살아서?”

“음…….”

미레아의 질문에 힐데가 난처한 신음을 흘렸다.

“사실 마을 사람들은 저희가 마법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데르카이드라는 것까지는 잘 모릅니다.”

그 말에 일행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데르카이드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사람들이 이 성을 마녀들의 성이 아니라 데르카이드들의 성이라고 불렀을 것이었다. 그런데 식당 점원은 불쾌한 것을 입에 담기라도 하듯 마녀들의 성이라 불렀다.

“보시면 알겠지만, 저희는 고등 교육을 받을 만한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마법을 학문적으로 접할 수 없었다 보니 단순한 마법밖에 쓸 수 없어요. 술식 같은 것도 없고 오직 의지에만 반응하는 마법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리스가 자기 멋대로 술식도 없이 비효율적으로 마력을 남발하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말이다.

“그렇다 해도 왜 마을 사람들이 당신들을 마녀라고 불러요?”

“사실 마녀라는 호칭은 저희보다는 글로리아 언니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렇게 불리는 거예요.”

“글로리아 씨는 당신들처럼 마법을 다루지 못하는 것 같던데…… 혹시 그녀가 무슨 짓을 했나요?”

“아니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요. 언니가 한 일은 그저 이 낡은 성을 사들여서 저희를 거둔 것밖에 없는걸요.”

미레아는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된 건가요?”

힐데는 어째서 모를 수 있냐는 얼굴로 말했다.

“그거야 글로리아 언니가 지나치게 아름다우니까요.”

그 말에 일행들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지나치게 아름답다. 그것은 여자에게는 축복이기도 했지만, 저주이기도 했다.

이어지는 힐데의 이야기에 따르면 글로리아는 몰락 귀족의 고명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고 어린 글로리아를 거둔 것은 그동안 존재도 몰랐던 먼 친척이었다. 어릴 적부터 아름다웠던 글로리아에게는 일찍부터 구혼자들이 줄을 섰다. 친척들은 개중 가장 부유한 이를 골라 결혼을 대가로 많은 재산을 약속하는 자에게 글로리아를 시집 보내려 했었다.

글로리아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를 거부했다. 결혼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도 없었을뿐더러, 원하는 상대도 아니었다. 친척들은 귀족들의 결혼이 다 그런 것이라며 부유한 자에게 시집을 가는 만큼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그녀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것은 다 입에 발린 말에 불과했다. 그들이 원한 것은 글로리아를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재산뿐이었다. 그때 글로리아는 고작 15살이었다.

그렇게 결혼에 대한 언쟁이 나날이 이어지던 중 그 소식을 들은 몇몇 구혼자가 글로리아에게 어찌하여 자신의 마음을 몰라 줄 수 있느냐며 악질적인 스토킹을 하기 시작했다. 글로리아는 그들을 완강하게 거부했지만, 그들 중 하나는 글로리아가 혼자 있는 틈을 타 그녀를 겁탈하려고 그랬다.

그것이 문제였다. 글로리아는 반항을 하다 무심코 던진 촛대로 남자의 한쪽 눈을 실명에 이르게 했다. 남자의 가족들은 적반하장으로 글로리아를 비난했으며 글로리아의 정혼자로 이야기가 오가던 자는 그 일로 인한 그녀의 정조를 의심했다.

그는 결혼도 하기 전에 글로리아의 처녀 혈을 확인해야겠다며 잠자리를 요구했고 당연하게도 글로리아는 이 역시 거절했다. 그녀의 친척들은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자 글로리아를 사람들을 홀리는 마녀로 몰고 갔다.

이 모든 것이 오직 글로리아의 외형만을 보고 달려든 자들 때문에 일어난 파국이었다. 진절머리가 난 글로리아는 집에서 금은보화를 훔치고 도망쳐 이 마을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만 아리따운 여인이 여자들로만 구성된 성에 사는데 마을 남자들이 음심을 품지 않을 리 없었다. 글로리아를 탐하기 위해 성을 침입하던 남자들은 시안과 힐데의 마법에 크게 다치거나 겁을 먹고 도망쳤다. 그렇게 글로리아는 마을 사람들에게마저 마녀라 불리게 되었다.

일행들은 그 말을 듣고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지나치게 아름다운 여자의 팔자는 박복하기 그지없었다. 아름다움이 축복이자 저주인 이유는 바로 그러한 점 때문이었다.

“뭐, 저 역시 마녀로 불리긴 하지만 글로리아 언니만큼 험한 일을 당한 경험은 없어요. 글로리아 언니가 운이 안 좋았지요. 그저 그렇게 타고난 얼굴인데.”

힐데의 말에 파울로가 그녀에게 물었다.

“마법 때문이 아니라면 힐데 씨는 왜 마녀로 몰리게 된 건가요?”

“미레아 씨라면 알 것 같은데요.”

힐데의 말에 미레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힐데와 동시에 말했다.

“제가 빨간 머리라서요.”

“당신이 빨간 머리라서요.”

로아메나 대륙에는 문화권을 공유하는 몇몇 나라에 걸쳐 공통된 미신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빨간 머리는 마녀의 자식이라는 것이었다. 미레아 역시 어릴 때 그런 소리를 안 들어 본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세로킨에서는 거의 사라진 미신이었지만 힐데의 고향에서는 아니었다.

“뭐, 그렇지요. 저도 고향에서 쫓겨났어요. 빨간 머리인데 데르카이드이기까지 하니 마을 사람들이 저를 터부시 하다못해 두려워했거든요.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마을에 생기는 모든 나쁜 일들은 전부 제 책임이 되어 버렸죠. 그냥 제가 빨간 머리라서 말이에요.”

힐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시안이나 폴라도 비슷한 처지예요. 시안은 데르카이드라 불길하다며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폴라는 성기사들에게 데르카이드 사냥에 당할 뻔한 것을 제가 구해 주었어요.”

힐데는 말하다 말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데르카이드는 왜 생긴 걸까요. 주변에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힘 따윈…… 버겁기 그지없는데 말입니다.”

그 말에 다른 일행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여자들을 마녀로 몰고 갑니다. 눈에 띄는 여자 역시 마녀로 몰고 갑니다. 글로리아 언니가 잘못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빨간 머리로 태어난 것도 우연인데 참 편한 구색 맞추기죠. 그래서 정말로 소문 속의 마녀가 되어 주기로 했답니다. 마을 사람들이 겁먹어서 이 성에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말이지요. 활은 그래서 익혔습니다. 저희는 스스로를 지키고 서로를 지켜야 했으니까요.”

힐데는 리비엘로를 보고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당신은 야크나트 출신이지요?”

리비엘로처럼 어두운 초콜릿색 피부에 금발 혹은 백금발 같은 색소가 옅은 체모를 가진 자들은 대부분 야크나트라 불리는 나라의 국민이었다.

“아주 어릴 땐 그곳에서 살았지만, 이후에는 서리 여신을 모시는 신녀로 대신전에 있기도 했답니다. 지금은 보시는 대로 이런 곳을 떠돌고 있고요.”

리비엘로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힐데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사실은 이 성에 데르카이드가 한 명이 더 있었어요. 야크나트 출신이라 이 제국에서는 천시 받던 아이였는데…….”

힐데는 짙은 구릿빛 피부, 금발에 올리브색 눈을 가진 식구였던 자를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중에 가장 호전적이고 욱하는 성격이었던지라 이대로 살 수 없다면서 이 성을 뛰쳐나간 이후 지금까지 소식이 없네요. 당신을 보니 그 마니샤 생각이 나서 한번 여쭤 봤던 거예요.”

“그분의 이름이 마니샤였군요.”

“네.”

“자리 잡은 곳이 왜 하필이면 이곳이었나요?”

파울로의 질문에 힐데가 숲의 풍경을 보며 말했다.

“이곳은 부식 지역 옆이라 그나마 우리의 존재감을 감출 수 있으니까요. 저희도 상당히 최근에 알아차린 사실인데, 오염 지역 안에 마수들이 많기는 하지만 영소가 남아 있지 않은 부식 지역 부근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그런지 마수가 별로 없더군요. 물론 죽은 땅 덕분에 살기 팍팍하긴 하지만 그런 연유로 그나마 여기가 안전해요. 우리를 노리는 마수가 나타난다 해도 원래 마수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지역이기도 하고…… 아, 그리고 다들 아시겠지만 데르카이드들은 마력만 잘 숨긴다면 마수의 눈을 피할 수 있어요. 저희는 마력을 풀풀 흘리고 다니며 마수를 불러일으키는 짓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일전에 라우노가 미레아에게 했던 설명대로였다. 완전히 부식이 진행된 지역에는 마수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성의 입지는 마수가 큰 관심을 끌지 않는 곳에 있었다.

“다른 곳보다 위험하기는 하지만 다른 곳이라 해서 우리에게 안전한 것은 아니거든요. 다른 지역들은 클라인처럼 될까 봐 데르카이드는 불길하다고 쫓아냈는데 그나마 클라인은 데르카이드로 입은 피해 덕분에 마수들이 나타나지 않는 지역도 생겨난 걸 보면 아이러니하죠. 이 마을에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것은 저였는데 글로리아 언니 역시 집을 나와 떠돌아다니다 저를 만났어요. 글로리아 언니는 이 성을 사서 오갈 곳 없던 저희를 받아 주었죠.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되었답니다.”

힐데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데르카이드였지만 아리스처럼 거창한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존재했을 뿐인데 마녀라 손가락질 받고 이런 변방까지 쫓겨났다. 그들이 데르카이드인 것은 부수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 글로리아와 이 성의 다른 여자들은 무엇을 하든 결국 마녀가 될 운명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마녀로 몰렸다면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 거죠?”

파울로의 질문에 힐데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 마을 사람들은 우리의 얼굴을 알고 터부시하지만, 옆 마을 사람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어요. 그곳에서 간단한 소일거리를 받아 돈벌이로 삼고 있어요. 뭐, 벌이가 시원치 않아서 성의 유지비는 항상 모자라지만 말이에요.”

그래서 내부는 멀끔해도 외관은 이렇게 다 무너져 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리비엘로, 네 표정이 아까부터 좀 이상해.”

미레아의 말에 리비엘로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대화를 유심히 들으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싶었다.

“사실 아까부터 걸리는 게 하나 있는데…… 아니, 아니야. 내 기분 탓일 수도 있어.”

“뭔데 그래?”

잠시 대답을 피한 리비엘로는 고민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미레아만 들리도록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글로리아 씨는…… 서리 여신의 조각이야.”

그 말에 미레아의 눈이 커졌다. 리비엘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더 정확한 정보를 내뱉었다.

“그것도 너와 같은 역할을 가진…… 조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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