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따라 종말까지-105화 (105/257)

105화.

옆에서 듣고 있던 리비엘로는 속으로 웃었다. 율비네와 아리스는 마치 형제 같은 분위기였다. 아리스를 류진과 붙여 놓았을 때와 율비네와 붙여 놓았을 때 분위기가 똑같았다. 그런데 미레아는 그걸 모르는지 순진무구한 얼굴로 그런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이성적인 감정이 있었다면 이런 일 못 합니다.”

율비네는 공사 구분이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녀로서는 직속 상관이 애인이라니, 듣기만 해도 끔찍했다.

결정적으로 아리스는 율비네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녀의 이상형은 선이 굵은 이목구비에 진중한 성격을 지닌 남자였다. 어릴 적에는 잘생겼다는 소리보다 예쁘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들은 아리스의 외형은 전해 해당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리스의 성격을 잘 아는 율비네는 그가 능청스럽게 구는 성격은 친우 관계에서는 좋아도 상관으로 만나면 상당히 짜증 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지긋지긋하다 보니 정반대의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미레아는 얼른 양손을 휘저었다.

“그게, 오해는 말아요. 아리스랑 가까워 보여서 궁금했던 거지 다른 의도는 없었어요.”

“그야 어릴 때부터 서로 부대끼면서 자랐으니까요.”

꼬치구이를 다 먹은 미레아는 옷에 손을 문질러 닦고는 사진기로 거리의 모습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있는 둘의 모습도 찍었다. 율비네는 미레아가 사진을 찍든 말든 입을 반쯤 벌리고 마법 공연을 정신없이 구경했다.

“그렇게 재미있으면 더 가까이서 보는 게 어때요?”

리비엘로의 제안에 율비네가 고개를 저었다.

“또 흩어질 것 같아서 여기서 보겠습니다.”

“우리가 어린애도 아니고…….”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들이 연달아 들렸다.

“아, 찾았다!”

“너희 여기서 뭐 해?”

그렇게 물으며 다가오는 진의 뒤에는 아리스가 있었다.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지냐!”

진은 결국 붉은색 원석으로 반짝이는 목걸이를 샀는지 목에 걸고 있었다. 그 둘만 나타나자 미레아가 다른 사람들을 찾았다.

“라일라와 시오는?”

그 말에 남매는 거의 동시에 코를 찡그렸다.

“이 이상은 눈꼴시어서 못 보겠어.”

“아주 둘만의 세계야.”

미레아가 아리스를 붙잡고 물었다.

“혹시 시오 선배가 고백했어?!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시오가 우리가 옆에 있는 걸 노골적으로 싫어하잖아!”

아리스가 툴툴거렸다.

“그래서 적당히 빠져 주었다, 이 말이지.”

“안 돼!”

미레아가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

“난 지금 같은 상태로 그 둘이 이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이 상황에서 분위기 이상해진단 말이야!”

“너 은근히 잔인하다.”

리비엘로가 미레아에게 혀를 끌끌 찼다.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

진이 손을 내저었다.

“보면 알겠지만, 파울로 대장이 그 둘에게 들러 붙어 있을 테니까.”

“그건 다행인데…….”

미레아가 안도가 섞인 한숨을 중얼거리는 것을 들으며 아리스는 아까 파울로가 일행들의 분위기를 망치면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 비슷한 것을 한 것을 상기했다.

완연한 어둠이 내려앉자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쪽이 더 수상해 보여 아리스는 미레아가 억지로 씌워 주었던 것을 벗었다. 그리고는 그들이 보고 있던 마법 공연을 보고는 코웃음 쳤다.

“나는 저것보다 대단한 걸 보여 줄 수 있는데.”

“잘나셨어, 정말.”

아리스의 잘난 척에 진이 재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마법사들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그들이 비켜 서자 그 자리를 악단이 대신 채웠다. 현악기, 관악기, 작은 타악기 등으로 간소하게 구성된 악단은 축제 분위기에 맞춰 신명 나는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바람잡이로 보이는 사람이 앞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몇을 일으키더니 무대 중앙으로 이끌었다. 쭈뼛거리다가 한 사람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도 어색하게나마 춤을 추었다. 관객들의 박자에 맞춘 손뼉 소리가 짝짝 울렸고 흥이 오르자 혼자서 춤을 추던 사람들은 짝을 이루어서 마주 보며 몸을 움직였다.

어느새 춤을 추는 사람들이 제법 늘었다. 미레아도 아는 곡이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발로 땅을 두드리다 주체하는 흥을 못 이기고 벌떡 일어났다.

“우리 춤추고 오자.”

“음…… 나는 그냥 앉아 있을래.”

“저도 괜찮습니다.”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리비엘로와 율비네는 사양했다. 미레아는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더니 남아 있는 꼬치구이를 전투적으로 먹어 치우고 마지막으로 남은 꼬치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벌써 몸을 들썩이며 혼자 춤을 추는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좋아, 좋아. 재미있겠다!”

진이 팔을 기지개 켜며 미레아의 뒤를 따라가다 가로등에 기대어 서 있는 아리스의 등을 퍽 떠밀었다.

“너도 같이 가.”

“나도 춤은 별로.”

아리스가 고개를 젓자 진이 타박했다.

“너는 인생을 좀 즐길 필요가 있어!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여 봐! 분명 기분 좋을걸?”

진이 아리스의 옷자락을 질질 끌고 갔다. 아리스는 어쩔 수 없이 끌려갔고 리비엘로와 율비네는 꼬치구이를 뜯으며 그 광경을 구경했다.

사람들은 이제 서로의 손을 잡고 커다란 원을 그리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진이 그 안으로 아리스를 집어넣었다. 아리스는 어쩔 수 없이 낯선 사람들의 틈에 끼어 빙글빙글 돌아야 했다.

맞은편에서 돌고 있던 미레아가 그들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아리스는 고개를 까닥거렸다. 사람들은 원을 끊고는 긴 줄을 만들어 팔짝팔짝 뛰며 무대를 리본이 흐르듯 돌았다. 아리스가 자신의 등 뒤를 스쳐 지나갈 때 미레아가 외쳤다.

“재밌지?!”

“아니!”

말은 그러면서 춤은 또 착실하게 추고 있어서 미레아가 웃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크게 함성을 내지르며 빠르게 무대를 움직였다. 그 사이에 낀 미레아가 신나게 발을 구르자 아리스도 제법 즐거워졌다.

한 곡조가 끝나자 사람들이 서로에게 손뼉을 쳐 주며 길게 이어졌던 줄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남아서 이어지는 곡에 맞춰 춤을 추거나 한 곡으로 충분했는지 무대 밖으로 나갔다. 미레아는 전자였다. 미레아가 발을 통통 구르면서 아리스에게 다가왔다.

“나랑 한 곡?”

미레아가 손을 내밀었지만, 아리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진 누나랑 같이 왔는데…….”

하지만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눈에 익은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없어졌다?!”

미레아와 아리스는 리비엘로와 율비네의 옆에 앉아서 커다란 오징어 통구이를 뜯고 있는 진을 발견했다. 진이 그들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사람들 소음에 묻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입 모양과 몸짓을 보아하니 아마 자신은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고 오라는 소리인 것 같았다.

“이럴 거면 그냥 따로 다니는 게 낫겠다. 똘똘 뭉쳐 다녀야 하는 이유가 없으니까.”

미레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음악에 맞춰 몸을 한 바퀴 빙글 돌렸다. 나풀거리는 치마 아래로 가느다란 다리가 슬쩍 보였다. 그리고는 상기된 얼굴로 다시 물었다.

“신사분, 저와 한 곡 어떠십니까?”

아리스가 쭈뼛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난 춤 안 춘 지 몇 년 되었어.”

미레아가 그 정도는 문제 되지 않는다면서 아리스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나는 춤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아예 없어.”

그러더니 제멋대로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아리스가 미레아의 발을 밟지 않도록 애를 쓰며 거기에 맞춰 주었다. 춤의 동작이 어땠는지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한번 박자를 타기 시작하니 나머지는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리스가 안정적으로 춤을 추니 미레아의 막춤도 제법 볼 만해졌다. 자신의 춤이 그럴싸하게 변하자 미레아가 경쾌하게 웃었다.

발을 두 번 딛고, 몸을 돌리면서 손뼉을 한번, 짝. 손을 맞잡고 좌우로 흔들거리다 한발 뒤로 물러나 몸을 숙이면서 새가 날개를 펴듯 팔을 뻗은 후 다시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미레아는 팔다리를 큰 동작으로 움직였고 둘은 서로에게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반복하며 무대를 몇 바퀴나 돌았다.

그렇게 세곡이나 연달아 추고 있는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느슨하게 꽂혀 있던 집게 핀이 미레아의 머리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미레아의 머리가 완전히 풀리면서 붉은 물결처럼 너울졌다. 원심력 때문에 몇 번 빙글빙글 돌은 후 미레아가 우아하게 멈춰 섰다.

맞닿았던 손이 살짝 떨어지면서 미레아의 눈매가 반달 모양으로 휘며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춤에 열중하느라 뒤늦게 자신의 머리가 풀린 것을 알아차린 미레아가 머리를 매만지면서 바닥에 떨어진 핀을 찾았다.

“이런.”

몸을 숙여 핀을 줍는 사이 아리스가 가만히 서서 그것을 기다려 주었다. 미레아가 허리를 폈을 때 아리스는 조금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이 왜 그래? 힘들어?”

미레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아리스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리스는 마른세수하며 시선을 피했다.

“아니, 그러니까, 힘든 건 아닌데…… 그, 춤은 그만 출래.”

그러면서 춤을 추던 사람들을 비집고 빠져나갔다. 미레아는 갑자기 허둥지둥거리는 아리스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랐다. 진과 다른 사람들은 아까 그 자리에서 그대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레아는 손부채질하다 시원한 음료를 파는 포차를 발견했다.

“저기, 목말라? 목마르면 마실 거리라도 사 올까?”

“그래, 그래야겠다.”

아리스는 이번에도 뭔가 정신없는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레아는 놀리듯이 아리스의 앞을 쫄랑쫄랑 왔다 갔다 했다.

“뭐야, 고작 그거 췄다고 기운이 다 빠졌어?”

“그러게.”

아리스는 포차 앞에서 시원한 냉수를 주문했다. 이 분위기에 냉수가 웬 말인가 싶었지만, 아리스는 냉수가 아니면 필요 없다는 얼굴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