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따라 종말까지-100화 (100/257)

100화.

미레아는 5년 동안 세피로스가 싸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흥분했다. 세피로스가 원래의 용 형태로 변한 모습은 정말로 장관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쪼금 기대했다. 하지만 세피로스는 변신하지 않고 자신을 공격하려는 마수의 턱주가리에 총알을 박아 주었다.

“어딜 함부로 기어와?”

마탄이었기 때문에 그 충격으로 마수의 목이 홱 꺾였다.

“왜 본모습으로 안 변해요?!”

“너라면 저 마수를 입으로 물어뜯고 싶겠어?”

미레아의 말에 세피로스가 비위 상한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난 고상한 게 좋아.”

세피로스가 몸에 두르고 있던 마력이 다른 영소와 반발 작용을 일으켜 그의 몸은 짙은 금색의 스파크로 뒤덮였다.

“아리스, 쿤둘렌. 사람들에게 보호막을 두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런데 맨손으로 어떻게 싸우려는 건데요?”

아리스가 의문을 제기하자 세피로스가 손가락으로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말했잖아.”

갑자기 땅이 들썩였다. 흙들이 꿈틀거리더니 하늘로 솟구쳤다. 사람들은 저마다 뜨거운 열기에 눈을 찡그렸다. 흙을 뚫고 나온 것은 시뻘건 용암이었다.

“난 고상한 게 좋다고.”

분수처럼 하늘 높이 치솟아 여기저기 떨어진 용암은 마수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마수들은 용암에 닿은 몸이 녹아내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불덩이나 다름없는 용암의 비가 보호막에 튕겨 나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감탄했다.

마수들이 어느 정도 용암을 뒤집어썼다고 판단한 세피로스는 그것들을 급랭시켰다. 용암은 굳어 단단한 바위로 변했다. 마수들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고 땅에 있던 용암과 더불어 바위에 단단하게 묶인 형상이 되었다.

“오.”

진이 휘파람을 휘익 불었다.

“대단하군요.”

쿤둘렌이 감탄하며 말했다.

“저런 식의 마법 운용법은 실제로는 처음 봅니다. 어제와 오늘은 진귀한 구경을 많이 하는군요.”

사람들이 경외감을 담아 세피로스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번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세피로스가 고상하게 바위 위에 앉아 있는 동안 진이 마수의 머리에 도끼질했다. 마수는 날카로운 입만 따닥따닥 거리는 소리를 냈을 뿐 진의 도끼에 정수리가 찍히자 반항 한번 해 보지 못하고 몸을 축 늘어트렸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근처에 있는 마수들의 머리를 쪼개 뇌간에 있는 핵을 찾아내어 파괴했다. 마수들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자, 그럼 정화기 설치 말인데…….”

눈에 보이는 마수를 전부 처리하자 세피로스의 뒤에서 라일라가 머리를 내밀었다. 그들은 정화기를 설치할 만한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미레아가 무너진 신전 대리석 무더기 위로 올라와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땅이 쿵 하고 울렸다. 그 바람에 미레아는 굴러떨어질 뻔했다.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다시 요동쳤다.

“워어, 워…….”

미레아는 몸을 낮추고 딛고 있던 바닥에 검을 꽂아 넣어 붙잡았다. 그런데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위로 획 몸이 끌려갔다. 미레아는 고개를 들었다가 새빨간 세 쌍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들이 지금까지 신전 일부라고 여겼던 하얀 대리석 바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신전 일부로 위장하고 있던 거대한 마수였다. 아까 지네처럼 생긴 마수와 흡사한 모양새였지만 몇 배는 더 컸다. 세피로스의 용 모습보다 더 큰 것 같아 보였다.

마수는 몸을 털었고 미레아는 검을 붙잡고 버텼다. 마수가 움직이자 그렇지 않아도 반쯤 무너져 내린 신전의 벽이 우르르 허물어졌다.

탕탕탕-!

아래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시오와 진이 마수의 머리를 노리고 한 사격이었다. 진의 무기는 상당히 재미있는 형태였다. 도끼에 화기를 결합한 형태로 단순히 도끼로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모양을 변형시키면 총으로도 사용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싸우는 방식도 독특했다. 대마수 부대인 텔라인 소속이었던 경력답게 대인 전투보다는 마수를 상대할 때 더 효과적인 움직임이었다. 마탄을 다 소비한 진은 탄창을 가는 대신 도끼로 마수의 다리를 찍었다. 마수가 휘청거리자 미레아가 마수에게 박아 넣었던 검을 빼며 뛰어내렸다. 그것을 세피로스가 마법으로 받아 주었다.

“고상하게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한탄한 세피로스는 용의 모습으로 변했다. 은색 용이 마수를 그대로 밀어붙였다. 마수는 힘으로 버티고 섰다. 세피로스가 마수를 견제하며 포효하자 율비네가 세피로스의 몸을 발판 삼아 밟고 도약했다.

그녀는 긴 창으로 마수의 머리를 노렸지만 안타깝게도 거리가 모자랐다. 율비네는 마수 위에 올라타 창끝으로 목 부분의 단단한 외피를 뚫었다. 그리고 그 안에 수류탄의 핀을 뽑아 살덩어리 사이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다들 떨어지세요!”

율비네는 낙법으로 떨어져 몇 바퀴를 굴러 바위 뒤로 몸을 피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머리를 감싸고 몸을 숙였다. 세피로스 역시 마수를 최대한 멀리 걷어찬 다음에 사람의 형태로 돌아가 라일라와 리비엘로를 챙기고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마수의 여린 안쪽 살에서 터진 수류탄 덕분에 기분 나쁜 파편들이 하늘에서 내렸다. 마수가 휘청이나 싶더니 완전히 쓰러졌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움직이지 못하는 마수의 머리를 깨기 시작했다. 그런데 뇌간까지 열고 들어갔는데 핵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진이 한 방 먹은 얼굴을 했다.

“이 부분은 머리가 아니고 꼬리야! 머리처럼 위장한 것이라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쿤둘렌이 무언가에 붙잡혀 날아갔다.

“쿤둘렌!”

커다란 집게발에 끌려간 쿤둘렌의 몸이 잘리지 않은 것은 입고 있던 방호복 덕분이었다. 쿤둘렌은 양손으로 집게를 잡아 벌렸다. 그의 근육이 위협적으로 꿈틀거렸다. 하지만 힘이 달리는지 얼굴의 주름진 골이 깊어졌다.

파울로가 달려가 쿤둘렌을 붙잡고 있던 집게다리를 베었다. 세피로스가 쿤둘렌을 마법으로 받아 주었다. 수많은 다리가 꿈틀거리며 다시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세피로스는 라일라와 리비엘로를 멀찌감치 피하게 하고 그들의 옆을 지켰다.

마수의 진짜 머리는 넓적했는데 입가를 파르르 떨더니 끈적끈적한 점액질을 뱉어 내었다. 운 나쁘게도 시오가 그 점액질에 팔을 맞아 넘어졌다.

“아악! 기분 나빠! 기분 나빠!”

시오는 토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점액은 땅에 단단히 달라붙어 시오가 떼려 그래도 꿈쩍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점액을 뱉어 내 먹이를 사냥하는 듯싶었다. 행동 불능이 된 시오를 지키기 위해 진이 그 옆으로 접근했다.

“괜찮아! 그거 기름에 녹아!”

“그래도 기분 나빠!”

시오가 굴욕적이라는 표정으로 땅에서 버둥거렸다. 율비네와 미레아가 협동하여 나무를 타고 올라 높은 곳에 있는 마수의 머리에 접근했다. 둘은 동시에 뛰어올랐는데 그들의 접근을 눈치챈 마수가 내뱉은 점액에 율비네가 맞고 추락했다. 그것 역시 세피로스가 마법으로 받아 주었다. 파울로는 마수에게 공격을 하려다 잠깐 짬을 내서 세피로스에게 투덜거렸다.

“세피로스, 옆에서 보조만 하고 있지 말고 좀 적극적으로 공격해 주시면 안 될까요?”

파울로니까 그나마 이 정도 항의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짬이 되지 않았다.

“저놈 하는 짓이 비위 상해.”

“저는 회장님께서 하는 짓이 더 비위 상합니다!”

“너야말로 월급 값을 해라.”

“이번 임무 끝나면 때려치울 거야! 이직할 거니까 그렇게 아십시오!”

혼자 투덜거린 파울로는 아리스의 엄호를 받으며 마수의 아래쪽부터 베어 내기 시작했다. 다들 수 많은 다리를 상대해야 하는 통에 발이 묶여 있었다.

한편, 미레아는 마수의 머리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납작 엎드려 팔과 다리를 발발거리며 정수리 부분으로 기어갔다. 마수의 정수리에 냅다 검을 꽂아 넣자 마수가 머리를 크게 휘둘렀다. 그 바람에 미레아는 검을 놓치고 머리 위에서 튕겨 나갔다.

미레아가 날아가는 궤도 끝에는 허물어진 신전 벽이 있었다. 미레아는 꼼짝없이 벽에 내동댕이쳐진다는 생각에 눈을 꽉 감았는데 누군가가 손을 잡았다. 아리스였다. 두 사람의 팔이 팽팽하게 당겨졌고 서로의 시선이 교차했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미레아가 발로 벽 위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옆으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반동을 이용해 다시 뛰어오르자 아리스는 원심력을 이용해 미레아를 그대로 마수에게 던졌다. 반동에 속도가 붙자 미레아는 마수의 사각지대로 빠르게 접근할 수 있었다.

미레아는 가장 위에 붙은 다리를 철봉처럼 잡고 몸을 빙글 돌리며 다시 머리 위로 향했다. 거리가 좀 짧나 싶었는데 그 순간 팔은 쓸 수 있었던 율비네가 창을 던져 마수의 몸에 꽂았다. 미레아는 창 자루를 딛고 뛰어올라 무사히 마수의 머리에 안착했다.

그리고 꽂혀 있던 검에 검기를 실어 마수의 정수리부터 아래로 주욱 몸을 갈랐다. 그런데도 쓰러지지 않고 다리를 휘두르는 마수에게 아리스가 날아들어 미레아의 검이 지나가 속살이 노출된 부분에 검을 꽂아 정확하게 뇌간을 찔렀다.

마수의 핵이 쪼개지면서 검신을 따라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감촉에 아리스는 안도했다. 마수는 재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훌륭한 지원 고마워요.”

미레아는 아리스와 율비네에게 엄지를 올려 보이고 아리스와 서로의 주먹을 맞부딪혔다.

“이제 정말로 끝이겠지?”

파울로가 아직도 미심쩍다는 얼굴로 주변부를 경계하며 둘러보았다.

“역겹습니다.”

마수가 내뱉은 점액질 덕분에 몸의 반절이 바위에 붙은 율비네가 오만상을 쓰며 버둥거렸다.

“괜찮아. 기름으로 문지르면 녹으니까…….”

별거 아니라는 진의 말에 아리스가 가장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여기 기름이 어디 있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