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미레아는 일반 아카데미 시절부터 유별난 검술 실력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녀를 보고 크게 안심했다. 미레아의 검술 실력에 대해서는 어른들마저 칭찬이 자자했으니 마수에게서 자신들을 지켜 줄 것이란 안도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미레아는 지금 반쯤 정신을 놓고 있었다. 그저 휴레오를 빨리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야 한다는 생각뿐 다른 생각을 하는 건 힘들었다. 미레아는 얼굴에 묻은 마수의 피를 닦다가 마수가 재가 되지 않았단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마수의 핵이 파괴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누나, 조심해!”
휴레오의 목소리에 미레아는 앞으로 몸을 굴렀다. 마수의 채찍 같은 꼬리가 미레아가 있던 자리를 때렸다.
“누나!”
“괜찮아!”
미레아는 다시 검을 들었다. 그녀의 등 뒤에서 학생들이 비명을 질렀다.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미레아는 마른침을 삼키며 뒤에 있는 학생 무리를 힐끔거렸다. 이 중에 휴레오를 포함해서 학생들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누군가 도와주었으면 좋겠지만 하늘과 바다를 새하얗게 매운 마수들을 상대하기 바빠 이곳까지 누군가가 올 리 없었다. 실제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대피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지 그들을 통솔하거나 안전하게 보호해 줄 치안대나 전투부 요원들을 보지 못했다.
미레아의 앞에 있는 마수의 머리가 천천히 회복되는 동안 꼬리 끝이 갈라지더니 날카로운 이빨이 잔뜩 돋아난 입으로 변했다.
마음과는 달리 몸이 굳었다. 그렇다고 겁에 질려 가만히 있으면 자신은 물론 여기 있는 모두가 황천길 행이었다.
“누나 너무 맞붙지 말고 적당히 하다 도망가자.”
휴레오가 미레아의 옷자락을 슬쩍 잡아당겼다. 그 역시 애써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두려움에 이가 딱딱 부딪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도망간다면 마수의 머리가 완전히 복구되기 전인 지금이 기회였다. 미레아가 마수를 견제하는 동안 뒤에 있던 학생들이 달려가려는데 그들의 바로 머리 위쪽의 강당 천장이 쿵 하고 울렸다. 울림은 강당 벽을 타고 내려와 건물 전체가 웅웅거리면서 흔들거렸다.
그 소리에 겁을 먹고 움츠린 학생들의 발이 멈추었던 동안 천장이 몇 번 더 쿵쿵거리자 위에서 먼지와 돌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그러더니 우지끈거리는 큰 소리와 함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미레아는 휴레오를 세게 밀치며 그 반동으로 자신은 반대쪽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무너진 천장의 잔해는 다른 학생들의 바로 앞으로 떨어져 몇 명이 파편에 다쳤고 한 명은 그 잔해에 다리가 깔렸다.
천장을 부순 것은 예상했던 대로 마수였다. 먼저 대치하고 있었던 마수와 똑같은 모양새였다. 새로 나타난 마수는 하나가 아니라 셋이었다.
마수들은 무리를 지어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다친 학생들을 침을 질질 흘리면서 바라보았다. 잔해에 깔린 사람을 제외한 학생들은 눈물을 흘리며 뒷걸음질 치다 자기들끼리 다리가 엉켜 넘어졌다. 휴레오의 앞에는 먼저 와 있던 마수가 완전히 회복한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건물 잔해에 깔린 학생과 다른 사람들은 도움의 손길이 급했다. 하지만 저쪽은 셋이나 되었고 이쪽은 하나다. 어느 쪽이 더 살 확률이 큰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뻔했다. 미레아는 그 이상은 생각할 것도 없이 휴레오 쪽으로 달려갔다. 사실 선택지가 많다 해도 미레아가 할 선택은 하나였다. 미레아는 다른 사람들을 뒤로 미루고 휴레오에게 먼저 손을 뻗었다.
괜찮아, 구할 수 있어.
미레아의 눈에는 마수의 동작이 느리게 보였다. 마수가 휴레오에게 본격적으로 덤벼들기 전에 위협부터 하자 휴레오가 손에 들고 있던 쇠 지렛대를 휘둘렀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마수의 화를 더 돋웠고 마수는 가볍게 펄쩍 뛰어 휴레오의 머리를 넘어가 그의 등 뒤를 급습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미레아의 눈이 커졌다.
미레아는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미레아의 다리는 이 이상 더 빨리 달릴 수 없었다. 알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어도 몸은 그렇지 못했다. 휴레오를 향해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의 동생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휴레오!”
휴레오가 미레아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미레아의 손을 맞잡으려는 행동이 아니었다.
오지 마.
마수의 숨결이 휴레오의 등 바로 뒤에서 느껴졌다. 휴레오는 마수와 미레아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오지 마, 늦었어.
휴레오의 눈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미레아는 이를 악물었다.
웃기지 마. 내가 네 말을 들을 것 같아?
길고 날카로운 마수의 발톱은 미레아의 손이 닿기도 전에 휴레오를 덮쳤다.
“휴레오!”
선명한 붉은 피가 솟구쳤고 미레아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마수는 입을 벌리고 휴레오의 몸을 물어뜯기 위해 머리를 숙였다.
“아아악!”
미레아는 한쪽 검을 마수에게 던졌다. 미레아에게 식사를 방해받자 마수는 땅에 쓰러진 휴레오에게 잠시 떨어져 길을 우회해 달려갔다. 그 과정에서 미레아는 마수와 눈이 마주쳤다. 마수는 미레아의 심정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 그 시선이 흡사 비웃는 것 같았다. 소름이 돋고 구역감이 밀려왔다.
미레아는 뒤에서 공격해 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마수는 무기를 들어 자신을 귀찮게 하는 미레아를 지나쳐 달려갔다. 미레아에게 있어서는 잘된 일이었다. 마수가 자신을 무시한 사이 미레아는 휴레오에게 다가가 피투성이가 된 상반신을 반쯤 일으켰다.
“누나…….”
휴레오가 쿨럭거리면서 피를 토했다. 미레아는 사색이 되어 덜덜 떨리는 팔로 휴레오를 끌어안았다.
“미, 미안해. 누나가 구해 주려 그랬는데…….”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흘렀다. 하지만 넋 놓고 울고 있을 시간에 휴레오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꺄아악!”
비명에 미레아가 처음으로 휴레오에게서 시선을 떼고 뒤를 돌아보자 미레아가 뒷순위로 내버려 둔 사람들 앞에 마수들이 몰려 있었다. 그야말로 피가 낭자한 광경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학생 하나를 쉽게 붙잡은 마수는 앞발로 학생의 몸을 꾹 누르더니 목을 물어뜯었다.
“그, 그만둬…….”
하지만 이미 휴레오를 받쳐 든 미레아에게 그들에게 접근할 공간적,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안 돼…….”
마수는 보란 듯이 미레아의 앞에서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마수가 느긋한 식사를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앞발로 사람을 찍어 누르자 앞발에 깔린 사람에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미레아는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 참혹한 광경을 굳은 얼굴로 지켜보았다. 그때 무언가가 미레아의 가슴을 툭 쳤다. 퍼뜩 정신을 차린 미레아가 내려보다 휴레오가 초점이 흐린 눈으로 미레아를 올려보고 있었다.
“휴레오, 휴레오! 괜찮아? 아니, 괜찮을 거야. 누나가 지금 바로 지혈해 줄게. 빨리 병원에 가면 제대로 된 처치가 가능할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누나.”
“응, 말해. 누나 여기 있어.”
“도…… 와줘…….”
“응, 응. 누나가 도와줄게. 조금만 참아.”
미레아는 쉼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문질러 닦으며 겉옷을 벗어 휴레오의 상처를 눌렀다. 하지만 휴레오는 다시 손으로 미레아를 툭 쳤다. 미레아가 휴레오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는 간신히 고개를 저어 보고는 눈동자를 돌렸다.
휴레오의 시선 끝에는 마수의 앞발에 깔린 살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미레아를 바라보았다. 휴레오는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지 않은 성대 대신 입술만 달싹여 말했다.
저 애들을 도와줘.
미레아의 눈이 커졌다.
왜, 왜 그런 말을 해? 나는 네 누나인데 당연히 네가 우선인 게 맞잖아. 왜 죽어 가는 동생을 버려두고 다른 사람을 구해야 하는 건데, 왜!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 왜 자기는 가망이 없으니 살릴 수 있는 사람부터 살리라는 식으로 말하는 건데! 나보다도 어린 네가 대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그런 말을 쏟아 내고 싶었다. 미레아는 분명, 그런 말을 쏟아 내려 그랬다. 하지만 휴레오의 눈은 점점 흐려져 가고 있었고 미레아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의 몸이 차갑게 식지 않게 끌어안는 것뿐이었다.
뒤에서 들려오던 비명이 사라졌다. 미레아는 그것이 뜻하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휴레오. 너를 지대로 지키지도 못하고, 네 말도 제대로 듣지 않은 나를 용서하지 말길.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 미레아는 고개를 돌렸다. 마수들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단순히 포식자가 피식자를 대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미레아의 어리석은 속내까지 꿰뚫을 수 있을 정도로 집요한 시선이었다.
보지 마. 내 안을 보지 마.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을 보지 마.
하지만 네가 선택한 결과가 이것이라는 듯 마수는 느릿하게 미레아에게 다가왔다. 미레아는 꼼짝할 수 없었다. 대신 휴레오를 단단하게 끌어안으며 눈물 젖은 시선으로 마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머리 위에 커다란 그림자가 지더니 커다란 무언가가 쿵 하고 내려앉으며 지축이 무겁게 흔들렸다. 은색 비늘이 해를 받아 반짝였다. 하지만 몸체의 절반 정도는 마수의 체액과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얼룩덜룩 묻어 있었다. 호박색 눈이 미레아를 돌아보았다.
미레아는 아득해지는 의식 속에서 목소리를 쥐어짜 말했다.
“세피…… 휴레오가…….”
그 말을 남기고 미레아는 홀로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 * *
미레아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고함치고 있었고, 울고 있었다. 미레아는 머리가 아파 손으로 이마를 더듬었다. 누군가 손수건으로 미레아의 식은땀을 닦아 주었다.
“깼나?”
미레아는 숨을 헐떡이며 상대방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세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