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미레아는 생존자들이 수면에 떠 올라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에게 해안 경비정이 다가가는 것을 초조하게 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바닷속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사람들이 탈진해서 파도에 삼켜진 것이 아니었다.
바다에서 나고 자란 미레아는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저건 물 밑에서 무엇인가가 사람들을 끌고 들어간 것이었다. 사람들이 사라진 수면에 짐승의 주둥이 같은 것이 잠시 떠올랐다 사라졌다.
“세상에, 어떡해…….”
미레아는 저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 트램이 덜컹거리며 정거장에 멈춰 섰다. 마침 미레아가 내리려던 정거장이었기 때문에 미레아는 얼른 내렸고 그 뒤로 침몰한 배가 어떻게 되었는지 더 자세히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따라 내렸다.
레인의 레스토랑은 정거장 바로 건너편이었다. 미레아는 후다닥 달려가 레스토랑의 뒷문으로 들이닥쳤다. 점심시간이라 바쁘게 움직이던 레인이 깜짝 놀라 미레아를 바라보았다.
“엄마! 이 앞에서 배가 침몰했어!”
레인은 불 위를 오가는 프라이팬에서 손을 떼지 않고 말했다.
“저런, 탑승객들은 구조되었니?”
“그게 이상해! 사람들이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어.”
“하필이면 해류가 안 좋았나 보다.”
“아니라니까! 나 그런 것쯤은 구별할 줄 알아! 무언가가 사람들을 끌고 들어갔어. 동물 같은 걸 봤어!”
하지만 레인은 그런 것보다 방금 밀려들어 온 주문을 처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해양 경비대가 알아서 할 거야. 너 점심은 아직이지? 손님 없는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얼른 해서 갖다줄게.”
미레아는 자신이 목격한 사건이 레인에게 별다른 자극을 주지 못한 것이 불만스러웠다. 김이 샌 얼굴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사이렌이 울려 레인과 미레아는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사이렌은 그치지 않고 연달아 울렸다. 이 사이렌이 울릴 때 해야 하는 일은 하나였다. 대피소로 가는 것. 태풍이 와서 낮은 지대가 침수당하거나, 해일이 오거나, 혹은 적군의 공습 같은 위급 상황에서 울리는 대피용 사이렌 소리였다. 주방에 있던 다른 직원이 중얼거렸다.
“날이 이렇게 좋은데 뭐지? 해일인가?”
미레아가 다른 나라가 침공해서 화물선을 침몰시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레인이 밖으로 뛰어가 상황을 살폈다. 레인이 나가자 사이렌 중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경고를 내렸다.
―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다시 알려드립니다. 항구 해안에 마수가 나타났습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침착하게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레인은 해안도로 가의 펜스 너머를 몸을 쭉 빼서 보았다. 기괴하게 생긴 마수들이 방파제를 넘어오고 있었다. 얼핏 봐도 열이 넘어 보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야?”
뒤늦게 레인을 따라 나온 미레아는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레인은 미레아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
“미레아, 마수가 나타났어.”
“……뭐?”
얼떨떨한 목소리를 내는 미레아의 손을 잡아끌고 레인은 레스토랑 안으로 급하게 들어가 외쳤다.
“마수가 나타났어요! 모두 대피하세요!”
식사하던 사람들과 레스토랑 안 직원들의 이목이 레인에게 쏠렸다. 그렇지 않아도 별안간 들린 사이렌 소리에 어리둥절하고 있던 차였다. 사람들은 마수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듣고 다들 사색이 되어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인은 출입문과 뒷문을 모두 열어 사람들이 한쪽에만 쏠려 혼잡하지 않게 대피를 도왔다.
“가장 가까운 대피소는 15번가 언덕에 있는 대피소예요!”
뒤늦게 현실로 돌아온 미레아는 레인이 그랬던 것처럼 해안 도로 너머의 방파제를 바라보았다. 바다에서 육지로 마수들이 넘어오고 있었다.
미레아는 마수를 실물로 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록산은 마수들의 피해가 거의 없는 지역 중 하나였다. 먼바다에서 마수가 나타났다는 배들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래 봤자 몇 년에 한 번 들려오는 소리였다. 이런 수의 마수들이 록산 근방에 포진하고 있지도 않았고 별안간 바다 너머에서 마수가 몰려올 이유도 없었다.
그런 연유로 미레아는 가짜 표본이 아닌 실제로 살아 있는 마수를 이번에 처음 보았다. 마수는 듣던 대로 새하얀 외피를 가졌고 괴상한 모양새였다. 가장 먼저 육지에 발을 내디딘 마수는 꼭 거대한 문어처럼 생겼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바닷속도 아닌데 촉수처럼 긴 6개의 다리로 땅을 딛고 서서 걸어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뒤를 따라 똑같이 생겼지만 크기가 다른 마수들이 연달아 상륙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허겁지겁 도망가자 마수는 기다란 다리를 휘둘러서 도망가던 사람 중 하나를 잡았다. 그리고 마수의 정수리 부분이 열리더니 그 안으로 방금 잡은 사람을 집어넣었다.
‘먹었어?’
마수가 사람이나 동물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광경을 실제로 볼 일은 평생 없을 줄 알았다. 미레아는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미레아, 뭐 하고 있어?! 너도 빨리 대피해!”
레인의 목소리는 해안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큰 소리와 함께 돌풍이 몰아쳐서 미레아는 반사적으로 귀를 막고 몸을 움츠렸다.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전에 미레아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가 사라졌다.
미레아가 그림자를 쫓아 하늘을 바라보자 은색 용이 빠른 속도로 해안 위를 활강하고 있었다. 용의 긴 주둥이 주변에는 마법을 사용한 여파로 마력의 잔재가 번쩍이고 있었다. 전격 공격에 새카맣게 탄 마수들이 해안을 따라 줄지었다.
그 직후 어디선가 파란 머리를 한 사람이 튀어나와 무력화된 마수에 달라붙어 재생을 못 하도록 마수의 핵을 처리했다.
“미레아, 거기서 뭐 해!”
“엄마! 세피로스랑 카디 언니야!”
레인의 얼굴에 안도감이 잠시 스쳤다. 하지만 이내 미레아의 손을 잡고 달리며 물었다.
“이 도시에는 용들이 있으니 대피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상황이 금방 정리될 거야. 휴레오는 지금 어디에 있지?”
“아, 아카데미 갔어. 아마 아직 아카데미일 거야.”
“아카데미 근처에도 대피소가 있으니 괜찮을 거야.”
레인은 15번가의 대피소에 미레아를 데려다준 후 휴레오를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 하늘 위는 아직 세피로스가 활강 중이었고 라케드와 라라미드까지 합류한 상태였다. 마수의 첫 발견 이후 대응까지 걸린 시간이 놀랄 정도로 짧았기 때문에 레인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미레아가 떨고 있는 것이 맞잡은 손을 통해 레인에게 전해졌다. 레인은 미레아의 손을 꽉 쥐었다.
“미레아, 너무 무서워하지 마. 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사할 거야.”
그 말에 미레아는 여전히 벌벌 떨면서 대꾸했다.
“다 같이 무사해야지!”
“그래, 네 말이 맞아. 엄마가 잘못 말했어. 다들 괜찮을 거야.”
만약에 이곳이 다른 평범한 도시였으면 괴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록산에는 세피로스, 라케드, 라라미드 세 명의 용이 있었고 라슈발렌의 전투 요원들이 주둔해 있었다. 초반 대응도 빨랐다. 큰 인명 피해 없이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레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갑자기 용들이 방향을 나눠 흩어졌다. 뜻밖의 태세 전환에 레인은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다 경악했다. 먼 하늘이 새하얗게 보일 정도로 수많은 마수가 육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다에서 올라오고 있는 마수 역시 끝없이 이어졌다. 검은 비늘을 가진 라라미드와 채도가 낮은 금빛으로 빛나는 비늘을 가진 라케드가 바다를 가로질러 마수 떼를 향해 돌진했다. 부수고 깨지고 폭발하는 소리가 먼바다에서 들려왔다. 레인과 미레아는 도망치던 것도 잊고 충격에 빠져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뭐 하고 있어요?! 피해!”
익숙한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카스카디아였다. 그녀는 벌써 한바탕한 모양인지 몸 이곳저곳에 마수의 체액이 묻어 있었다. 카스카디아 뒤로 다른 전투부 요원들이 나타나 대피 중인 시민들을 돕기 시작했다.
“레인, 미레아를 데리고 17번가 대피소로 가세요. 15번가 대피소는 이미 수용 가능 인원을 초과해서 게이트가 폐쇄되었습니다. 제가 엄호하겠습니다.”
“잠깐, 카디! 케이드는?”
남편의 안위를 챙기는 레인에게 카스카디아는 썩 좋은 소식을 전해 줄 수 없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30번가 쪽으로도 마수들이 몰려오고 있단 무전을 받았어요. 부장님은 그곳에 계실 거예요.”
“카디 언니, 휴레오가 아직 아카데미에 있어!”
카스카디아는 미레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다 손이 지저분한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대신 다정한 목소리로 안심시켰다.
“그쪽으로도 사람들이 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그때 바로 근처에서 비명이 들렸다. 어느새 근처까지 마수가 몰려왔다. 카스카디아는 검을 고쳐 잡았다.
“이럴 시간이 없어요. 달려!”
카스카디아의 지시대로 레인과 미레아는 달렸다. 그 뒤를 카스카디아가 쫓으며 주변을 경계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리고 있는데 카스카디아가 뒤에서 소리쳤다.
“엎드려!”
뒤쪽에서 마수가 날아와 미레아의 옆쪽 땅에 박혔다. 세피로스가 싸우다 던져 버린 마수가 인가를 덮친 것이었다. 하마터면 마수에 깔릴 뻔했지만 이건 세피로스를 탓할 수 없었다. 아무리 강대한 용이 셋이라 해도 수적으로 열세였다. 록산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싸울 여력이 없었다. 그만큼 마수의 수가 많았다.
처박힌 마수가 비척거리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카스카디아가 마수가 제대로 일어나기 전에 레인과 미레아의 등을 떠밀었다.
“근처에 있지 말고 먼저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