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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따라 종말까지-75화 (75/257)

75화.

그러는 동안에도 괴물 거인은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파울로는 아리스의 옆에서 자신의 대검을 뽑았다.

“일단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두지.”

“소용없어요. 구속구를 자기 힘으로 끊었어요.”

아리스는 괴물 거인을 올려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 상태라면 아무도 말릴 수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란 소리야?”

“죽여야지.”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를 기계적인 어투로 내뱉은 아리스에게 미레아가 화를 내었다.

“아직 죽인단 판단을 하기엔 일러!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하지만 아리스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가 도착하기 전에 저 괴물은 이미 자기 삼촌을 하나 잡아먹었고 다른 사람 둘은 괴물이 던진 바위에 맞아 죽었어. 식인 괴물이라고. 그런데 살려 두자고?”

“쥬드가 변한 거라며! 그러면 다시 원래대로 돌려놔야지!”

“방법이 있어?”

미레아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죽이자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내게 조금만 시간을 주면…….”

그때 거인의 등 뒤에서 무언가 울룩불룩 솟아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정도 형태가 잡힌 그것은 커다란 날개였다.

“아까와 같아.”

아침에 하얀 날개를 달고 이성을 잃었던 쥬드의 모습이 겹쳤다. 아리스는 괴물의 마력 흐름이 바뀐 것을 알아차리고 믿을 수 없었다.

“저건 데르카이드야.”

파울로는 그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저런 데르카이드는 듣도 보도 못했어. 오히려 마수 쪽에 가깝지.”

“하지만 마력의 흐름은 데르카이드와 유사해요. 인간이 변해서 마수가 되었단 소리 들어 봤어요?”

“평범한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데르카이드가 되었단 소리는 들어 본 적 있고?”

파울로는 그들이 조사한 내용을 아리스에게 알려 주었다. 아리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럼 저건 대체…… 뭐죠?”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당장 저 괴물을 막는 게 더 급해.”

거인은 한 발 내딛으려다가 아리스가 설치한 마법 때문에 허공에 붕 떠 있던 다리 한쪽을 휘청거렸다. 하지만 금방 균형을 잡고는 앞으로 내디딘 다리에 힘을 주었다.

“아아아아아―!”

괴물의 포효에 마법이 깨지기 시작했다.

“이런.”

아리스가 얼른 마법을 보강했지만, 임시방편으로 설치해 둔 간소한 마법이다 보니 괴물의 힘 앞에 하나둘씩 파괴되었다. 괴물은 아리스와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더니 그들에게 손을 뻗었다. 셋이 괴물의 손에 잡히기 전에 이리저리 피하자 괴물은 짜증이 난 듯 목표를 바꿔 상처를 입어 움직이지 못하는 시오와 그를 돌보고 있는 리비엘로, 그리고 라일라와 쿤둘렌에게 다가갔다.

간소화한 술식이긴 했어도 아리스의 마법도 깬 괴물이었다. 리비엘로의 신성력과 쿤둘렌의 마법이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아리스와 파울로가 그 앞을 막아섰다. 미레아는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하지만 겁에 질리거나 발을 빼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미레아는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생각해.

생각해라, 미레아 제인스터.

방법이 있을 것이다. 분명 쥬드도 구하고 다른 사람들도 구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모두를 구하자.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이 모두를 구해야 한다.

파울로에게 다리가 베인 괴물이 고통과 분노로 포효했다. 생각에 잠긴 것은 아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괴물을 공략할 방법이 없을까 싶어 마력의 흐름을 읽어 나갔다. 그러자 쥬드의 의식이 역류해서 아리스의 머리로 흘러들어 왔다.

― 아파.

― 괴로워.

― 그만하고 싶어.

― 전부 죽일 거야.

― 배고파.

― 먹고 싶어.

― 먹고 싶어.

― 먹고 싶어.

― 먹고 싶어.

― 먹고 싶어.

아리스는 이를 악물었다. 쥬드는 자신의 의지에 먹혔다. 그저 인간들을 먹겠다는 강한 의지와 원초적인 감정만 남은 짐승일 뿐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5년 전에 아리스가 의지에 먹혔을 때는 자신의 의지에 완전히 잠식당하기 전에 제정신으로 돌려놓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쥬드는 아니었다.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늦었다. 설령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해도 괴물의 모습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도리가 없었다.

쥬드는 강한 허기로 괴로워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아리스는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지 겪어 봐서 공감할 수 있었다.

아아, 네가 그렇게 괴롭다면 나는…….

아리스는 검을 고쳐 잡았다. 뒤늦게 아리스의 의도를 알아차린 미레아가 비명처럼 외쳤다.

“아리스, 안 돼!”

미레아는 전광석화처럼 달려와 아리스의 검을 자신의 검으로 막았다. 아리스는 자신에게 검을 드리운 미레아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미레아, 제정신이야?”

“난 제정신이야! 저 괴물을 베는 건 나로선 용납 못 해!”

“그럼 어떻게 하라고!”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잖아!”

“그렇다면 네가 해결책을 내놔 보든가!”

“너희 둘 다 그만두지 못해?”

보다 못한 파울로가 화를 내었다. 그는 쿤둘렌의 엄호를 받으며 괴물에게 대검을 휘둘렀다. 미레아가 파울로를 막으려고 달려가려 했지만, 이번에는 아리스의 발차기가 미레아에게 날아왔다. 팔을 들어 허리에 충격이 가는 것을 막은 미레아는 사납게 눈을 치켜떴다. 그사이 파울로는 대검으로 괴물의 팔을 막 베어 낸 참이었다. 뼈까지 깨끗하게 절단된 괴물의 팔이 땅에 나뒹굴었다.

“파울로, 아무리 파울로라 그래도 그 이상을 한다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파울로는 듣지 않았다. 그가 자세를 재정비해서 괴물의 정면으로 돌격했다. 팔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던 괴물은 파울로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공격하는 것을 포기하고 양 날개를 활짝 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런!”

괴물을 놓친 파울로가 혀를 차며 높게 떠오른 괴물을 올려보았다. 하늘로 날아오른 괴물을 본 아리스와 미레아의 시선이 한순간 마주쳤다. 아리스의 다음 행동을 예측한 미레아의 눈이 커지는 것과 동시에 아리스는 검은 날개를 날갯짓하여 괴물을 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미레아가 부츠에 설치되어 있던 마도 기계장치를 발동해 도움닫기를 할 새도 없이 그를 따라 뛰어올랐다. 하지만 아리스가 더 빨랐다. 아리스를 잡기 위해 뻗었던 미레아의 손은 허공을 움켜쥐었을 뿐이다.

다시 땅으로 떨어져 내리며 미레아가 처절하게 외쳤다.

“하지 마! 아리스, 제발!”

미레아의 눈에 아리스가 괴물을 향해 검을 치켜드는 것이 느리게 보였다. 괴물이 자신의 눈높이까지 날아오른 아리스를 바라보았고 탁해진 그 눈에는 아리스의 모습이 비치지도 않았다.

“괴롭지?”

아리스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괴물은, 쥬드는 아리스의 말뜻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눈앞의 생명체를 먹기 위해 입을 쩌억 벌렸다.

“미안해. 목숨을 거두는 것은 내가 네 고통을 끝내 주는 것으로 용서해 주길 바라.”

아리스의 검은 정확하게 거인의 목을 내리쳤다.

“쥬드!”

하늘에서 괴물이 추락했다. 괴물의 머리가 붉은 선혈을 뿌리며 날아갔고 육중한 몸이 땅에 떨어질 때 쿵 하고 땅이 크게 울렸다. 미레아는 괴물에게서 쏟아진 피를 맞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쥬드…….”

땅에 떨어진 흉측한 형태의 머리는 탁한 두 눈을 감지 못하고 땅에 나뒹굴었다. 미레아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괴물의 피가 묻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미레아의 어깨에서 힘이 빠져 몸이 축 늘어졌다.

“쥬…… 드…….”

땅을 바라보며 허망하게 쥬드의 이름을 곱씹는 미레아에게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파울로였다.

미레아는 파울로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가면서 보다가 그의 손을 무시하고 자신의 힘으로 비척거리면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땅에 사뿐히 내려앉아 날개를 집어넣은 아리스에게 곧장 걸어갔다. 아리스는 죄책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미레아를 내려다보았다.

퍽―!

왼쪽 볼이 화끈거림과 동시에 고개가 홱 돌아갔다.

“개새끼.”

미레아가 짓씹듯 욕설을 내뱉었다. 뺨 맞을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주먹이 날아오리라고는 예상 못 했다. 입안이 터졌는지 쇠 맛이 났다. 미레아는 그것으론 분이 풀리지 않아 다시 주먹을 올리는데 뒤늦게 파울로와 쿤둘렌이 달려와서 미레아의 양팔을 각각 붙잡았다.

“놔! 이거 놔! 저 새끼가 쥬드를 죽였어! 아직 어린애였는데!”

미레아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고작 어린애였는데!”

“아리스도 어쩔 수 없었잖아!”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잖아!”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거인을 베어 낸 파울로와 아리스가 옳았다. 쥬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고 그런 그에게 남은 건 지독한 고통이었다. 그것을 끊을 방법은 죽음이란 수단밖에 없었다.

“미레아 군, 진정하세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알고 있잖아요.”

쿤둘렌이 미레아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모두, 모두 어떻게 그렇게 매몰찰 수 있어? 어떻게 다른 대안이 없다 해도 그렇게 베어 버릴 수 있냐고! 쥬드는 인간이었어! 그것도 아무것도 모르고 무력한 어린애였다고!”

“미레아, 그만해.”

리비엘로가 아리스와 미레아의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아리스라고 마음이 편하겠어?”

“웃기지 마!”

미레아의 귀에는 전부 변명으로 들렸다. 파울로는 악다구니를 쓰는 미레아를 보고 한숨을 쉬더니 그녀의 명치에 주먹을 꽂았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힘을 조절해서 말이다. 미레아가 헉 소리도 못 내고 쓰러져 땅에 엎어졌다. 그녀가 제정신을 차리기 전에 파울로가 미레아의 한 손을 수갑으로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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