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그럼 댁들이 저지른 짓들에 대해서 말인데…….”
아리스가 운을 떼기 무섭게 뒤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고개를 홱 돌리자 일행들이 있는 집 창문들이 안에서 밖으로 깨져 있었다. 그리고 하얀 스파크가 사방에서 튀었다. 라일라가 현관 밖으로 거의 내동댕이치듯 튕겨 나왔다.
“라일라!”
땅을 몇 번 구르고 멈춘 라일라는 자신의 몸도 살피지 않고 다급하게 외쳤다.
“시오! 아리스, 시오가! 쥬드에게……!”
“어떻게 된 거야?”
“시오가 쥬드에게서 나를 감싸다 다쳤어!”
라일라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폭발음이 또 들렸다. 라일라의 얼굴은 그녀가 인질로 붙잡혀 있을 때보다 더 창백해졌다. 이번 폭발로 인해 현관문이 뜯겨 나갔다. 집 안에서 하얀 외피를 가진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의 겉에 묻어 있는 붉은 선혈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지붕이 우지끈거리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갔다. 집 안에 있던 것이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하얀 피부를 가진 그것은 얼굴 근육이 이상한 모양으로 부풀어 있었고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나 있었다. 눈은 각막이 하얗게 탁해져 있어서 앞이나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괴물은 점점 덩치가 커지더니 어깨가 집 천장 높이를 넘어 쑥쑥 자라 올라갔다.
“괴물! 괴물이다!”
“마수다!”
계속해서 몸을 불리는 괴물을 보며 마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쥬드……!”
라일라가 아리스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아리스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녀를 돌아보았다가 다시 괴물을 바라보았다. 괴물의 모습에서 쥬드를 연상할 만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어느덧 집 담벼락이 무릎에나 오는 크기까지 자란 괴물 거인은 비명을 지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곧 흥미를 잃고 지붕이 날아간 집 안쪽에 손을 넣고 부스럭거리더니 한 손으로 시오의 다리를 잡고 거꾸로 들어 올렸다. 힘없이 딸려 올라오는 시오의 상의를 타고 피가 떨어져 내렸다.
그는 용케 총을 놓치지 않았다. 아리스가 돕기도 전에 괴물의 팔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괴물은 깜짝 놀라 시오를 집어 던졌고 그는 큰 전나무에 처박혔다. 아리스가 순간적으로 시오에게 충격을 완화하는 마법을 걸지 않았다면 척추라도 부러졌을 것이다. 땅에 엎어진 시오에게 라일라가 달려갔다.
“역시 악마였어!”
마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엽총을 쏴 대기 시작했다.
“아아, 아아아아―!”
하얀 거인이 총탄을 맞으며 서글프게 울부짖고는 두 발로 섰다. 엽탄은 거인의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 멀쩡하게 서 있는 거인을 상대로 총알이 떨어진 마을 사람들은 공격하는 것을 포기하고 사방팔방 도망치기 시작했다.
거인은 가장 앞에 있던 콜트를 바라보았다. 공포에 사로잡혀 움직이지 않고 있는 콜트의 바지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아리스가 시오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거인은 콜트를 낚아채더니 그대로 입에 넣었다. 콜트는 뒤늦게 비명을 질렀지만, 다른 사람들이 손을 쓸 새도 없이 거인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지금 사람을 먹은 거야……?”
라일라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속이 메슥거렸다. 콜트를 완전히 삼킨 거인은 우왕좌왕 도망가는 마을 사람들을 잡으려는지 발을 내딛고는 쿵쿵 뛰어갔다.
“안 돼!”
아리스가 친 마법에 거인이 붕 밀려났다. 거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달렸지만 두세 걸음 후 다시 뒤로 훅 밀려났다. 마법으로 거인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막아 놓은 아리스는 아연한 기분이 들었다. 우선 눈앞에 주어진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정말 쥬드…… 야?”
거인은 사람의 말을 하지 않고 포효할 뿐이었다.
* * *
시오가 혼자였더라면 무사했겠지만, 라일라를 자신의 몸으로 보호하는 바람에 크게 다쳐 버렸다. 아리스가 안전상의 이유로 라일라를 집 안으로 보낸 것이 실책이 될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리스가 나가고 집 안에 쥬드와 둘만 남았을 때 시오는 웅크리고 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린아이의 등을 쓸어 주었다.
“쥬드, 괜찮아. 우리는 너를 넘기거나 하지 않아.”
하지만 쥬드는 시오의 총소리에 더 겁에 질려 울기 시작했다. 밖에만 신경을 쏟자니 시오는 쥬드를 무시할 수 없어서 난감했다.
“아아, 어린애를 대하는 건 어려워. 무슨 말을 해 줘야 안심을 하려나…….”
시오가 계속해서 다정한 말을 건넸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쥬드에게는 마을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렸다.
악마! 악마!
악마를 죽이자!
“아니야…….”
쥬드가 머리를 흔들었다.
“나, 난 악마가 아니야…….”
어젯밤 사이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악마에게 잡혀갔었던 것일까? 정말 악마에게 홀렸던 것일까? 누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짐승처럼 인간의 말소리가 아닌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산짐승을 뜯어먹던 그 끔찍한 모습.
누나처럼 자신도 악마가 되는 걸까? 악마가 되고 나면 죽는 것일까.
마을 사람들이 악마로 변한 자신을 그냥 둘 리 없었다. 누나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무서웠다. 쥬드는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누웠다. 왼쪽 눈이 불에 덴 듯 뜨거워지기 시작한 건 그때쯤이었다.
악마를 죽이자!
공기와 땅을 타고 성난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쥬드의 몸을 두드렸다. 쥬드는 홧홧한 왼쪽 눈을 비비적거렸다.
아니야, 난 악마가 아니야! 나를 내버려 둬!
그때, 집 문이 열렸고 누군가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댔다. 잔뜩 겁을 먹고 있던 쥬드는 마을 사람들이 기어이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라 생각하고 그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쾅!
큰 폭발음을 내며 쥬드의 사지에 채워 놓은 구속구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터져 나갔다. 시오는 구속구가 폭발하기 직전에 이상한 것을 감지하고 라일라를 감싸다 그 파편에 몸 여기저기가 찢겼다.
쥬드는 그것이 자신의 몸 근처에서 난 소리란 것을 깨닫고 더 겁에 질렸다. 무서웠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공포에 찬 비명을 지르는 것뿐.
왼쪽 눈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쥬드는 연신 눈을 비비면서 신음했다.
‘나를 가만둬!’
나를 건들지 마.
나를 부르지 마.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그리고 지독하게 허기가 졌다. 먹고 싶다. 배를 채우고 싶다. 감정이 격해지자 어느 순간 외부의 자극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제야 쥬드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두려운 것은 없었다.
“아아아아아―!”
웅크리고 있던 하얀 거인이 몸을 일으켰다.
“쥬드!”
뒤늦게 달려온 미레아의 외침은 쥬드에게 닿지 못했다.
* * *
미레아 일행이 마을에 도착하기도 전에 눈에 들어온 것은 높은 나무 위로 보이는 하얀 거인의 머리였다.
“리비엘로의 말에 따르면 저것이 마수…… 가 아니고 인간이 변한 괴물이라는 건가?”
파울로는 괴물을 더 자세히 보려고 손으로 눈가에 그늘을 만들어 햇빛을 가렸다. 쿤둘렌 역시 망원경을 꺼내 거인을 관찰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그럴 만한 사람은 쥬드밖에 없어요. 어쨌든 이상한 전조를 보낸 것은 그 아이뿐이니 말입니다.”
“아리스랑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미레아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무사하길 바라야지. 아리스가 있으니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는데 일이 꼬여도 제대로 꼬였나 보군.”
“저게 정말 쥬드라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그 말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간이 변한 것으로 추정되는 두 괴물은 결국 괴물의 모습 그대로 죽었다. 사인은 외부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내부에서 변형된 여러 장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자멸한 것이다. 저 괴물 거인 역시 그렇다면 시간을 끌며 내버려 두면 저절로 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이 순간 괴물 거인이 마을 한복판에서 날뛰면서 피해를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저들끼리 작당하여 무고한 소녀 하나를 팔아 버렸지만 어쨌든 인명 피해가 있어서는 안 됐다. 괴물 거인을 빨리 막지 않으면 여러모로 피해가 막심할 것이다.
“구해야 해요.”
“마을 사람들의 대피부터 돕지.”
“아니요, 쥬드를 말한 거예요.”
미레아의 말에 파울로가 미간을 찡그렸다.
“무슨 수로?”
“어떠한 요인 때문에 저런 괴물이 되었으면 되돌리는 방법도 있을 수 있어요.”
“미레아, 그건…… 지금 그런 방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찾으면 되잖아!”
단순한 낙관론이 아니었다. 미레아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아직 어린애야! 저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어!”
“조심하세요!”
쿤둘렌의 경고에 파울로가 핸들을 꺾었다. 마을로 접근하자 지프와 아슬아슬한 간격차로 바위가 굴러갔다. 거인이 바위를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바닥에 누워 있고 체구가 작은 사람 하나가 그를 끌어안고 보호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검은 날개를 펼친 아리스가 방어막을 쳐 주며 거인과 날아오는 바위에서 그들을 보호해 주고 있었다. 피를 뒤집어쓴 사람이 시오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일행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파울로가 차를 아무렇게나 세우자 사람들이 뛰어내렸다.
“시오!”
“난 괜찮아. 목숨에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야. 울지 마, 라일라.”
시오가 쿨럭거리면서 기침을 했다.
“근데 아파 죽을 것 같아.”
“제가 한번 보도록 하죠.”
쿤둘렌이 시오의 상처를 들춰 보았다. 복막까지 뚫린 것은 아니었어도 자상의 수도 많았고 범위도 길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쥬드가 저 괴물로 변했어요.”
라일라는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파울로는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괴물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대응할 준비를 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보다 먼저 괴물 거인을 상대하던 아리스는 이미 여러 군데에 마법을 설치해 괴물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설치해 둔 마법 술식에 닿으면 반발 작용으로 몸이 뒤로 물러나게 되는 원리였다. 괴물의 처우를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해 선택한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