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쿤둘렌은 단검으로 마수의 정수리 두개골을 쪼개며 머리를 반으로 갈랐다. 뒤에서 듈이 구역질하는 소리가 났다. 쿤둘렌이 마지막으로 힘을 주자 반으로 쪼개진 뇌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군요. 정말로 핵이 없어요.”
마수의 생체 활동과 무한정에 가까운 세포의 재생을 관장하는 마수의 핵은 보통 반투명하고 단단한 돌 같은 형태였는데 워낙 단단하다 보니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파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검기를 실은 검이나 마력으로 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파괴한다.
그런 마수의 핵은 뇌간에 존재한다. 보통은 크면 성인 남성의 주먹만 한 것부터 작은 것은 호두만 한 것도 있었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예외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발견된 마수를 연구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랬다. 그런데 쿤둘렌의 말대로 마수의 뇌간에는 핵이라고 불릴 만한 게 없었다.
“작아서 안 보이는 게 아닐까요?”
파울로의 말에 쿤둘렌은 두개골에서 뇌를 완전히 들어냈다.
“웩.”
미레아는 혀를 내밀며 뇌에서 점액질의 녹색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더 자세히 살펴봤자 연부 조직 이외에 다른 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쿤둘렌은 마수의 신체 기관을 여기저기 뜯어보았고 미레아는 그 옆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기 바빴다. 파울로는 쿤둘렌과 함께 그것을 살펴보며 쿤둘렌이 불러 주는 대로 수첩에 기록을 남겼다.
마수란 것은 형태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단순한 해부학적인 특징만으로는 분류하기 쉽지 않았다. 유일한 공통점이 바로 하얀 몸체와 뇌간에 있는 핵인데 이 마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인 핵이 없었다.
“마수가 아닙니다.”
전부 살펴볼 만큼 살펴본 쿤둘렌의 의견은 그러했다.
“핵이 없기 때문에 마수라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럼 대체 이 괴물의 정체는 무엇이냔 말이다. 사진을 찍던 미레아가 괴물의 왼쪽 눈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눈을 싸고 있는 막 같은 구조물이 워낙 탁해서 쿤둘렌이 살필 때는 무심코 지나쳤다. 미레아가 단검으로 눈알을 빼서 반으로 가르자 호두만 한 회색 돌이 나왔다. 미레아는 단검 끝으로 그것을 톡톡 치며 사람들을 올려보았다.
“이게 뭘까요?”
얼핏 봐서는 길에 흔히 널린 돌멩이 같았다. 하지만 괴물의 눈에서 나온 것이다. 돌이 눈에 박혀 있을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아리송한 얼굴을 하고 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쿤둘렌은 그것을 핀셋으로 집어 유리병에 넣었다.
“그런데 이 마수 말이에요, 꼭 못생긴 유인원 같지 않아요?”
리비엘로의 말을 듣고 보니 마수는 직립보행에 적합한 골격이었다. 파울로는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그게…… 두 번째 마수를 보고 말씀드릴게요.”
조사할 만큼 한 그들은 괴물의 사체를 싣고 가길 바랐지만 듈이 펄쩍 뛰었다. 마을에 들였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기껏 버리고 온 것인데 다시 마을로 가져갈 수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그들은 괴물의 사체를 불태웠다. 그들은 사체가 확실하게 재가 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듈과 마을 사람들은 첫 번째 마수를 버린 곳 근처에 두 번째 마수도 버렸다 했다. 두 번째 마수는 앞서 듈이 설명했던 묘사대로 생겼다. 어깨가 우락부락하게 발달했고 뒷다리는 간신히 달린 정도였고 송곳니가 길었다. 쿤둘렌은 먼저 본 마수에게 그랬듯 두개골을 반으로 갈랐다.
“이 마수 역시 핵이 없습니다.”
그 말대로 뇌간은 깨끗했다.
“마수라 할 수 없습니다.”
비록 마수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쿤둘렌은 그렇게 정의 내렸다.
“잠깐.”
미레아는 혹시나 싶어 첫 번째 괴물과 같이 두 번째 괴물의 왼쪽 눈을 빼내어 갈라 보았다.
“역시…….”
왼쪽 눈에서 호두만 한 돌이 나왔다. 그들은 첫 번째 괴물과 두 번째 괴물의 공통점을 발견해 냈다.
“이 돌은 대체 뭐죠?”
정체가 불분명한 괴물 두 마리의 같은 신체 기관에서 같은 모양의 돌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쿤둘렌은 첫 번째 괴물에게 채취한 돌을 나란히 놓고 생각하다 자신의 목걸이를 풀어 그 옆에 놓았다. 쿤둘렌이 늘 하고 다니는 마석 목걸이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쿤둘렌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했다. 괴물들의 왼쪽 눈에서 나온 돌들은 마석과 크기와 모양이 일치했다. 마석처럼 희미한 빛이 나지는 않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었다.
“설마 마석이라고요?”
미레아가 황당하단 목소리로 묻자 쿤둘렌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석이라고 하기엔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걸요.”
파울로가 자신이 갖고 있던 마석을 꺼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리비엘로는 혼자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조사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네요.”
미레아가 머리를 북북 긁으며 난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쿤둘렌은 두 괴물을 해부하면서 왼쪽 눈의 돌 이외에 다른 공통점 역시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몰골이 송연해졌다.
“그럼 이 괴물들의 정체는 대체 뭐죠?”
파울로의 물음에 쿤둘렌은 답하기를 주저했다. 그도 그럴 게 함부로 입 밖으로 내기 위험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인간…….”
일순 쿤둘렌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지만, 리비엘로는 가라앉은 눈으로 괴물을 내려보며 단언했다.
“이거 인간이에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황한 미레아에게 리비엘로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쥬드가 위험해.”
* * *
아리스는 쥬드의 침대 옆에 끌어다 앉은 의자를 뒤로 기울여 앞뒤로 까닥까닥했다. 아직 의식을 잃고 정자세로 누워 있는 쥬드는 평범한 어린애의 모습 그대로였다.
콜트는 밭일을 한다는 것을 핑계 삼아 그들을 피해 도망간 지 오래였다. 그래 봤자 또 어디선가 술을 진탕 마시고 있을 게 뻔했지만 말이다. 마을 사람들은 쥬드의 집에 남아 있는 아리스와 시오, 라일라에게 더 추궁당하는 것이 무서웠는지 뿔뿔이 흩어졌다.
“저쪽은 별일 없겠지?”
아리스의 말을 들은 시오가 비죽 웃으며 대꾸했다.
“너 요즘 미레아를 과보호하려는 것 같아.”
아리스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코웃음 쳤다.
“나는 누구랄 것도 없이 그쪽 일행을 묶어서 말한 거야.”
“아이고, 그러십니까.”
“뭐야, 뭐야. 아리스, 그런 거야? 응? 그런 거였어?”
라일라가 은근하게 웃으며 양손으로 턱을 받쳤다.
“그런 게 뭔데?”
아리스가 눈을 깜박이며 묻자 라일라가 다 알면서 왜 그러냔 투로 말했다.
“언제부터 미레아를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어?”
그 말에 아리스는 잠시 생각하다 몸서리를 쳤다.
“아무래도 나 미레아가 친 사고들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아. 난 걔가 대체 무슨 짓을 할지 예측이 안 가서 무서워.”
그 말에 라일라와 시오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심심해서 아리스나 놀리려 그랬는데 반응이 어째 그들이 생각한 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 쪽으로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었으면 이런 기습 공격에 제 발 저려 시오와 라일라가 쳐 놓은 함정에 빠졌을 텐데 아무래도 건전하고 담백한 마음만 있는 모양이었다.
아, 이러면 재미없지 말입니다. 시오는 김이 팍 샌 얼굴로 말했다.
“미레아가 치고 다닌 사고가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면 나랑 대장만 하겠어?”
“전부터 어땠는데?”
“말도 마. 걔는…… 말로 다 못 해. 어떻게 여태 살아 있는 건지 신기할 정도라니까.”
“미레아가 쓰는 마도 기구들의 수명은 남들이 쓰는 것들의 절반도 안 돼. 그거 수리하는 것도 일이야.”
라일라가 맞장구를 쳐 주자 시오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줄줄 나열하기 시작했다.
“미레아는 일단 운이 더럽게 좋아. 가끔 보면 일부러 죽으려고 저러나 싶은 상황도 많았는데 대부분 멀쩡했고, 다친다 해도 큰 부상을 입은 적도 없거든. 그렇다고 마냥 요행으로 치부하기엔 능력이 되기는 하거든. 자기 몸뚱이 하나 믿고 저러는 것 같은데 옆에서 보는 입장에서는 심장이 남아나질 않아.”
그렇게 말하는 시오는 일순간 10년 정도 더 늙어 보였다.
“걔는 대체 왜 그럴까.”
“정 궁금하면 파울로 대장한테 물어봐 봐. 미레아를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거든. 우리는 미레아가 라슈발렌으로 들어왔을 때의 일들밖에 모르니까.”
시오가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을 듣고 뒤늦게 생각해 보니 미레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상 명량하고 쾌활한 미레아였지만 일부러 그러는 건진 몰라도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를 화제로 삼지 않았다.
아리스는 일전에 파울로를 통해 잠깐 들었던 과거 이야기와 미레아의 집을 떠나오기 전에 미레아가 잠깐 내비쳤던 감정 이상의 것을 알지 못했다.
사실 그건 아리스도 마찬가지였지만 아리스에 관한 이야기는 소문이 날 대로 난지라 어차피 남들이 다 알기 때문에 이야기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 일행들은 아리스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대중들에게 알려진 이야기 이외에도 그보다 더 상세한 것들이 적혀 있는 보고서를 받아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레아에게 직접 묻자니 과거에 안 좋은 일들을 괜히 상기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 그럴 수 없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서 누군가 아리스에게 과거 일들을 꼬치꼬치 캐묻는다면 정말 싫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물을 수 없었다.
어쩌면 아리스 자신보다 더 속이 곪을 대로 곪은 것은 미레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 미레아는 진심으로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아리스를 저울질하려 그랬었다. 한순간이었지만 두 눈에 서려 있던 광기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갖지 못하는 것이었다.
미레아는 가족을 잃고 혼자 남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탓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기숙 아파트를 전전하며 살았다. 그런데도 항상 밝은 얼굴이란 소리는 속에 있던 것을 꺼내지 않고 있다는 소리다.
그 안의 것이 얼마나 억눌려 있는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아리스 자신이 끄집어내도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미레아가 지금의 모습이 된 가장 큰 원인은 아리스의 영향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른 사람들과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쥬드가 가늘게 신음을 내었다. 셋의 시선이 쥬드에게 가서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