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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따라 종말까지-71화 (71/257)

71화.

듈과 자경단원들은 서로 의아한 시선을 주고받다가 누군가가 용감하게 나서 마수의 곁으로 가 총 끝으로 마수를 툭툭 쳐 보았다. 하지만 마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생명체가 보여야 하는 생체반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영문을 알 수 없어 식은땀을 닦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하…… 이번에도 이러네.”

언제 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여인이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등 뒤로는 금색 날개가 돋아 있었다. 짙은 구릿빛 피부는 그녀가 이 지역 사람이 아니란 것을 뜻했다. 듈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루데키아스 대공자의 이야기라면 진절머리 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대공자가 검은 날개를 가졌기 때문에 흑익이라는 이명을 얻었단 것도 그들에게는 상식이었다. 흑익의 악명이 높은 만큼 그들은 데르카이드를 두려워했다.

“데, 데르카이드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여자는 날개를 펼치더니 쓰러진 마수의 머리맡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양밖에 안 먹는 게 문제인가? 사람이라도 먹으면 달라지려나.”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입맛을 쩝 다시고는 마수의 머리를 발끝으로 툭툭 쳤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며 물었다.

“누, 누, 누구신지요?”

“나? 나는 음…….”

여자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꼬며 싱긋 웃었다.

“그러게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하지? 나도 흑익이나 백익처럼 이명이 있었으면 재미있었을 텐데.”

여자는 자신의 날개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사람 중 누군가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악마…….”

그 말에 여자가 폭소했다.

“아하하, 악마라! 내가 악마처럼 보여?”

“마수를 수하로 부리는 거 아니오?”

그가 보기에 여자는 충분히 악마처럼 보였다. 그는 클라인의 시골에서 나고 자라 기껏해야 근처의 소도시나 오가는 늙은 촌부였다. 그가 사는 마을이 공작령에 속하긴 해도 마라피네스 대공은 까마득하게 높으신 분이었고 실제로 뵌 적도 없었다. 데르카이드는 소문으로만 접했고, 흑익이라 불리는 루데키아스 대공자는 마수를 몰고 온 두려운 존재였다.

그러니 마수와 함께 있던 커다란 날개가 등에 돋아난 여자는 촌부에게는 충분히 악마처럼 보였다. 옆에 있던 사람이 여자의 눈치를 보며 그를 쿡 찔러 입을 막았다. 하지만 여자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연신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수하는 아닌데. 얘네는 내 말을 도통 듣지 않는단 말이야. 애초에 내 말을 알아듣지도 못 해.”

여자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나저나 나 좀 곤란한 상황이거든. 글쎄, 나보고 새로운 숙주가 필요하니 적당한 사람을 납치라도 해 오라는데 골치가 아파요. 치안대가 알게 되면 귀찮아진단 말이지. 그 녀석은 턱짓으로 나를 부리기만 하고. 조금은 자기가 직접 움직여도 될 텐데…….”

그러면서 그들에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여자가 다가오는 만큼 뒷걸음질을 슬금슬금 쳤다. 그러다 여자는 좋은 생각이라도 난 듯 매혹적인 갈색 눈을 반짝거리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런 연유로 우리 쪽에서 인간을 조달하는 게 슬슬 힘에 부쳐서 말이야. 너희도 소중한 양이 계속 없어지면 난처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나랑 거래하는 게 어때?”

여자가 하는 소리 중에 사람들이 이해한 부분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저 기분을 거스르지 않게 하려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듣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거래를 하자는 말에 의심 가득한 얼굴로 저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사람 딱 하나만 내게 주면 안 될까? 어딜 가도 쓸모없는 인간은 있기 마련이잖아. 갑자기 없어져도 아무도 신경 쓸 필요 없는 인간. 그러면 다시는 양을 습격하지 않겠다 약속할게. 아! 겸사겸사 다른 마수가 마을에 접근하는 것도 막아 줄게. 이 정도 조건이면 완전 파격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구미 당기지 않아?”

마치 애교 부리는 듯한 어투였지만 사람들은 데르카이드를 마주한 두려움이 더 컸다. 악마가 하자는 거래를 경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여자가 답답하단 듯 말했다.

“그러니까 나 악마 아니래도. 뭣하면 생각할 시간이라도 줄까? 하긴 이런 제안은 갑작스럽게 들리긴 하겠지.”

여자는 날개를 활짝 폈다.

“내일 자정에 내가 너희 마을로 갈게. 그때까지 결정해야 한다? 기왕이면 긍정적인 대답 들려주기야. 참, 이 일은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된다? 마을 밖으로 이야기가 새어 나가면 재미없을 줄 알아.”

그리고는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두 사람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다른 사람들 역시 얼떨떨한 얼굴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래서 제일 만만한 여자애를 하나 바치셨다?”

파울로가 저도 모르게 이야기를 끊고 듈을 험상궂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 기세에 눌렸는지 듈은 흠칫 몸을 떨며 더듬거리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하, 하지만 그때는 저희도 어쩔 수 없었고…… 그, 그 악마가 그런 마, 말까지 했는데 무슨 짓을 할지 몰랐지 말입니다. 저희는 그저…….”

“하아…….”

파울로가 화를 참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오와 쿤둘렌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을 했다.

“일단 우리에게 며칠 시간이 있으니까…….”

이거 봐. 대장은 이거 못 지나친다니까. 계약 외 근무는 썩 달갑지 않았지만, 파울로가 아니라 해도 여기 있는 사람 중 이 사안을 등한시할 만큼 무심한 사람은 없었다.

파울로가 성큼성큼 집을 나가더니 사나운 목소리로 마을 사람들에게 외쳤다.

“이 중에 아직도 말할 게 남아 있는 사람 있습니까?”

나서는 이 없이 좌중이 침묵했다. 마을 사람들끼리는 서로 공범이다 이 소리였다. 파울로는 이 이상 협조를 받아 내는 것은 어렵다 판단하고는 다들 보란 듯이 짧게 하하 웃었다.

“아, 예. 좋습니다. 이야, 시골 인심 한번 대단하네! 그럼 앞으로 우리 일에 방해나 하지 마시든가!”

그리고는 문을 쾅 닫고 들어왔다. 그 기세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콜트가 집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도권을 빼앗겼다.

“댁들도 협조 안 할 거면 꺼져.”

이도 저도 아닌 태도로 구석으로 의자를 끌어다 앉은 콜트와는 달리 듈은 파울로에게 겁을 먹었으면서도 남았다.

“그…… 쥬드의 누나가 어떻게 되었는지 저도 걱정되기는 해서…….”

그런 걱정을 더 빨리했으면 좋았으련만. 미레아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린 여자애를 팔아 버리고 어쩜 저리들 뻔뻔하게 있을 수 있을까. 구역질 날 것 같았다.

“자, 그럼 어디서부터 사건에 접근해야 할까.”

파울로는 가장 의심스러운 것부터 짚었다.

“너희가 만났다는 데르카이드 말이다.”

“라우노 씨는 남자예요.”

“그럼 일단 그 사람은 관계가 없다 치고…….”

가능성 중 하나를 순식간에 배제하자 다시 벽에 부닥쳤다. 턱을 쓰다듬으며 골똘히 고민 중인 파울로에게 쿤둘렌이 의견을 냈다.

“저는 마수의 사체라는 걸 먼저 보고 싶군요.”

“하지만 마을 멀리 버려서…….”

“그건 괜찮습니다. 아직 남아 있을 수 있으니 안내해 주실 수 있을까요?”

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체를 갖다 버린 위치는 듈도 알고 있었다.

“그럼 이 꼬마 녀석은 어쩌죠? 일어났을 때 얌전히 있을 거란 보장이 없는데.”

아리스의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심란한 얼굴로 의식을 잃은 쥬드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옆을 지키고 있어야겠네.”

시오의 말에 아리스가 아까부터 걸리던 점을 지적했다.

“문제는 저 녀석이 단순한 데르카이드인 것이 아니란 말이지요. 상태가 좀 이상한데 원인을 모르겠단 말입니다. 미레아나 람을 공격한 이유가 황당한데, 사람을 잡아먹겠다는 게 말이 되나요? 어쨌든 아직 힘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고 반쯤 제정신이 아니라 제압할 수 있었지만 깨어나면 또 어떻게 변할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남을게요. 이놈을 제압할 수 있는 게 저밖에 없을 것 같으니 자원하죠.”

그 말에 미레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있잖아…….”

“별일 없을 테니 내 걱정은 하지 마.”

“아니. 죽이지 말라고. 네 걱정이 아니고, 쟤. 쟤 죽이지 마. 알았어?”

“예에…….”

머쓱해진 아리스의 목소리 끝이 살짝 갈라졌다.

“안 죽여.”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중상을 입히지도 말고.”

“노력해 볼게.”

“최대한 피해 없게. 알겠어?”

“대체 나를 뭐로 보길래 그래?”

아리스에게 두세 번 더 확답을 받아 낸 미레아가 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그럼 나머지 인원은 어떻게 나누죠? 저는 쿤둘렌을 따라갈래요.”

파울로의 의견으로 아리스의 옆에는 라일라와 시오가 남고 나머지 인원은 마수의 사체를 보러 가는 것으로 정해졌다. 듈은 밀짚모자를 쓰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서 집을 나섰다. 밖에 나가 보니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콜트의 집을 에워싸고 있었다.

“혹시 우리가 없는 사이 꿍꿍이라도 꾸몄다간 안에 남아 있는 무서운 녀석이 가만 안 있을 테니 그렇게 아세요.”

파울로의 엄포에 아리스는 다시 억울하다며 곡소리를 해 댔다.

* * *

마수의 사체가 되살아나 마을에 해를 끼칠까 봐 멀리 갖다 버렸다더니 정말로 멀리 버려서 차로 30분 이상은 달려야 했다.

듈이 처음 본 마수를 버린 쪽으로 먼저 가 보니 놀랍게도 마수의 사체는 재가 되기는커녕 썩지도 않고 있었다. 그것은 새하얀 깃털 같은 것이 전신에 돋아 있었고 한쪽 팔만 비정상적으로 발달했다. 얼굴도 엄청나게 못생겼는데 커다란 턱이 툭 튀어나오고 눈은 하얀 막이 씐 것처럼 탁했다.

듈과 다른 마을 사람들이 양을 잡아먹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배를 갈랐다더니 밖으로 튀어나온 내장도 잘 보존되어 있었다.

미레아가 여행 가는 기분으로 짐 속에 넣어 온 사진기는 이런 뜻밖의 상황에서 유용했다. 그녀는 자신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마수의 모습을 이모저모 사진기에 담았다. 혹시 몰라 기록을 남기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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