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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따라 종말까지-70화 (70/257)

70화.

쥬드와 쥬드의 삼촌인 콜트가 사는 집은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쿤둘렌은 매트리스가 푹 꺼진 침대에 쥬드를 뉘었다. 아리스는 쥬드에게 손수 자기가 상처 낸 부위에 지혈제를 뿌리고 붕대를 감아 주었다. 미레아가 겉옷을 벗어 쥬드에게 덮어 주었다. 그의 옷은 날개가 돋아날 때 터져 나가 상의가 너덜너덜해진 차였다. 아리스는 심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건 마을 사람들이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어딘가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뒤늦게 도착한 쥬드의 삼촌인 콜트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튀어나와 다짜고짜 아리스의 멱살을 잡았다.

“어린애에게 칼을 대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역시 악마와 한통속 아니야?”

평소 같으면 얌전히 잡혀 줄 성격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쥬드를 칼로 쑤신 건 그였기 때문에 조금 참아 주었다. 대신 심드렁하게 말했다.

“애를 찾았으니까 그냥 버리고 가면 안 되나?”

아리스는 시오와 미레아에게 번갈아 가면서 등을 맞았다.

“하지만 저 애가 먼저 공격을 한걸요.”

“저놈은 그냥 어린애인데 네놈들이 수작질 부린 거 아니야?! 어이, 거기 너! 뭐 하는 거야?”

혹시나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므로 마력 제어용 구속구를 쥬드의 양손에 채우고 있는 쿤둘렌에게 콜트가 성을 내었다. 그러든 말든 쿤둘렌은 특수 제작된 분필로 쥬드의 주변으로 마법진을 그려 넣고는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데르카이드면 이 정도로는 부족할 수도 있긴 합니다만…….”

쿤둘렌은 손에 묻은 분필 가루를 탁탁 털어 내며 자신이 그린 반마력 필드 형성 마법진을 점검했다. 아리스에게는 반마력 필드가 그다지 효과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쥬드에게도 먹힐지는 미지수였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쿤둘렌에게로 관심을 돌린 콜트를 떼어 낸 아리스는 붙잡혀 있던 옷을 탁탁 쳐서 주름을 폈다.

“이봐, 내 말 무시해?”

다른 사람들은 공포와 당황한 감정이 뒤섞여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콜트는 펄펄 날뛰기 시작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그건 저희가 묻고 싶습니다.”

파울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리스에게 대충 보고는 들었지만 그렇다고 상황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술 냄새를 풍기는 콜트에게 질문했다.

“혹시 쥬드가 데르카이드였나요?”

“그 대공자와 같은 악마 새끼 말하는 거야?”

일행들이 아리스의 눈치를 힐끔거리며 보았지만 그는 이제 이 정도 욕에는 동요하지 않았다.

“얘는 그냥 평범한 시골 어린애란 말이다! 그런 악마 새끼가 아니야.”

“혹시 어제 얘한테 이상한 점 없었어? 너 잘하는 거 있잖아. 마력의 흐름이 이상하다든가 그런 거.”

“어젠 아니었어요. 그냥 평범한 꼬마였는데요…… 어제까지만 해도 저한테 날개 달린 사람이 뭐냐고 묻던 애가 데르카이드인 건 이상하잖아요. 저도 이해 안 되는 거 투성이란 말입니다. 이 녀석이 데르카이드인 건 둘째 치고 의지가 폭주하고 있지 않나…….”

미레아가 끼어들며 물었다.

“네가 아까 말했던 의지에 먹힌다는 말?”

“그래, 그거.”

“저놈은 나를 먹겠다 그러던데.”

“그건 꼭 마수 같네.”

“하는 짓만 보면 정말로 악마가 들린 것 같긴 하다.”

미레아가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쥬드의 말로는 누나가 있었다는데.”

파울로의 말에 콜트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악마에게 제물로 바쳤다고.”

“그, 그년은 야반도주를 한 거야!”

“왜죠? 야반도주라도 할 이유라도 있었나요? 어제 쥬드가 저에게는 사람들이 누나는 외지로 돈을 벌러 갔다고 그랬다죠, 아마? 왜 말이 다를까요?”

미레아가 따지고 들자 콜트는 말문이 막혔다. 자신의 말실수로 마을 사람들의 암묵적인 합의를 깰까 봐 초조해졌다.

“쥬드의 말에 따르면 누나의 등에 날개가 돋아난 것을 보았다는데 혹시 우리에게 더 할 말이 있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년은……!”

“애초에 당신들이 말하는 악마는 뭐야?”

파울로가 위압적인 얼굴을 콜트에게 불쑥 들이대자 콜트는 대답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창을 통해 구경하고 있던 마을 사람들도 말을 꺼내기 주저하고 있는데 시오가 지친 얼굴로 파울로에게 말했다.

“대장, 여기서 더 들어 주면 우리는 꼼짝없이 이 마을 일에 개입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니, 그럴 필요 없다 해도 대장은 개입할 거잖아요. 그래도 들을 거예요?”

“들어 보고 이 지역 치안대에 넘길 수 있는 사건이면 넘길 거야.”

하지만 문제는 치안대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는 규모일 때는 어찌할 것인지였다. 시오는 파울로를 잘 알았고 이 일을 다른 곳에 떠밀어 버릴 성격은 못되었다. 하지만 그건 이 자리에 있는 일행들 대부분이 비슷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일에 가장 큰 관심이 있는 것은 놀랍게도 애를 버리고 가자고 툴툴거리던 아리스였다. 그도 그럴 게 클라인은 마라피네스 대공이 다스리던 공작령이었고, 아리스 역시 영지 운영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부재중이던 5년 동안 클라인 지역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소용없어요. 치안대도 포기한 사건이에요. 악마는 몇 달 전에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창틀에 기대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말문을 열었다. 그의 옆에 있던 사람들이 그의 입을 틀어막으려 그랬다. 남자는 다른 사람들의 방해에 성을 내었다.

“저 사람들이 쥬드를 막는 걸 봤잖아! 틀림없이 악마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남자는 외벽을 돌아 콜트의 집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파울로는 남자를 방해하기 위해 뒤따라오던 마을 사람들을 강제로 내몰고 현관문을 쾅 닫았다.

“누구 마음대로 들어오래?”

삿대질하는 콜트에게 파울로가 눈을 세모꼴로 떴다.

“우리에게 그딴 식으로 비협조적으로 굴면 그쪽도 내쫓겠습니다.”

“아…… 아니, 여기는 우리 집인데…….”

콜트가 어물어물 물러나자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듈입니다. 이 마을에서 양을 치며 살고 있지요.”

그는 쓰고 있던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벗어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사건은 양이 없어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듈에게 의자를 하나 내주었다. 의자에 앉은 듈은 소맷자락으로 땀을 훔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그게…… 한 마리면 무리를 이탈해 낙오되었거니 했을 텐데 며칠 간격으로 연달아 없어지는 겁니다. 당연히 사라진 양들을 찾아다녔습니다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습니다. 결국, 사라진 양의 수가 두 자릿수가 되었을 때 문제의 심각성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도 그럴 게 이 근방은 마수가 있었으면 있었지 늑대같이 양을 해칠 만한 육식동물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마수의 소행으로 생각해서 마을 사람들을 모으고 경비를 섰습니다. 그런데…….”

듈은 잠시 당시를 회상하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어지는 듈의 이야기는 이랬다.

사람들이 경비를 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양이 또 사라졌다. 이번에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평소에 양들이 오가던 길을 훨씬 벗어나 광범위한 지역을 수색했다. 그러다 외진 곳에서 마수의 사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잠깐, 좀 이상한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리스가 끼어들었다.

“마수의 사체? 핵이 파괴된 마수는 죽으면 재가 되어 사라져서 사체를 남기지 않는데요.”

“그건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마수는 흔하게 나오니까요. 이 마을에는 마수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구성된 자경대도 있고요. 다들 마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이상하다 생각하긴 했습죠. 그런데 생긴 건 영락없는 마수였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생김새가 아니었단 점이었죠.”

파울로는 일단 이야기를 더 해 보라 말했다.

그들이 발견한 마수의 사체는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성인 남성의 덩치 정도 되었다. 마수는 핵이 파괴되지 않는 한 재생을 하므로 사람들은 마수의 사체에서 핵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점은 마수에게 뇌간에 있을 핵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수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특징이 마수와 일치했다.

새하얀 털로 뒤덮인 몸뚱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게 일그러진 외양 같은 것들이 말이다. 핵은 찾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마수의 위장에 양의 뼈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찝찝한 기분으로 그 사체를 마을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버리고 왔다. 어쨌든 양이 사라진 원인이 그 마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으니 소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며칠 잠잠하다 싶더니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양은 또 사라졌다. 듈과 사람들은 마수에게 양이 공격당했다면 머지않아 사람들을 공격해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한동안 자경단의 경비를 강화하고 항상 짝을 지어 다녔다.

어느 날은 무언가에 공격당하는 중인 양의 울음소리를 듣고 때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자경단이 달려갔다. 그들이 본 것은 머리를 처박고 양을 허겁지겁 뜯어먹고 있는 마수였다.

그 괴물은 머리는 이상하게 작았고 어깨와 팔이 기형적으로 컸다. 짧은 다리는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게 전부였다. 그 마수는 전에 봤던 마수의 사체와 비슷한 덩치였다. 사람들이 낸 인기척에 마수는 썩은 생선 눈깔 같은 눈동자를 굴려 사람들을 올려다보았다.

자경단원들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말이 자경단이지 그들은 훈련받은 병사도 아니었고 낡은 엽총 몇 자루 이외에 제대로 된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역할은 마수를 죽이는 것보다는 마수에게서 도망갈 시간을 버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마수는 덩치가 사람보다 좀 큰 정도다 보니 그래도 덤벼 볼 만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용기를 끌어 모아 엽총을 겨눴고 마수는 그들을 적으로 인식했는지 먹고 있던 양을 옆으로 치워 버리고 두 다리로 일어났다. 듈과 자경단원들이 긴장하여 엽총을 고쳐 들었는데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마수가 돌연 뒤로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몇 번 꿈틀거리더니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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