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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따라 종말까지-69화 (69/257)

69화.

날개가 돋아난 자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미레아는 당황한 나머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것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쥬드가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지르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쥬드에게 다가갔다.

“쥬드, 괜찮니? 정신 좀 차려 봐!”

미레아가 몸을 두드리자 쥬드가 눈물을 머금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쥬드는 자신이 무슨 상태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아파…….”

“많이 아파? 잠깐 기다려 봐. 내가 상황을 좀…….”

쥬드가 별안간 미레아의 한쪽 팔을 양손으로 꽉 붙잡았다.

“먹을 거야…… 먹게 해 줘…… 먹으면 괜찮아질 것 같단 말이야. 먹을래. 먹을래. 먹을래!”

그러면서 입을 쩍 벌리고 미레아의 팔을 물려 했다.

서걱.

살이 베이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미레아의 살은 아니었다. 미레아를 잡고 있던 쥬드의 왼팔에 장검이 꽂혀 있었다. 미레아는 검의 형태를 보고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다.

어느새 그녀의 옆에 온 장검의 주인은 쥬드의 팔에서 검을 빼내더니 쥬드를 발로 걷어차 뒤로 나뒹굴게 했다. 쥬드는 검에 찔린 팔에서 피를 흩뿌리며 괴성을 질렀다. 미레아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살기를 풀풀 풍기는 상태로 검 끝을 바닥에 끌며 쥬드에게 다가가는 아리스의 모습에 퍼뜩 정신 차렸다.

“하지 마!”

미레아가 자신의 몸에 매달리자 아리스는 황당하단 얼굴이었다. 그는 장검 끝으로 쥬드를 가리켰다.

“하지 말라니? 저놈 상태 안 보여?!”

“아직 어린애야! 공격하지 마!”

쥬드의 비명은 점점 커졌다.

“아파! 아프다고! 아악!”

아이가 뒹굴 때마다 등에 돋아난 하얀 날개가 푸드덕거렸다. 쥬드의 주변에는 스파크가 일었다 가라앉고 진정될 만하면 다시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아리스는 미레아의 팔을 잡고 뒤로 뺐다.

“너야말로 다가가지 마. 내가 봤을 땐 의지에 먹히기 일보 직전인 것 같으니까.”

“의지에 먹혀? 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미레아의 물음에 답할 새도 없이 쥬드의 마력이 한 번 더 폭발하듯 방출됐다. 아리스가 자신의 마력으로 상쇄시키긴 했지만, 흙먼지 때문에 시야가 흐려진 사이 쥬드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것을 인지하자마자 아리스는 미레아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미레아 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리스는 침착하게 마력의 흐름을 읽었다. 하지만 워낙 큰 마력이 방출된 터라 마력들이 어지럽게 흘러갔다. 이 상태로는 상대방이 마법을 쓴다 해도 흐름을 읽기 힘들었다. 하지만 멀어지는 마력을 잡아내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마을 쪽으로 간다!”

아리스는 미레아에게 방향을 손으로 지시함과 동시에 고글을 내려 쓰고 날개를 꺼냈다.

“날지 마! 내가 쫓아갈 수 있어!”

미레아는 뒤꿈치를 통통 굴러 부츠의 마법을 작동시켰다.

“네 날개를 보면 마을 사람들이 흥분할 것 같단 말이야! 그러니까 마법 쓰지 마!”

그러면서 먼저 달려 나갔다. 아리스는 날개를 접어 없애고는 미레아의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쥬드가 아니고 너를 못 쫓아간다고! 미레아 너 혼자서 또 뭔가 하겠다고 나서지 마! 적당히 시간 끌면서 지원을 기다리란 말이야! 내 말 알아들었어? 야!”

* * *

파네는 라일라와 리비엘로가 사용했던 방을 정리하고 정원에서 기르던 허브들을 돌보고 있다가 뒷문에서 인기척이 나서 굽혔던 허리를 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파네는 자신의 뒷문으로 침입한 사람이 도둑일 거라는 의심은 하지 않았다. 집 벽을 돌아 나온 것은 쥬드였다.

“응? 쥬드 너 지금까지 어디 갔다가 이제 오니? 다들 걱정하면서 찾았잖니.”

파네는 아침에 작은 소동을 일으킨 쥬드에게 한소리 하려는데 그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자 저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검에 찔린 왼팔은 제대로 지혈이 되지 않아 팔을 타고 피가 뚝뚝 떨어졌다. 입고 있던 상의는 뜯겨 나갔고 그의 등 뒤에는 새하얀 날개가 돋아 있었다.

“너, 너…… 대, 대체 무슨 일이니?”

파네가 더듬거리며 묻자 쥬드가 씩 웃었다.

“파네 아줌마, 아줌마도 맛있어 보여요.”

무언가 기색이 이상했다. 하지만 파네에게 있는 건 허브를 돌볼 때나 쓰던 작은 모종삽이 전부였다. 쥬드가 어린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잽싸게 달려들었다.

“악마다! 쥬드가 악마에 씌웠다!”

도망치려다 등을 잡힌 파네가 비명을 질렀다. 쥬드가 파네를 향해 단검을 높이 치켜들었을 때 총성이 울렸다. 쥬드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그가 들고 있던 단검이 저 멀리 날아갔다. 하마터면 쥬드나 파네가 맞을 수 있었지만 단검이 파네의 급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쥬드.”

단검을 떨어트린 쥬드는 사나운 얼굴로 자신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는 미레아를 노려보았다. 마치 식사를 방해받은 맹수의 얼굴이었다.

“방해하지 마! 배가 고프단 말이야! 먹을 거야! 누나는 못 먹게 했으니까 다른 사람이라도 먹을 거야!”

그러자 알 수 없는 힘이 미레아를 뒤로 힘껏 떠밀었다. 몸을 굴린 덕분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동그라지는 것은 면했지만 그사이 쥬드는 파네에게 달려들려 했다. 미레아는 다시 권총을 쏘았다. 급소를 맞추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쥬드가 다치지 않게 아슬아슬한 견제 사격을 하려니 연사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쥬드가 총을 경계하며 주춤거리는 동안 시간을 벌었다. 미레아는 멍한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파네에게 외쳤다.

“아주머니, 도망치세요!”

그 외침에 파네는 딸꾹질이 나오는 입을 틀어막고 다리를 움직였다. 미레아는 재빨리 쥬드와 파네의 사이에 섰다. 쥬드는 미레아가 있는 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긴 글렀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쥬드의 입에서 사람의 말도 짐승의 것도 아닌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미레아를 상대로 어떡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 사이 미레아는 권총의 탄창을 갈았다.

“아무 짓도 하지 마.”

“누나야 말로 저리 가!”

쥬드가 신경질을 부리자 그의 몸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비유가 아니고 정말로 뜨거운 불길이 미레아를 덮쳤다. 다른 물리적인 공격은 어느 정도 간격만 두고 피하면 그만이었는데 쥬드가 만들어 낸 불은 달랐다. 근처에만 가도 뼈까지 태워 버릴 정도로 강한 열기였다.

미레아는 노출된 피부가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최대한 뒤로 물러났다. 정도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확실히 쥬드의 마법은 성가셨다. 불이 나무와 건물 여기저기 옮겨 붙었고 불을 직접 맞은 곳은 흙과 나무가 시커멓게 탔다. 불길이 미레아의 퇴로를 차단한 것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레아는 혀를 찼다.

“쿤둘렌! 어디 있어요?!”

미레아는 비어 있는 손으로 통신기를 작동시켰다. 그러는 동안 권총으로 쥬드를 견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누가 지원해 주지 않으면 제가 지금 통구이가 될 것 같거든요!”

“여기 있습니다, 미레아 군.”

대답은 통신기가 아니고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차가운 기운을 품은 강한 회오리바람이 미레아의 주변을 훑고 지나가며 불을 껐다. 쿤둘렌이 미레아의 옆에 섰다. 그는 놀란 얼굴로 쥬드와 미레아를 번갈아 보았다.

“저 아이는 데르카이드입니까?”

“그런가 봐요.”

“아리스 군은 그런 말이 없었잖습니까?”

“걔도 몰랐나 봐요. 다른 사람들은 어쩌고 혼자 왔어요?”

“다들 뒤따라오고 있습니다.”

단순한 달리기로 치면 덩치가 제일 큰 쿤둘렌이 미레아 다음으로 빨랐다. 미레아는 잠시 생긴 짬에 물었다.

“리비엘로 못 봤어요?”

“아마 파울로 대장이랑 합류해서 같이 있을 겁니다. 저에게 통신기로 귀띔해 준 게 리비엘로 군이거든요.”

“하…… 다행이다…….”

쿤둘렌이 만들어 낸 회오리바람이 불을 거의 다 끄자 쥬드는 당황한 듯했다.

“저, 저리 가!”

쥬드가 다시 불을 뿜어냈다. 아까보다 거센 불길이었고 그것은 쿤둘렌의 회오리에 맞서 거대한 불기둥을 만들어 내었다.

“허, 참. 데르카이드란.”

불을 끄면 다시 무작정 내뿜는 탓에 쿤둘렌은 혀를 끌끌 찼다. 아무래도 미레아와 쿤둘렌에게 방해를 받으면 받을수록 악에 받쳐 마법의 정도가 더 거세지는 것 같았다. 근접전을 벌이자니 불길 때문에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원거리로 저격하자니 방법이 너무 과격했다. 여기서 더 자극해 봤자 불길만 더 커질 뿐이었다.

불에 나무가 타는 소리 너머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네가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미레아와 쥬드가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손에 무기가 될 만한 곡괭이나 도끼 같은 것들을 들고 있었다.

“환장하겠네.”

지금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많아 봤자 도움 되는 일이 없었다. 쥬드가 노리는 것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미레아가 몰려든 마을 사람들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예상대로 쥬드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는 미레아와 쿤둘렌의 눈치를 보더니 몸을 돌리려 그랬다.

사람들이 머리 위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을 지칭하기엔 빗방울이란 표현은 귀여웠다. 공중에서 생겨난 파도가 무너져 내리며 땅을 적시며 불을 껐고 쥬드 역시 물에 젖었다. 그가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쩌적 하며 울리는 소리와 함께 물이 닿은 것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연달아 사용된 마법은 시차라는 게 거의 없을 정도로 줄지어 몰아쳤다. 이만큼 대량의 마력을 사용하는 마법 두 가지의 연계 능력을 갖춘 사람은 누군지 안 봐도 뻔했다. 쿤둘렌은 또 혀를 끌끌 차며 감탄했다.

“허, 참. 데르카이드란.”

몸에 붙은 얼음을 떼어 내는데 정신이 팔린 쥬드 앞에 파울로가 와 있었다. 그리고 쥬드가 그를 인지하기도 전에 복부에 검 손잡이 끝이 꽂혔다.

“후…….”

파울로는 정신을 잃고 고꾸라지는 쥬드를 한쪽 팔에 안아 들고 땀을 훔쳤다. 쥬드의 등 뒤에서 흰 날개가 파스스 흩어지며 사라졌다. 아리스는 뒤따라온 시오를 대동하고 평온한 태도로 저벅저벅 걸어와서 미레아와 쿤둘렌의 옆에 섰다.

파울로는 쥬드를 땅에 반듯하게 눕혔다. 기절해서 숨을 색색 내쉬는 쥬드는 평범한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는 얼굴이었다.

“얜 대체 뭐지?”

미레아의 일행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사태를 파악하려 애쓰는 동안 마을 사람들 역시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다.

“악마야…… 악마들이 쥬드를 악마로 만든 거야!”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그렇게 외치자 시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또 시작이네.”

“그 악마가 공격한 건 이쪽이거든요!”

미레아의 일갈에 마을 사람들은 반박할 수 없었다. 그들은 쥬드를 어떡할지 의논해야 했다.

“이 중에 이 아이의 집으로 안내해 주실 분 계신가요?”

파울로가 마을 사람들을 향해 묻자 누군가가 머뭇거리며 나섰다. 쿤둘렌은 쥬드를 업고 마을 사람의 안내에 따라 걸었다. 마을 사람들은 호기심이 동해 웅성거리면서 그들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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