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를 따라 종말까지-68화 (68/257)

68화.

“설마 여기로 들어간 건 아니겠지…….”

“하지만 다른 곳을 다 살폈는데도 없는 거면 여기밖에 없잖아.”

미레아가 불안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시체…… 치우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발걸음은 라우노가 말했던 지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설마 들어갈 생각이야?”

리비엘로의 질문에 미레아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혼자는 몰라도 너를 달고 들어갈 수는 없지.”

“너 혼자도 위험하거든? 차라리 내 신성력으로 보호를 받는 쪽이 좋지 않겠어?”

“그것도 너를 제대로 엄호해 줄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최소 셋은 있어야 해.”

“다른 팀이랑 합류해.”

리비엘로와 의견을 나누며 고민하던 미레아가 다른 팀에게 연락하려고 통신기를 꺼내 들려던 차였다. 리비엘로가 미레아를 툭툭 치며 한 곳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 끝, 멀리서 숲의 경계부에 있는 나무 옆에 서 있는 작은 인영이 보였다.

미레아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보니 쥬드였다. 그는 어젯밤 모습 그대로였다. 머리에 나뭇잎을 잔뜩 달고 있는 것까지 변하지 않았다.

“저기, 쥬드니?”

미레아가 말을 걸자 쥬드는 대답 없이 눈동자만 움직여 미레아를 바라보았다. 길을 잃어버린 어린아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평온한 태도였다. 리비엘로가 미레아를 대신해 통신기로 파울로에게 연락했다.

“파울로 대장님? 지금 쥬드를 찾은 것 같은데요. 네, 일단 다친 곳은 없어 보여요.”

미레아는 무릎을 굽혀 쥬드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너 여기서 뭐 하니?”

“…….”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데도 쥬드는 대답이 없었다. 미레아는 아직도 자신과 일행을 무서워하는 게 아닌가 싶어 최대한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다들 너를 찾고 있었어. 혹시 집에 가는 길을 잃어버렸니? 도와줄까?”

쥬드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미레아와 눈이 마주쳤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딘가 공허해 보이는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를 본 미레아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레아가 몸을 뒤로 빼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섬광이 스치고 지나갔다. 쥬드의 손에는 군용 단검이 들려 있었는데 그것을 횡으로 베었다. 미레아는 무릎을 굽히고 있던 터라 뒤로 넘어지지 않게 텀블링을 돌며 쥬드에게서 떨어졌다.

자세를 재정비한 미레아는 한 손은 검 손잡이 위로, 다른 한 손은 리비엘로가 있는 곳을 막으며 그녀를 자신의 몸 뒤로 숨겼다. 그리고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게 평온을 가장한 태도로 말을 걸었다.

“쥬드?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단검을 내려놓지 않겠니? 네가 진정하지 않으면 우리가 너를 도울 수 없어.”

하지만 쥬드는 실망한 얼굴로 단검을 내려다보더니 기이할 정도로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도와주고 싶어?”

미레아와 리비엘로의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미레아는 잘 단련된 직감 덕분이었고 리비엘로는 예지 능력이 알려 주는 불길함 덕분이었다. 미레아가 뒤에 있는 리비엘로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리비, 내가 신호하면 뛰어.”

리비엘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리비엘로는 미레아에게 짐이 될 것이다. 그건 두 사람 다 잘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을 지키면서 싸우는 것과 제 몸만 지키면서 싸우는 것 중 당연히 후자 쪽이 더 쉬웠다.

그러면 한쪽은 안전하게 피신시킨 다음에 대응하는 것이 둘 다 무사히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상황 중 리비엘로가 인질로 잡히는 것이 가장 안 좋은 상황이었다.

리비엘로는 자신이 잘 뛰든 아니든 미레아가 쥬드에게서 자신이 도망갈 동안 그녀를 안전하게 지킬 것이라 믿었다.

그래…… 미레아 본인이 어찌 되든 말이다. 리비엘로는 뛸 준비를 하며 미레아에게 말했다.

“다른 일행이 올 때까지 버텨.”

“걱정하지 마.”

미레아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지금.”

리비엘로가 달리는 기척을 느낀 것과 동시에 쥬드가 리비엘로를 향해 단검을 던졌고 미레아가 검을 뽑아 그것을 쳐 냈다. 그 덕에 한눈을 판 사이 쥬드는 어느새 미레아의 등 뒤에 와 있었다. 평범한 인간의 이동이 아니었다. 무언가의 개입이 있어 신체 활동을 극한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것이 분명했다.

미레아가 마도 기구가 부착된 부츠를 이용하는 것이나 쿤둘렌이 마법으로 근육을 강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면 저것이 쥬드가 아니거나. 하지만 정황이 어찌 되었든 지금은 다짜고짜 공격해 오는 쥬드를 막는 게 우선이었다.

쥬드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미레아의 목을 움켜쥐려 했다. 습관적으로 검이 먼저 나가려는 것을 미레아는 자신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사정을 들어 보지도 않고 어린아이의 여린 팔을 잘라 낼 수는 없었다. 대신 미레아는 옆으로 굴러 리비엘로가 달아난 쪽을 등지고 섰다.

“나는 저 누나가 더 좋았는데.”

쥬드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떤 이유로 리비엘로가 더 좋다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미레아는 아이의 시선을 끌어야 했다.

“나랑 놀면 안 될까?”

옆쪽에서 공기를 가르고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이 느껴져 눈보다는 검을 든 손이 먼저 움직였다. 검날에 금속이 맞고 튕겨 나가는 소리가 들린 것과 동시에 뺨에 가벼운 통증이 있었다. 아까 쳐 냈던 단검이 홀로 날아오다 검날에 막혀 급소는 피했지만 튕겨 나가면서 미레아의 뺨에 옅은 자상을 남긴 것이었다. 천만다행으로 긁힌 정도에 그쳤어도 미레아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날아온 기습에 당황했다.

단검이 어떻게 홀로……? 호선을 그리며 땅에 떨어지려던 단검은 공중에서 우뚝 멈추더니 허공을 휭 날아가 쥬드의 손안에 떨어졌다. 미레아는 황당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법?”

마법사들은 제법 오래 심도 있는 교육을 받아야 그나마 자유롭게 마법을 쓸 수 있다. 그마저도 의지 증폭기 역할을 해 주는 보조 기구가 있어야 했다. 가령, 마석이라든가. 그런데 고작 7살짜리가 마법을? 세기의 마법 천제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했다. 예외가 있다면…….

“너 데르카이드니?”

미레아의 물음에 쥬드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어제도 누나랑 형이 그런 말을 했었지. 데르카이드가 뭐야? 난 그게 뭔지 몰라.”

“음…….”

아이의 반문에 미레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천진한 모습을 보니 자신을 떠보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어제 말한 대로 날개 달린 사람을 데르카이드라 그래. 그리고 마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지.”

“그렇구나.”

미레아는 눈으로 아이의 겉모습을 훑으며 마석이나 다른 마도구 장치가 없는지 살폈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없었다.

“……단검을 움직인 건 마법이지?”

“몰라. 그냥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인 것뿐이야. 봐 봐.”

쥬드는 그렇게 말하며 단검을 허공에 띄웠다. 공중에 뜬 단검은 제자리에서 혼자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았다.

“신기하지?”

“누가 너에게 그런 걸 알려 줬니?”

“음…… 어떤 누나가.”

미레아의 말에 대답하던 쥬드는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생각하고 하겠단 의지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될 거래.”

아이의 말투에서 미레아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어제 본 아이 특유의 천진난만하던 목소리와는 달리 권태로워 보이는 어조였다.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미레아에게 협조할 생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아이를 앉혀 두고 질문만 퍼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레아는 한 번 더 쥬드를 설득해 보기로 했다.

“마을로 돌아가자. 사람들이 너를 찾고 있어. 네 삼촌도 걱정 중이셔.”

“삼촌?”

아이가 돌연 깔깔거리며 웃었다.

“삼촌은 나를 걱정하지 않아. 그저 자기 대신 일을 할 사람이 없으니 그게 아쉬운 거겠지. 그 사람은 예전부터 그랬어.”

“그래도 여기는 위험해. 이 근방에는 마수가 나오지 않니?”

“그런데 누나. 나는 그런 것보다 누나를 먹고 싶어.”

미레아는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원래 신성력이 강한 쪽 누나를 먹어 보고 싶었는데, 도망갔으니 별수 있나. 그러니 대신이지만 누나를 먹을래.”

쥬드는 입술을 끌어 올려 웃음 비슷한 표정을 만들어 내었다.

“누나도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맛있을 것 같으니까.”

쥬드가 장난처럼 공중에 띄워 놓았던 단검은 어느새 그의 손에 떨어져 있었다. 쥬드는 단검을 쥐고 미레아에게 달려들었다. 쥬드는 검을 정식으로 익힌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마구잡이로 휘두를 뿐.

하지만 7살짜리 어린애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데다 힘도 셌다. 그래도 단검과 장검, 그리고 아이의 신장과 성인의 신장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미레아는 어렵지 않게 쥬드의 손에서 단검을 떨어트리는 데 성공했다. 단검을 자신의 손으로 넘겨받고 반대편 손으로는 쥬드의 관절을 꺾고 몸을 바닥에 처박았다.

“자, 우리 진정하고 말로 하자.”

미레아가 자신의 몸에 올라타 힘으로 찍어 누르며 살벌한 목소리로 말하자 쥬드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싫어! 싫어어!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먹을래! 먹을래애!”

소리를 지르든 말든 미레아가 허리춤 주머니에 수납돼 있던 구속구를 찾아 쥬드의 팔에 채우려는데 쥬드의 몸 주변에서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미레아는 이것이 무엇의 전조 증상인지 알았다. 체내의 마력을 급격하게 끌어 올릴 때 주변에 존재하는 영소와 끌어 올린 마력이 서로 반발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아리스가 마법을 쓸 때 많이 봤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미레아는 뒤로 나가떨어졌다.

“내 몸에 손대지 마!”

“너!”

미레아는 입을 떡 벌리고 쥬드를 바라보았다. 쥬드의 등 뒤에는 한 쌍의 하얀 날개가 돋아 있었다. 쥬드는 양손으로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는 바닥을 굴렀다.

“등! 등이 아파! 아악!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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