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저희는 수상한 짓 안 했는데요?”
미레아의 항변에 파울로는 검지를 입 앞에 세웠다.
“당연히 납치라든가 하는 이상한 짓이야 안 했겠지만 들고 일어날 게 뻔하잖아. 왜 하필이면 너희야?”
“마을을 잘못 골랐어.”
시오가 툴툴거렸다.
“다들 좋은 아…… 분위기가 왜 이래?”
라일라가 뒤에는 리비엘로를 데리고 상쾌한 얼굴로 다가오다 일행들이 서서 쑥덕거리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
“무슨 일 있어?”
“너야말로 몸은 괜찮아?”
미레아는 리비엘로의 눈을 피하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응. 하루 정도 앓았더니 이제 개운해. 멀쩡하다고.”
라일라는 사람들에게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리비엘로는 말없이 자기 그릇과 숟가락을 챙겨 스튜를 떠 담고 빈자리에 앉았다. 리비엘로가 호로록거리며 스튜를 먹는 와중에 쿤둘렌이 의견을 내었다.
“라일라 군이 괜찮은 것 같으니 만약에 떠날 거면 오늘 떠나도록 하죠.”
“어? 떠나요? 이 마을에서 며칠 더 쉬는 게 아니었나요?”
관련된 이야기를 전혀 들은 바 없는 라일라가 어리둥절하게 묻자 미레아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쥬드를 찾을 때까지만 여기 있으면 안 될까요?”
그리고 어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니, 이대로 나 몰라라 하고 떠나면 정말로 뭔가 죄짓고 도망가는 것 같은 모양새잖아요. 그리고 정말 무슨 일이 있어서 없어진 거면 어떡해요. 아직 어린애던데.”
“우리가 그것까지 신경 쓸 상황은 아니야.”
파울로의 말에 아리스는 조금 생각하는 것 같더니 리비엘로에게 간신히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추론기인가 뭔가 하는 거 말인데…….”
“다발성 의지 유속 통합 추론기.”
“그래, 그거.”
아리스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걸로 미레아에게 했던 것처럼 실종된 사람을 찾을 수 있지 않아?”
리비엘로는 아직 내용물이 남은 그릇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는 더 말해 보라는 얼굴로 아리스를 올려보았다. 아리스는 뒤늦게 나타난 리비엘로에게 미레아가 아침부터 봉변당한 내용을 알려 주었다.
“일단, 어제 미레아를 찾을 때처럼 과거를 역산하는 것은 불가능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없어졌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인 거잖아. 그런 상태에서 한다면 정확도가 한 자릿수도 안 나와.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것인지 대상이 없는 한 예지를 하는 것도 불가능해. 난 그 쥬드란 아이를 만난 적이 없어서 그 애의 의지 유속을 전혀 모르는 상태잖아.”
그러면서 뭔가 장황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아리스는 반쯤은 건성으로 들으며 간략하게 축약했다.
“그래서 네 예지의 힘으로는 못 찾는다 이거지?”
“맞아.”
수단 중 하나를 빠르게 포기한 아리스가 리비엘로를 떠나 파울로 곁으로 가서 말했다.
“사실 어제 그 꼬마가 했던 말도 마음에 걸려요.”
아리스가 어젯밤에 쥬드와 했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어린애가 헛소리하는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고는 또 묘하게 구체적이로군요…….”
시오와 쿤둘렌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파울로가 입을 열었다.
“그냥 포기해, 아리스. 어디 근처에 있겠지.”
그 말에 미레아가 반발했다.
“그럼 이러고 그냥 가자고요?”
쿤둘렌이 시간을 가늠해 보고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었다.
“이렇게 하죠. 아직 아침이니 몇 시간 정도는 시간을 할애해서 찾아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오후 3시까지 쥬드를 한번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 3시에 출발한다면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다음 마을에 도착하거나 노숙해도 괜찮은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찬성합니다.”
“저도 찬성이요.”
미레아와 시오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라일라도 덩달아 맞장구를 쳤다.
“애가 없어졌다는데 도와줘도 괜찮잖아요.”
파울로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리비엘로에게 시선을 던졌다. 스튜를 깨끗하게 긁어 먹은 그릇을 정리하며 리비엘로가 생긋 웃었다.
“대장님, 이건 다른 사람들의 고집을 꺾기 힘들 거예요.”
“하…….”
파울로는 마른세수를 하였다. 현재 시각이 오전 9시이니 오후 3시까지 6시간이 남아 있는 차였다. 라슈발렌의 정예 요원 팀이 어린애의 흔적을 추적하기엔 6시간은 그렇게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대신 3시 정각에 출발하기다.”
파울로의 말에 사람들은 재빨리 스튜를 한 국자씩 떠서 후루룩 한입에 마셨다. 아무리 그래도 밥은 먹고 움직여야 하지 않겠는가.
* * *
리비엘로에게 예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건만 그 능력을 써먹을 수는 없었다. 전날 설명한 대로 아무 때나 발휘하는 능력이 아니었고 발작적으로 찾아오는 능력은 리비엘로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 휴식이 필요한 라일라를 제외한 기동 대원들은 둘씩 짝지어 흩어졌다. 어쩌다 보니 미레아와 리비엘로가 같은 팀이었고 아리스와 파울로가 한 팀, 쿤둘렌과 시오가 한 팀이었다.
미레아는 내심 아리스 아니면 시오와 팀을 바꾸고 싶어 했지만, 팀 구성에 이의를 제기하면 리비엘로를 거북해해 피하는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에 입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파울로는 그것까지 계산하고 미레아를 리비엘로와 짝지어 준 것이었지만 말이다.
미레아가 아침부터 너무나도 티가 나게 리비엘로를 어색해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두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그래서 파울로는 일부러 그 둘을 묶어 주었다. 앞으로 함께 할 일이 많은데 미레아와 리비엘로가 이대로 어색한 관계가 되면 곤란했다. 이참에 서로 기분 풀라는 의미였다.
기동 대원들은 아리스가 마지막으로 쥬드를 목격했던 곳에서 세 갈래로 흩어졌다. 아리스와 파울로가 맡은 쪽은 개울 상류 지역이었다. 개울을 따라 걷던 중 파울로가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우리 중 네가 가장 냉정하게 나올 줄 알았다.”
파울로의 말에 아리스가 억울하단 얼굴을 했다.
“대체 저를 뭐로 보고 그래요?”
“그야…… 넌 단호한 면이 있잖아. 좀 가차 없다 싶을 때도 많고.”
아리스가 한숨을 쉬었다.
“이유가 있을 때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쥬드는 어린애잖아요. 애가 뭘 알겠어요. 단순히 길을 잃어버린 거면 빨리 찾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우리에겐 시간적 여유도 있으니 도울 수 있는데 나 몰라라 버리고 갈 순 없다고요.”
“흠…….”
“게다가 제가 이래 봬도 착실하게 협력하고 있단 말이에요. 모든 지적 생명체들에게 평등한 평화를. 그게 라슈발렌 협회 설립 이념이잖아요. 그런 의미의 연장선인 거죠.”
“말은 잘한다. 아무튼, 꼬맹이를 빨리 찾기라도 해야 여기서 두 다리 뻗고 맘 놓고 쉴지, 아니면 줄행랑칠지 결정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설마 정말로 악마가 납치해 갔겠어요?”
그러면서 아리스는 하하 웃었다.
* * *
숲 쪽 지역의 수색을 맡은 미레아는 리비엘로와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고 걸었다. 그러다 리비엘로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바닥을 살폈다. 아이의 흔적을 찾는 과정에서 사실상 리비엘로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은 없었다. 그녀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아 관련된 지식이 거의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 지역에 마수는 안 나오나 보다. 전부 산짐승들이 지나다닌 흔적만 있네.”
미레아가 중얼거리며 동물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소거해 나가는 작업을 했다.
“커다란 날개를 가진 악마가 아이를 정말 납치해 갔다면…… 이런 곳에 발자국이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늘로 잡아채 갔겠지.”
“앗, 그 생각을 못 했네!”
미레아는 자신의 이마를 쳤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래도 커다란 날개를 가진 악마라니. 아무래도 정보의 출처가 출처이니만큼 신뢰도가 없잖아. 애초에 정말 악마한테 납치당했단 근거도 없고. 단순하게 길을 잃어버린 걸 수도 있으니까 흔적이 남아 있는지 더 보자. 이쪽은 얼추 훑었으니 이번엔 저쪽에서부터……!”
혼자 북 치고 기타 치며 결론 내린 미레아 옆에서 리비엘로는 작게 쿡쿡 웃었다. 그 모습에 미레아가 다시 리비엘로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기 시작했다.
“왜…… 왜? 왜 웃어?”
“으응, 아니야. 하던 일 계속해.”
하지만 리비엘로를 오래 보고 지낸 미레아는 알았다. 저 표정은 뭔가 흐뭇한 일이 있을 때 나오는 얼굴이었다.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
그 말에 미레아는 작게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이를 찾는 일에 열중하다 보니 리비엘로에게 어색하게 굴었던 것도 잊고 있었다. 미레아는 뭐라고 한마디 할까 하다 다시 입을 다물고 수색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쥬드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지만 자신의 목소리 외 다른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미레아는 지도를 꺼내 수색했던 지역을 표시해서 불필요한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했다.
“그런데 어제부터 느낀 건데 이 지역은 클라인과 거리가 가까운 데다 바로 옆이 부식 지역인 것치고 오염이 이 정도로 멈춘 게 신기하네.”
앞장서 걷는 미레아 뒤에서 지도를 살피던 리비엘로가 중얼거렸다.
“그래? 나는 오염에 대해선 기본적인 지식 외에는 무지해서 그런지 여기나 다른 곳이나 비슷비슷해 보이는데…….”
“오염의 중심지까지의 거리를 비교해 보면 다른 오염지보다 상당히 안쪽에 있는 구역이야. 그래서 원래는 파울로 대장도 이곳을 최대한 빨리 통과하려 그랬는데 어제 돌아다니면서 보니까 마수도 없어서 생각보다 안전한 데다 농사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땅도 죽지 않았고…….”
“그럼 좋은 거 아니야?”
“그게 네 말대로 결과적으로 좋은 거긴 한데…… 다른 곳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면 좋으련만. 그러면 다른 지역의 정화까지는 무리여도 오염 속도를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런데 마수가 아예 없지는 않다 그랬어. 어제 만난 라우노 씨가 그러는데 내가 떨어졌던 절벽 위쪽 지역에서는 마수가 나온다 그랬거든.”
그러다 미레아는 걸음을 멈추고 지도의 한 곳을 가리켰다.
“그게 이쪽이야.”
공교롭게도 그곳은 아무도 수색하지 않아 표시가 없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