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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따라 종말까지-56화 (56/257)

56화.

시오는 양손으로 총을 겨누고 있다가 아리스가 갑자기 유턴하는 바람에 차체 밖으로 튕겨 나갈 뻔했다.

“운전 참 뭣같이 하네!”

시오의 말에 아리스는 다시 핸들을 급하게 꺾으며 대꾸했다.

“네 조준 실력이 형편없는 걸 내 탓이라 하지 마.”

“그게 지금 이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저격수에게 할 소리냐? 조준이 문제가 아니고 토 쏠리거든?”

“왜 이런 상황에서 싸워?”

리비엘로는 둘을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현재 그들은 정체 모를 거대 괴물들에게 쫓기는 중이었다. 한가하게 아웅다웅할 처지가 아니란 소리였다.

시오는 괴물의 다리를 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예비용으로 마탄을 몸에 지니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수는 아니었지만 저 괴물 역시 일반 탄환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마탄은 괴물의 다리에 착탄하면서 폭발을 일으켰고 다리가 무너지자 괴물의 육중한 몸도 순식간에 쓰러졌다.

그렇게 선두의 한 마리를 따돌리자 뒤따라오던 다른 괴물들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시오는 누더기 카펫을 뒤집어쓴 것 같은 목이 긴 괴물 무리를 보며 식은땀을 훔쳤다.

“미레아가 저 괴물들에게 밟히거나 먹히거나 하진 않았겠지.”

시오의 입방정에 아리스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람, 저놈 좀 나 대신 때려 줘.”

리비엘로는 운전대를 잡은 아리스의 손을 대신해서 시오의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리비엘로의 손은 생각보다 매웠기 때문에 시오는 팔을 뒤로 돌려 등을 쓸었다. 시오의 불길한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아리스는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냥 내가 나서서 다 쓸어 버린다니까?”

그 말에 리비엘로가 한숨지었다.

“제발 이 땅을 이 이상 자극하지 마. 저것들은 고대의 신수라고 말했잖아. 여기는 먼 과거에 저들의 땅이었기 때문에 저런 게 더 있을 수도 있단 말이야. 그런 것들을 끊임없이 상대하면 아무리 너라 해도 오래 못 버텨.”

“그럼 이렇게 도망치면서 미레아를 어떻게 찾아?”

아리스는 미레아의 흔적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곳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시야에 다른 괴물이 들어와 지프의 방향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들키지 않고 따돌리는 게 먼저라 지프의 속도를 올려 달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반짝이고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수면에 햇빛이 반사돼 빛나고 있는 호수였고 호숫가에는 저택이 한 채 있었다. 상당히 삭막한 외양인 저택은 역시 상당히 삭막한 이 공간에 어울린다면 어울린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변 인가도 없이 홀로 덩그러니 있는 모습은 상당히 묘한 감이 있었다.

“저기 저택이 있어!”

아리스의 말에 시오가 조준경으로 호수와 저택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빈집이겠지.”

“미레아가 있을 수도 있잖아.”

“보아하니 저 괴물들이 저 호수에서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호수 코앞에 있는 저택에 있겠어? 멀리 도망갔으면 모를까.”

아리스와 시오가 또 아웅다웅하기 시작했는데 총소리가 들렸다.

탕탕탕!

일정한 시차를 두고 정확하게 세 발. 소리가 들려온 곳은 저택 쪽. 그곳에 총을 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신호였다.

“미레아다!”

리비엘로의 말에 시오가 의심을 품었다.

“확실해?”

“아니라 해도 지금 다른 방도가 있어?”

아리스가 또 인정사정없이 액셀을 밟는 통에 시오는 뒷자리에 처박혔다. 자동차 엔진 소리에 호숫가에 있던 괴물들의 이목이 쏠렸다. 저택까지 가려면 괴물들의 무리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리비엘로는 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시오는 초탈하지 못했다. 시오가 질겁하며 수류탄을 허겁지겁 꺼내 던지려는데 그전에 번쩍이는 빛과 함께 호수의 절반이 괴물들과 함께 얼어붙었다. 뒷자리에 앉은 승객 둘이 아리스를 바라보자 그 역시 어리둥절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나 아니야.”

부식 지역 안쪽에서는 상식 밖의 일이 일어난다고는 하지만 저건 아무리 봐도 마법의 힘이었다. 아리스에게는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마력의 흐름을 방해하는 다른 영소들이 없다 보니 평소와 달리 너무나도 선명한 흐름이 보였다.

마법을 쓴 게 누가 되었든 어쨌든 기회였다. 아리스는 호숫가를 따라 저택을 향해 차를 몰았다. 저택의 대문 앞에 익숙한 붉은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미레아가 그들에게 양팔을 흔들었다.

“이쪽으로 들어와!”

“내 말이 맞지? 저기 있잖아?”

아리스가 보란 듯이 말하자 시오가 떫은 것을 씹은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미레아가 대문을 밀어 열자 지프가 허겁지겁 밀고 들어왔다. 지프가 저택 안쪽으로 들어오자 라우노는 재빨리 대문을 걸어 잠갔고 아리스는 브레이크를 꽉 밟았다. 그 바람에 운전석 의자에 이마를 찧은 시오가 아픈 자리를 문지르며 항의했다.

“너 다음부터는 운전하지 마!”

하지만 아리스와 리비엘로는 시오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지프에서 튀어 나가기 바빴다.

“미레아!”

리비엘로와 아리스의 모습을 보니 미레아의 얼굴이 안도감에 활짝 폈다가 금방 구겨졌다.

“이 미친 사람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지프를 타고 들어와!”

리비엘로가 대답 대신 선두로 달려가 미레아를 꽉 끌어안았다.

“숨! 숨 막혀!”

“너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너야말로 여기가 어디라고 혼자 들어와?”

리비엘로가 미레아의 양어깨를 잡고 탈탈 흔드는 사이 한발 늦게 지프에서 내린 시오가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래! 특히 아리스가!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리비엘로 말대로 너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겁 없이 들어왔어? 애초에 왜 혼자 떨어져 나온 거야? 무전기는 왜 두고 다녀?”

“걱정은 내가 특별할 것도 없이 다 같이 했지. 여기 걱정 안 한 사람이 있나? 그보다 다친 데는 없는 거야?”

아리스는 미레아의 마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미레아는 그들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꾸벅거렸다.

“미안하고요, 죄송하고요, 제가 입이 두 개여도 할 말이 없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더 혼나야 해. 통신기도 놓고 가고, 흔적을 쫓아갔더니 절벽에서 끊겨 있고! 리비엘로가 과거를 역산해서 네 행적을 좇았단 말이야!”

“과거를…… 뭐? 뭘 했다고?”

시오가 너도 몰랐냐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 게 있어. 아무튼, 다행스럽게도 절벽 아래는 지프가 지날 만한 길이 있었지만 안도하기 무섭게 웬 괴물들이 떼로 나타나질 않나…….”

“거기서 지프를 어떻게 내렸어?”

시오가 창백한 얼굴로 대꾸했다.

“아리스가 마법으로.”

“오, 대단한 걸?”

칭찬에도 불구하고 아리스는 눈을 세모꼴로 떴다.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분위기가 아니거든?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어?”

“아, 맞다. 나 해열제 잃어버렸어. 해열제를 들고 튄 그 원숭이 자식이 나를 따돌렸거든. 난 그 원숭이 자식을 쫓다가 이쪽으로 잘못 길을 들었고.”

미레아는 분개하며 대답했다. 그 노란 원숭이만 아니었다면 이 고생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그게 중요해? 그걸 말이라고 해?”

“중요하지! 난 멀쩡하지만, 라일라는 아니잖아. 그렇게 열이 펄펄 끓는데 해열제가 없으면 어떡해? 그보다 라일라는 좀 어때?”

미레아의 걱정 가득한 말에 시오가 대답해 주었다.

“라일라는 지금쯤 우리가 발견한 마을에 가서 쉬고 있을 거야.”

“다행이다. 역시 근처에 마을이 있었구나.”

“애초에 네가 쫓아간 게 원숭이가 맞긴 해? 클라인에서는 원숭이가 서식하지 않아. 다른 동물 아닐까?”

“원숭이 맞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표정까지 나를 약 올리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고.”

“그럼 대체 어디서 원숭이가 튀어나온 거야.”

“내가 알겠니.”

“그런데 이 저택은 뭐야?”

아리스와 미레아가 아옹다옹하고 있는데 리비엘로가 뒤늦게 저택에 관해 물어왔다.

“우리 집인데요.”

현관에 기대어 네 사람의 상봉을 구경하던 라우노가 목소리를 내자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셋이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나를 도와준 분이야. 라우노 듀랜트 씨라고…….”

미레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공손한 몸짓으로 자신을 가리키자 라우노는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인사했다.

“이곳이 집이라는 말은…… 부식 지역 안에서 살고 계신단 소리인가요?”

석연치 않아 하는 얼굴인 시오에게 미레아가 최대한 작은 소리로 속닥거렸다.

“수상하다는 거 아니까 지금은 조용히 해.”

미레아가 그랬듯 다른 일행들도 라우노가 수상쩍기 그지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궁금한 것을 라우노에게 꼬치꼬치 따져 묻고 위험한 놈이다 싶으면 한바탕할 기세였다. 미레아는 라우노 몰래 시오와 아리스의 날이 선 형형한 기색을 눌러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리비엘로가 서리 여신의 신녀라 라우노와 마찰이라도 있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지금은 서로의 처지가 어떻든 그저 무던히 넘기는 게 최고였다.

“뭐, 그렇죠.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거 아는데 이곳에서 살고 있어요. 혼자서. 사정이 있거든요.”

라우노는 해명할 의지가 없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리스는 대문 너머의 호수를 보았다. 괴물과 호수는 아직도 새하얀 얼음이 덮여 있었다.

“호수와 괴물을 얼린 게…….”

“네, 전데요.”

라우노가 웃자 그의 루비 같은 눈동자가 반달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네, 데르카이드입니다.”

순순히 시인하는 라우노에게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군요.”

라우노는 아리스에게 방긋 웃어 보였다.

“제가 데르카이드라는 것에 그렇게까지 놀라시질 않네요. 미레아 씨에겐 데르카이드 친구분이 있다는데 새로 오신 분들도 그러신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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