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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따라 종말까지-50화 (50/257)

50화.

“사, 사, 살려 주세요!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여기저기 해지고 흙먼지가 묻은 남루한 작업복을 입은 아이였다. 아리스에게 팔이 붙잡힌 아이는 도망가기 위해 버둥거렸지만 아리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야, 진정해. 너 이 마을 살아?”

“살려 주세요!”

아이는 꽥꽥 소리를 지르다 아리스의 팔을 깨물려 그랬다.

“어이쿠.”

하지만 아리스는 재빨리 팔을 바꿔 아이의 목덜미 옷깃을 낚아채 피했다. 그러자 아이는 반항하는 것을 포기하고 엉엉 울며 외쳤다.

“악마다! 악마가 나타났다!”

“뭐? 악마?”

시오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마을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이놈들 뭐 하는 거냐!”

세 사람을 향해 주먹만 한 돌멩이들이 빠른 속도로 날아든 것은 덤이었다. 아리스는 반사적으로 마력으로 방어막을 펼쳤다. 돌멩이들이 방어막에 튕겨 나가자 이번엔 대충 봐도 날이 무섭도록 잘 갈린 도끼가 날아와 방어막에 꽂혔다.

“살벌하네.”

아리스가 황당해서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사이 마을 사람들은 쟁기며 낫 같은 농기구를 손에 들고 우르르 몰려왔다. 평소에 마수가 나타났을 때를 대비해 구성된 자경단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세 사람을 에워쌌다.

“이놈들! 뭐 하는 놈들이냐?!”

“우리 마을에서 썩 꺼지지 못해?”

“쥬드를 놓아줘!”

기세가 형형해지자 시오가 습관적으로 소총을 고쳐 잡는 것을 파울로가 말렸다. 그리고 진정하라는 의미로 아리스의 어깨를 짚었다. 아리스가 방어막을 거두고 아이를 놓아주었다. 쥬드라 불린 아이는 마을 어른들 틈으로 후다닥 달아났다.

“쥬드! 괜찮니?”

“악마예요! 악마가 저를 잡아먹으려 했어요!”

“오, 진정하렴. 다친 곳이 있는지 보자꾸나.”

아이가 멀쩡하단 것을 확인하자 마을 사람들은 다시 세 사람을 노려보았다.

“네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행패야?!”

중장년층으로 이루어진 대여섯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들고 있는 것들로 금방이라도 불청객들을 두드려 팰 것 같은 기세였다. 누군가가 엽총까지 가져온 것을 보고 파울로는 골치 아프게 되었다 생각했다.

“이 마을 대체 뭐야?”

시오가 황당하단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파울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재에 들어갔다.

“저기…… 일단 다들 진정하시겠어요? 먼저 아이를 붙잡은 건 사과드립니다.”

“쥬드에게 무슨 해코지를 하려 그런 거야?”

“그러니까 오해…….”

“무기를 든 성인 남성 셋이 맨손인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 오해?!”

“그건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만…….”

“이놈들이 잘못했다, 오해다 하며 그냥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사람들의 고함에 아리스가 투덜거렸다.

“내가 대체 뭘 했다고? 짚더미에 숨어 우리를 몰래 보고 있던 걸 잡은 게 그렇게 큰 죄야?”

“넌 조용히 해.”

시오는 아리스의 다리를 걷어찼다.

“빨리 사과드려.”

“죄송합니다.”

아리스의 입에서 사과의 말이 재빠르게 나왔지만 사실 그다지 미안하지 않았다.

“대체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그냥 지나가다 보이길래요…….”

파울로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아우성쳤다.

“거짓말! 무슨 목적으로 여기 왔는지 말하지 못해?!”

“당신들이 온 방향은 악마들이 있는 방향인걸!”

“무슨 목적인지 모르겠지만 여긴 아무것도 없어요! 농사나 짓고 사는 가난한 마을인 걸요!”

“당신들 대체 뭐예요? 이 마을엔 왜 왔어요?”

마을 사람들의 적대 어린 시선에 아리스 일행은 서로 눈빛으로 의사를 교환했다. 파울로가 최대한 정중한 어투로 다시 물었다.

“저희는 지나가던 길인데 숙박할 만한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 마을을 보게 된 거고요.”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불신이 가득 하자 파울로가 어깨를 으쓱였다.

“진짜입니다.”

“악마의 지역은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마을 사람 중 하나가 물었다. 하지만 파울로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악마의 지역이라니요……? 부식된 지역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 단순히 부식된 땅과는 달라! 악마라고!”

셋은 서로에게 오면서 이상한 것을 보거나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는 의미의 눈빛을 교환했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얼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상한 건 보지 못했습니다만…….”

“하지만 마법을 썼잖아. 악마도 마법을 쓴다고!”

“인간이라고 해서 마법을 못 쓰는 건 아니잖아요.”

시오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되물었다.

“당신들 인간인 건 맞아?”

“네, 맞습니다. 우리가 어딜 봐서 인간이 아닌 것 같나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당연한 걸 묻는단 태도였다.

“악마는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걸!”

“그러니까 악마가 아닌 건 물론이고 악마 비슷한 이야기도 들어 본 적 없다니까.”

시오가 답답함에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쳤다. 그때, 몰려든 마을 사람들의 뒤쪽이 소란스럽더니 한 노파가 물이 든 병을 들고 나타났다.

“성수를 뿌려 보자! 악마라면 성수에 반응할 터!”

정말 가지가지 한다. 아리스는 노파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겁에 질린 노파가 히익 거리며 몸을 웅크리든 말든 아리스는 성수라고 주장하는 것이 담긴 병을 뺏어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리스에게 덤벼들 용기는 없는지 어어 하며 지켜볼 뿐이었다.

아리스가 살펴보니 그것은 신성력이 담긴 성수가 맞았다. 다만 힘이 미약했을 뿐. 그는 병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한 번에 꿀꺽꿀꺽 마셨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성수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몽땅 마신 아리스는 거하게 날숨을 토해 내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짜증스럽게 말했다.

“자, 이걸로 됐지?! 악마가 아니란 게 증명됐나?!”

아리스의 말에 좌중이 침묵했다. 저놈의 성질머리…… 시오는 탄식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그러네. 악마는 아닌 것 같네…….”

누군가 간신히 내뱉은 말에 마을 사람들은 또 웅성거렸다. 아직 경계심은 남아 있지만 대책 없던 공포심은 없어진 것 같았다.

“저어…… 진정되셨으면 다른 짓은 안 할 테니 이것만 대답해 주세요. 이 근방에 쉬면서 며칠 묵을 만한 곳이 있을까요?”

파울로가 정중한 어투를 유지하며 말하자 누군가가 답했다.

“호텔이나 여관을 말하는 거라면 당연히 그런 건 이 마을에 없죠. 여기 사람들은 자기 몸 하나 겨우 누일 수 있는 집에 살고 있거든요.”

파울로가 시오와 아리스에게 손가락을 까닥거려 불러 모았다. 그들은 머리를 맞댄 상태로 속닥거렸다.

“이 마을, 이상한데 괜찮겠어요?”

시오의 말에 아리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해는 풀긴 했어도 저 사람들은 우리를 싫어하는 것 같으니까 다른 마을을 찾아볼까요?”

“하지만 라일라가…… 다른 마을까지는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겠고…….”

셋은 속닥거리다 저마다 끙끙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결국, 결정을 내린 파울로가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저희는 상관없지만 딱 한 명만 집 안에서 머무를 수 있게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일행 중 하나가 몸이 좋지 않아 며칠 쉴 곳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그에 따른 비용도 지급하겠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호의라고는 조금도 섞이지 않은 시선으로 그들을 쏘아봤다. 아리스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제가 무례하게 굴었지, 제 다른 일행은 아무 상관없지 않습니까. 일행이 몹시 아픕니다. 걱정이 가득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예민해져 있어 과잉 대응을 했습니다. 조금 전 성급하게 총을 겨눈 것은 거듭 사과드리니 넓은 아량으로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아리스의 성격상 그가 정말로 뉘우치기는커녕 죄책감이라고는 조금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시오는 그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감탄했다. 마을 사람들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 런가? 일행이 얼마나 많이 아픈 거야?”

그 말에 셋은 기회다 싶어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열이 펄펄 끓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먹은 것도 전부 토하고 물도 입에 못 대는 통에 탈수도 심하고요.”

“원래 몸이 약하다 보니 많이 힘들어해요.”

그 말에 마을 사람들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다.

“저런, 그거 큰일이구먼.”

“병원에 안 가 봐도 되겠어?”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넘어오는 기색이 보이자 셋은 본격적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병원만 해도 차로 네 시간 이상은 가야 할 텐데 체력이 너무 떨어져 병원까지 가는 길을 못 버틸까 걱정돼서요.”

“네, 맞아요. 그러니까 부탁드려요. 이삼일이면 충분합니다.”

“그에 마땅한 비용은 섭섭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셋의 묘사에서 라일라는 중환자가 되어 있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의 동정심을 일으키는 것엔 성공했다.

“조금 쉬게 해 주는 건 상관없지 않을까……?”

“뭐라고?!”

한 중년 여인이 소심하게 목소리를 내자 누군가가 반발했다. 하지만 다른 마을 사람들이 어물거리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아프다잖아…….”

“그래. 우리도 다 고생한 경험이 있는데 모른 척하기엔 좀…….”

“게다가 비용도 지급하겠다 하고. 파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저장해 두었던 작물들도 슬슬 부족하기 시작했지 않나. 아니면 하다못해 염소나 양을 사 올 수도 있을 테고.”

그렇지 않아도 그들의 마을은 가난했다. 외부와 교류도 거의 없던지라 돈이 나올 구석이 부족했던 차였다. 그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웅성거리다 의견을 모았는지 성수를 가져왔던 노파가 말했다.

“자네들 일행이 모두 몇인가?”

“우리까지 하면 일곱입니다.”

“좋소. 방을 하나 내주지. 대신 조건이 있소.”

“네, 말씀하세요.”

“이 마을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지 말아 주시게.”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악마가 알게 된다면 큰일 나니 말일세.”

셋은 수상하다 여겼어도 그 정도 조건을 거부할 이유도 없던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행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차로 오는 길을 알려 주었다. 잘 닦인 길이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차로 지나다니는 길이 있긴 있었다. 셋은 연신 꾸벅거리며 감사 인사를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어느 정도 떨어지자 파울로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상한 마을이네. 왜 저리 경계가 심하지?”

“그러게요. 갑자기 악마 취급을 받지 않나…….”

“아리스, 혹시 이전에 이런 비슷한 소문 들은 거 없어?”

“적어도 5년 전에는 금시초문인 말이었는데. 아마 소문이 돌았다면 내가 클라인을 떠나 있었던 최근 5년 안에 생긴 소문이 아닐까 싶은데…….”

아리스는 말을 도중에 멈추었다. 시오가 그를 돌아보자 아리스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공기가 변했어. 자연 상태의 영소가 이상해.”

“변했다니?”

“무언가가…… 그러니까 영소의 고갈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는데 마수와는 양상이 달라. 빨리 돌아가자!”

아리스는 설명을 제대로 하지도 않고 다급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파울로와 시오는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남겨진 일행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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