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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따라 종말까지-46화 (46/257)

46화.

쿤둘렌의 설명에 줄레티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시오와 라케드는 제멋대로 빈자리에 털썩 앉았다.

“여기까진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제가 모시고 왔습니다.”

시오의 대답에 라케드는 차갑게 웃었다.

“동족의 일인데 내가 모르면 쓰나.”

라케드는 다리를 꼬고는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줄레티아를 노려보았다.

“밖에 있는 용골은 확인하고 왔다. 야, 너. 그 용의 용주, 어디에 숨겼어?”

“……숨기지 않았습니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자 라케드는 쯧 혀를 찼다. 그러더니 별안간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

“너희 마석이 왜 귀한 줄 알아?”

“채굴 양이 얼마 없으니까요.”

미레아의 대답에 라케드는 고개를 저었다.

“틀렸어. 너희는 금맥처럼 마석도 땅 파면 나오는 줄 알고 있지? 하지만 마석은 보석 같은 것과 달라. 아무 곳에서나 나오는 게 아니지.”

라케드는 파울로가 입도 대지 않은 찻잔을 자기 앞으로 가져오더니 입을 축였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아는 사람이 극소수인 정보다. 저 사이비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말에 줄레티아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라케드는 일행들을 눈으로 훑고는 아리스에게 손을 뻗었다.

“쿤둘렌이 맡긴 마석을 잠깐 볼 수 있을까.”

아리스가 세 개의 마석을 건네자 라케드는 그것들을 손안에서 굴리며 입을 열었다.

“마석은 옛 세대 용들의 용주가 화석화된 거야. 이 마석들도 과거에는 누군가의 용주였지.”

그 말에 줄레티아와 쿤둘렌을 제외한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시오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처음 듣는 말입니다.”

“처음 듣겠지. 용들만 은밀하게 알고 있는 일이었으니. 아, 쿤둘렌은 이미 알고 있었지. 연구 목적으로 자료를 수집할 때 내가 직접 알려 줬어.”

“그럼 마석을 채굴한다는 건…….”

아리스의 질문에 라케드는 당연하단 얼굴로 대답했다.

“옛 세대 용들의 무덤을 파헤친다는 말이 된다.”

라케드는 무의식중에 진녹색으로 빛나는 이마의 용주를 손으로 문질렀다.

“옛 세대 용의 무덤은 대부분 용의 영역 안에 있는 고대 유적에 속하지만 영토 밖에서 수명을 다한 자들도 있기 마련이지. 그런 자들의 용주가 긴 세월을 거쳐 어쩌다 오빈과 인간들의 눈에 띄어 밖으로 나온 것이 바로 이 마석이다. 그것이 몇 되지 않아 상당히 고가에 거래되고 귀한 몸이지만 마석을 대량으로 얻으려면 얻을 수 있어. 용들의 유적을 파헤치면 간단하지.”

“그래서 비밀이었군요.”

파울로의 말에 라케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빈과 인간들이 알게 된다면 뻔하지 않겠나. 용들의 무덤을 내놓으라 하겠지. 그래도 언젠가는 다들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제법 비밀 유지가 잘 되어 3,000년간 조용하다 싶더니 누군가가 발설한 모양이군.”

그러면서 줄레티아를 노려보았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줄레티아는 골백번도 더 넘게 죽었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러면 그 용의 용주는 줄레티아가 마석으로 사용하려고 빼돌렸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용골에 반응했던 마석이 어떤 것이지?”

쿤둘렌의 질문에 대해 대답은 하지 않고 라케드는 오히려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중에 자주색 마석입니다.”

라케드는 자주색 마석을 아리스에게 가볍게 던져서 건네주었다.

“데르카이드들은 마석을 쓸 필요가 없지. 그래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무엇을요?”

“그 마석과 감응해 봐.”

“감응이라니, 어떻게요……?”

라케드가 쿤둘렌에게 저 멍청이를 어떻게 가르친 거냐는 표정을 지었다. 쿤둘렌은 애써 그 시선을 외면하며 얼른 알려 주었다.

“마석에 마력을 불어넣으란 소리입니다.”

갑작스러운 명령에 의문이 들었어도 아리스는 일단 시키는 대로 행했다. 마석을 손에 쥐고 마력을 불어넣고 있는데 갑자기 마력이 역류했다. 마석에서 역류한 마력이 팔을 타고 올라 전신으로 퍼지자 아리스는 머리를 꽉 조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헉!”

저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지만 손에 쥐고 있던 마석을 놓을 수 없었다.

“두통이 좀 있어도 참고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 봐.”

라케드가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아리스는 두통이 조금 있는 정도가 아니라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팠다.

“뭘 들으란 소리예요?”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되묻기 무섭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불쌍하잖아.〕

아리스는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지만 목소리는 머릿속에서 왕왕 울렸다.

〔불쌍했단 말이야.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어.〕

자신의 것이 아닌 목소리와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와 머릿속을 꽉 채웠다. 아리스는 자신이 누군지조차 잊어버릴 것 같았다.

“시끄러워!”

아리스는 기어이 마석을 손에서 떨쳐 내었다. 라케드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마석을 다시 주워 마석을 옷자락에 문질러 닦았다.

“뭐라고 하던?”

마석을 놓자 거짓말처럼 두통이 싹 가신 아리스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훔쳤다.

“불쌍하다고……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다고…….”

“오지랖이 넓은 놈이었군.”

라케드는 씁쓸하게 웃었다.

“네가 들은 것은 마석에 남아 있는 일종의 흔적이야. 이 용주의 주인이었던 영혼은 흩어졌어도 마석에는 흔적이 남게 되고 그 흔적이 강한 것이 이따금 있는데 높은 마력에 일시적으로 반응하지. 이번에는 백골이 된 용의 미약한 기운에 반응해서 일을 벌인 것 같아.”

“제가 마검을 만든 원리랑 비슷하네요.”

“아무래도 저 용골의 주인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에게 용주를 되찾고 복수하고 싶었나 본데……. 그래서 너 말이다.”

라케드는 줄레티아의 눈을 찌를 것처럼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용주 어디 있어? 그리고 네 정체가 뭔지, 용주가 마석을 대신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빨리 말해.”

“용주가 어디 있는지는 제가 알 것 같아요. 용은 지하실에서 나온 이후에 위로 올라가려 그랬어요. 제가 알아낸 마력의 흐름도 위쪽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 물어보지 않아도 5층에 보관해 놨겠죠.”

“그러면 지금 밖에 방치된 용골을 그냥 놔두면 위험하지 않나요? 아까처럼 되살아나면 어떡해요?”

아리스의 말을 듣고 걱정하는 시오에게 줄레티아가 신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본래 지하실은…… 용주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차단하기 위해 마력을 막는 결계를 쳐 놨습니다. 그 안으로 마석을 가지고 들어가 반응했던 것이고 지금 임시로 용골을 덮어 놓은 천 역시 마력의 흐름을 방해하는 술식이 새겨져 있습니다. 거기에 전하께서 마력 제어 술식을 작동시켜 놓았으니 당분간 괜찮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 용골의 주인은…… 제가 죽인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용을 죽일 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저는 단지 신성력 이외에 더 강한 힘을 원했을 뿐입니다.”

그는 바싹바싹 마르는 입술을 차로 축였다.

“마석이 된 용주는 이미 오랜 세월 동안 그 기운이 많이 쇠했기 때문에 용들이 사용하는 것처럼 강력한 마법을 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죽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용의 용주는 더 강력한 마법을 다룰 수 있다고…… 누군가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용의 시신을 넘겨주며 알려 주었습니다.”

“그 누군가가 누군데?”

라케드의 질문에 줄레티아는 아리스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흑익의 동료라 자청하던 어떤 데르카이드로부터였습니다.”

“웃기지 마. 난 댁과 초면인데. 그리고 나는 그런 친구 없어.”

아리스가 차갑게 대꾸하자 줄레티아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렇게 보니 당신이 진짜 대공자 전하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잘 알지 못했었고, 당신의 동료라 주장하는 자를 믿을 근거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거짓이라 할 만한 근거도 없었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밖에 믿을 수 없었답니다. 그야, 그자가 마수들을 몰고 와 이 일대를 초토화했기 때문이지요.”

“……뭐?”

아리스를 포함해 일행들의 입이 저절로 벌어지는 와중에도 줄리테아는 말을 이었다.

“그 데르카이드가 몰고 온 마수들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이 도시를 파괴하였습니다. 고작 하루 만에 도시는 괴멸될 위기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마수를 몰고 다니는 데르카이드라 하면 흑익이라 불리는 루데키아스 대공자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지? 소문에 의하면 당신이 흑익을 물리쳤다고 하던데.”

라케드의 말에 줄레티아가 비죽 웃었다.

“당신들이 봤을 때, 제가 그것들을 정말 물리칠 수 있었겠습니까.”

사람들이 고개를 젓자 줄레티아가 그것 보라는 얼굴을 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흑익이라 여겼겠지만 제가 직접 본 그자는 검은 날개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 두려운 존재임은 맞았지요. 겁에 질린 저에게 먼저 거래를 요청한 것은 그였습니다.”

“거래?”

“자신과 손을 잡으면 이 도시를 공격하는 것을 그만두고 제가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주겠다 하였습니다. 이 도시의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당시의 저는 그저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도움을 주겠다는데 마다할 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는 제가 흑익을 물리쳤다는 소문을 내고는 약속대로 물러났습니다. 그 덕에 저는 성자로 이름이 났지요.”

“그 거래 조건이 뭐였지?”

“제게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용의 용주를 주는 대신…….”

줄레티아가 머뭇거리다 입을 꾹 다물자 아리스가 자신의 앞에 있던 테이블을 주먹으로 쾅 하고 내리쳤다.

“판단 잘하는 것이 좋을 거야. 용주를 공짜로 줬을 리 없잖아? 그자가 너를 협박하면서 무엇을 요구했는지 말해 봐.”

아리스의 말에도 불구하고 줄레티아는 잠시 침묵했다. 그 반응에 아리스의 눈이 가늘어졌고 라케드는 미간을 찡그렸다.

“뭐, 순순히 불지 않겠다면…… 손가락 한두 개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라케드는 빈말로 하는 협박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게 무시무시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줄레티아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 그저 제 신도 중 몇을 자신에게 넘기는 조건이었습니다.”

“사람을 넘겨?”

“자, 자신이 부릴 사람이 필요하다고…… 정말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몇이나 넘겼는데?”

“처음에는 오…… 오십 명 정도…… 그 이후에 주기적으로 신도를 요구하여 계속 사람을 보냈던 것이 백…….”

“한두 명도 아니고 오십? 백? 장난해? 지금 인신매매했다는 소리지, 이거?”

파울로의 표현에 줄레티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럴 리가요! 그저 자신의 수발을 들 사람이 필요하다고……!”

“오십에서 백이나 사라졌는데 이 도시 사람들은 수상한 것도 모르나?”

“마수에게 당했다고 하면 다들 이해하니까요…….”

“참나, 뭣할 때마다 마수를 갖다 붙이면 해결되니 허울 좋은 핑계로군. 당신은 수발이나 들 사람으로 백이나 필요하다는 말을 믿었어? 정말로? 사실은 아닌 거 알잖아. 그쪽으로 넘긴 사람들이 돌아오긴 했어? 무슨 짓을 당했는지는 알고 있어?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런데 어떻게 괜찮을 것이라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

아리스의 끝없는 추궁에 줄레티아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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