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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따라 종말까지-41화 (41/257)

41화.

“그야 이 도시는 성인 줄레티아 님의 가호 아래 있으므로 클라인과 인접한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죠.”

“성인 줄레티아요?”

“아니, 줄레티아 님을 모른단 말입니까?”

시오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바텐더가 호들갑을 떨었다.

“제가 타지 출신인 데다 외국에 오래 있어서 이 근방 사정에는 어둡습니다. 이곳은 몇 년 동안 얼굴을 못 본 삼촌을 뵈러 왔거든요. 이 사람들은 외국에서 사귄 친구들인데 삼촌의 초대를 받아서 동행했고요.”

아리스는 얼마 전부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줄곧 고글을 쓰는 습관을 들였다. 루아드 사람들은 전부 루데키아스 대공자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특히 클라인 지역의 사람들은 말이다.

비록 5년 전 소년기 때의 모습이라 그사이 인상이 조금 달라졌다 해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어쩌다 아리스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나 이상한 소문이 돌지 않게 예방 차원에서 일부러 고글을 썼다.

그러다 보니 아리스를 알아보지 못한 바텐더는 척 봐도 인종이 제각각인 일행을 보며 그의 말뜻을 이해하곤 마치 제 일인 양 우쭐해져서 설명을 이었다.

“우리 줄레티아 님은 대단하신 분이시죠! 그 루데키아스 대공자가 이 도시에 마수들을 몰고 쳐들어왔을 때 그를 쫓아낸 사람이 바로 줄레티아 님이시거든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아리스는 마시던 술을 뿜을 뻔했다. 그는 자신의 얼굴에 고글이 제대로 씌워져 있는지 괜히 손으로 더듬어 확인해 보았다. 바텐더가 그런 아리스를 이상한 눈으로 보기 전에 미레아와 시오도 애써 동요를 감추려고 일부러 과장되게 호들갑을 떨며 호응했다.

“세상에! 흑익 루데키아스와 대적할 사람이 있단 말인가요?”

“그것참 대단하네요! 믿을 수 없어요!”

“암! 대단하고 말고요! 그 악마 같은 흑익 자식을 성스러운 힘으로 물리칠 수 있는 분이 어디 흔한가요?”

미레아와 시오가 곁눈질로 아리스의 눈치를 보았다. 아리스는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라 뚱한 얼굴로 말했다.

“그걸 직접 보셨습니까?”

“아이고, 저는 그때 피난 가 있어서 직접 보지는 못하고 아내의 사촌이 보았다는데…….”

아내의 사촌이 목격자라는 말에 바텐더의 말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신빙성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5년 전 마수의 난 때 어마어마한 마수 군단을 데리고 루데키아스가 쳐들어왔습죠. 그때 줄레티아 님이 그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는 이렇게 신성력을 푸와학! 하니까 그 루데키아스의 무시무시한 검은 날개가 꺾이면서 지상으로 추락했다지 뭡니까. 마수의 우두머리가 패배하자 마수들도 우르르 후퇴했고요! 그 이후 이 도시는 한 번도 마수의 습격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불안하다며 떠난 사람들도 있지만 보세요! 5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요.”

라일라는 웃지 않기 위해 아랫입술을 앙 깨물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금주하는 리비엘로는 레몬 향이 나는 탄산수가 담긴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흐응, 그렇단 말이지요? 신성력을 푸와학?”

“네, 네! 그럼요!”

“그렇담 이곳에 온 김에 신전에서 기도를 드리고 싶은데 그곳에 가면 그분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저도 서리 여신을 모시는 자로서 꼭 한번 만나 뵙고 싶네요.”

“아니, 신녀님이셨습니까? 그렇다면 줄레티아 님을 꼭 만나 보십시오. 줄레티아 님께서는 일주일에 한 번 아침 기도에 나오시는데 내일이 마침 그날이거든요! 한번 시간 맞춰 가 보세요. 아마 축복해 주실 겁니다.”

그렇게 이어진 줄레티아란 자의 칭송을 이야기 내내 들은 일행은 적당할 때에 선술집을 나왔다. 선술집에서 몇 발짝 멀어지자 일행은 조용히 아리스를 바라보았다. 아리스는 해탈한 미소를 지으며 이마를 짚었다.

“이 도시에 마수를 몰고 쳐들어온 적이 있었어?”

“아니.”

“줄레티아란 사람이랑 관계는?”

“그런 사람은 듣도 보도 못했는데.”

아리스의 대답에 시오와 미레아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푸하하하, 사이비네.”

“풉! 사이비야.”

“으하! 으하하하하하하하!”

둘이 먼저 거리낌 없이 웃음을 터트리자 라일라가 내내 참았던 웃음을 숨도 못 쉬고 쏟아 내었다.

“그래. 사이비 사기꾼이네. 성인이면 교단에 등록이 되어 있을 텐데 나도 처음 듣는 이름이거든.”

마지막으로 리비엘로가 확언했다.

“그런데 타이틀이 탐날 만해. 무적의 흑익을 물리친 성인! 아주 멋있어.”

“신성력이 푸와학! 푸와학이래! 으하하하!”

“어머나, 부러워라. 나는 신성력을 그 정도까지 쓸 수 없는데.”

“으하하하!”

미레아는 좀처럼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라일라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너 그거 마시고 취했냐?”

“이게 안 웃겨?! 난 너무 웃겨서 웃음이 안 멈춘단 말이야!”

“대체 내가 왜 이 도시에 마수 군단을 이끌고 쳐들어와야 하는데? 여기에 술 말고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물론 내가 폭주할 때 마수가 습격한 지역 중 하나지만 그 이후 이 도시가 5년 동안 아무 일 없는 것은 내가 페니드란으로 클라인에 마수들을 봉인해서 그런 거거든?! 재주는 내가 부리고 칭찬은 그 줄레티아란 놈이 듣고. 아, 기운 빠져.”

아리스는 투덜거리며 굴러다니는 길에 돌멩이를 뻥 찼다.

“아니다. 원인 제공을 내가 한 건 맞으니까 마음대로 떠들어라. 난 모른다.”

“아니지. 이렇게 수상한데 넌 그냥 둘 거야?”

“내 알 바 아니야. 차라리 서리 교단에 고발하든가.”

아리스는 완고하게 말했지만 겨우 웃음을 멈춘 라일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리스, 이건 더 조사를 해 봐야 하는 일이야. 신성력을 증폭시키는 마도구를 그자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잖아. 운이 나쁘면 그 줄레티아란 사람 때문에 일이 꼬일 수도 있어.”

리비엘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라일라의 말이 맞아.”

그리고 그 의견에는 숙소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파울로도 동의했다.

“내일 아침 기도라 그랬지? 그렇다면 한번 가서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

라케드는 그들이 대화하는 내내 말없이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행동으로 파울로가 내린 지시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덕분에 아리스만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 * *

일주일에 단 한 번, 줄레티아가 직접 주관하는 아침 기도에는 어마어마한 신도가 몰렸다. 의자가 부족해 서서 예배를 듣는 신도들이 더 많았다. 서리 여신의 조각상 앞에 마련된 제단에 줄레티아가 나타나자 사람들의 격한 환영에 신전이 무너질 것 같았다.

자신을 줄레티아라 소개한 남자의 나이는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얼굴만 봤을 땐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젊은 시절에는 상당히 준수한 얼굴이었음을 무리 없이 추측할 수 있을 정도로 이목구비가 수려했다.

갈색 머리카락에 남색 눈동자는 따듯한 인상을 자아냈다. 마수를 몰고 쳐들어온 흑익을 막아섰다기에 성기사 같은 사람을 생각했는데 그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어 보였다.

“서리 여신께서 직접 하사하신 저의 신성력은! 좀 더 많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저의 사명!”

“오오! 줄레티아 님!”

“서리 여신의 가호가 이 세상 곳곳 전해지기 위해서는 저는 이 티몬에만 머물 수 없습니다! 물론! 저는 티몬의 시민들을 사랑합니다! 그렇기에 일주일에 한 번이나마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자 노력 중입니다.”

“오오! 줄레티아 님!”

왜 이런 규모의 사이비 집회를 시장이 내버려 두나 싶었더니 시장을 포함해 시의 고위 공무원들도 줄레티아의 편이었다. 그 증거로 시장은 맨 앞자리에 앉아 그의 이름을 열창하고 있었다.

“여러분! 저는 서리 여신의 미천한 종일뿐입니다. 저의 신성력은 저만의 것이 아닌 것처럼 좀 더 많은 이를 구원하는 것은 제 개인의 힘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도 저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덕행을 베풀면 여러분들에게도 여신의 가호가 깃들 기회가 될 것입니다.”

돈을 내놓으란 소리군. 아리스가 피식거리며 비웃었다. 자기 이름을 팔아서 한다는 짓이 고작 헌금 빼돌리기라니 자존심이 상했다.

“아아! 줄레티아 님! 줄레티아 님!”

줄레티아의 이름을 열창하는 신도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들의 집단 광기 속에서 제정신인 사람은 아리스와 그의 일행밖에 없었다. 시오는 나름 신도들을 흉내 낸다며 줄레티아의 이름을 열창했다. 라일라와 리비엘로가 한심하단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신도들의 열기는 점점 절정으로 치달았다. 그 분위기에 여차하면 취할 정도라 그들은 광신도들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장 극적인 순간에 줄레티아는 양손을 머리 높이 뻗었다.

“이것이 바로 여신께서 제게 주신 권능!”

미레아는 코끝에 차가운 것이 떨어져 깜짝 놀랐다. 그것은 물방울이었는데 신전 안을 가득 채운 열기를 식히듯 마치 비처럼 쏟아졌다.

“서리 여신의 축복이다!”

“여신의 성수다!”

신도들은 성수라 주장하는 물을 조금이라도 더 맞기 위해 허공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렸다. 미레아와 다른 이들은 순식간에 머리가 쫄딱 젖은 서로의 모습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물줄기는 정수리만 실컷 적시고 바로 멎었다.

“이건 신성력이 아니고 마법이야. 마법을 캐스팅할 때 발동하는 술식이 없어서 다들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간 것이지 적어도 신성력은 확실하게 아니야.”

리비엘로의 말에 아리스는 미간을 좁히며 동의했다.

“그것도 일반적이지 않아. 혹시 저자의 촉매와 증폭기가 어디 있는지 본 사람 있어? 람의 말대로 술식이 없어. 나는 술식 없이 캐스팅할 수 있지만 그건 내가 데르카이드이기 때문이고.”

“저 사람도 데르카이드라는 소리야?”

미레아의 의문에 아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본인이 가진 마력은 적어.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옷 주머니 어딘가에 숨긴 마석 한두 개로 마력을 저 정도까지 증폭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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