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멀리서 봤을 땐 기껏해야 큰 백조나 학 같은 덩치를 생각했는데 눈앞에서 보니 집채만 한 괴물이었다. 두 개나 달린 머리는 새의 것도, 그렇다고 땅 짐승의 것도 아닌 기괴한 형태였고 머리마다 다섯 쌍이나 되는 눈알은 두서없이 붙어 있었다.
미레아는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지만, 마수의 움직임까지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공포와는 달랐다. 그저 기시감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피가 식으면서 이명이 울렸을 뿐이었다. 숨을 들이켠 상태에서 호흡할 수 없었다.
나는, 저, 눈을, 전에도……!
마수가 안에 날카로운 이빨이 빽빽한 주둥이를 자신을 향해 벌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미레아는 간신히 팔을 움직여 검으로 이빨을 막았다. 까득까득거리며 이빨로 쇠를 씹는 소리가 났다.
마수의 반대편 머리 역시 공격에 가세했다. 그 힘에 달리던 열차의 차량이 크게 휘청거렸고 철로와 열차 바퀴가 서로 긁히는 소리를 내었다. 미레아는 이를 악물고 간신히 탈선되지 않은 열차에 매달렸다.
“너만 머리가 두 개야?! 나도 검이 두 개거든?!”
미레아는 팔을 교차해 두 번째 머리의 입안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깊숙이 찌르는 바람에 날카로운 이빨이 팔에 스치면서 길게 물린 상처를 내었다. 하지만 뇌간 쪽에 있는 핵에는 검 끝이 닿지 않았다.
미레아는 거기서 무언가를 더 해 보겠단 생각을 빠르게 포기하고 마수가 자신의 오른팔을 잘라 먹기 전에 입안에서 얼른 빼내었다. 검을 뽑자 마수의 체액이 튀었다. 재차 공격을 가하려던 마수의 머리가 무언가에 얻어맞고 크게 휘청거렸다. 마수는 자신이 공격받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객차 몇 칸 너머에서 창문에서 몸을 뺀 시오가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빨리 떨어져, 미레아!”
미레아는 재빠르게 몸을 물렸다. 마수가 날개를 쫙 펴며 발톱으로 시오를 공격했지만 ‘텅’ 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다. 마지막 객차에 있던 아리스가 날개를 펴고 마력으로 만들어 낸 방어막이 마수를 막아선 것이었다.
마수는 짜증 난다는 듯 다시 공격을 시도했지만, 이번에도 방어막에 막혔다. 시오는 자신의 총알이 명중했던 곳을 확인했다. 마수의 표면을 빼곡하게 덮고 있는 깃털들에는 흠집 하나 없이 매끈했다. 총알은 단단한 깃털에 막혀 마수의 피부를 관통하지 못했다.
“역시 일반 총알로는 힘들군.”
시오는 혀를 쯧 찼다. 그는 기존의 탄창에 총알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도 라일라가 건네준 새 탄창으로 갈아 끼웠다.
“신형 마탄이야. 기존 것보다 반동이 더 세니까 조심해.”
라일라의 걱정 어린 말에 시오는 고개를 살짝 까닥거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라일라의 경고가 무색하게 시오는 열차의 창틀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뻔했다. 총구를 떠난 탄환이 마수에게 맞자 탄환 속에 있던 마력이 방출되면서 폭발했고, 그 덕에 마수가 공중에서 크게 흔들렸다.
비록 갑옷 같은 깃털을 한 번에 뚫지 못했지만 마탄의 연이은 착탄에 마수는 잠시 정신이 팔렸다. 시오와 아리스가 엄호하는 사이 미레아가 아리스의 옆으로 달려왔다.
“미레아, 괜찮아?”
“어, 어? 어.”
반쯤 다른 곳에 정신을 팔아 놓고 온 것 같은 대답에 아리스는 혀를 찼다. 미레아의 오른팔이 또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지난번에도 오른팔을 다쳤었는데 조심성에 대한 학습 능력이라고는 도무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 보였다.
파울로가 기관실에서 상체를 빼고 상황을 살폈다.
“미레아! 부상이냐?”
“경상입니다!”
“젠장, 내 역할로는 기관차를 지키는 게 우선이야! 미레아, 아리스, 시오. 마수가 접근하면 너희들이 속공하는 수밖에 없어. 쿤둘렌도 공격보다는 방어해야 하거든!”
“우리 셋이 속공전을 펼친다 해도 이렇게 된 이상 방어에만 치중할 순 없어요.”
그리 말하며 검은 날개를 크게 펴는 아리스의 팔을 미레아가 잡았다.
“뭐 하려고?”
“마수를 열차에서 떨어트리게. 데르카이드는 좋은 미끼니까.”
“혼자 나서지 마!”
미레아가 막아섰지만, 아리스는 이마 위에 걸치고 있던 고글을 눈으로 내려 쓰더니 마수가 다가오지 못하게 마력장을 넓게 펼쳤다. 마력장 주변으로 마력과 반발한 자연 상태의 영소가 푸른 스파크가 일었다.
“너 방금 잡아먹힐 뻔했거든? 이렇게 입씨름하고 있을 시간 없으니까 물러나. 열차가 최고 속도로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탈선하면 그때야말로 끝이야.”
“너……!”
미레아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리스가 열차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검은 날개를 펼치고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날아갔다.
“아리스!”
시오 역시 창밖으로 상체를 쭉 빼고 그를 책망하듯 불렀다. 아리스가 열차에서 떨어지자 그의 예상대로 마수는 마력 덩어리인 데르카이드를 뒤따라 날기 시작했다.
아리스는 검을 빼고 검기를 덧씌웠다. 오랜만의 공중전이었지만 아리스는 한껏 끌어 올려 자신의 몸에 웃도는 마력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리스의 마력을 느낀 마수는 곧장 날아오지 않고 그의 옆쪽으로 선회했다. 본능적으로 힘의 우위를 안 것이다.
그래도 도망가지 않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마력이 고픈 것 같았다. 아리스는 곁눈질로 열차를 보았다. 다행히도 아까보다 속도를 올려 빠르게 이곳을 이탈 중이었다. 검을 비스듬하게 빗겨 내린 아리스가 선공을 시작했다.
미레아와 시오는 열차에서 그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처음 보는 타입이군.”
미레아가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라케드가 흔들림 없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또 욕이나 한 바가지 얻어먹을 것을 예상했는데 라케드의 표정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그는 흔들리는 열차 지붕 위에서도 비틀거리지 않고 아리스와 마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라케드 님도 처음 보는 타입이에요?”
라케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레아는 지금까지 발견된 마수를 얼추 알고 있었다. 아종까지 합하면 제법 많은 종류가 있지만, 대표적인 형태는 마수에 대한 자료가 갱신될 때마다 틈틈이 찾아봤다. 그런 미레아도 저런 형태의 마수는 들어 본 적이 없었고, 여러 정보에 밝은 라케드 역시 처음 보는 타입이라면 기존까지 없던 최근에 생긴 종이라는 소리였다.
“다른 종보다 진화가 더 이루어졌고 마력에 대한 친화력도 월등해. 어중이떠중이 마수처럼 우습게 보다가는 큰일 나겠어.”
라케드가 우습게 보는 어중이떠중이 수준의 마수가 아니고 상위 타입의 마수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던 미레아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라케드의 표정에 위기감은 없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그저 이 사태를 수습하는 방법뿐이었다.
5년 전, 참사를 일으킨 것은 땅과 하늘을 새하얗게 뒤덮을 정도로 떼로 몰려온 마수들이었지만 지금은 고작 한 마리였다.
“아리스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라 인근 지역에 우리의 움직임이 노출된 건 어쩔 수 없지. 시간문제라 생각하긴 했다만 이렇게 루아드 땅 밟자마자 사고가 터진 건 나도 당황스럽군.”
“하지만, 아리스가 지금!”
라케드는 아직 출혈이 계속되고 있는 미레아의 오른팔에 시선을 두었다.
“우리가 지금 걱정해야 하는 것은 이 상황에서 치고 빠지는 일이 우선이지 저 마수는 아니야. 그러니 너는 이탈할 준비나 해.”
그 순간 쿵 하고 땅이 울리더니 산사태라도 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마수의 머리 중 하나가 뎅강 잘려 산 중턱에 처박힌 바람에 난 소리였다. 진한 녹색의 피를 흩뿌리며 하나 남은 머리가 비명을 질렀다.
라일라가 비위 상한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몇 분 되지도 않은 순간이었지만 마수와 고군분투해야 했던 미레아와 시오는 질린 얼굴로 아리스를 바라보았다. 아리스는 마치 창천의 하나밖에 없는 왕처럼 커다란 검은 날개를 펼치고 떠 있었다.
라케드의 말처럼 마수는 그들의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미레아는 헛웃음을 들이켰다. 자기가 누굴 걱정하고 있던 것인지, 저게 정말 인간은 맞는지. 그리고 정말로…… 미레아는 저도 모르게 떨려 오는 손끝을 숨기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마수는 날갯짓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래도 비틀거리며 추락하고 있었다. 아리스가 검을 휘둘러 날에 묻는 체액을 털어 내는가 싶더니 급강하해서 마수를 땅에 내리꽂았다. 마수와 아리스가 한데 뒤엉켜 떨어진 지면에 흙먼지가 이는 것이 보였다. 시야가 가려진 흙먼지에서 먼저 빠져나온 것은 마수였다.
“이런! 아리스 녀석이 마수의 발을 더 묶어 뒀으면 했는데.”
라케드가 아쉬워했다. 마수는 열차를 향해 날갯짓했고 아리스가 그 뒤를 추격했다.
“라케드 님, 리비엘로의 신성력이 준비됐어요!”
언제 움직인 것인지 객차의 제일 끝에 칸에서 라일라가 창밖으로 상체를 빼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라케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퍼졌다. 리비엘로가 부르는 성가였다.
- 여신의 은총이 그대 어깨에 내려와 소복하게 쌓이길.
- 나의 귓가뿐만이 아니라 지평선 저 너머까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길.
쿤둘렌과 라일라의 보조 덕분에 리비엘로의 신성력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증폭되어 열차를 휘감았다. 열차는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신성력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마수는 신성력 때문에 열차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좋아, 이대로 이탈할 수 있겠어.”
파울로가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마수와 점점 멀어져 간다 해도 열차가 안전한 곳까지 이탈할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아직 대치 중인 아리스를 지원하기 위해 그들은 태세를 재정비했다.
머리가 하나 떨어져 나간 마수는 울부짖으며 몸을 사리기 위해 자신의 뒤를 바싹 쫓는 아리스와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도망치지는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활강하며 위협적으로 날갯짓하며 주변부를 배회했다. 열차를 놓친 것이 제법 분한 것처럼 보였다. 마수는 제법 빨라서 아리스를 이리저리 피하며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