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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따라 종말까지-28화 (28/257)

28화.

“야! 이! 빡대가리야!”

미레아는 그에게 왜 보자마자 욕질인지 항의하고 싶었지만, 무엇 때문에 라케드의 심기를 거슬렸는지 알 수 없어 일단 입을 다물고 시오의 등 뒤에서 눈치만 보았다. 방패가 되어 준 시오는 도망가고 싶어도 미레아가 꽉 붙들고 안 놓는 바람에 도망갈 타이밍을 놓쳤다. 라케드는 짜증스럽게 팔을 휘저었다.

“시오 미도르, 비켜!”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미레아 제인스터가 저를 놔주지 않습니다.”

“미레아 제인스터, 좋은 말 할 때 이리 와!”

“히익!”

미레아가 움찔 몸을 떨자 라케드는 들고 있던 서류철 뭉치를 원통으로 말아 쥐더니 그걸로 시오와 라일라, 미레아의 머리를 차례대로 내리쳤다. 그들은 아프다기보단 서러워서 악악거리며 맞았다. 라케드는 아리스도 후려갈기려다 이를 악물고 꾹 참은 후 부들거리는 손을 거두었다.

얻어맞은 자리를 문지르며 의문 가득한 얼굴로 라케드를 보자 아직도 분이 덜 풀린 그는 검지로 셋의 이마를 꾹꾹 눌렀다.

“야, 빡대가리 3인방!”

아리스를 제외하고 셋만 싸잡는 것을 보니 라케드는 미레아에게만 화가 난 게 아닌 것 같았다.

“특히 미레아 제인스터! 내가 너 제정신 탑재하랬지?! 어?! 그 말 들은 지 지금 며칠이나 지났다고 이 난리야?! 이번에도 또 시정 운운하면서 내 비위 맞출 생각 하지 마라? 내가 너 한두 번 봐준 것도 아니고!”

미레아는 라케드가 자신을 봐준 기억이 없어서 억울했다. 제발 뭐를 잘못했는지 알고나 혼나고 싶었다.

“너희도 똑같아, 너희도! 말리지는 못할망정 부추겨?! 제정신이야?! 이놈이 제정신이 없으면 너네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세 놈이 똑같아?! 시오 미도르! 넌 제인스터보다 선배 소리 들으면 더 나은 점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리고 라일라 퍼블킨즈! 너 내가 임의로 루…… 이놈이랑 접촉하지 말랬지? 공사 구분 못 해?!”

라케드가 한바탕 그들에 대한 불평불만을 줄줄 나열하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아직도 도화선이 된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시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라케드 님.”

“닥쳐!”

“네.”

시오는 괜히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관리 대상 1호!”

아리스를 그렇게 지칭한 라케드가 이번엔 그에게 버럭 했다.

“협조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협조하란 말이다! 상황 꼬이게 만들지 말고!”

다른 셋과 달리 라케드와는 그저 동맹 관계인 아리스는 라케드가 자신을 띠꺼운 표정으로 보자 그 역시 띠꺼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고분고분 따르는 중이잖아요.”

아리스는 결국 라케드에게 머리통을 얻어맞았다.

“연무장에서 칼부림하란 소리는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눈에 띄고 싶어서 안달 났지?! 그냥 광장 한복판에 가서 날개 꺼내고 비행하고 오지 그러냐!”

그제야 그들은 라케드가 왜 화났는지 알 수 있었다.

“대련 좀 했기로서니…….”

미레아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라케드가 그녀의 머리통을 한 번 더 후려쳤다.

“네가 연무장에 나타나면 죄 구경하러 몰려오잖냐! 내가 관리 대상 1호는 최대한 조용히 일 진행하라고 했던 말이 네 뇌에 기록은 되어 있냐? 아예 사람들 앞에 전시하지 그래?!”

그들끼리 아리스의 정체를 함구해야 하니 남들 앞에서 마법은 쓰지 말자 한 조치는 라케드에게는 안이한 생각이었나 보다.

“이제 뭐가 문제인지 알았냐? 대가리는 쓰지도 않는데 무겁게 왜 달고 다니냐?”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셋은 마지못해 굽실거리며 라케드의 비위를 맞췄다. 라케드는 한동안 씨근덕거리더니 뒤늦게 용무를 꺼냈다.

“아무튼, 그렇지 않아도 불러 모아야 했는데 마침 한자리에 있던 것은 긍정적이네. 따라와. 너희 모두.”

말은 저렇게 해 놓고 저 뒤끝 심한 용한테 끌려가서 고문당하는 게 아닌가 하고 그들은 몇 초 고민했지만 고민한다 해서 이 상황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아 잠자코 라케드의 뒤를 따랐다.

라케드는 그들을 구관으로 인도했다. 먼지 냄새 나는 복도를 지나 도착한 곳은 시설이 낡고 규모가 작아 잘 안 쓰는 회의실이었다. 안에는 리비엘로와 쿤둘렌이 먼저 와 앉아 있다가 문이 열리자 그들을 돌아봤다. 미레아는 리비엘로를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리비가 왜 있어?”

“그렇게 되었어.”

“쿤둘렌, 오랜만입니다.”

미레아와 시오가 손날로 자신의 이마를 두 번 가볍게 치며 오빈식 인사를 했다. 쿤둘렌 역시 같은 동작으로 그들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그리고 아리스에게도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루아드 제국의 대공자 전하를 뵙습니다. 쿤둘렌입니다.”

“그 신분은 옛날 옛적에 폐위되었습니다. 지금은 아리스 클라인셔드입니다.”

역시 정중한 어투로 말하는 아리스를 향해 쿤둘렌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는 인간 중에서 키가 큰 시오보다도 훨씬 컸고 무엇보다 덩치가 매우 컸다.

오빈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위협적으로 큰 한 쌍의 뿔은 한 바퀴 원을 그리며 위로 뻗어 있었고 근육이 우락부락한 사람이었다. 반면 얼굴은 상당히 단정했는데 적갈색과 흰색이 섞인 머리카락과 수염은 가지런히 빗어 정리되어 있었다.

지정석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각자 자유롭게 모여 앉았다. 노닥거리자니 라케드의 눈치가 보여 어색한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두 사람이 추가로 들어왔다. 파울로가 손을 흔들며 먼저 들어왔고 그 뒤로 세피로스가 들어와 문을 닫았다.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회의실 안에 보안 마법이 작동했다. 세피로스는 눈으로 사람의 머릿수를 세더니 수가 맞는 것을 보고 상석에 앉았다.

“이 중에 서로 초면인데 아직 인사 안 한 사람 있나?”

사람들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자 세피로스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좋아. 클라인 원정대 1차 회의를 하도록 하지. 1차 선발 인원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루데키아스 레민나 류 파니드라우를 포함하여 파울로 리마, 쿤둘렌, 시오 미도르, 미레아 제인스터, 라일라 퍼블킨즈, 리비엘로 람, 라케드. 이렇게 8명이다.”

라케드가 껴 있단 말에 사람들이 숨을 작게 들이켰다. 순식간에 사기가 저하된 것을 눈치챈 세피로스가 덧붙였다.

“라케드는 임시다. 용족 중 하나가 동행하긴 해야 하는데 아직 적합자를 못 찾아서 당분간 라케드에게 위임할 생각이다.”

사람들은 세피로스가 부디 하루빨리 다른 적합자를 찾기를 응원했다.

“원정대 대장은 파울로 리마로 정하겠다. 이번 일의 마도 공학 기술 관련 자문에 관한 것은 전부 라일라 퍼블킨즈가 담당한다. 그리고 람 군은 퍼블킨즈 군과 상의 한 결과 기술상의 문제로 동행하게 되었다. 서리교 신녀 중에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으니 아마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

리비엘로가 어깨를 으쓱였다.

“쿤둘렌은 마법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담당하도록. 미레아 제인스터, 시오 미도르, 자네들은 파울로 리마와 더불어 이들의 호위다.”

아리스는 그제야 쿤둘렌이 마법사란 것을 알고 놀랐다. 그야 쿤둘렌은 겉모습만 보면 마법사라기보단 잘 훈련된 무투가라 불려도 손색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현재 1차 선발 인원 이외에 별동대가 있다. 라슈발렌 전투부는 대인 부대다 보니 마수에 대한 경험이 적어 그에 대한 보충 인원이다. 도중에 합류할 것이고 그전까지 그들의 신원은 비밀에 부치겠다. 여기까지 질문 있나.”

좌중이 침묵하자 세피로스는 아리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루데키아스. 아리스라 불러 달라니 앞으로 그리 부르겠다. 네게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더군.”

아리스가 질문하란 의미로 고개를 까닥였다.

“현재 마검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고 있나?”

“모릅니다.”

그 말에 다들 그걸 네가 모르면 누가 아느냐는 표정으로 아리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리스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클라인의 암흑 지대 어딘가엔 있겠죠.”

라케드가 조용히 침음을 삼켰다. 그러나 오히려 세피로스는 예상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이거다. 마검 페니드란의 위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왜요?”

미레아가 질문을 세피로스에게 했으나 대답은 아리스 쪽에서 들려왔다.

“지금 페니드란은 한자리에 있지 않아. 계속 이동하고 있어. 페니드란이 마수에게 잡히는 순간 마력이 고갈되며 봉인 결계가 깨질 거야. 그래서 일부러 위치를 계속 바꾸도록 마법을 걸어 놨어.”

“그럼 황제는 무슨 수로 찾으려 그랬답니까?”

파울로의 말에 세피로스가 답했다.

“어차피 마수 토벌 대상이었던 땅이니 분획을 나눠 토벌하다 보면 발견할 수 있지 않겠나. 하지만 우리는 인원도 그들보다 적고, 떠들썩하게 움직일 수도 없으니 같은 방법을 시도했다간 상대방에게 선수를 뺏기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마검의 위치도 모르는데 하늘에서 암흑 지대 한가운데에 뚝 떨어질 수도 없지. 애초에 그곳은 루아드 영공이다 보니 협회 소속의 비공정을 띄울 수도 없고.”

“별동대가 있다면서요. 우리도 일단 들어가서 탐색하는 게 아니었어요?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마검을 어떻게 찾아요.”

“내가 마수 대비 별동대를 준비했지만, 그들과 합류한다 해도 이 인원으로 암흑 지대로 들어갔다간 3일 버티면 잘한 거지.”

“라케드가 있잖아요.”

미레아의 말에 라케드가 콧방귀를 꼈다.

“내 한 몸 건사하는 건 어떻게 하겠는데 짐을 주렁주렁 달고 그 안에서 3일 동안 버틸 자신은 없다.”

마수에 의해 자연계의 영소들이 오염된 지역은 마수만 해결되면 자연적으로 정화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영소가 완전히 고갈된다면 그 지역은 오염의 단계를 넘어 부식에 이르게 된다. 부식이 진행된 땅에서는 생명력의 근원인 정신계 물질이 없다 보니 생명이 자랄 수 없을뿐더러, 세계의 물리법칙마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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