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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따라 종말까지-6화 (6/257)

6화.

“그게 무슨 태평한 소리야? 그리고 네 말은 꼭 서리교 기사들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소리로 들리는걸.”

“이야기가 복잡한데 지금은 이 일부터 처리하고 넘어가자고. 그리고 저 사람들, 네가 데르카이드란 것만 알고 본명은 모르는 것 같던데. 알고 있다면 고작 기사 20명을 끌고 왔을 리 없지.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렇다면 굳이 입막음으로 죽일 필요는 없지 않아?”

그 말에 아리스의 눈이 커졌다.

“너는?”

“나는?”

“너는 내 이름, 알아?”

그 물음에 미레아는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으며 미소를 지었다.

“모른다면 내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지.”

미레아가 가벼운 어투로 대답하자 아리스는 미레아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말과 행동이 너무 경솔한 거 아니야?”

흉흉한 살기를 뿜어내는 상대방에게 겁먹은 기색도 없이 미레아가 되물었다.

“나도 죽일 거야? 입막음으로?”

미레아는 검이 닿은 쪽으로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였다. 그 바람에 얇은 피부가 살짝 베였다.

“뭐 하는 거야?”

“그럼 죽여 봐. 어떻게 되나 보게.”

아까와는 달리 무서울 정도로 미레아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못 할 것 같아?”

“아니. 당신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 해 봐.”

“목숨이 안 아까워?”

“아까워.”

“그런 것치고 겁이 없는걸.”

“음…… 이건 내가 아직 확신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상황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미레아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항간에 도는 소문이나 내가 알고 있는 정보 속에 있는 네가 아닌 실재의 너는 어떤가 궁금했어. 너는 어떤 생각을 할지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할지 알고 싶어.”

아리스는 감람석처럼 빛나는 그 눈빛에서 일순 광기가 스치는 것을 보았다.

“난 네 호기심이나 채워 주는 사람이 아니야.”

“알아. 하지만 우린 이렇게 만났잖아? 그리고 너는 내 이름을 알고, 나도 네 이름을 알지. 그렇다면 앞으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다른 관계가 될 수도 있는 사이란 소리야. 만약 네가 나에게 호기심을 갖는다면, 난 기꺼이 거기에 응해 줄 수 있어. 그러니까 내 호기심만 채워 주는 것 같이 느껴지면, 너도 내게 호기심을 갖도록 해 봐.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물어보라고.”

미레아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덧붙였다.

“이건 내 권리 중 하나라고 생각해.”

“권리?”

“그래, 권리.”

미레아의 당당한 태도에 아리스는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

“하, 그런 권리를 누가 줬지?”

“네가.”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에 아리스는 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리스가 잠시 말이 없는 틈을 타 미레아는 하던 이야기를 마저 이었다.

“자, 그런 의미에서 나의 첫 번째 궁금증. 아리스, 당신은 미레아 제인스터를 죽일 것인가요?”

“…….”

“그렇게 어렵지 않아. 당신은 나를 죽인다, 죽이지 않는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해. 그렇다면 해답은 내가 내릴게. 설령 나를 죽인다는 선택을 해도 내가 진짜 죽는 건 아닐까 걱정하진 마. 난 그렇게 호락호락 죽지 않아.”

역시 이 자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아리스는 쓸개라도 씹은 것 같은 얼굴로 검을 거두었다. 이대로 대화를 이어 나가 봤자 자신만 손해를 볼 것 같았다.

“좋아. 계획이 뭔지 들어나 보자.”

아리스의 선택이 만족스러웠는지 미레아는 표정을 풀고 눈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숲을 가리켰다.

“퇴로를 확보해 줄 수 있다고 했잖아.”

그 말에 아리스가 한쪽 눈썹을 씰룩거렸다.

“이 상태로 마수의 숲이라도 넘으라는 소리야?”

“저 숲을 넘는 건 맞는데 이 상태로는 아니야. 어차피 저들은 마수는 신경 쓰지 않고 추적할 거야. 성기사들이니 오히려 저쪽이 우위지.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 쪽에 유리하게…….”

미레아의 설명을 끊고 아리스가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전부 죽여 버리면 되는데 왜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머리를 써야 해?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잖아.”

“성기사 20명을 전부 죽인다고?”

아까부터 똑같은 말만 돌아오자 미레아가 짜증 난 목소리로 대꾸했다.

“내가 누군지 안다면서.”

그 말에 미레아가 아리스를 노려보았다.

“내가 누군지 알면 고작 성기사 20명 정도는 문제가 안 된다는 것쯤은 알 텐데?”

“착각하고 있나 본데, 일단 내가 혼자 여기까지 온 이유는 당신 때문인 건 맞아. 하지만 단순히 당신을 돕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야. 당신이 이런 식으로 사고를 칠까 봐 막으러 왔다고.”

“뭐라고?”

“내 임무는 저들을 따돌리고, 당신을 무사히 빼내는 거지 성기사 20명을 학살하는 게 아니거든?! 게다가 나는 이 일이 더 커지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는 쪽이 좋단 말이야!”

미레아가 손가락으로 아리스의 가슴 정중앙을 쿡 찔렀다.

“당신은 20명을 죽일 힘이 있지만, 죽이지 않을 힘도 있어. 나를 죽이지 않기로 했으면 후자를 택해.”

“그렇지 않아도 그 결정이 조금 후회가 되려 하고 있어.”

그들은 서로 눈싸움을 하다 미레아가 몸에 둘러메고 있던 것을 풀어 놓으면서 대치가 깨졌다.

“난 저들의 계획을 알아. 그리고 나도 계획이 있어.”

미레아가 메고 있던 것은 석궁 같은 모양의 기계장치였다. 아리스가 그것을 제대로 살피기도 전에 하늘에 빛으로 된 기둥이 치솟았다. 그것은 신성력이었다. 빛의 기둥 주변으로 퍼진 술식은 마수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고 있던 신성력 위에 막을 씌우듯 겹겹이 쌓이며 이내 두꺼운 벽처럼 되었다.

“그러니까…… 네가 마법을 쓸 수 없게 신성력으로 마력의 흐름을 억지로 제어하는 마력 간섭 결계를 펼쳐서 마을을 봉인할 거란 게 저들의 첫 번째 계획이었지…….”

그것을 올려보며 말꼬리는 흐리는 미레아에게 아리스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좀 빨리 말하지 그랬어.”

“댁이랑 입씨름하느라 그런 거니까 원망은 자신에게 하지 그래. 내 첫 번째 계획이 저것부터 막는 것이었거든!”

아리스는 양손에 마력을 모았다. 몸에 있던 마력을 끌어내니 모이기는 했지만, 술식으로 바뀌지 못하고 다시 흩어졌다. 아리스는 혀를 쯧 찼다.

“지금 마법도 못 쓰는데 설마 저것들이랑 정면 대결이라도 할 생각은 아니겠지.”

“괜찮아. 제2 안으로 넘어가면 돼!”

“제2 안?”

귀를 때리는 총소리가 나더니 속닥거리고 있는 둘 사이에 총알이 날아와 박혔다.

“찾았다!”

소총을 든 기사 중 하나가 다른 무리에게 외치는 것과 미레아가 그의 코앞에 나타난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기사가 눈치챘을 땐 그의 소총은 이미 미레아의 검에 의해 두 동강이 나 있었다.

그리고 소리 없이 움직인 아리스가 등 뒤에서 기사의 다리를 베었다. 땅에 엎어진 기사의 어깨뼈를 피해 아리스의 검이 관통하더니 땅속까지 칼날이 박혔다. 기사는 격렬한 통증에 비명을 질러 댔다.

“안 죽였어.”

아리스는 무덤덤한 얼굴로 미레아에게 말했다. 미레아는 게거품을 물고 기절하기 직전인 기사를 보며 마른세수하였다.

“아니, 그, 죽이지 말라고 했지만 이런 건…….”

“그럼 어떡해. 큰 동맥은 피해서 찔렀어. 치료만 제때 받으면 안 죽어.”

미레아가 무어라 더 말하기 전에 기사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땅에 쓰러진 동료를 보더니 살기를 내뿜으며 덤벼들기 시작했다.

“이놈이!”

“정면 돌파하게 생겼는데?”

아리스가 미레아에게 툴툴거렸지만, 미레아는 대답하지 않고 달려 나갔다. 가장 먼저 달려든 기사의 검을 왼손의 검으로 받더니 그대로 오른손의 검 손잡이 끝으로 명치를 때려 쓰러트렸다. 그리고 바로 두 번째 기사의 검을 흘려보내고 관절기를 걸어 팔꿈치 관절을 탈구시켰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아리스에게까지 들렸다.

“자기는 더 하면서 왜 나한테 그래?”

아리스가 어처구니없어서 중얼거릴 때 미레아는 세 번째 기사의 오금에 자신의 검을 찔러 넣고 그가 든 소총을 멀리 걷어차는 중이었다. 아리스는 그녀가 혼자서도 잘 싸우길래 이대로 뒷짐 지고 구경이나 할까 했는데 뒤에서 기척이 느껴져서 고개를 꺾어 검을 피했다. 그리고 자신의 검으로 상대방의 팔을 베었다.

아리스는 뒤이어 오는 검과 몇 합을 주고받았는데 그의 낡은 검날이 쨍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깨졌다. 질도 좋지 않은데 낡기까지 한 검이다 보니 아무리 검기로 보강한다 해도 검신 자체가 위태위태했었다. 거기에 다른 강한 검기와 계속해서 맞닥뜨리니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손된 것이었다.

“아, 이런 고물이 이럴 때 도움이 안 돼!”

아리스는 쓸모없어진 검을 얼른 버렸다. 덕분에 맨손으로 기사 셋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이상하게 위기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이거 써!”

미레아가 자신의 소총을 아리스에게 던졌다.

“나 사격은 소질이 없는데!”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으니 얼른 총알을 장전하여 제일 앞에 있는 기사를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다. 연사한 세 발 모두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안 맞잖아! 검으로 달란 말이야!”

다시 적을 제대로 조준하는 것은 시간만 뺏기는 비효율적인 짓거리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아리스는 개머리판으로 기사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아리스와 미레아가 여러 명과 뒤엉켜 싸우는 통에 기사들은 총을 쏠 수 없었다. 이런 개싸움에는 아군이 휘말릴 수 있으니 검을 빼 들고 덤벼들었다.

아리스가 숨을 돌리니 대략 열이 넘은 기사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미레아는 거친 숨을 고르며 멀쩡하게 서 있는 아리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발아래 얼굴뼈가 함몰되어 피떡이 된 기사를 내려 보며 미레아가 진심으로 궁금하단 얼굴로 물었다.

“대체 낮에는 왜 소총을 들고 있었어?”

“만약의 사태란 게 있으니까.”

미레아는 자신의 쌍검 중 하나를 아리스에게 건넸다.

“난 예비용 검이 따로 없어. 내 검기에 감응된 상태라 네 검기는 못쓰겠지만 잘 쓰고 꼭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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