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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따라 종말까지-4화 (4/257)

4화.

“저쪽은 우글거리는데 그쪽만 혼자잖아요. 꼭 따돌리는 것 같아서 모양새가 안 좋다고요.”

“그나저나 생명의 은인에게 그쪽이 뭐예요? 서로 통성명한 사이인데 이름이라도 부르던가.”

“언제부터 그쪽…… 미레아가 제 생명의 은인이 된 거죠.”

“결과적으로 제가 구해 준 건 구해 준 거잖아요. 그보다 말한 대로 난 혼자 알아서 하고 있으니 교단 쪽 사람들 먼저 챙기는 게 좋지 않아요? 어째 저 신녀님 혼자 일하고 있는데요.”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먹고 있겠죠.”

그렇게 말하며 아리스는 교단 사람들의 수를 어림잡아 보았다. 무장한 이들만 해도 15명. 그 밖의 인원이 5명 남짓. 도합 20여 명. 마수의 숲을 지난다고 대비를 철저히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쪽은…….

“고작 밥 하나 혼자서도 못 먹으면 그게 애지 어른이에요?”

미레아가 허리춤에 찬 한 쌍의 검을 벨트 채 풀어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편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리스는 미레아의 검을 힐끔 보았다. 자신도 검을 주로 쓰긴 하지만 숲에 들어갈 때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총도 들고 갔다. 고물이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오염된 마수 숲을 혼자 통과한 마당에 밥을 혼자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로 혼자 먹게 방치하면 도의가 아니다. 특히 마이련은 손님 대접을 철저히 하는 문화권이다. 미레아가 혼자 먹겠다고 한다면 마을 사람들은 실망해서 전부 대성통곡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뭐, 그것과는 별개로 이 나라 음식은 맛있으니까 주신다면 감사히 먹도록 하겠습니다.”

미레아는 숟가락과 그릇을 받아 들고 짧게 인사하더니 음식물을 입안으로 부지런히 나르기 시작했다.

“언제 돌아갈 건가요?”

미레아는 얼른 입안의 것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교단 사람들이 이동할 때 같이 이동할 생각이에요. 아까 얼핏 들으니 오늘은 늦어서 내일 이동한다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기서 혼자 돌아가겠단 소리는 안 하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아리스는 왜 자신이 굳이 나서서 저 사람의 안위를 대신 걱정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긴, 이 시간에 혼자 움직이면 위험하기도 하고…….”

“그리고 교단이랑 같이 움직이면 저는 가만히 있어도 저 사람들이 알아서 해 주니까 완전 이득이죠.”

“안 친하다면서요.”

“안 친하니까 이러는 거죠. 친한 사이라면 서로 도와주고.”

미레아가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밤 묵을 곳은 있어요?”

“저 아무 데서나 잘 자요.”

이 사람이 또 대책 없는 대답을 한다.

“적당한 곳에서 묵고 가요. 여기가 이래 보여도 손님 대접이 시원치 않을 만큼 각박한 마을은 아니거든요. 뭣하면 우리 집에서 묵고 갈래요? 사람 하나 누우면 꽉 차는 방이지만…….”

“그렇게까지 폐를 끼칠 수야 없지요. 그리고 제가 거기 묵으면 아리스는 어디서 잘 건데요? 저는 트럭 짐칸에 침낭을 깔고 자면 돼요.”

음식을 깨끗하게 비운 미레아가 식기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그리고 비슷한 속도로 그릇을 비운 아리스에게 다시 물었다.

“아리스는 여기서 주로 무슨 일을 하세요? 외지 사람이라 자리 잡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음…… 주로 숲에서 사냥하거나…….”

짧게 대답하니 그 이상은 할 말이 없었다. 아리스가 이 마을에서 하는 일들은 대단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먹을 식량만 조달할 뿐 다른 생산적인 일은 하지 않았다. 그저 마을에 힘을 쓸 사람이 필요하면 잠시나마 도움을 주거나 할 뿐이었다.

그럼 그 대가로 쌀 같은 것을 받았다. 그것은 혼자 그럭저럭 건사할 만큼의 양은 되었다. 처음 이 마을에 들어왔을 땐 심심풀이 삼아 마을 어린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이런 곳에서 필요한 지식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것도 오래 못 가 그만두었다.

한마디로 백수 상태인 아리스는 그냥 뒷말을 생략하고 침묵했다. 그것을 미레아도 이해했는지 그 부분은 깊게 묻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여기서 오래 살았어요?”

“아니요. 그냥 한 계절만 날 생각으로 지내고 있었어요.”

“그래요? 여기는 이제 가을인데…….”

“그렇군요. 슬슬…….”

아리스의 계획대로 한 계절을 났으니 조만간 이 마을을 떠날 때가 되었다.

“떠날 거예요?”

아리스가 삼킨 뒷말 대신 미레아가 물었다.

“그럼 내일 저랑 동행할래요?”

“싫은데요.”

아리스는 칼같이 끊어 내었다. 하지만 미레아는 실망한 기색도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리스는 미레아의 빈 그릇까지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레아가 따라 일어났지만, 그냥 쉬라는 의미로 손을 까닥거렸다.

“다시 말하지만, 밖에서 자지 말고 어딘가에 묵어요.”

“호의를 굳이 사양하고 싶은 건 아닌데 제 트럭에 남아 있는 짐이 좀 중요한 거라. 그냥 두긴 불안해요.”

그렇게 말하니 아리스 역시 더 권하지 않았다. 미레아는 손을 흔들며 외진 곳에 세워 둔 자신의 트럭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 * *

밤이 깊어지고 오랜만의 외지 손님으로 들떴던 마을도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깊은 어둠 속에서 마수가 우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아리스는 불을 끄고 이부자리에 누웠지만 잠들지는 않았다. 몸을 옆쪽으로 돌려 웅크리고 혼자 상념에 젖었다.

“국경 지대로 갈까…….”

아리스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색의 스파크가 튀었다. 그는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 나갔다.

“차라리 오염된 지역을 따라가면 귀찮은 일은 안 생기지 않을까.”

스파크가 손가락 사이를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옮겨 다녔다. 아리스는 그것을 멍하니 보며 생각했다.

“마력만 잘 숨기면 신성력 결계가 없어도 제법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리스는 지금 이 마을을 떠난 후의 뒷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세상과 단절된 사이 오염 지역이 어떻게 변했을지 정보가 적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번에 온 서리 교단 사람들에게 외부 소식을 얻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여러모로 외부의 정보가 필요했다. 여전히 동행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시 의문이 떠올랐다.

하필이면 라슈발렌과 서리 교단이 동시에 이 마을에 온 것이 정말로 우연일까? 아리스는 그들에게 다른 노림수가 있지 않을까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아까 미레아에게도 했던 말이지만 정말로 떠날 때가 된 것 같았다.

똑똑똑.

그때, 누군가 아리스의 집 문을 두드렸다. 그렇지 않아도 누군가 자신의 집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던 그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이 시간에 그를 찾을 사람은 없었으니까.

“아리스, 있어요?”

밖에서 리젤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세 번 정도 노크했다.

“혹시 계신다면 밤중에 실례지만, 잠시만 볼 수 있을까요?”

문과 다른 쪽으로 난 창문에 얼핏 그림자가 스쳤다. 목소리는 신녀뿐이었지만, 기척은 신녀 혼자가 아니었다. 필요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나 교단 사람들이 동행했을 수도 있었다. 정말 무슨 일이 있어서 찾아온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아리스는 침대 밑으로 손을 뻗어 조용히 검을 집었다. 그리고 소리 없이 몸을 굴려 침대를 벗어나 몸을 낮췄다.

똑똑똑.

노크 이후 잠시 말이 없던 리젤의 발소리가 문에서 멀어졌다. 아리스는 천천히 심호흡했다. 리젤의 기척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검 자루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느슨하게 풀었는데, 창문이 깨지면서 쇠공 같은 것이 집 안으로 굴러 들어왔다.

“젠장?!”

안전한 곳으로 되받아치기에 늦었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아리스는 손으로 머리를 가렸고 그와 동시에 수류탄이 터졌다. 폭음에 작게 이명이 울렸다. 벽과 가구에 파편이 날아와 박히고 문은 밖 쪽으로 뜯겨 나갔다. 평범한 인간이 무방비한 상태로 폭심지 바로 앞에 있었다면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흙먼지가 가라앉자 아리스는 사지가 멀쩡한 모습으로 잔해를 털며 일어났다.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방패처럼 펼쳤던 그의 마력이 흩어지면서 오른손 주변으로 마력의 파편이 파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그는 팔을 털어 아직도 힘의 연쇄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마력을 분산시켰다.

“무슨 짓이야? 내 옷이 엉망이 되었잖아.”

아리스는 몸을 가리고 있던 오른쪽 부분이 거의 날아가 너덜거리는 상의를 보고 혀를 쯧 찼다. 아리스의 말을 익숙한 목소리가 받았다.

“아, 역시.”

리젤은 문이 저 멀리 날아가고 남은 문틀 옆쪽으로 비껴 서서는 차가운 눈으로 아리스를 노려보았다.

“단순한 검사가 아니고 마법을 쓸 수 있군요?”

리젤을 지나 남자 둘이 검을 들고 아리스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을 상대하는 대신 아리스는 깨진 창문을 넘어 밖으로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집 밖은 무기를 든 사람들로 포위당한 상태였다. 예고도 없이 아리스의 옆쪽으로 검이 날아왔다. 아리스는 등 뒤에 숨기고 있던 검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그와 검을 맞대고 있는 자는 아까 저녁 식사를 하던 서리 교단 무리 중 얼핏 스쳐 지나간 기억이 있는 얼굴이었다. 그것을 쳐 내자 또 다른 곳에서 검이 날아왔다. 검을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와중에 예기치 못한 곳에서 검이 파고들었다. 아리스는 몸을 뒤로 물려 피했다.

“저기, 잠깐, 신녀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서리교 인사 방식이 자는 사람 집에 다짜고짜 폭탄을 던지고 칼침 놓는 것으로 바뀌었나 봐요?”

사방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검들을 쳐 내며 아리스가 리젤에게 말했다.

“그런데 난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걸.”

그리고는 검기를 실은 검을 크게 휘둘러 몇 자루의 검을 동시에 쳐 냈다. 사람들이 견제하며 한발씩 물러나서 대치 상태로 변하자 리젤이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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