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설레게하는 그대-92화 (92/94)

92. 나를 설레게 하는 그대.

2018.10.21.

“아들. 너니까 내가 특별히 주는 거야. 이거 아무나 주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승현은 제 밥에서 콩을 골라내 준수의 밥에 놓아주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고 천연덕스러운지 자칫 정신줄 놓으면 진짜인 줄 알겠다.

“나 콩 싫은데?”

“아냐. 먹어야 돼. 이거 완전 좋은 단백질이라고. 너 아빠처럼 쫙쫙 갈라지는 복근 가지고 싶지? 백날 윗몸 일으키기 해봐라. 생기나. 이거 먹어야 생기는 거야.”

하지만 문제는 나이답지 않게 준수가 너무 영악하다는 것.

“그럼 나 콩 말고 두부 먹을래. 두부도 콩으로 만들었잖아. 아빠가 내 거 콩 다 먹고, 나는 아빠 거 두부 다 먹을게.”

그렇게 말하며 준수는 승현의 그릇에 있는 두부를 몽땅 걷어와 제 그릇에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승현이 골라 놔준 콩과 더불어 제 콩까지 그의 돌솥 밥 위에 놔두는 모습에 승현의 이마에 실핏줄이 돋았다.

“이 자식이…….”

결국 빛나가 나서 중재를 하지 않으면 모처럼 좋은 자리에서 아들과 아빠가 싸우는 못 볼꼴을 보이고 말 것이다.

“둘 다, 동작 그만.”

빛나의 중저음에 준수가 눈치를 보며 수저질을 멈추었다.

“잘들 한다. 아빠나 아들이나…… 어쩜 그리 똑같아?”

“얘가 내 사랑을 무시하잖아.”

“아빠가 나를 너무 사랑해.”

그녀의 물음에 일분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두 사람의 입에서 대답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이거야 원, 누구 말이 진실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빠가 아들을 너무 사랑하는 모습인지, 아니면 아들이 아빠의 사랑을 무시하는 모습인지.

뭐, 전자든 후자든 상관없다.

문제는 결론적으로 두 사람의 모습이 빛나의 혈압을 위험 수치까지 올리고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밖에 나와서 또 싸우면 정말 가만 안 둘 거야. 둘 다 콩 반으로 나눠 먹고 두부도 반으로 나눠 먹어. 사이좋은 아빠와 아들처럼. 자, 실시.”

결국 어쩔 수 없이 퉁퉁 불은 얼굴로 승현과 준수는 사이좋게 두부와 콩을 나눠 먹어야 했다.

그 모습도 어찌나 똑같은지, 보는 빛나는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어머, 세상에나…… 아들이 그냥 아빠를 쏙 뺐네.”

하지만 두 사람의 훤칠한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할 때면 빛나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세상에 이 두 남자만 있다면 그녀가 못 할 게 없을 것 같다는 무모한 용기와 함께.

식사를 무사히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준수는 어느새 제 자리를 찾아 차의 뒷좌석에 착석을 한 상태였고 승현은 그녀가 오길 차 문을 열어 놓고 기다렸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그 그림 같은 풍경 아래 두 남자의 모습은 그녀에게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두 사람의 감정만 잘 조율한다면 결혼 이래 처음으로 하는 이번 가족 여행은 두 번 다시없을 완벽한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 전화가 왔다.

핸드폰을 바라본 빛나는 눈썹 끝을 구겼다.

받고 싶지 않은 이로부터 온 받고 싶지 않은 전화였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유변! 지금…… 제정신이야?]

“어따 대고 반말이세요, 조 검사님?”

현성이었다.

핸드폰 저편의 현성은 숨이 꼴깍 꼴깍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아마 바로 지금 이 순간 그녀가 형주의 새로운 변호사라는 사실을 전해들은 모양이다.

[유변 집 식구들은 도대체 왜 그러니? 나 피 말려 죽일려고 작정했어?]

“피 말라 죽으면 안 되지, 내 계획은 그게 아니라 미인계에 너 눈멀어 죽게 만드는 건데.”

[야! 유변! 내가 지금 장난하는 걸로 보여?]

“나도 지금 굉장히 진지하거든.”

[포기해.]

“포기? 너 지금까지 상대 변호사들한테도 이런 식으로 말했니?”

[유변 이력에 좋을 거 하나 없어.]

“내가 이력으로 따져 먹고 사는 변호사질은 3개월 전에 관둬서 말이야. 아쉬울 게 없거든.”

[야!]

“네가 포기해.”

[내가 포기할 수 있었음, 유변 이름 듣는 순간 포기했어! 그리고 유변은 이런 재판 경험 많이 없잖아? 전적으로 불리하다고!]

“불리해? 내가 전적으로 불리한데 이렇게 전화까지 해서 벌벌 떠나? 속보여, 조검.”

[아악, 진짜! 그 인간이 저지른 불법적인 일만 수십 개야! 내가 너그러우니 20년형이지 종신형감이라고!]

“참나, 너그러운 게 뭔지 모르는 모양이군. 조검은 너무 인정머리가 없어서 탈이야. 사람 냄새가 안 나. 물론 우리 일이 잘못된 사람들 벌을 주는 일이기도 하지. 하지만 더불어 그 사람들이 새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것도 우리 몫이라 생각해. 그 사람이 과거 잘못된 일을 저지른 건 맞지만 바로 살 의지만 있다면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어?”

[좋아. 15년.]

“웃기네.”

[10년. 그 이상은 안 돼!]

“법정에서 보자고.”

빛나는 단호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조현성은 지금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숨소리만으로도 현성이 게거품을 물고 꼴깍꼴깍 넘어가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래. 애가 좀 탈 것이다.

그녀를 법정에서 만나리라곤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조현성이었기에.

[유변, 우리 그러지 말고 만나서 이야기할까? 지금 어디야? 내가 갈게. 응?]

이번엔 회유책이다.

어떻게든 법정에서 빛나와의 만남은 피하려는 현성의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의 보람도 없이 현성은 제 뜻을 전달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이 새끼가, 미쳤나! 네가 뭔데 남의 마누라를 만나려고 난리야? 정신 나갔어? 유빛나 이젠 공식적으로 내 여자라는 거 몰라? 공개 구혼 한번 더해?”

승현이었다.

기다리다 못한 그가 다가와 빛나의 핸드폰을 낚아채 거두절미하고 뒷말만 들은 것이다.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빛나 때문에 조마조마했던 현성의 혈압이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야! 위승현! 내 말은 그 말이 아니잖아!]

“남의 마누라한테 사적으로 전화하지 마. 알지? 나 돌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

[내 말 좀 들어보라고. 이번에 유변이 맡은 사건 말이야. 새 증인이 나타났다는데…… 그래봐야 고생이야. 게다가 유변은 이런 형사 소송 경험도 거의 전무하잖아. 네가 유변 잘 설득시켜서…….]

“나야.”

[뭐?]

“그 새 증인, 나라고 이 새끼야. 그러니까 법정에서 딱 기다리라고 이 새끼야.”

[뭐…… 뭐시라? 새 증인이 너…… 라고?]

새 증인이 그라는 사실만으로도 현성에겐 충분히 버거운데 거기에 승현은 한마디 더 했다.

“더불어…… 법정에서 섹시한 우리 빛나 곁눈질하다가는 너는 재판도 못 받아보고 내 손에 뒤진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야! 나도 눈이 있는데 어떻게 안 쳐다 보냐! 그렇다고 재판을 눈감고 해?]

“그건 네가 알아서 할 문제고. 법정에서 눈알 잘 굴려라. 잘못 굴리다 나한테 딱 걸리면…… 확, 눈깔을 파뿔라!”

그 말에 빛나가 통쾌하다는 듯 그의 팔을 때리며 키득 키득 웃었다.

전화는 승현이 받고 있었지만 현성의 혈압 터지는 소리는 곁에 있는 빛나에게도 들려오는 듯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현성은 거의 죽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빛나에게 지면 개망신, 이겨도 삶이 평탄친 못하니 그야말로 막다른 길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핸드폰 저편으로 현성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아악-악! 진짜, 이것들이! 니들은 전생에 나랑 무슨 웬수가 졌냐? 응?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에! 으-아-악!]

하지만 현성이 그러거나 말거나, 전화를 끊어버린 승현은 웃고 있는 빛나를 보고는 애교스럽게 말했다.

“나 잘했지?”

이런 남자를 어찌 칭찬해주지 않을 수가 있겠나.

빛나는 예뻐 죽겠다는 듯 그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팔짱을 끼었다.

“아휴, 예뻐 죽겠어. 진짜! 근데 내 계획이 미인계인데 못 보게 하면 어떡해?”

“그럼 계획 바꿔. 그 새끼가 너 그런 식으로 쳐다보는 거 싫으니까.”

“질투쟁이. 그래도 현성이 눈알은 남겨둬. 그 얼마 되지도 않는 눈으로 보면 얼마나 본다고. 안 그래?”

“그런가? 하긴…… 걔가 눈이 작긴, 심하게 작지.”

승현은 기분 좋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웃었다.

그리고 몇 달 후, 현성은 법정에 눈병이 걸렸다며 한쪽 안대를 쓰고 나타난 것도 모자라 재판 휴정을 신청하는 전설을 나았다.

어디 그뿐이랴.

휴정한 재판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현성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징역 2년의 협상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은 두고두고 남아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권력에 집착하고 권력에 약했던 조현성의 처참한 최후였다.

***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빛나는 눈부신 햇살에 눈썹을 찡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펜션으로 향하던 차는 어느 한적한 길가에 주차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승현과 준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음, 어디 갔지?”

그녀가 차에서 내려섰다.

시원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지만 끝도 없이 펼쳐진 갈대숲과 더불어 길가에 핀 코스모스는 그야말로 평화로워 보였다.

“승현아! 준수야!”

두 사람을 찾아 들어선 오솔길에서 그녀는 곱슬거리는 머리가 작은 숲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본 그녀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찾았다! 우리 준수!”

“에이, 벌써 찾았어? 어떻게 찾았어?”

“이렇게 잘생긴 우리 아들, 숨는다고 안 보이나.”

빛나는 제품으로 안겨오는 준수를 힘 있게 안아주며 다독였다.

그러자 아이는 그녀에게 제 손으로 꺾은 코스모스 한 다발을 전해준다.

“뭐야, 엄마 줄라고 꺾은 거야?”

“응.”

“고마워. 근데 아빠 얼른 찾아야겠다. 이러다 해가 질 때 즈음 펜션 도착하겠어.”

“아빠도 금방 찾을 거야. 커서 못 숨어.”

“그러게. 어디 있을까.”

그녀는 아이의 손을 잡고 승현을 찾아 걸었다.

얼마 못 가 그를 찾을 수 있었다.

저 멀리 갈대숲에서 훤칠하게 큰 그가 한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뭐야! 거기서 뭐해! 빨리 가자!”

빛나가 소리 쳤지만 승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준수는 그녀를 승현이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그녀의 흰 원피스 자락이 기분 좋게 갈대를 스치고 지나갔다.

좀 까슬거리긴 했지만 행복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승현의 앞에까지 도착한 그녀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조금 전 편안한 캐주얼 차림일 때와는 다르게 그가 슈트를 입고 있었던 탓이다.

“뭐야, 옷은 왜 갈아입었대?”

“이유가 있지. 아들, 제 위치로!”

“넵!”

승현의 명령이 떨어지자 준수가 그녀의 손을 놓고 그들 옆으로 섰다.

그가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풀자 꽃으로 만들어진 예쁜 화관이 나타났다.

승현은 그 화관을 빛나의 머리에 씌워주며 한마디 했다.

“우리…… 결혼식 제대로 못 했잖아. 결혼식은 여자의 꿈이라는데…… 그거 하나만큼은 제대로 해야지.”

풋.

기가 막혀 웃음이 새어 나왔다.

행복해 눈물도 새어 나왔다.

“뭐야, 지금 결혼식 하자고 옷까지 갈아입은 거야? 그럼 나는?”

“왜, 하얀 원피스…… 빨간색으로 물든 웨딩드레스보다 훨씬 더 이쁘구만.”

“…….”

“지옥이었어. 세상이 끝난 줄 알았다고…… 그날.”

그날을 떠올리는 듯 승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랬다.

그날이 그에겐 더 없는 지옥이었다.

고통 속에 아련하게 기억을 날려 먹었던 그녀보다 생생하게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보았던 그는 더한 고통이었으리라.

결국 그 지옥 속에서 살아 돌아온 건, 그녀뿐만이 아니라 그도 함께였던 모양이다.

“잊어버리자. 그날은. 그리고 오늘만 기억해. 우리 결혼식은 이게 진짜니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의 세상이 되어버린 여자, 이젠 더 이상 우는 일이 없도록.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것만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만 보냈으면.

“치…… 왜 이렇게 감동이야? 이러면 네가 뭘 잘못해도 화를 낼 수가 없잖아.”

“이거 가지고 감동이면 곤란한데? 앞으로 내가 그대 심장 어택 좀 어지간히 할 거거든.”

“그런 심장 어택 안 해도 나 충분히 설레거든?”

“나보고 안 설레는 여자가 있나.”

퍽.

진짜 매를 번다.

지 잘생긴 건 알아가지고는.

빛나는 그의 가슴을 내리치며 눈을 흘겼다.

하지만 얄미움보다는 행복감이 컸다.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고 머릿속이 반짝 반짝 빛나는 별들로 인해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믿을 수 없었다.

홀로 지낸 지난 30년을 한꺼번에 보상하려는 듯, 하늘은 이 두 남자를 내려 보내지 않았나.

날개만 안 달았지 그녀에게 두 사람은 악동같은 천사였다.

간혹 짓궂은 장난으로 그녀의 혈압을 위험수치까지 올려놓긴 하지만 그들이 주는 행복감이 비하면 그깟 뒷골 좀 당기는 것쯤이야.

“두 사람 평생 안 싸우며 살겠습니까?”

어린 준수가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빛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장담할 순 없지만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나도…… 주체할 수 없는 끼가 있지만, 참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빛나가 다시 한 번 웃었다.

하얗고 말간 그 웃음에 승현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처음 그녀를 만났던 그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역시 그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느낌도 틀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녀는 그의 여자였던 것이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눈썹을 곤두세우던 열아홉 그녀는 서른한 살이 되어서야 다시 그의 품으로 돌아왔다.

단 한순간도 잊지 못했던 여자.

먼 길을 돌아온 만큼, 앞으로 더 사랑할 여자였다.

“반지는 저번에 끼워줬으니 오늘은 이걸로.”

그는 슈트 안 주머니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내 걸어주었다.

빛나는 그 목걸이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전생이 나라를 구했나 봐. 너를 만나다니.”

“응. 말했잖아. 잔다르크였다고.”

“으이구, 진짜. 말이나 못 하면!”

또 맞았다. 하지만 아픔보다는 행복감이 더 큰 주먹질이었다.

“자, 이제 뽀뽀하면 결혼 끝!”

준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승현의 입술이 그녀에게 내려앉았다.

가볍게 쪽쪽 거리며 왔다가던 그 입술은 어느새 그녀의 입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더욱 끌어당겨 자신에게 밀착시켰다.

그리고 빛나도 코스모스 부케를 든 채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감겨왔다.

입술이 열렸다.

정신없이 그녀에게 침범한 그의 숨결은 그나마 남아 있는 그녀의 이성을 깡그리 날려 먹었다.

첫 키스를 하던 그 순간처럼, 빛나는 승현에게 속수무책이었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전해져온다.

그의 것인지 그녀의 것인지 모를 그 심장 소리가 두 사람의 뇌를 뒤흔들었다.

숨결이 엉켜들수록 두 개의 심장은 피부를 뚫고 나와 곧 하나가 될 기세였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빛나는 어린 준수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곤 간신히 그를 밀어냈다.

아쉬움에 승현의 입에서 작은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고, 아직도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그녀의 귓가에 밀착한 채 조용히 속삭였다.

“본편은…… 우리 좀 있다 밤에…….”

“응.”

빛나도 재빨리 대답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식지 않은 강렬한 열기가 두 사람의 눈을 빨갛게 불태우고 있었다.

“정말, 너 보면 설레서 이제 어떻게 사니?”

“익숙해져야지. 물론 절대 익숙해지지 않겠지만 말이야. 내가 좀 진취적인 남자라…… 자꾸 업그레이드 될 예정이거든.”

“으이구, 진짜!”

승현의 장난기에 빛나는 간신히 그의 목에 두르고 있던 팔을 풀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앞날이 까마득한 건 사실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녀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승현 때문에 심장 마비가 올 지경이었으니.

빛나는 제 목에 둘러진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를 위한 두 번의 결혼식.

세상에 어떤 남자가 이런 계획을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남자였기에 가능했다.

바로, 다름 아닌 위승현이었기에.

눈앞에 있는 그와 함께라면 이젠 지옥 불구덩이라도 그녀에겐 천국이 될 것 같았다.

그만큼 강렬한 설렘이 지옥도 천국으로 바꿔버릴 테니까.

“사랑해.”

“음. 나도.”

“나도.”

어린 준수가 두 사람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안겨왔다.

그러자 빛나와 승현도 그런 준수를 두 사람 사이에 품고 다시 한 번 서로를 따뜻하게 안았다.

산들거리는 바람이 들판을 훑고 지나갔다.

이에 갈대도 즐거운 듯 춤을 춘다.

맑은 하늘 아래 세 사람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림이었다.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근데 이 목걸이 어디서 샀어?”

적어도 빛나가 그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왜?”

“비싸 보여서.”

“아냐. 안 비싼 거야. 너 내 카드 뺏어 갔잖아.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승현이 둘러댔지만 불쑥 준수가 끼어들었다.

“한 대 값이래.”

순간 빛나와 승현의 시선이 동시에 준수에게로 향했다.

아이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이며 손가락으로 저 멀리 서 있는 승현의 차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세 사람의 그림 같은 행복감은 막을 내렸다.

빛나의 시선이 승현의 차로 향한 순간, 그는 예감했던 것이다.

“저거? 저거, 한 대?”

믿을 수 없다는 다시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천사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승현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응.”

“이…… 이 자식이…….”

그가 뒷걸음질을 치며 중얼거렸다.

목걸이를 살 때 저놈을 데려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럼 뭐하나.

이미 천사 같던 빛나는 사라져버린 지 오래고, 견신 강림하사 개빛나 되셨는데.

“미쳤어. 미쳤어! 그럼 이게 도대체 얼마란 이야기야! 제정신이야! 응?”

“좋은 거 해주고 싶어서 그랬어. 좋은 거! 내 맘 알잖아!”

“일루 와. 당장 일루 와-아!”

그녀가 소리치며 그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빠른 승현이 잡힐 리 만무하다.

물론 그렇게 빠져 나가면 나갈수록 빛나의 혈압은 위험할 정도로 치솟고 있었지만.

“너 딴 주머니 찼냐, 벌써? 얼마라고? 이게 차 한 대 값이라고? 그것도 저거?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정신 차릴래! 나 이제 돈 안 번다고! 당장 물러!”

“못 물러! 그거 제작한 거라 못 무른단 말이야!”

“뭬야? 으이구…… 저 웬수! 진짜 웬수!”

행복한 결혼식.

아름다운 결혼식.

이날을 위해 승현은 한 달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 한 달의 노력에 대한 행복은 불과 몇 분에 불과했다.

그다음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빛나한테 쥐어뜯기는 위승현이 되고 말았으니까.

“아! 아파! 왜, 나보면 설렌다며! 사랑한다며!”

빛나에게 잡힌 승현은 그녀의 주먹세례에 조금 전 맹세를 들먹이며 반격했다.

그러나 그러한 반격은 빛나의 멘탈을 강제 퇴출시키고 말았다.

“이 자식이, 그래도! 그래. 나 너 보면 완전 설렌다! 너무 설레서 심장이 폭발할 지경이라고, 이 자식아! 너무 열 받아서!”

“아-악!”

결국 빛나의 심장은 폭발했다.

그렇게 오늘도 승현의 심장 어택은 대 성공.

비록 그것이 열 받아 설레는 심장일지라도,

나를 설레게 하는 그대,

그대를 사랑합니다.

영원히.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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