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세상을 잃으면.
2018.10.03.
“대박! 진짜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러니까…… 내 말이요.”
건물 안에 있는 신부 대기실에서 이정과 은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빛나는 기가 막히다는 듯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 애들아! 이거 내 결혼식이거든? 나 결혼한다고! 나한테도 관심 좀 가져줄래?”
그랬다. 오늘은 대망의 결혼식!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고, 불과 이틀 전엔 승현이 엄청난 오해로 승주에게 얻어터지는 불상사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결혼식장까지 오지 않았나!
성공이라 생각했다.
파혼이란 쓰라린 과거는 오늘부로 덮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신부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주인공이 되어야 할 빛나가 찬밥이 되어 있었다.
신부 대기실에서 그나마 얼마 안 되는 그녀의 친구의 시선을 모조리 앗아간 이는, 믿을 수 없게도 복실이었다.
복실은 오늘 평소 입고 있던 레깅스나 청바지를 벗어 던져 버리고 깔끔한 블랙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여리여리한 모습이다.
하지만 아무리 복실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승현의 객기로 인해 졸지에 어마어마한 금액대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빛나를 이길 수는 없었다.
오늘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유빛나의 날이었으니까.
“세상에.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개복실이 피아노를 칠 수 있다고?”
그랬다. 그들은 복실의 외모에 넋을 놓은 게 아니다.
그들을 놀라게 했던 건 오늘 이 아기자기하고 더없이 아름다운 웨딩 반주의 핵심인 피아노를 다름 아닌 복실이 친다는 것이었다.
“흠, 흠…… 저기요, 언니들. 제가 아침 먹은 게 좀 불편해서 그러는데 얼굴 좀 치워주실래요?”
복실은 몹시도 거북하다는 듯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너네들이 잘 몰라서 알려주는 건데, 우리 복실이…… 바이올린도 켤 줄 안다고.”
“응? 진짜?”
“언니, 바이올린이 아니라 첼로야.”
“어쨌든 그게 그거 아냐.”
두 사람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해 복실은 빛나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이정이 다시 한 번 중얼거린다.
“역시…… 넌 있는 집 자식이었어.”
그때 누군가 신부 대기실로 들어왔다.
“언니!”
승희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 일흔을 훌쩍 넘긴 듯 보이는 세 노인과 함께였다.
“어머, 아가씨.”
빛나가 일어나 승희가 부축하고 있는 노인의 다른 쪽 팔을 조심히 붙들었다.
거동이 불편한 듯 보이는 노인은 종종걸음으로 빛나가 앉아 있어야 할 의자에 어렵게 몸을 앉혔다.
“우리 고모님들이에요. 아빠가 막내에 나이 차이가 좀 많아서.”
“아…….”
“큰고모! 여기 예쁜 언니가 우리 막내 오빠 색시예요!”
승희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앉아 있던 노인은 그제야 빛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이젠 그 현명함마저 잃어버린 두 눈이 빛나에게 머물렀다.
“뭐라고? 새…… 신이라고?”
“색시요, 색시! 딴따라, 결혼하는 새 신부!”
“응…… 큰놈이 장가가?”
“아니, 큰놈 말고 제일 작은 놈!”
그 말에 곁에 서 있던 두 노인의 웃음이 빵 터졌다.
“아이고, 이거 새색시한테 미안해서 어째. 그런데 우리 언니가 귀가 많이 어두워서 말이지.”
그나마 제일 어려 보이는 노인이 빛나의 등을 다정하게 다독이며 말하자 그녀는 눈가에 웃음을 보였다.
“무슨 말씀을. 잘 오셨어요. 이렇게 뵙게 돼서 너무 좋아요.”
“세상에…… TV보다 더 곱네. 승준이 애비가 예쁘다고 그렇게 칭찬하더니.”
“맞어. 셋째하고 천생연분이랬어. 그놈이 워낙 천방지축이라 아주 딱이라고.”
웨딩의 꽃이 신부가 맞나 보다.
승현의 나이 많은 세 고모들은 빛나가 마냥 예쁜 듯 만져보고 쓰다듬으며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내가 우리 막둥이보다 더 걱정한게 바로 셋째 놈이었는데…… 어디서 이런 색시를 구해왔대?”
“어머, 막내고모. 제가 어때서요?”
승희가 입술을 삐죽였지만 세 고모의 시선은 빛나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우리 큰 언니가 나이가 많아서 귀도 안 들리고 눈도 잘 안보여. 이해해. 그래도 승준이 애비 셋째 장가간다는데, 와봐야 하지 않나 싶어서. 언제 갈지 모르니 승준이 애비가 이왕이면 좋은 것은 다 보여주고 싶다고…….”
그 말에 빛나는 조심스레 노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값비싼 웨딩드레스가 그녀의 발아래서 구겨지고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러곤 주름이 자글자글한 그 늙은 손을 다정하게 움켜쥐었다.
총기를 읽어버린 그 눈에 현명한 자신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조용히 속삭였다.
“잘 오셨어요.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제가…… 조카며느리예요.”
“응. 밥 먹었어? 태준이…… 밥 먹어……야 해.”
“이젠 걱정 마세요. 아버님 밥은 제가 책임질 테니.”
“아이고, 참 곱다…….”
대화는 통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매만지는 그 늙은 손길에서 빛나는 진한 애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늙은이들이 새 신부 시간을 너무 뺐었네. 여기 친구들도 있는데.”
“아니에요, 고모님들!”
“아니여. 우리는 이제 승준이 애비도 만나러 가야 하고 새 신랑도 보러 가야지.”
“그럼, 결혼식 끝난 후 나중에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저희 결혼식이 너무 급하게 잡히다 보니 인사드릴 경황이 없었어요.”
“아휴, 그런 걱정 말어. 멀리도 살고…… 다 늙은 고모들 뭐 볼 게 있다고.”
“그런 말씀 마세요. 저희 이제…… 가족이잖아요. 꼭 찾아뵐게요.”
“말이라도 고맙네.”
그렇게 세 노인은 승희와 함께 신부 대기실을 나갔다.
그러면서도 그들끼리 예쁜 빛나를 바라보며 속닥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그 망나니 같은 놈이 어디서 저런 색시를 찾아온겨?”
“내 말이.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신통방통하네, 그려.”
세상에, 졸지에 승현은 망나니로도 모자라 굼벵이로까지 강등되었지만 빛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야, 이 집은 고모님들도 보통이 아니구나.”
복실이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 이정과 은지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빛나는 집 안에서 가장 어르신인 세 노인을 보며 가슴 한켠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야, 그래도 감동이지 않니? 저 불편한 몸으로 우리 결혼식 보러 오셨다는 게.”
이제야말로 그녀에게 진짜 가족이 생기는, 그야말로 완벽한 날이었다.
***
결혼하기 딱 좋은 날씨다.
요 며칠 비가 온 걸 만회하려는 듯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그저 파랗기만 했고 햇살도 따뜻했다.
물론 조금 더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적어도 결혼을 하기엔 무리가 없는 날이었다.
야외 예식장 입구엔 승현이 예복을 훤칠하게 빼입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정말 가까운 친인척과 얼마 안 되는 지인들만 초대되는 스몰웨딩이었지만,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에 난 자그마한 상처는 큰 화제가 되었다.
그랬다. 며칠 전 있었던 여덟 살 다 큰 아들을 가슴으로 낳은 산고는 그의 얼굴에 아주 선명한 흔적을 남겼더랬다.
그 매력적인 입술 끝이 보기 좋게 찢어졌으니 말이다.
그나마 승준과 빛나가 달려들어 죽어도 얼굴은 안 된다고 보호해 이 정도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승주의 어마어마한 기세에 어쩌면 오늘 결혼식을 미루어야 했을지도.
사람들에겐 계단에서 굴렀다,라고 했지만 복실이 배꼽 빠지게 웃으며 ‘넌 얼굴로 계단을 굴렀냐?’라는 한마디에 그 변명이 100% 통하지 않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망할! 망할! 망할!
승현이 머릿속에서 이 두 글자를 반복하는 사이, 아직도 의심을 거둬들이지 못한 승주가 위태준의 곁에 서서 까맣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너무도 닮은 부자의 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해할 수가 없다.
이젠 다 커서 익을 대로 익어버린 승현과도 너무 닮았지만, 20년 전 그의 모습과는 거의 도블갱어 수준이다.
어찌하여 피 한 방울 안 섞였다는 이들이 20년의 세월을 넘어 저리도 닮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근 이틀 동안 살펴본 바론, 그 분위기에 성질마저 닮았으니 의심을 거둬들이려야 거둬들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노려보지 마라. 오늘은 좋은 날이지 않냐.”
“노려보는 거 아네요. 쳐다보는 거지.”
“애가 무슨 죄냐.”
“아버지가 몰라서 그러시는데요. 쟤요, 저 하나도 안 무서워해요. 어렸을 때 그렇게 맞아도 죽기 살기로 깝죽대던 승현이랑 아주 똑 닮았다구요.”
“깝죽댄 거 아니다. 좋아서 그러는 거지. 어렸을 때 승현이만큼 네 곁에 딱 붙어 다녔던 놈이 어디 또 있냐? 맞아서 몸이 너덜너덜해져도 죽어도 네 손 안 놨다, 쟨.”
위태준이 그렇게 말하자 승주는 입을 꼭 다물어버렸다.
잠시 어렸을 때 흔적이 그를 스쳐 지나갔던 탓이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말을 아끼던 승주였기에 주변에 친구들이 많이 없었더랬다.
때문에 그에게 가족은 그의 인생 그 이상의 존재들이었다.
그런 그의 가족들 틈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여덟 살 악마는 이틀 내내 그의 뒤를 쫓아다니면 혼을 쏙 빼놓았다.
마치 20년 전 승현이 했건 것처럼.
하지만 아이가 밉지 않았다.
저토록 닮은 아이를 어떻게 미워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승현을 닮은 아이라면, 핏줄을 떠나 충분히 아이의 큰 아버지가 되어줄 수 있었다.
따라서 이건, 승주에게 있어 진실 문제였다.
“그래도 아버지. 저렇게 닮았는데 의심은 한번 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 녀석의 연애사가 그동안 곱지만은 않았다는 거, 아버지도 잘 아시잖아요. 저는 유전자 검사라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아이를 받아들이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라구요.”
승주가 조용한 목소리로 따박따박 말하자 위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승현과 준수가 나란히 선 모습을 보며 세상을 가득 담은 인자한 미소를 머금었다.
“넌 내가…… 그 정도도 안 해보고 저 아이를 받아들였을 것 같냐?”
“네?”
“저 아이…… 우리 핏줄이 아니다. 우리 유전자는 단 1%도 가지고 있지 않은 애야.”
“…….”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닮았지 않냐. 그래서…… 그 사실을 안 순간 실망했다기보단, 가슴 한켠이 뭉클하더구나. 인연이라 생각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저 아이가…… 저렇게 승현이를 닮은 것이…….”
그렇게 말하며 위태준은 그 따뜻한 눈동자를 준수에게서 돌려 이젠 너무 훌쩍 커버려 올려다보지 않으면 감히 눈높이도 마주할 수 없는 제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다 큰 아들의 뺨을 다정하게 토닥이며 입을 열었다.
“안다, 아들. 네가 뭘 걱정하는지. 하지만 승현인 잘할 거다.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해 단 1%의 후회도 하지 않을 거야.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말에 승주는 목이 꽉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에 대해선 단 한마디의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제 뺨을 토닥이는 위태준의 손에서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무한 애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버지.”
“저기 네 고모들 왔다. 승현이한테 가봐야겠다. 나이 먹은 고모들이 저 녀석 잡아먹기 전에…….”
위태준이 승주의 곁을 떠났다.
하지만 승주는 그곳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까만 눈동자에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닮은 부자의 모습이 비춰졌다.
이젠 인정해야만 했다.
집안에 그를 괴롭히는, 평생 철 들지 않는 개구쟁이 악마가 이젠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을.
“젠장.”
***
한편 그 시각 승현은 그를 너무 노골적으로 올려다보는 세 쌍의 눈길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나마 그중 한 쌍은 그가 누군지 기억을 더듬기 위해 바라보는 것이었으나 나머지 두 쌍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아이와 승현을 번갈아 보는 중이었다.
마치 눈앞에 세 개의 시한폭탄은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이 애기가 그 애기여?”
“닮았다더니, 아주 이 녀석 어렸을 때랑 판박이네.”
“근데, 얼굴은 왜 그런데?”
“니들 결혼도 하기 전에 벌써 싸우냐?”
“아이고, 언니도 봤잖어요. 그 고운 애가 지 신랑 얼굴을 이렇게 만들었겠어요? 보나마나 또 계단에서 뛰어 내리다 얼굴로 넘어진 거겠지.”
당사자는 한마디도 안 하고 있는데 나이도 많이 드신 분들이 상상력은 왜 그리도 풍부하신지.
결국 승현이 입을 열게 만들었다.
“흠흠. 고모…… 제가 계단에서 슈퍼맨 놀이 할 나이는 지났거든요?”
“그럼, 어디서 또 까불다가 얻어 터진겨?”
“까불다가 얻어터진 거 아니에요. 이건 말이죠…… 그러니까, 산고 같은거라구요. 말을 하자면 길지만, 왜 있잖아요. 여자들이 애 낳을 때 오는 산고요.”
“이 미친놈이! 지금 고모들 나이 먹었다고 사기 치는거여? 남자가 어떻게 산고를 느껴? 엉?”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고모님들도 참.”
“이놈의 새끼, 그나마 얼굴 하나 멀쩡한디 결혼식 당일 날 얼굴이 이래서 어쩐댜?”
“고모, 얼굴만 멀쩡한 게 아니라 다른데도 멀쩡하거든요?”
“그나마 멀쩡한 얼굴이니까 이정도도 많이 흠이 안 되는 거예요, 언니. 쯧쯧. 나이가 서른인데 언제 철 들고.”
“고모!”
두 여자의 무자비한 공격에 승현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더 미치겠는 건, 이렇게 시달리는 승현을 바라보며 은근 슬쩍 입 꼬리를 치켜 올리는 승주의 모습이다.
“아, 진짜! 고모…….”
하지만 이것은 고모들의 워밍업에 불과했다.
줄곧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던 큰고모가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거…… 승준이 애비 셋째 놈 아녀?”
“아하하. 우리 큰 고모님께서 이제 절 알아보셨나 보네요. 고모님, 저 장가가요! 장가!”
승현은 요즘 들어 뭔가를 자주 잊어버린다는 큰 고모의 손을 잡고 크게 소리 쳤다.
그러자 큰 고모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동문서답을 했다.
“근디, 이놈…… 얼굴이 왜 그런댜? 또, 까불다…… 어디서 맞았는감?”
세상에, 저 어두운 눈에 승현의 터진 입술이 보이는 모양이다.
그랬다.
큰 고모는 가까스로 벗어난 민감한 주제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신기한 재주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신기한 재주는 한번 말려들면 혈압이 터질 때까지 벗어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아, 고모! 저 나이 서른이에요. 누구한테 까불고 얻어터질 나이 아니라구요.”
“이거…… 태준이 셋째 아녀?”
적어도 오늘만은 절대로 걸려들지 말자 다짐했건만, 결국 운 따윈 그의 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근디, 얼굴이 왜 그런댜?”
“하…… 고모님.”
젠장! 걸렸다!
오늘은 하루 종일 이 두 가지 질문만 반복하실 모양이다.
타임머신에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그때 위태준이 나타나 아직도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큰 고모의 손을 따뜻하게 움켜쥐었다.
“누님, 승현이가 형한테 까불다가 한 대 맞았어요!”
“응? 얘네들은 아직도 싸워?”
“하하. 사내자식들이 그렇죠, 뭐.”
결국 이렇게 마무리가 될 모양이다.
“쯧쯔. 나이가 몇살인디 아직도 쌈질이여?”
하지만 궁금증이 풀리자 큰 고모는 승현에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거둬들였다.
비록 서른이 넘은 나이에 치고 박고 싸우는 형제가 되었지만 그래도 저 타임머신 버퍼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이깟 오해쯤이야.
“그럼 그렇지.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나저나, 신부가 왜 이렇게 이뻐?”
“그렇죠? 우리 새아기가 인물이 훤칠하죠?”
“응. 깜짝 놀라다니깐. 세상에…… 저 놈이 그런 여자를 데려올 거라 누가 상상이나 했간?”
“근데 신혼집은 어디래?”
“아, 같이 살기로 했어요.”
“같이? 누구랑?”
“저랑요. 새아기가 그러고 싶다고 해서.”
위태준은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세 고모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승현에겐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진.
“말도 안 돼. 쟤…… 쫓아낸 거 아녔어?”
“옴메. 어떻게 쫓아냈는데 다시 기어 들어오는겨?”
“집이 하루도 멀쩡할 날이 없겠구만? 어쩐댜? 좀 조용히 살아볼까 했드만, 다 늙어서 이게 뭔 고생이여?”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요즘 젊은이들, 오히려 부모와 같이 살려고 하지 않아 문제인데 외롭고 적적한 아버지와 함께 살겠다는데도 욕을 먹는 승현이었다.
게다가 쫓겨났다는 근거 없는 루머까지!
“고모! 저 쫓겨난 거 아니거든요! 요즘 세대들은 그걸 ‘독립’이라고 불러요!”
억울도 하여라!
그래서 승현은 소리를 질렀으나 돌아오는 건 큰 고모의 혈압 터지는 한마디뿐이었다.
“근데…… 저 녀석 얼굴은 왜…… 그런댜?”
젠장! 이럴 수는 없다!
결혼식날 하루 종일 들은 이야기라곤, 축하한다는 말보다 얼굴은 왜 그러느냐는 말이 더 많았으니!
승현은 돌아서는 고모들을 뒤로하고 저 멀리에 서 있는 승주를 바라보았다.
이 화사한 날조차 검은 슈트를 완벽하게 입은 채 다크한 아우라를 내뿜는 승주의 기를 이길 수는 없는 모양이다.
못된 악마 같으니!
하지만 위승현이 누군가!
절대 지고는 못 사느니!
그는 손을 꼭 잡고 하객들을 함께 맞이하던 준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사악하게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아들. 아빠는 잠시 엄마를 보러 가야겠어. 저기…… 저기 둘째 큰아빠 보이지?”
승현은 손가락으로 정확히 웃고 있는 승주를 가리켰다.
준수와 속삭이며 손가락질을 하는 그의 모습에 승주의 눈꼬리가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늘 이 부자가 속닥일 때면 그에게 대재앙이 몰려 닥쳤으므로.
“가서…… 큰아빠한테, 거머리처럼 딱! 붙어 있어!”
“응!”
“저얼-대 떨어지면 안 돼! 알았지, 아들?”
“응!”
“뛰어!”
그리고 승현의 구호와 함께 준수는 로켓처럼 돌진하기 시작했다.
천진난만하게 목청껏 승주를 부르며.
“큰아빠-아-아!”
잠시 후 다리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준수를 보고 승주는 떼어내지도 못한 채 곤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승현은 터진 입꼬리를 사악하게 말아 올린 채 제 입술을 가리켰다.
그러곤 속닥이듯 정확한 입 모양으로 한마디 한다.
“복수야, 형.”
승주의 눈에서 불꽃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
참으로 청명한 하늘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살짝 부는 바람은 따스한 햇살로 인한 더위를 식혀주어 그야말로 결혼하기엔 더 없이 좋은 날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날을 또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이가 있었으니.
모처럼 산책이 허용된 시간, 그 타임에 교도소 운동장 벤치에 앉아 책을 읽던 강민식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림자를 바라보며 읽던 책을 덮었다.
그러곤 맑은 하늘을 눈이 부시다는 듯 올려다보며 조용히 한마디 한다.
“참…… 날 좋네. 이렇게 좋은 날, 세상을 잃으면 어떤 기분일라나…….”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