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설레게하는 그대-86화 (86/94)

86. 산고(産苦), 가슴으로 낳은 아이

2018.09.30.

“아이쿠, 우리 승헌이 정말 잘한다!”

“승현이도 어렸을 때 이거 진짜 많이 가지고 놀았는데, 어쩜 이런 것까지 닮았지?”

“그러게 말이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지 않냐?”

큐브 퍼즐을 가지고 노는 승헌을 바라보며 위씨 부자는 신기해 난리 났다.

외모가 닮은 것도 모자라 어렸을 때 승현을 떠올리게 하는 놀이 취향까지, 보면 볼수록 감탄의 연속이다.

덕분에 위태준은 계획적으로 쫓아낸 승현이 다시 집에 들어왔다는 절망도 잠시, 갑작스럽게 생긴 친손주에게 푹 빠져 싱글벙글이었다.

이런 젠장!

그러면 그럴수록 승현이 꿈꾸던 완벽한 신혼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하지만 위승현이 누군가.

참을성이 없는 것과 반대로,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끈기는 고래 힘줄보다 질긴 인간이었다.

승헌에게 폭 빠져 버린 위씨 부자에게 뭔가를 기대하기란 글렀고, 결국 그는 빛나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며 징징대기 시작했다.

“유빛나,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이 집을 나온 지 1년도 채 안 됐다고. 그런데 신혼을 여기서 또 보내라고?”

“왜, 좋잖아. 어머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버님 혼자 이 큰집에 남겨놓고 나오기 미안하지도 않아?”

“내 말은 그 말이 아니잖아.”

“나는 네 아버지이기 전에 정치인으로서 존경하던 분이었어. 그런 분이 내 아버지가 되었는데 내가 그 기회를 놓칠 것 같아?”

“네가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너 이 집이 얼마나 시끄러운 줄 알아? 승희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어, 큰형 쉬는 날 집돌이야, 거기에 작은 형 오면 자주 오는 인간 아니라 잔치 분위기라고. 여기서 살면…… 우리…… 사생활이란 게 없어질지도 몰라!”

“대박! 난 완전 좋은데? 나는 아버님 쉬는 날 승헌이 손잡고 산책도 같이 나갈 거고, 아버님한테 골프도 배울 거야. 그리고 큰 아주버님이랑 같은 분야니 힘들 땐 이야기도 오손도손 나눌 수 있고, 작은 아주버님 있으니…… 집에 도둑 들 일은 없겠네.”

“어떤 미친 새끼가 감히 우리 작은 형 있는데 집을 털러 들어와? 자살테러 하지 않는 한…… 아, 진짜! 내 말은 그 말이 아니잖아!”

그는 이번에도 말렸단 생각에 애가 타는데 빛나는 과일을 깎아 들고 거실로 나가 버린다.

그 뒤를 승현은 주인 따르는 강아지마냥 졸졸 따라 나왔다.

“아버님, 과일 드세요.”

“세상에,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이쁘게 깎아놓은 과일은 또 처음이네.”

“그러게요, 아버지. 제수씨,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먹어요?”

“우리 가족들 먹을 건데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죠. 그리고 아버님, 제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음식도 좀 잘하는 편이에요. 앞으로 아침은 제가 꼭 챙겨 드릴게요. 큰아주버님도 같이요.”

“아니다, 그럴 필요 없다. 아주머니 있고, 너는 그냥 네 편한 대로 하면 된다. 굳이…….”

“제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오호호!”

곁에 있던 승현의 입이 떡 벌어졌다.

빛나가 저렇게 웃을 줄도 안다니!

빛나에게 저런 여우끼가 있었더니!

심히 충격이 크다.

‘오호호!’ 하고 조신하게 웃는 그녀를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기에 더 그러했다.

산 넘어 산. 어쩌면 그의 신혼에 가장 큰 난관은 가족들이 아닌 그녀가 될지도 모르겠다.

“참, 우리 승헌이…… 승헌이라는 이름도 좋지만 저 녀석과 이름이 겹치지 않냐. 그래서 이름을 바꿨으면 좋겠는데…….”

“안 그래도 저도 그 생각 했어요. 승헌이한테 미리 말도 해뒀구요. 아버님이 지어주시면 좋겠는데요.”

“그래?”

위태준이 반색을 하며 여전히 큐브 퍼즐 삼매경인 승헌을 바라보았다.

잘 풀리지 않을 땐 짙은 눈썹을 구기며 입술을 꼬옥 깨무는 모습도 승현이랑 똑같았다.

보고만 있어도 뿌듯할 만큼.

“안 그래도 생각해 놓은 게 있다. 높을 준에 빼어날 수. 준수 어떠냐. 위준수. 생각과 행동이 올바르고 뛰어나 남의 모범이 되고 앞서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어머, 너무 좋은 뜻인데요?”

“승헌이, 할애비한테 와봐.”

위태준은 소파 밑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일으켜 제 앞으로 데려와 눈을 마주했다.

똘망똘망한 눈이, 까만 눈동자가 지난 8년이 무색하리만치 순수했다.

누가 이 아이에게 그런 시련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위태준은 어쩌면 이것도 인연일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그 인연에 감사하기로 했다.

“승헌아…… 앞으로 네 이름은 위준수다, 위준수. 어떠냐, 할애비가 지어준 이름…… 마음에 드냐?”

“네.”

“그래. 우리 준수…… 할애비가 한번 안아보자.”

위태준은 제 품에 안겨 들어오는 아이를 보듬어 안고 눈을 꼭 감았다.

그 모습에 빛나와 승현은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애가 완전 똑똑해. 승현이도 어렸을 때 이거 가지고 잘 놀았는데, 애도 이거에 푹 빠져 사네.”

“아, 그럼 누구 아들인데. 형…… 우리 준수 구구단도 다 땠어. 완전 똑똑해.”

승준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는 칭찬에 승현은 어깨가 절로 펴지는 듯 짐짓 거만하게 말했다.

“반에서도 맨날 1등만 한대.”

“공부 좀 못해도 된다. 공부 1등이 사회 1등은 아니니까. 승희 봐라. 우리 승희…… 공부 그렇게 못했어도 지금 얼마나 잘 사냐. 응?”

“어머, 승희 아가씨…… 공부 못했어요?”

빛나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그러자 승준이 눈에 웃음기를 가득 머금으며 대답했다.

“잘하는 편은 아니었죠, 우리 승희가.”

“어머, 신기해!”

“뭐가요?”

“복실이랑 아가씨가 친하길래, 아시죠? 복실이? 복실이 의외로 똑똑한 거.”

“알다마다, 복실이가 우리 승현이랑 어디서 만났는데. 영재 스쿨에서 만난 거 아니냐. 아하하.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승희도 가겠다고 쫓아갔다 1시간도 못 견디고 뛰쳐나왔더랬지.”

위태준은 그때를 떠올리는 듯 눈이 반짝반짝했다.

시간은 참으로 한순간이다.

아내를 잃고 남겨진 자식들과 갈 길이 구만리였는데 어느덧 이렇게 잘 자라 결혼을 하고 제 여자와 자식을 데려와 그를 웃게 만들다니.

힘들다면 힘들 수 있는 지난 세월이었지만, 잘 이겨냈기에 지금은 웃을 수 있는 그리운 추억이 되어버렸다.

“혹시 아냐? 저 계단 말이다. 승현이가 승희랑 장난치다 내려앉아서 몇 번이나 고쳤는지. 이 집 곳곳에 승현이랑 승희 손 안 닿은 곳이 없다. 수리비 모아뒀음, 지금 강남 집 한 채는 거뜬히 살 수 있었을걸?”

“상상이 돼요. 눈 보세요. 얼마나 짓궂게 생겼는지.”

빛나의 웃음보가 터졌다.

그 모습을 보며 승현은 어쩌면 생각보다 신혼이 그리 험난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 어느 순간보다도 밝게 빛나는 그녀가 있었으므로.

그렇게 빛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위씨 집안에 녹아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아니, 어쩌면 원래 이 자리는 그녀의 자리였는지도…….

“다음 주에 쉬는 날 제가 1층으로 내려올게요. 그래도 신혼인데, 2층은 혼자 쓰셔야죠.”

“형, 1층으로 이사하게?”

승현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러자 승준이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지. 승희 방은 준수가 쓰면 될 것 같고.”

“그렇게 안 하셔도 돼요, 아주버님!”

“아니에요. 1층에도 방이 남는 데다, 그렇지 않아도 2층까지 올라가기 귀찮았어요. 승주도 1층으로 옮기는 걸로. 그럼 1층에 있는 방은 포화 상태니까 손님방은 아무래도 2층으로 올려야 할 것 같아.”

“작은 형이 옮길까?”

“아마, 옮길걸? 저 녀석이 2층에 있다면, 기꺼이…….”

승준은 준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승현은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맞다. 작은 형…… 애들 알레르기 있지? 푸하하하…….”

그의 웃음소리에 빛나도 함께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예준과 함께 있던 승주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말에 100%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그때, 벨소리가 들려왔다.

승현이 일어나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웃었다.

“우리 작은 형도 양반은 못 돼. 왔네, 왔어.”

승현은 대문을 열어주며 준수를 불렀다.

“준수, 이리 와봐. 우리…… 큰아버지한테 인사하자.”

아이가 다가오자 그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현관 앞에 섰다.

승주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승주의 성격상 위태준이나 승준처럼 따뜻한 반응을 기대하기란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전자가 의심스러울 만큼 그를 닮은 아이가 아닌가.

어쩌면 의외의 반응이 나올지도.

드디어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승주가 들어오자 승현의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형, 왔어?”

“응.”

“며칠 만이야? 집에 들어온 게?”

“삼 일. 왜.”

무뚝뚝한 반응이었으나 그게 평소 승주라는 걸 알기에 승현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버지, 저 왔어요. 제수씨도 오셨네요.”

승주는 소파에 앉아 있는 위태준에게 인사를 하곤 빛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무심코 현관을 등지며 승현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그는 멈칫했다.

승현의 곁에 서 있는 작은 악마를 보았기 때문이다.

“형, 오늘 처음 보지? 인사해.”

승주의 감정 없는 까만 눈동자가 서서히 아래로 향해 아이의 눈과 마주했다.

그러곤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눈썹 끝을 구겼다.

“내 아들이야. 이름은 위준수.”

그리고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짤막한 정적이 흘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승주가 입을 떼기 전에 그 고요한 정적을 가를만한 용기는 없었던 것 같았다.

승주는 준수를 한번 바라보고 승현을 한번 바라보았다.

그러곤 다시 준수에게로 시선을 돌렸으나 구겨진 진한 눈매는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알아. 진짜 많이 닮았지? 나도 신기해 죽겠어.”

그 조용한 정적에 등골이 서늘해진 승현은 어떻게든 분위기를 전환시켜보고자 일부러 크게 떠들었다.

“있지, 이 녀석…… 열 받으면 발 굴리는 것도 나를 닮았…… 다…… 니.”

하지만 고개를 든 승주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을 때 승현은 늘어진 테이프처럼 말꼬리를 흐려야만 했다.

저…… 눈.

익숙한 눈이다.

유난히도 시꺼멓고, 유난히도 조용해 보이는 눈동자.

한 마디로 거대한 토네이도가 닥치기 전 숨이 막힐 듯한 고요함.

폭풍 전야였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도대체…… 왜?

“형…… 왜…… 그러는데?”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물음이라는 건 안다.

열 받은 승주는 그렇지 않아도 없는 말을 아예 생략해버리는 못된 버릇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유는 알고 그 토네이도에 휩쓸려야 할 게 아닌가!

“형…… 잠깐, 잠깐…… 우리 대화로 풀자고, 뭐가 잘못됐는지를 알아야 내가 오해를 풀어줄 수 있잖아!”

승현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며 승주와의 사정거리를 확보했다.

주먹이 날아와도 피할 수 있는 거리는 되어야 도망을 가더라도 뒷덜미를 잡히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백번을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검은 아우라를 뿜어내는 승주를 바라보며 속닥이는 위씨 부자의 목소리에 승현은 그 분노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승준아…… 혹시 너, 승주한테 말 안 했냐?”

“무슨…… 아버지가 하신 거 아니에요?”

맙…… 소…… 사…….

순식간에 승현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이제야 승주가 무슨 생각으로 준수와 승현을 번갈아 보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이건, 대형사고였다.

어디에 하소연이라고 하고 싶다.

당신들이 잊어버린 그 사소한 한마디가, 그의 생사를 갈랐노라고!

“아니, 말을 안 할 게 따로 있지! 어떻게 그런 걸 잊어버려요! 어떻게-에!”

애가 탄 승현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줄 곧 조용하던 승주는 웬만해선 하지 않는 사과 한마디와 함께 숨 막히는 폭풍 전야를 끝내버렸기 때문이다.

“제수씨, 죄송합니다.”

“저…… 저요?”

이제부턴 본격적인 위승주표 토네이도다.

체력이 좋아, 닳지 않는 엔진을 가진 그 토네이도는 한번 휩쓸리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차분하게 사실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상대가 승주만 아니라면.

문제는, 간단한 설명 한마디 하는 것조차도 승주의 주먹이 날아오는 속도를 쫓아가진 못할 거라는 것이다.

변명을 한답시고 시간을 끌었다간 시간에 비례해 상처만 더 늘 것이므로.

“아, 형. 그게…… 젠장, 에라 모르겠다!”

그렇게 승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을 뛰쳐나갔다.

그와 동시에 승주도 바람을 일으키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으아악!”

“너 이 새끼, 거기 안 서?”

도망이라면 이가 갈리도록 많이 한 승현이었지만 승주 또한 추적이라면 도가 틀 만큼 전문가였다.

눈앞에서 갑자기 뛰쳐나간 두 남자를 보며 빛나는 넋을 놓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던 탓이다.

“아악! 형, 오해라고. 오해!”

“오해? 오해? 어떻게 저게 오해야.”

“그건…….”

빛나가 있는 보육원에서 입양한 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실 베란다를 통해 버젓이 듣고 있을 아이가 걱정이 되어 ‘입양’이라는 말을 되짚어 삼키는 승현이었다.

“지금 나랑 장난쳐? 어디 입 있음 말해봐.”

그래. 그게 문제다.

입이 있어도 지금은 말을 할 수가 없으니.

결국 승현은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그 단어를 내뱉느니 기꺼이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쪽을 택했다.

입을 꾹 다문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승현의 행동이 오히려 승주의 화를 더욱 부추기고 말았다.

“입을 다물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말이지?”

예상대로 승현은 그리 멀리 도망가지 못했다.

대문을 벗어나기도 전에 승주의 손에 잡혔기 때문이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빛나가 맨발로 뛰쳐나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어머, 아주버니! 정말 오해에요. 오해! 그게 아니라구요!”

“편 들어주실 필요 없어요. 이번 기회에 제대로 교육시키겠습니다.”

열 받은 승주의 기세는 어마무시했다.

승현의 멱살을 틀어쥔 그 손에서 그 분노가 느껴질 만큼.

하지만 문제는 빛나 또한 준수가 듣고 있어 승주에게 이렇다 할 설명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주버님! 안 돼요, 이틀 후면 결혼식이라구요!”

보다 못한 승준도 뛰어나와 승주의 한쪽 팔을 붙들었다.

“승주야, 우리가 실수로 너한테 못 한 이야기가 있어. 그러니 일단 이거 놓고 이야기하자. 얘, 새 신랑이잖아. 응?”

하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이야기다.

결국 승현은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요령껏 자신의 입장을 돌려 말해야 했다.

“아, 진짜! 형, 사실은 쟤…… 내가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야!”

그래, 아주 적절한 표현이었어!

승주가 저능아도 아니고 이쯤이면 알아들었으려니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승현의 바람대로 자신의 멱살을 움켜쥔 승주의 손아귀에서 일시적으로 힘이 빠져나가기도 했고.

그러나,

시선을 돌려 아이를 한 번 더 눈에 담은 승주의 혈압은 다시 위험수치를 웃돌며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이 새끼가. 네 눈엔 내가 사시로 보이냐?”

퍽!

그랬다.

너무도 닮은 두 사람의 모습에 뿌듯해했던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그들이 닮은 모습이 승주에겐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던 것이다.

게다가 승주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입양’에 대해 전해 들은 바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으아악!”

“어멋! 아주버니-이!”

“승주야-아!”

가슴으로 낳는 아이는 산고 따윈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승현은 그렇게 여덟 살 준수를 아주 절절하게 가슴으로 낳아야만 했다.

그 고통이 어찌나 큰지, 열 시간 이상 지속되는 산고에도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렇게 승현이 예상치 못한 산고에 시달리는 사이, 이를 베란다에서 지켜보던 아이는 손가락으로 서로 엉겨 있는 네 사람을 가리키며 위태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아빠랑 싸워요?”

“싸우는 거 아니다, 그냥…… 노는 거야.”

그러더니 결국은 아이의 눈을 가리며 집 안쪽으로 이끌었다.

“너는 저런 거 보는 게 아니다. 눈 버린다. 들어가자.”

***

한편 그 시각.

밝은 달빛을 피해 들어간 음지에선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골목에 서 있는 차 한 대로 검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그러곤 문을 똑똑 두드리자 창문이 조용히 내려간다.

물론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골목이라 차 안에 있는 사람의 얼굴은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돈은?”

“여기.”

3분의 1정도 내려간 창문 틈으로 묵직한 봉투 하나가 건네졌다.

검은 그림자는 그 봉투를 열어 돈을 확인하더니 제 품에 숨겨두었던 또 다른 봉투를 운전자에게 건넸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랑 여기를 정확히 찔러야 한 방에 갑니다.”

그 말에 운전자는 잠시 인상을 구겼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될 것을 알려주는 검은 그림자가 무척이나 원망스럽다는 듯.

돈을 건네받은 남자가 사라지고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차 안.

그곳에서 남자는 조금 전 돈을 주고 건네받은 노란 봉투를 주섬주섬 열었다.

그러곤 떨리는 손으로 그 안의 내용물을 꺼내어 본다.

날이 좁은 15센티가량의 단검이었다.

무언가를 잘라내는 용도가 아닌 찌르는 용도로 양옆 날은 그리 날카롭지 않으나 끝이 분명한, 그런 검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내가 자네를 위해 20년 전에 했던 일…… 이젠 자네가 나를 위해 해줘야겠네.

강민식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끊을 수 없는 마약처럼 그의 심장을 좀 먹어 들어왔다.

과연, 칼 한 자루도 제 손으로 살 수가 없어 수십만 원을 주고 부탁한 그가 그 엄청난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하…….”

절로 탄식이 새어 나왔다.

도대체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렸는지 모르겠다.

이제 이 칼 한 자루면 그의 호화스러운 인생이 한 번에 뒤집힐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검을 놓을 수가 없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위씨 집안의 둘째 아들이 보통 놈이 아니라고 했다.

마음을 돌린 조직원들의 진술에 의하면, 그는 ‘괴물’로 묘사되고 있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을 경우,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 또한 사람인지라, 그런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아무렇지 않게 살 자신도 없다는 것.

그렇게 그날 밤 박중훈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유난히 끝이 뾰족한 단검 한 자루와 함께.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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