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설레게하는 그대-82화 (82/94)

82. 잔 다르크

2018.09.16.

공개 구혼 그 이후, 세상이 변했다.

갑작스럽게 잡힌 결혼으로 인해 두 사람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덕분에 그와 얼굴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눠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본의 아니게 견우와 직녀가 될 판이다.

뭐, 다 좋다.

미친 강 부자(父子) 때문에 경찰서를 쫓아다니는 것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로 인해 갑자기 폭주해버린 업무도, 거기에 틈틈이 하는 결혼 준비도, 다 참아 줄 수 있었다.

그런데,

“봤니? 맞지? 유빛나 변호사?”

“이쁘긴 이쁘더만. 하긴 그 정도는 생겨줘야 그런 남자를 잡지. 세상에…… 도대체 전생에 무슨 공을 세웠길래 현생에 그런 로또가 터지노.”

“뭐가 이뻐? 여우상이더만.”

“어머, 야. 솔직히 여우상은 아니더라. 그리고 다리 봤어? 무슨 다리가…… 그렇게 이쁘니?”

“이쁘면 뭐해. 어차피 웨딩드레스에 가려질 다린데.”

이건, 도저히 못 참겠다!

여자의 질투 어린 시선으로 난도질을 당한 덕분에 이미 멘탈은 넝마였다.

과감한 프러포즈와 함께 그들의 러브스토리가 재조명되며 그녀의 출신 또한 만천하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현대판 신데렐라로.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웨딩드레스를 보기 위해 온 숍 화장실.

가뜩이나 이 자리에 승현 없이 그녀 혼자 온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이런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견신 강림하사, 개빛나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결국 빛나는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여자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흙빛이 되었다.

빛나가 여자들을 향해 획 돌아섰다.

그러자 놀란 여자들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지만 그녀의 시선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네, 제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봅니다.”

“…….”

“뭐, 굳이 따지자면 잔 다르크 정도쯤.”

“아니, 그게 저희는…….”

“그리고, 제 다리요? 네, 좀 예쁘죠? 저도 압니다. 그 사람도 제 다리에 뻑 갔거든요! 제가 이 다리로 나라를 구했어요! 그래서 내친김에 파격적인 미니 드레스를 입고 결혼할 생각인데, 어때요! 저한테 어울릴까요!”

그것은 물음이 아니었다.

그녀들이 방정맞은 주둥아리로 내뱉은 그 말들을 다시 씹어 돌려주는 것이었다.

대찬 빛나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그녀들은 얼굴이 화끈거리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픈 심정이었던 것이다.

누가 봐도 질투.

그래서 더 없이 민망한 순간이었다.

얼른 이 상황을 빠져 나가고 싶은 생각에 한 여자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다, 다리가…… 예쁘셔서…… 미니 드레스,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하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말.

이번에도 역시 빛나에게서 대찬 대답이 되돌아왔다.

“가-암-사 합니다! 칭찬해주셔서!”

그리고 그녀는 하이힐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날 만큼 날카롭게 돌아서 화장실을 나와 버렸다.

“망할 자식.”

이게 다 그 공개 프러포즈 때문이다.

덕분에 설레야 할 결혼 준비가, 본의 아니게 그녀의 인내심 테스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는 쏙 빠져버렸다.

중요한 회의가 있다는 핑계로.

더 이상 용서할 수가 없다.

너무 억울해서 혼자만 당하긴 아까워 죽겠단 말이다!

“아아악! 못 참아!”

대기실로 들어서며 그녀가 소리를 빽 지르자 승희와 함께 기다리고 있던 복실이 돌아보며 물었다.

“왜, 배고파?”

역시나 자신의 느낌대로 그녀를 해석하며.

“아니, 더 이상은 못 참겠어! 결혼은 나 혼자 하니?”

그 말에 승희가 제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안 그래도 어떻게 언니 웨딩드레스 맞추는 날까지 시간을 못 맞추냐고 메시지 보냈는데 씹혔어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나만 그런 소리를 들어?”

“소리? 무슨 소리?”

그랬다. 그녀는 웨딩드레스숍에 혼자 와서 억울한게 아니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녀가 땡잡았다 표현하지, 승현이 복 터졌단 이야긴 안 한다.

그 사실이 더 없이 억울하고 서러웠다.

그래서 빛나는 자신의 핸드폰을 찾아 들었다.

“음, 오빠 전화 안 받던데.”

“전화하려는 거 아니에요.”

“그럼?”

복실의 반문에 빛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이 하는 방법은 다 틀렸어.

바빠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위승현을 움직이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지.

“사진이나 찍어줘. 나 드레스 입은 거.”

그렇게 말하며 빛나는 복실에게 핸드폰을 내밀었고, 오늘 그녀를 담당하는 웨딩드레스숍 실장에게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숍에서, 제일 야한 드레스 하나 부탁드려요! 등판 다 보이고 가슴 확 파인 걸로!”

***

심각한 회의가 한참 진행중이었다.

수십억을 호가하는 마케팅 기획이 하루아침에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상대는 이제 한국에 진출하려는 해외 S브랜드.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S브랜드는 중간 점검을 할 땐 아무런 말이 없다가 최종 기획안을 오늘 아침 돌려보냈다.

브랜드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했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승현은 그들의 핑계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긴급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이쪽 관계자는 저번에 선보였던 G브랜드의 마케팅이 마음에 들었다며 방향을 그쪽으로 바꿔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관계자의 말을 들으며 승현은 자신의 태블릿으로 시선을 주었다. 메신저로 조금 전부터 계속 들어오는 메시지에 잠시 정신이 팔린 것이다.

복실과 승희였다. 번갈아가며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열이 받아도 단단히 열 받은 모양이다.

하지만 어쩌랴.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을.

그는 메시지를 무시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방향을 조금 바꿔 볼 순 있습니다. 하지만 G사와 동일한 전략은 절대 안 됩니다.”

“S브랜드에서 과연 좋아할까요?”

관계자의 물음에 승현의 눈썹이 곤두섰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고, 그들을 설득해야 할 장본인이 그 정도 자신도 없습니까? 제가 직접 갈까요?”

“제가…… 가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입을 열며 앞으로 나섰다.

장 부장이었다.

“자신 있습니까?”

그렇게 물으며 다시 한 번 날아온 메시지에 승현은 태블릿으로 시선을 흘깃 주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냥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복실이나 승희가 아닌 빛나로부터 온 포토 메시지.

승현은 저도 모르게 그것을 클릭했다.

그리고,

“평생 해온 일 아닙니까. 설득시키겠습니다. 마케팅은…….”

“으아악! 이게 뭐야!”

장 부장의 말을 끊으며 소리를 내질렀다.

태블릿 화면 가득 메우고 있는 사진은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빛나였다.

보통 이런 순간 신랑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그의 여자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으로 봐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예쁜 빛나의 모습은 여신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그 숨이 멎을 만큼의 아름다움에 감탄사와 함께 호흡곤란이 찾아온다든가,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뛴다든가, 하는 합당한 조건반사가 이뤄줘야 했다.

그러나 승현의 반응은,

“말도 안 돼!”

절대로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감탄사 따위가 아니었다.

물론, 호흡곤란과 함께 폭발할 것 같은 심장박동을 느낀건 사실이다.

문제는 흥분이 아닌 ‘열 받음’으로 인한 화학작용이라는 것.

“제가…… 가는 게 마음에 안 드신다면…….”

놀란 장 부장이 더듬더듬 이야기하자 승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놀란 직원들의 눈이 일순간 그에게 향했다.

그들이 보는 시각은, 이러했다.

아니, 장 부장이 직접 S브랜드를 설득시키겠다고 한 게 그토록 큰 잘못일까?

내가 나서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로구나.

그러나 얼굴이 벌게진 상태로 급하게 일어나 승현이 툭 던진 한마디는 그 모든 상황을 뒤엎었다.

“아니! 갔다 와요, 갔다 와. 장 이사가, 직접 가서 설득시켜! 그럼 난 볼일이 있어서 이만!”

그렇게 말하며 승현은 부리나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순간, 주변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방금, 장 부장을 장 이사로 잘못 부른 거 맞지?

침묵 속에 서로의 시선이 오갔다.

하지만 승현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한 엘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칠칠맞게 남기고 간 태블릿으로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방금, 파격적인 프로모션이 있었던 것 같네요. 축하드립니다, 장 이사님.”

모든 이의 놀란 시선이 장 부장이 아닌 장 이사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며 승현이 뛰어 들어와 엘리스를 보며 기겁을 했다.

“안 돼! 안 돼! 만지지 마-악!”

장 부장을 장 이사로 불렀을 때조차도 침착했던 엘리스가 순간적으로 놀라 그의 태블릿에서 손을 거둬들였다.

기가 막혀 벙져 있는 엘리스를 뒤로하고 승현은 자신의 태블릿을 바짝 끌어안았다.

“나만, 나만 볼 거야. 아무도 못 봐.”

그러곤 미친놈처럼 중얼거리며 회의실을 나가버린다.

의도적인 프로모션이 아니라 정말 장 부장을 장 이사로 잘못 부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

무슨 정신에 운전을 하고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대기실에 들어선 그는 조금 전 그 사진에서 툭 튀어 나온 듯한 빛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헉. 헉…… 너, 그 드레스…….”

주차장에서 얼마나 뛰어왔는지 말을 하는데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제대로 말을 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호흡을 고르고 있는데 그의 옆으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시선을 돌려 보니 놀라 입이 벌어진 승희와 복실이 있었다.

“대박…… 진짜 왔어.”

“헐, 거의 순간이동 수준인데? 20분 걸렸어.”

아, 진짜. 얘네들 도대체 뭐라는 거야?

지금 그게 문제야?

“둘 다 나가 있어! 나 빛나랑 할 말 있으니까.”

“잘됐네! 언니도 너한테 할 말 있다는데!”

복실이 고소하다는 듯 눈을 흘기며 승희와 함께 나갔다.

드디어 둘만 남게 된 공간.

호흡을 다듬은 승현의 시선이 빛나에게로 돌아가자, 그녀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아찔한 곡선의 다리가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더불어 훤히 드러나는 가슴골 또한 사고 할 수 있는 뇌의 90%를 잠식해버린다.

“무슨…… 웨딩드레스가 이렇게 야해? 말이 돼? 스커트 밑단은 다 어디 간 거야? 길이가 이게 다야? 그리고 가슴은 왜 이렇게 끌어모은 건데? 누구 좋으라고!”

그랬다.

빛나가 보내온 한 장의 사진.

태어나 이런 웨딩드레스가 있다는 사실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뒤에서 보면 완벽한 벨라인 웨딩드레스였으나, 앞에선 양쪽으로 벌어진 스커트 단 밑으로 그녀의 늘씬한 다리가 전부 드러났다.

문제는, 절대 이 드레스를 입고는 예식장에 설 수 없다는 것!

“아니, 왜? 예쁘지 않아?”

“예쁘냐고? 하, 예쁘지. 예쁜데…… 드레스, 너무 야해.”

눈썹까지 곤두세우는 그를 보며 빛나는 팔짱을 낀 채 은근한 웃음을 보였다.

그럼 그렇지. 저 지랄 맞은 소유욕.

백번 문자하고 전화해봐야 소용없다.

천하의 위승현을 움직이는 방법은 누구보다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

“풋.”

“너, 지금 웃냐? 이게 웃을 일이야? 아, 몰라. 나는 너 그거 입는 꼴 죽어도 못 보니 다른 걸로 입어. 보는 늑대들이 몇인데 그런 걸 입겠대? 내가 앓느니 죽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강한 의지를 표현하는 그의 모습이 귀여웠다.

조금 전 화장실에 있었던 그 더러운 기분이 말끔히 씻겨 내려갈 만큼.

그래서 빛나는 이쯤에서 그를 향한 고문은 그만두기로 했다.

“이거, 촬영용이야. 본식용이 아니라. 걱정 마. 예쁘긴 하지만 저걸 입을 만큼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진 않았으니까.”

“뭐? 그럼…… 왜 저걸 입은 건데?”

묻는 승현의 가슴을 다정하게 토닥이며 빛나가 웃었다.

“온 김에 너도 예복이나 입어봐. 나는 다른 거 입을 테니.”

쿨하게 돌아서는 그녀를 보며 승현은 잠시 정지 상태가 되었다.

뒤늦게야 당했다는 예감이 그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

승현이 예복을 입고 나왔다.

그러자 웨딩숍 실장이 두 손을 모으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다.

“좀 끼는 것 같지 않아요? 팔이 불편한데.”

승현은 턱시도가 불편한 듯 거울을 보며 이야기했지만 모두들 아니라는 눈초리다.

그만큼 그는 웨딩 모델보다 더 시원스러운 기럭지로 웨딩 턱시도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뭐, 어쨌든…… 우리 빛나만 제대로 된 웨딩드레스 입으면 나는 뭘 입어도 괜찮…….”

촤라락!

그때, 드디어 커튼이 열리며 웨딩드레스를 입은 빛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두들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에 넋을 놓았다.

웨딩드레스의 정석, 벨라인이었다.

물론 기가 막히게 길고 예쁜 그녀의 다리는 우아하게 퍼진 치맛자락이 모두 가리고 있었지만 잘록한 허리와 가느다란 팔이 유난히 돋보이는 드레스였다.

게다가 가슴 위쪽으로는 목을 살짝 덮는 반 차이나에 짧은 소매로, 승현이 원하는 만큼 가릴 곳은 다 가렸지만 답답해 보이지 않는 라인이었다.

“어떠세요? 아직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하객들은 한참 신부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하니까, 저희가 이 뒤쪽에 디테일을 더 넣어 우아하게 마무리를 할 생각이거든요.”

실장이 일일이 설명을 하고 있었으나, 이미 승현의 귓전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로 들릴 뿐 아무것도 보고 들을 수가 없었다.

그의 눈은 온전히 제 신부만을 담고 있었으므로.

“우와, 대박! 진짜 예쁜데? 딱, 언니 스타일이야. 오묘한 절제의 미!”

“그러게, 진짜 우아해 보여.”

승희와 복실도 감탄에 연속이다.

그러자 더욱 자신감이 붙은 실장이 빛나를 향해 다가오는 승현을 설득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유명한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홍나래 선생님 작품이에요. 국내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시죠. 톱배우 장하연 씨 드레스도 그분이 직접…….”

“이거, 살게요.”

하지만 그딴 부연 설명은 필요 없어진 지 이미 오래다.

승현의 입에서 사겠다는 말이 먼저 떨어졌으니.

“난 이거 살 생각 없는데…… 너, 이 드레스가 얼만 줄 알고 사겠다는…….”

빛나가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승현의 손을 잡으며 속삭였지만 곧 그의 목소리에 의해 가로막혔다.

“잠깐, 자리 좀 비켜주실래요? 제 와이프랑 이야기 좀 해봐야겠습니다.”

갑작스럽게 계획에도 없던 웨딩드레스를 사겠다는 말에 화가 날 법도 하건만,

와이프란 말에 가슴은 왜 이렇게 벌렁이는지.

이놈의 심장은 정말 지조도 없다.

사람들이 나간 후 빛나는 승현의 가슴을 후려치며 속삭였다.

“이거 진짜 비싸! 평생에 한 번 입을 드레스에 그렇게 많은 돈 버리고 싶지 않다고!”

“살 거야. 이거…… 딱 네 드레스거든. 딱 너만을 위한 드레스. 그전에도, 앞으로도 이런 드레스 입을 사람은 없을 거야.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테니.”

“난…….”

쪽!

뭔가 반대 의견을 그럴듯하게 내놓으려 했지만 승현이 갑작스럽게 그녀의 입에 달콤한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왔다간 그의 입술은 그녀의 모든 감각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쪽.

빛나가 제 입술을 손으로 가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웃음기 가득한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조금 전 머리를 쥐어뜯고 싶을 만큼 얄미웠던 감정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게다가 턱시도를 입고 살짝 흩어진 앞머리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그녀를 설레게 만들었다.

“웨딩드레스로 트집 잡아서 미안해. 근데 말이지, 진짜 가슴 파인 드레스는 아니었어.”

“왜, 딴 놈들이 볼까 봐?”

“아니, 내가 예식에 집중 못 할까 봐.”

“이, 늑대!”

“가리고 있으니, 이제 좀 집중이 되네.”

“왜, 천사 같아?”

“아니, 웨딩드레스 입은 악마 같아.”

“으이구…….”

원수가 따로 없다.

평생 그녀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할, 철천지원수!

“후훗…….”

“웃어? 웃음이 나와? 내 정신적인 고통이 얼마나 큰 줄 알아?”

“무슨 소리야?”

“네가 한 그 공개 프러포즈 때문에 나 완전 공공의 적이 됐다고. 모든 여자들이 나만 보면 못 씹어서 안달이란 말이야!”

빛나가 드디어 속내를 털어놨다. 혼자만 당한 게 너무 억울해서.

그런데 그녀의 투정을 듣고 있던 그의 입에서 뜻밖의 고백이 이어진다.

“그 고통…… 너만 받는 거 아냐.”

“뭐라고?”

“나도 소도둑놈 취급당한다고.”

“무슨…….”

“가는 곳마다 남자들이 날 그렇게 쳐다봐. 이번에 조현희랑 스캔들도 잠시 터졌겠다, 놀 만큼 논 놈이 결혼은 능력 있고 예쁜 데다 머리까지 좋은 여자 만나 한다고. 대한민국 모든 남자들이 날 그렇게 쳐다본다고…….”

그 말에 퉁퉁 불었던 그녀의 마음이 단번에 풀어져 버렸다.

“어쨌든 사랑해.”

“진짜 미워할 수가 없어!”

“그런 의미에서 키스라도…… 나 요즘 지랄맞은 스케줄 때문에 욕구불만으로 터지기 일보 직전이거든.”

그렇게 말하며 승현이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휘어 감았다.

그의 품으로 가볍게 빨려 들어간 빛나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결국 인정했다.

“나 전생에 진짜…… 잔 다르크였나 봐.”

그의 입술이 와 닿았다.

그리고 잠시 후 열린 입술 사이로 그가 거침없이 치고 들어와 그녀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더없이 행복하고, 더없이 짜릿한 순간이었다.

***

다음 날 승현은 바쁜 시간을 쪼개 보육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대바-악! 말도 안 돼! 진짜였어!”

“도둑놈!”

“띠! 틀렸어! 도둑놈은 아니지! 네가 도둑의 정의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인데, 도둑은 말이야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쳐내는 거야.”

“울 빛나 누나를 훔쳤잖아요!”

“아, 놔…… 진짜. 빛나는 처음부터 내 거였어! 알간? 니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침 발라놓은 여자라고!”

빛나를 각자 제 여자라고 우기는 세 악마들에게 둘러싸여 이지매를 당하는 것이었다.

비겁한 것들, 셋씩이나 한꺼번에 덤비다니!

하지만 여기서 질 수는 없다.

“우아앙!”

결국 한 놈이 울고 떨어져 나갔다.

“말도 안 돼!”

나머지 한 놈은 현실 부정을 하며 돌아섰다.

그런데 마지막 한 놈이 문제다.

울지도 않는 이 녀석은 시종일관 곤두선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꾹 다문 입술에서 그 고집스러움을 엿볼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다.

이에 승현은 천천히 팔짱을 껴며 꼭 그의 미니미 같은 승헌을 거만하게 내려다보았다.

“왜, 넌 안 가? 그렇게 노려봐도 달라지는 건 없어. 나 곧 결혼해. 빛나랑.”

“근데 여긴 왜 왔는데요, 또. 자랑하러 왔어요?”

“어. 확실히 해두려고.”

“우씨!”

아이가 돌아섰다.

하지만 쿵쾅쿵쾅 내딛는 발걸음에서 화를 읽어낼 수가 있었다.

골이 나도 단단히 난 것이다.

승현은 그런 아이의 모습을 흐뭇한 듯 바라보았다.

열 받으면 발 굴리는 것까지 어렸을 때 자신이 모습을 어찌 저리도 닮았는지, 새삼 놀라웠다.

그때 줄곧 주차가 되어 있던 검은 승용차 뒷좌석에서 누군가 내려서 그의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설마…… 너…… 나 몰래 사고 친 적 있냐?”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마세요. 빛나 성격 아시죠? 저…… 다 쥐어 뜯겨요.”

위태준이었다.

승현이 뭔가를 보여주겠다고 온 자리에서 위태준은 어렸을 때 그와 너무도 닮은 승헌을 본 것이다.

방금 전 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아이는 승현의 미니미 같았다.

“DNA 검사라도 해봐야겠다. 어떻게 저렇게 닮을 수가 있나…….”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위태준의 눈은 아직도 충격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흔들리는 위태준에게 승현은 조용히 말한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

“저 녀석…… 제가, 가슴으로 낳은 자식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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