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그의 꿍꿍이
2018.09.09.
드디어 KMK컴퍼니와 마지막 협상이 있는 날.
몇 달 전부터 손꼽아 기다렸던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아침부터 긴장을 한 빛나와는 달리 엘리스와 함께 협상 테이블에 나타난 승현은 한층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본사의 결정을 기다리느라 새까맣게 애가 탔었는데, 막상 결과물을 들고 협상 테이블에 나서니 다소 긴장감이 완화된 느낌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빛나의 속은 새까만 잿더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과연 어떤 결과물이 완성될까.
그 결과가 어찌 되었건, 이젠 받아들이는 일밖에 없었다.
그녀의 곁에선 장 부장 또한 얼굴빛이 시꺼멓게 죽어 있었다.
회사로 복귀는 되었다지만, 결국은 그들의 혐의가 전부 벗겨졌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에 그들의 완벽한 복직을 바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
승현이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떼었다.
남의 속은 바짝 타는데, 장난기 서린 저 여유 있는 눈이 오늘따라 유독 얄미웠다.
원래도 얄밉게 잘생기긴 했지만은.
“일단 그쪽에서 원하는 요구 조건들을 모두 훑어보긴 했습니다만…….”
그가 뜸을 들이며 요구 조건이 정리되어 있는 서류를 넘겼다.
빛나는 마른침을 꿀꺽 집어 삼켰다.
“회사는 지급했지만 공금 횡령으로 인해 직원들은 받지 못한 3개월치 월급에, 직원들 100% 재 채용, 하지만 채용 조건은 이전 연봉의 10%를 인상해주는 조건. 여기에는 여전히 타협의 의지가 없어 보이네요?”
“당연하죠. 저희가 제시한건 최소한의 조건인데, 거기서 더 물러설 순 없지요.”
긴장했다는 건 거짓말.
승현의 목소리에 빛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역시나 실전에 강한 여자다.
“회사가 정상적으로 유지가 되었다면, 충분히 한 번 정도는 오갔을 연봉 협상입니다. 게다가 그동안 이번 건이 진행되오며 한 집의 가장이었던 직원들의 고충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합니까. 연봉 10% 인상은 회사로서는 당연히 지켜야 할 의리라고 봅니다. 우리 직원들이 그 힘든 상황에서도 굳건히 지켜왔던 의리처럼…….”
빛나는 마지막 말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그 말에 그 자리에 직원들의 대표로 자리하고 있던 장 부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켜왔던 의리라…….
억울함이 크다 생각했다.
하지도 않은 일에 부수적인 피해자가 되어 이번에도 사회의 약자가 되기는 싫었다.
당연하다는 듯 그 횡포에 굴복하긴 더욱 싫었고.
그런데 빛나는 그것을 의리라 해석했다.
못난 사람의 못난 의도를 그녀가 바르게 읽어낸 것이다.
그 마음이 너무 예쁘고 감동이라 가슴 한켠이 다 먹먹해졌다.
“회사가 ‘철수’라는 최악의 수를 둔 그 상황에서도 이 사람들은 그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비 오는 날 말도 안 되는 서명 운동까지 벌이며 회사 철수를 반대한 사람들이니까요.”
“회사 측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이미 공중분해 되어버린 230억 원을 메우려면 얼마나 많은 인력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압니다. 재정비보다는 철수가 더 쉬웠다는 거. 하지만 쉬운 길은 늘 희생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 희생을 우리 직원들이 했구요.”
아침까지만 해도 다정하게 출근했던 두 사람이,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한 침대에서 잠들었던 두 사람이 살벌하게 대치하는 이 상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이 턱 막히게 만들었다.
과연 이들이 만천하가 다 아는 공개 연인이 맞나 싶다.
지금 두 사람의 눈빛으로 봐서는 연인이라기보단 철천지원수에 더 가까웠으므로.
“좋습니다. 어쨌든 그동안 쭉 진행해오던 이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거 아닙니까. 제가 마지막 협상안을 발표하기 전에 더 할 말이 있으십니까?”
그의 손에 들려진 본사의 협상안은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 협상안을 직원들이 만족하지 못한다면 소송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마지막 평화 협상안이었다.
때문에 긴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승현은 진한 눈매를 들어 장 부장과 빛나, 그리고 은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빛나는 승현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몇 날 며칠 본사와 의견 조율을 위해 스트레스 받는 모습을 곁에서 직접 지켜본 그녀였다.
물론 그가 직원들 편에 서서 싸웠다는 건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의 손에 들린 건 회사가 제시한 마지막 협상안.
이미 결정이 나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그인데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평소엔 들쭉날쭉 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던 그의 눈매가 오늘만큼은 웬일인지 철저히 포커페이스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속셈일까.
왜 저토록 날을 세우는 걸까.
만족스러운 협상안이 나오지 않았나?
속이 탔다.
타다 못해 잿더미가 되어 누군가의 큰 심호흡 한번에도 깡그리 날아가 버릴 판이다.
두 사람의 대치 상황을 보며 은지는 마른침을 삼켰다.
감히 서투른 말 한마디로 분위기를 흐렸다간 뼈도 못 추릴 상황이다.
그런데 그때 줄 곧 조용히 있던 장 부장이 더듬더듬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제가…… 할 말이…….”
“예, 하십시오.”
“그러니까…… 일단, 두 변호사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번 일이 변호사님들께는 수많은 사건의 하나가 되겠지만, 저에게는…… 아니 저희에게는…… 정말 한 줄기 희망이었습니다. 결과가 어찌 되었건, 평생 두 분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저희 직원들 모두…….”
“무슨 말씀을…….”
“하지만…… 회사에서 내린 결과가 어떻든, 그냥 받아들이겠습니다.”
“네?”
“더 이상 소송까지는 가지 않겠다 이 말씀입니다. 이만하면 저희가 바랐던 소량의 목표는 달성했다고 봅니다. 본부장님과 변호사님들 덕분에…… 저희 혐의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습니까.”
장 부장의 선한 눈동자가 모인 좌중을 둘러보며 이야기했다.
그에겐 단 한 사람도 놓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편에 서주었던 빛나나 은지도 그러했지만 회사 대표로 앉아 있는 승현과 엘리스도 그에겐 고마운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들이 아니었다면 직원들은 평생 찜찜한 혐의를 뒤집어쓴 채 어디도 갈 수 없는 사회의 루저가 되었을 테니까.
게다가 빛나는 그들의 그간의 노력을 소중한 의리로 해석하지 않았나.
빛나가 그렇게 봤다면 다른 이들도 그렇게 봤을 것이다.
그것이면 되었다, 생각했다.
어제 있었던 동료들과의 회의에서도 오늘 이어질 협상안을 마지막으로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라 만장일치를 보았다.
포기가 아니다.
사회에 떳떳해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에겐 이번 투쟁이 결코 헛된 일만은 아니었으니.
그러나.
여기서 가만히 있을 승현이 아니다.
그는 감동으로 넘실대는 이 분위기를 짓궂은 말투로 툭 잘라냈다.
“어허, 장 부장님. 제 말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으레 끝을 보시면 곤란합니다.”
“네?”
“제가요, 주목받지 않으면 안 되는 성격이라.”
“아. 네.”
민망한 듯 장 부장이 앉았다.
그러자 승현이 헛기침과 함께 서류철을 열고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른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유 변호사님과 제가 협상한 내용이 있습니다.”
헐…….
줄곧 잠잠히 있던 엘리스가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듯 승현을 찌릿하게 쳐다보았다.
본사 법무팀인 그녀 없이 상대 변호사인 빛나와 승현이 개인적으로 협상했다는 내용에 대해 탐탁지 않은 것이다.
두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의 강자는 늘 그랬듯 빛나였으므로.
이번엔 또 뭘 내어주셨나!
엘리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승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한 번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기억하십니까, 유 변호사님? 그날…… 오갔던 딜.”
당연히 기억하다마다.
그런데 그건 왜 또 걸고넘어지는 것일까.
그건 두 사람 사이에서만 오간 협상이라 법적인 의미가 없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모두들 궁금해 하는 눈치다.
하다못해 은지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숨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한 공간.
드디어 승현의 입이 떨어졌다.
“유 변호사님이 직접 개빛나가 되기로 한 거…….”
빠직!
아니, 그 이야기를 왜 이런 공석에서 꺼내시나!
빛나의 이마에 실핏줄이 돋았다.
“직접 사냥개가 되어 회수하지 못한 230억 원을 되찾아 주겠다 했었지요, 아마?”
“도대체 그 이야기를 왜…….”
이를 악 문 빛나가 원수를 바라보듯 그에게 눈을 흘겼다.
“그 결과, 그 나쁜 자식 탈탈 털어 90% 이상은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아직 재판이 끝이 난건 아니지만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210억 원가량은 회수가 될 전망입니다. 사실상 진범이 잡힌다 하더라도 그 금액을 회수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던 터라 본사 측에서도 상당한 성과라 생각하고 이번 협상안을 굉장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했습니다.”
순간 장 부장의 눈이 커졌다.
회의 초반 날카로운 승현의 반응으로 보건데 그리 호의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던 탓이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 떡이란 말인가!
“그럼…….”
“네, 그쪽에서 내민 협상안을 100% 수용했습니다. 받지 못한 3개월치 월급, 당연히 드려야지요. 그 회수된 금액엔 직원들의 월급도 포함이 되어 있으니.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함께해준 직원들을 전부 재 채용하기로 했습니다. 그전 연봉의 10% 인상 조건과 함께 상당한 보너스도 지급될 겁니다.”
“세상에…… 감사…… 합니다.”
빛나를 비롯해 은지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고 장 부장은 시선을 떨군 채 터져 나오는 눈물을 집어삼키며 감사하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승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와 장 부장에게 두꺼운 서류철을 하나 넘겼다.
장 부장은 그가 넘긴 서류철의 앞장을 넘겨보며 눈을 크게 뜨다 결국은 왈칵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곳엔 그동안 힘든 싸움을 함께 했던 직원들의 프로파일이 A4를 가득 메워 한 권의 책처럼 묶여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면담을 하며 승현이 작성한 정성스러운 프로파일이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것으로 본사와 직원들의 재채용건에 대해 협상했다는 걸.
“물론 여기엔…… 제가 친 사기도 좀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본사는 설득시켜야 했으니까. 하지만 제가 그동안 쭈욱 지켜본 결과…… 한 사람도 버릴 사람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세상에…… 흐흑.”
“말이 좋아 마케팅이지, 저희는 사람의 꿈을 파는 광고쟁이가 아닙니까.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꿈을 꾸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자격이 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아뇨, 장 부장님. 감사는 오히려 제가 드려야지요.”
장 부장이 일어나 승현의 손을 맞잡았다.
그의 눈에선 참지 못한 뜨거운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장 부장은 태어나 사람이 너무 좋아도 눈물이 난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그렇게 서럽게 우는 장 부장을 향해 승현이 어깨를 낮추었다.
그러곤 고개를 숙이며 꽉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보여주신 의리…… 이젠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잘못한 것 없는 승현이,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순간이었다.
***
“흐흐흑…….”
주책이다.
정말 주책이 따로 없다.
하지만 솟구치는 감동의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빛나는 일곱 번째 티슈를 뽑아 들며 닭똥같은 눈물을 훔쳤다.
“그만 울어. 누가 보면 내가 나쁜 놈인 줄 알겠다.”
“우씨…… 누가. 어떤 새끼가. 그런 놈 나오기만 해. 내가 명예훼손죄로다가 바로 처넣을 테니까. 감히 우리 승현이한테…… 흐흐흑.”
감동의 도가니였던 협상 회의가 끝나고 모든게 평화적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승현을 제외하고 모두 눈시울이 붉어진 상황은 결코 평화적이라 할 수 없었다.
울지 않는 그만 나쁜 놈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뭘?”
“직원들 프로파일 작성해서 본사 설득시킨 거.”
“그거야, 그냥 맨입으로는 절대 안 될 테니까. 회사에 메리트를 제공한 거지. 이 사람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그리고 충분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알고 보니 완전 엘리트들이더라고. 이 바닥에서는 잔뼈가 굵은.”
승현이 씨익 웃자 그렇지 않아도 잘난 그의 얼굴에 잘생김이 더 덕지덕지했다.
아, 이 일을 어쩌면 좋을고.
이 남자가 내 남자라고 빌딩 옥상에서 소리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 빛나.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고 했더니, 요즘 툭하면 울어.”
“이런 감동적인 상황에서 너만 안 우는 게 더 이상한 거야. 엘리스도 훌쩍이더만…….”
“그러니까, 내 말이. 피도 눈물도 없는 엘리스가 울다니…… 이러면 혼자 눈물 한 방울 안 흘린 나는 뭐가 되나.”
그렇게 말하며 승현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런데 문득, 얼마 전 위태준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특히나, 승현인…… 겉으로는 다혈질에 툭툭거려도, 언젠가부터 울음을 멈춰버린 아이야.
-가슴에…… 설움을 안고 사는 거야, 그 녀석이.
울 줄을 모른다던 그 아이.
바로 눈앞에 있는 그녀의 남자.
그래서 빛나는 물었다.
“넌…… 이런 순간, 눈물 안 나와?”
“응.”
“그럼 언제 울어?”
“글쎄. 난 잘 안 우는 편이라.”
“나 보곤 울음 참지 말라더니?”
“나는, 참는 게 아니라 눈물이 안 나오는 거야.”
“슬플 때도 눈물이 안 나와?”
“글쎄. 특별히 슬퍼본 적이 없어서.”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왜 안 울었어? 하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도를 넘는 질문 같아 입을 다물었다.
대신 짓궂은 한마디가 그 진심을 대신했다.
“피도 눈물도 없어.”
“아니지. 눈물만 안 나올 뿐이지 남들 느끼는 건 다 느껴.”
“그럼 너도 조금 전 그 순간이 감동이었단 말이지?”
“아니, 그거 말고.”
“…….”
“너 울면, 난 마음이 아파. 그게 기쁨의 눈물이든, 슬픔의 눈물이든, 네가 울면…… 난 여기가 쿵, 한다고.”
그렇게 말하며 승현은 제 왼쪽 가슴을 정확히 집어냈다.
하지만 그러한 그의 행동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만다.
“우아앙!”
감동으로 빛나의 눈물이 화산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서럽게 우는 그녀를 가슴에 안아 다독였다.
그동안 이번 사건으로 인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까.
이제야 긴 여정이 끝이 났다 생각하니 그도 목이 꽉 잠겼다.
물론, 아직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근데 처음 협상 테이블에선 왜 그렇게 딱딱하게 나왔어? 마치, 하나도 양보하지 않을 것처럼?”
“그거야…… 너무 덥석 줘버리면 감동이 없잖아?”
“우씨…… 요즘 사람들이 걸린다는 그 관심 병, 혹시 너도 걸렸니?”
“아니!”
“뭐 어쨌든. 감동이 목적이었다면 성공했어. 완전 극적이었거든. 내 심장이 다 오그라들었다고.”
“그래도 지금은 잘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그만 울지? 내일 얼굴 퉁퉁 부으면 어쩌려고?”
“좀 부으면 어때?”
“화면에 퉁퉁 불어 나온다고 나한테 신경질 낼까 봐 그래.”
“응? 화면? 무슨 화면?”
그제야 빛나는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고 물어왔다.
그러자 승현은 의도를 알 수 없는 얼굴로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말 안 했나?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서 내일 기자 회견 있는데…….”
헐…….
헐…….
헐!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빛나는 눈물을 훔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넋을 놓았다.
그러다 정말 놀란 듯 발작적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헐, 관심병 맞네. 관심병 맞아!”
눈물 뚝!
감정 제대로 추스른 빛나가 사태 파악을 하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보에 도저히 감정 이입을 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아니, 가만히 있어도 내일이면 온통 도배가 될 기사거리를 굳이 기자회견까지 하며 더 화려하게 마무리 지어줘야 할 이유가 있어?”
“잠잠했던 사건을 수면 위에 올려 이슈를 만든 것도 우리였으니, 마무리도 우리 손으로 깔끔하게. 국민들도 이번 협상안의 결과에 대해 알 권리 정도는 있어.”
알 권리는 개뿔!
그녀를 마주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그의 짓궂은 눈동자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분명, 무언가 더 있다.
단지 그녀가 그것을 예측하기 어려울 뿐.
승현은 눈썹을 곤두세우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코끝이 빨개지고 촉촉이 젖어 있는 눈가가 어찌나 예쁜지, 그는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칼을 넘겨 귀 뒤로 넘겨주며 입을 열었다.
“내가 할게.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넌 걱정 마. 그냥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하면 돼.”
돌겠다.
가만히 서 있는다고 얼굴 안 팔리나?
“그래도 말은 해줬어야지! 어떻게 내 의사도 안 묻고 기자회견을 계획해?”
“그렇게 됐어. 넌 정말 그 옆에 서 있기만 하면 된다니까. 말은 내가 다 해. 질문도 내가 대답할거고.”
그가 말은 그렇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를 내려다보는 저 짓궂은 눈동자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뭔가 거대한 음모에 휘말린 느낌.
또는 볼일을 보고 손을 안 닦은 것 같은 이 찜찜함의 정체는?
결국, 빛나가 실눈을 뜨며 되물었다.
“근데…… 왜 자꾸 그렇게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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