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위승현, Sold out!
2018.09.05.
“제게…… 승현이…… 파십시오!”
위태준의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가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덕분에 그녀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승현이를…… 팔라고?”
밑으로 넷이나 줄줄이 딸린 자식들이 그에겐 자랑이었다.
누구보다 사랑하고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자식들이었단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자식들이 노멀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게 바로 위태준의 고민이었다.
남들은 누가 봐도 자식 농사 잘했다고 그를 부러워하지만, 타고난 배경으로 인해 자식들이 안고 갈 수밖에 없는 리스크를 잘 알고 있는 위태준으로서는 제 자식들에 대한 자랑스러움보다 안타까움이 컸던 탓이다.
“네, 제가…… 그 사람 사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 들어온 며느리마저 정상이 아니니 이 일을 어쩌란 말인가!
“그게…… 승현이는…… 물건이 아니라서 말이야. 우리 빛나 양이 뭘 잘 모르는 모양인데 사람은…….”
“압니다. 제가…… 한참 부족하다는 거…….”
“아니. 나는 그런 뜻으로…….”
무슨 오해가 있나 싶어 위태준이 극구 부정했으나 빛나의 커다랗고 현명한 눈동자가 너무 진지하게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숨이 막힐 만큼 현명한 눈동자였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옳은 판단을 내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을 만큼.
“힘없이 자랐습니다. 그 힘이라 함은 남들이 생각하는 그런 권력 따위가 아닙니다. 저는…… 고아입니다.”
“빛나 양…… 그건 내게 크게 의미가 없네. 우리 빛나 양이 뭘 모르고…….”
“아뇨. 아버님.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란 거…… 알고 있습니다. 곧 대선이고…… 아버님이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란 사실도…….”
“…….”
“그 어떤 대선 후보도…… 내조 없이 그 자리에 올라서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그 자리가 부재인 아버님에겐 사람이 들고 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제가 잘 압니다.”
빛나가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위태준은 목이 꽉 막혀왔다.
“그래서, 백번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과연, 이 집안에 어울리는 사람인가…….”
“…….”
“아니요. 대답은 백번을 해도 마찬가지. 감히 제가 어떻게…… 무슨 자격으로 아버님 앞길을 막겠습니까. 아버님이기 전에…… 그보다도 훨씬 더 전에…… 제가 존경했던 분인데요.”
“…….”
“근데요, 제가 이젠…… 그 사람 없으면 못 살겠습니다. 한없이 부족하다는 거 알지만……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욕심 내보렵니다.”
“…….”
“그 사람…… 저한테 파세요.”
감동으로 코끝이 시큰해지다가도 김이 새는 부분이었다.
도대체 사람을 어찌 사고 판단 말인가.
위태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러나,
줄줄이 읊어대는 빛나의 목소리에 위태준은 단 한마디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제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 집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도록.”
“…….”
“회사도 그만둘 겁니다.”
“그만둔다고?”
“네. 보육원도 한성 그룹이 후원하는 한 제가 굳이 뒷바라지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요. 제가 이혼 전문 변호사를 했던 유일한 이유가 사라져버렸으니…… 더 이상 거기에 머무를 이유도 없어졌어요.”
“…….”
“그래서, 아버님. 아버님이 걸으셨던 길을 제가 다시 한 번 걸으려 합니다.”
“…….”
“자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인권 변호사로…….”
위태준의 목이 꽉 막혀왔다.
이 일을 어쩌면 좋나.
본인이 걸어왔던 길이기에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아는 최고의 1인이었다.
그런데 그때 당시 탁월한 신체 조건에 타고난 정신력을 자랑하던 그도 힘들었던 그 길을 이 여린 여자가 걷겠다니, 벌써부터 가슴이 아파왔다.
“앞으로의 대선에…… 제가 장애물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살아왔던 과거가 그리 떳떳하지 않았던 터라. 하지만 앞으로의 삶은…… 아버님께 누가 되지 않는 삶일 겁니다. 모든 욕심을 놔버린 지금…… 제가 보는 건 오로지 하나…….”
“…….”
“법의…… 심장이 되겠습니다.”
위태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법의 ‘심장’이 되겠다라…….
법조인의 꿈이다.
그 길을 걸은 사람이라면 다 한번 쯤 가져봤을 법한 이상.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살겠습니다. 없는 자들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안타까웠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몰아세웠던 것일까.
지금 가진 위태준의 권력이?
그도 아니면 이 집안의 재력이?
모르겠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자식들이 그 때문에 많은걸 참고 양보하며 살아온 걸 알고 있는 터라, 결혼만큼은 본인들이 원하는 여자와 시켜줄 생각이었다.
사회적으로 무리가 없다면, 가진 것이 얼마건, 사회적 지위가 어떻건, 위태준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단 말이다.
때문에 눈앞에 있는 빛나는 차고 넘치는 사람이었다.
예쁘지만 고상할 줄도 알며, 차갑지만 도도함이 흘렀다.
뿐만 아니라 야무지게 똑똑하지만, 아니면 돌아서 갈 줄도 아는 현명함을 지닌 여자였다.
온몸에서 당당함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그녀는 이 말도 안 되는 딜에 저렇듯 투지를 불태우는 것일까.
결국 위태준이 입을 열었다.
“음, 우리 빛나 양이 뭘 몰라서 그러나 본데…… 사실 나는 우리 빛나 양이 몹시…… 아주 마음에 든다네.”
“…… 네?”
갑작스러운 발언에 빛나가 되물었다.
잘못 들은 것일까.
“알다시피, 우리 승현이가 어디 보통 놈인가. 내 자식이라 예뻐 보이는 성질머리지 그 성질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이 동네 개들도 알고 있다네. 그런 자식, 어딜 보내든 걱정거리지. 감당할 수 있는 여자는 있으려나…… 늘 고민이었다고.”
“아버…… 님…….”
“누가 뭐래도 내게는 아픈 자식들이지. 특히나, 승현인…… 겉으로는 다혈질에 툭툭거려도, 언젠가부터 울음을 멈춰버린 아이야. 울 줄을 몰라. 제 형들 대신 웃고, 화내고, 툴툴거려도 절대 울지 않는단 말이지.”
“…….”
“하물며…… 제 엄마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 녀석 혼자 울지 않더군. 하다못해 승주도 엉엉 우는데…… 승현인 안 울더라고.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나?”
“…….”
“가슴에…… 설움을 안고 사는 거야, 그 녀석이.”
빛나의 가슴이 꽉 막혀왔다.
승현의 짓궂은 눈매와 살짝 치켜 올라간 입술을 생각한다면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빛나 양이 그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상관이 없네. 우리 승현이 가슴에 쌓인 설움만 달래줄 수 있다면. 남들은 미쳤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승현이 우는 걸 보는게 소원인 사람이라네.”
“흡…… 흑…….”
결국 눈물이 터져 버렸다.
목구멍까지 치닫은 울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터진 눈물이었다.
그러자 위태준이 그녀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이며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속삭였다.
“그렇게 해주겠나? 우리 승현이 가슴에 쌓인 설움…… 잘 달래줄 수 있겠나?”
그 목소리에 빛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위태준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앞으로 며느리가 될 그녀를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그럼 내가…… 공짜로도 줄 수 있다네, 우리 승현이는.”
결국 위승현의 가격은 ‘Free’였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딜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빛나는 다정하게 토닥여주는 위태준의 품에서 벗어나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연다.
“아뇨. 아버님! 그 사람이 공짜라뇨! 말도 안 돼요!”
“응?”
“제가 준비한 게 있습니다.”
“아니, 나는 굳이 안 받아도…….”
“아뇨! 받으셔야 해요!”
그녀의 전투력 상승에 놀란 위태준이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빛나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지시를 내린다.
“아저씨, 지금 가지고 들어오시겠어요?”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나가는 빛나를 보며 위태준은 몹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울다가 웃다가 화를 내다가,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는 그녀의 감정변화에 위태준이 휘말리고 있었다.
자식을 어찌 가격을 매겨 팔 수 있겠는가!
공짜로 줄지언정!
그러나 곧 현관문을 통해 들어온 커다란 패키지들을 보며 위태준의 눈이 반짝 빛이 났다.
“설마…….”
그 패키지들이 풀리기도 전에 그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아저씨, 안에 내용물 안 다치게 여기에 조심히 놔주세요.”
패키지는 총 두 개였는데 그중 하나를 테이블에 놓았다.
그러자 위태준은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듯 상체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러고는 또 한 번 감탄사를 연발한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걸…….”
도대체 무엇일까.
개봉박두!
3…… 2…… 1!
드디어 빛나는 위태준의 눈앞에서 조심스레 패키지 상자를 열며 의미심장하게 한마디를 흘렸다.
“아버님! H브랜드 2017년 한정판, 골프계의 명품을 소개해드립니다.”
그렇게 열린 상자엔 2017년에 몇 채 밖에 생산이 안 되었다는 최고의 명품 골프채가 황금빛을 발하며 고이 포장되어 있었다.
돈이 있어도 한정판이라 못 구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는 그 명품 골프채!
이에, 위태준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평소엔 웬만해선 볼 수 없는 진기한 광경이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구했나?”
놀란 위태준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빛나는 자랑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예전에 제가 양육권 소송을 맡아 했던 부부가 있었는데, 승소를 했거든요. 그 아이 엄마가 골프 관련 수입 회사를 크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은밀히 부탁했지요. 힘들었습니다. 귀한 아이들이라고 하더군요.”
“아…….”
“아버님이 골프를 굉장히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큰아주버님이 그러시던데요, 승희 아가씨 처음 있었던 그 소문 파다한 첫 번째 약혼…… 아버님이 김 회장님과의 내기 골프에 져서 비롯되었다는 건, 승희 아가씨만 모르고 집안 식구들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그건…… 내가 엄연히 김 회장에게 당했지! 그 마지막 한 방을 위해 지금껏 내게 골프를 져줬다는 걸 누가 알았겠나!”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다는 듯 위태준은 그때 당시를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랬다.
물론 내기 골프에서 진다는 생각을 해본적도 없기에 시작한 게임이었고, 우빈이라면 승희의 짝으로 제격이라 손해 볼 것도 없다는 생각에 했지만 막상 끝이 좋지 않다 보니 태어나 처음으로 후회한 일이 되어버린 대형 사건이었다.
물론, 우빈과 승희가 진짜 결혼을 하고 나서는 시시때대로 그 이야기로 웃기도 하지만은 정작 당사자는 모르는 사건이다.
알았다가는 그 성격에 가만있지 않을 것이므로.
“다시는 자식 걸고 그런 내기 안 하네. 공짜로 줄지언정.”
위태준은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빛나는 정색을 하며 속삭이듯 입을 연다.
“하지만 제 남자가 공짜라니, 말도 안 되죠. 그 사람…… 이만한 가치는 있지 않겠습니까?”
“이거…… 굉장히 비쌀 텐데…….”
위태준이 걱정스럽다는 듯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걱정 말라는 듯 빛나는 붉은 입술을 틀어 올리며 위태준의 귓가에 악마처럼 속삭인다.
“그래서, 적금…… 털었습니다.”
위태준이 ‘공짜’로 내밀었던 승현의 가치를 ‘명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의기양양한 그녀의 모습에 결국 그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프흡! 후후.”
세상에나!
어디서 저런 물건이 흘러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제 남자의 가치를 ‘명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여자라니.
저런 여자라면 승현을 억지로라도 밀어 떠넘기고 싶었다.
게다가 예쁘기까지 하지 않나!
“위승현, Sold out!”
위태준의 선언으로 두 사람의 거래는 무사히 성사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결국 어디 하나 모자람 없이 사랑스러운 빛나의 모습에 위태준은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푸하하하하하!”
실로 오랜만에 흘려보는 박장대소였다.
***
한편 그 시각 승현은 작은 사무실 안에 앉아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 따윈 잘하지 않는 편인데 오늘 만날 이는 유독 바짝 날이 선다.
아마도, 그녀에게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그는 자신의 넥타이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까지 했다.
드디어 사무실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들어섰다.
세월을 피해갈 수 없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 하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미소만큼은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그에겐, 참으로 고마운 사람.
“안녕하세요. 위승현입니다.”
그답지 않게 벌떡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녀는 처음엔 다소 놀란 듯 넋을 놓더니 잠시 후 귀한 손님을 맞은 사람마냥 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세상에, 드디어 얼굴을 보네.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요.”
“당연한 말씀을요.”
“정말…… 그때 한번 왔다는데 얼굴을 못 봐서 얼마나 아쉽던지.”
그랬다.
이해인 수녀.
빛나에게 가족이 있다면, 아니 부모님이 있다면 바로 그녀가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바르고 예쁘게 키워준 사람.
승현에겐, 더 없이 고마운 사람이었다.
“빛나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정말 말로 다 못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미처…… 빨리 하지 못해 아쉬울 만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귀티가 자르르 흐르는 남자.
하지만 이해인 수녀는 그런 그에게서 교만 따윈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아련한 기억 하나가 피어오른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건, 제 것이 아니거든요.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귀한 손님이 왔는데 마실 것 하나도 안 내왔네.”
“아닙니다. 충분히 마시고 왔습니다. 오늘은……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그의 말에 이해인 수녀는 현명하고 인자한 눈동자를 들어 마주 보았다.
참으로 어렵다.
그리고 떨린다.
이곳까지 한 걸음에 달려오며 몇 번을 곱씹었는데도 막상 하려니 쉽게 툭 튀어나오질 않았다.
모든 대한민국 남자들이 처음 처가를 방문하면 바로 이런 기분일까?
“저희…… 결혼하려고요.”
순간, 웃고 있던 이해인 수녀의 눈가에 살짝 놀라움이 드러났다.
하지만 정말 잠시뿐, 이내 웃음으로 마무리된다.
그렇게 승현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허락’이란 것을 받아보았다.
“미안. 내가 주책이네.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나.”
“죄송합니다. 이렇게 너무 갑작스럽게…….”
“아니. 아니에요. 내가 늙어 주책이라 그래. 싫어서 우는 거 아니에요. 너무 좋아 우는 거지.”
이해인 수녀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슬쩍 훔쳤다.
그러자 승현은 그런 이해인 수녀의 손을 한 번 더 맞잡았다.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까칠한 그 손이 더 없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빛나, 저한테는 더 없이 귀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날도둑놈처럼 날름 데려올 순 없었습니다. 저희 결혼식…… 축복해주러 오실거지요? 자리,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그랬다.
외로운 결혼식이라고?
아니, 안 될 말이다.
그에겐 더없이 소중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을 받으며 데려오리라.
그 자리에서 이해인 수녀는 더 없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내가…… 그럴 자격이나 있나…….”
“자격, 충분히 넘치십니다.”
“고마……워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진심에 더한 진심이 되돌아온다.
“제가 더 감사합니다. 빛나…… 그렇게 예쁘게 키워주셔서…….”
그 말에 결국 참고 있던 눈물이 뻥 터져버렸다.
이 일을 해오며 오늘 이 순간만큼 가슴 벅찬 적이 있었던가.
후회도 많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인 모양이다.
“정말…… 예쁘게 컸네. 어쩜 이렇게 잘 자랐누…….”
이해인 수녀가 그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한 말에 승현의 눈동자는 잠시 동안 놀라움이 스쳤다.
“저를…… 기억하십니까?”
그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억하다마다.”
그랬다.
처음 이 문을 들어선 순간, 그녀의 눈에 스쳤던 놀라움은 10년 전 기억 때문이었다.
그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독한 관절염으로 고생 중이던 그녀에게 수술비라며 선 듯 큰돈을 내밀고 사라져버린,
유난히도 훤칠했던 한 남학생의 모습을.
***
한차례 감동의 순간이 지나고 잠시 후 승현은 그와 몹시도 닮은 사내아이를,
“오늘도 왔어요?”
몹시도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내가 자주 오는 게 싫으냐?”
“빛나 누나는 안 오잖아요.”
“빛나 바빠. 앞으로는 더 바쁠 거고.”
“왜요?”
“나랑 결혼해야 하거든. 결혼 준비로 더 바쁠 거야.”
“아저씨랑 결혼을 한다구욧!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돼. 그리고 내가 빛나보다 나이가 어린데 빛나는 누나고 왜 나는 아저씨야!”
하, 요것 봐라?
오늘은 겸손과 온유가 콘셉트인데, 이 녀석이 그 안의 악마를 끌어내려 하고 있다.
“나는 그 결혼 반대예요!”
“너는 발언권 없어!”
“나랑 결혼할 거예요!”
“넌 너무 어려!”
“요즘엔 연상 연하 커플이 유행이래요!”
“조그만 게 못하는 말이 없네? 나도 빛나보다 연하거든?”
“내가 더 연하거든요!”
“흥. 넌 나랑 게임이 안 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결국 승현은 제 아버지가 빛나와의 거래에서 ‘Free’ 선언을 한 줄도 모른 채,
“나…… 위승현이야. 내가 좀 비싼 남자라…….”
여덟 살 아이 앞에서 비싼 남자라 교만을 떨고 있었다.
그러곤 그 충격에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사악하게 중얼거린다.
“내가…… 네 애비다, 이 자식아.”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