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설레게하는 그대-75화 (75/94)

75. 제가, 애비입니다.

2018.08.22.

“아, 놔. 진짜.”

인터넷 뉴스를 보던 빛나의 입에서 짜증이 터져 나왔다.

조현희.

어제저녁 생방송에서 또 입을 놀린 모양이다.

덕분에 조현희는 하루아침에 승현의 과거 연인이 되어 있었다.

승현이 선사했던 특별한 밤과는 별개로 제대로 열 받는 아침이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리며 승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마 그도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이 뉴스부터 확인한 모양이다.

[기사, 봤어?]

“기사? 무슨 기사? 내가 확인해봐야 할 기사라도 있어?”

[아니! 아니! 그럴 필요는 없고. 그냥…… 못 봤음 됐어. 혹시나 오늘 보더라도 잊어버려. 내가 해결할 테니까.]

“무슨 일인데 그래?”

[조현희 기사 말이야.]

“또 떴어? 괜찮아. 난 신경 안 쓰니까. 그리고 너도 신경 쓰지 마. 그러다 말겠지.”

[어쨌든 신경 안 쓴다니 다행이네. 나는 너만 신경 안 쓰면 돼.]

“당연하지. 걱정 마.”

[사랑해. 저녁에 봐.]

“훗. 응.”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그러나 웃고 있는 입매완 달리 그녀의 손은 마우스를 부서질 듯 틀어쥐고 있었다.

말로는 신경 쓰지 않는다 했지만, 미치도록 거슬린다.

그에게 질투로 옹졸한 여자가 되기 싫어 쿨한 척은 했지만, 속은 짠내가 진동했다.

“진짜, 성질 죽이고 조용히 좀 살아볼라 했더니…… 이 년이 안 도와주네.”

결국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복실아, 저녁에 시간 좀 비워둬. 이 언니랑 갈 데가 있다.”

그렇게 조현희의 생각 없는 한마디는, C-Sisters의 화려한 부활을 예고했다.

***

점심시간.

머릿속은 화려한 복수 혈전으로 수많은 드라마가 완성되었다.

대부분이 막장 드라마였지만, 그중에는 복실로 인한 액션 스릴러 한편도 여지없는 경우의 수로 존재했다.

그런데 그때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언니, 저번 그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가 또 먹고 싶은데 우리 먹으러 갈래요?

승희였다.

갑작스러운 복실의 존재로 인해 케이크는 맛도 못 보고 왔던 그날을 떠올리며 빛나는 미소를 지었다.

-언제 갈까요?

-오늘 저녁, 어때요?

오늘 저녁?

음, 안 되는데.

-미안해서 어쩌죠? 오늘 저녁은 제가 일이 있어서.

-괜찮아요. 다음에 가면 되죠.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언니~

애교스러운 이모티콘과 하트가 빵빵 날아오는 승희의 메시지를 읽으며 빛나는 꿀꿀한 마음이 한 방에 가시는 걸 느꼈다.

“임신했는데 먹고 싶은 건 먹어야지. 같이는 못 먹어줘도 사다 줄 순 있잖아?”

다행히도 카페가 바로 회사 앞에 있겠다, 시간도 점심시간이겠다, 빛나는 기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회사를 나오는데 핸드폰이 또 한 번 울려온다.

하지만 이번엔 받고 싶지 않은 전화였다.

송 여사.

도대체 이번엔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것일까.

미루어 짐작을 해 볼 수도 있었지만, 빛나는 굳이 그런 곳에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아 전화를 받지 않은 채 핸드백에 넣어버렸다.

횡단보도를 건너 카페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딱 하나 남은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를 살 수 있었다.

승희가 맛있게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난 빛나는 계산을 하고 포장한 케이크를 받아 돌아섰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선 순간만큼 기분 좋게 카페를 나서질 못했다.

눈앞에 벌겋게 달아 올라있는 송 여사의 모습이 지옥처럼 버티고 있었던 탓이다.

“여길…… 어떻게?”

“감히, 내 전화를 안 받아?”

그랬다. 빛나에게 걸려온 전화는 늘 그랬듯 송 여사가 예고 없이 회사 앞까지 찾아와 시도했던 전화였다.

그런데 빛나가 그 전화를 받지 않고 핸드백에 집어넣는 모습을 보며 흥분한 송 여사가 여기까지 쫓아오게 된 것이다.

“우리, 이야기 좀 하자.”

“또요? 저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는데요.”

빛나가 매몰차게 거절하며 송 여사의 곁을 지나가려 했지만 이내 팔이 붙들리고 말았다.

“자꾸 이렇게 찾아오시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네가…… 이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네 남자친구가 좀 잘 나간다고 이젠 나 같은 늙은이는 네 발 아래로 보이니?”

송 여사의 말에 빛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화로 인해 벌겋게 달아오른 송 여사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지만 도무지 끊어낼 수 없는 악연에 또 한 번 발이 붙들린 빛나도 살벌하긴 마찬가지였다.

예전의 유빛나가 아니다.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온 아우라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변했다.

하지만 송 여사는 여기서 물러설 수가 없었다.

“좋다. 앉아서 듣지 않겠다면 서서 들어라. 긴 이야기 아니니 들을 만할 게다.”

“…….”

“네 남자친구 위승현, 이쯤에서 물러서라고 해. 담당 검사가 그 친구 형이라는 것도 안다. 네가 벌인 일이니 그 정도는 설득시킬 수 있겠지.”

설마, 빛나가 잘못 들은 것일까.

“조현희랑 스캔들 났던데, 설마 사이가 예전 같이 않아 자신 없니?”

“도대체…….”

“이쯤 했으면 충분히 알아들었다. 설마, 내게…… 사과를 바라는 거니?”

하!

너무 기가 막혀 헛웃음이 일었다.

이제야 송 여사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모든 일이 제가 어머니한테 복수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럼 아니란 이야기니? 갑자기 이혼 전문 변호사가 KMK 사건을 맡은 것부터, 우리 사돈총각 성폭행 건까지!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네가 있다는 거, 이게 모두 우연이란 말이야?”

피해망상이다.

이건 그야말로 정신병이 틀림없었다.

더 이상 이야기가 불가능했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다. 언감생심 그 집 며느리 자리 넘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도 널 못 받아들였는데, 설마 그 집에서 널 들일까.”

빛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 자리에 더 있다가는 위아래 없이 송 여사의 귀싸대기를 날려버릴지 모를 일이다.

바닥까지 가고 싶진 않았다.

“아무래도 병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정신과 다니는 거, 흉 아니래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이를 악물고 돌아섰다.

“가긴, 어딜 가! 내 말 아직 안 끝났다. 부모 없이 자랐기로서니, 이렇게 근본 없어도 되는 거니?”

외침과 함께 송 여사가 팔목을 잡자 그녀가 날카롭게 돌아섰다.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제대로 쏴버릴 것이다.

그렇게 총알을 장착했다.

그러나, 그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거칠게 그녀의 손목을 부여잡은 송 여사의 손 위로 부드럽고 강인한 손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더불어, 그 따스한 체온과는 달리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위엄 있는 목소리가 이 공간을 무섭도록 침착하게 갈라놓았다.

“이 손…… 놓고 얘기하시지요.”

세상에나.

“아…… 버님.”

위태준이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지만, 분명 눈앞에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위태준이었다.

손발이 덜덜 떨려왔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빛나보다 더 참담한 시선으로 위태준을 올려다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송 여사였다.

TV로만 봤지, 이렇게 실제로 본 적은 처음이라 입이 절로 벌어졌다.

잡고 있던 빛나의 손목도 스르르 놔버렸다.

“안 다쳤니?”

“네.”

그녀가 잡혔던 손목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것 같아 시선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위태준은 그런 빛나의 어깨를 다독이는가 싶더니 아직도 놀라 입만 벙긋벙긋하고 있는 송 여사와 그녀의 사이를 제대로 가로막고 섰다.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였지만 유난히도 풍채가 좋은 위태준의 그림자가 송 여사의 얼굴 위로 거대하게 드리워졌다.

“나는…… 그러니까…….”

조금 전 이 상황을 어떤 말로 설명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위태준은 그러한 변명 따윈 필요 없다는 듯 감히 마주할 수도 없는 엄한 얼굴로 서서히 입을 열었다.

“제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강제로 막장 드라마의 한 편을 시청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게…….”

“심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제가 설명을…….”

“설명을 해주시 않으셔도 방금 전 들은 말로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으니, 이번엔 제 말을 들으시지요.”

“…….”

“부모 없는 아이, 근본 없다 하셨습니까?”

“…….”

“죄송합니다.”

대뜸 정중히 사과하는 위태준을 올려다보며 송 여사는 기겁을 했다.

왜, 사과를 하는 상대에게 이렇게 고개가 조아려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위태준의 위용이 송 여사로 하여금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아니, 대신 사과를 하실 필요는…….”

“마땅히, 제가 사과를 해야지요.”

“…….”

“저 아이, 제 자식 같은 아이입니다.”

“…….”

“제가, 저 아이 애비라고요.”

순간, 뒤에서 듣고 있던 빛나가 울컥하고 말았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30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아버지란 존재가 이렇게 순식간에 생길 거라고.

“자, 제가 대신 사과드렸으니…… 이젠 여사님 차례입니다.”

“네?”

“제 아이에게, 사과하시라고요.”

자초지종 따윈 위태준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웬만한 건 너그럽게 넘기는 그가 허용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그건 바로 자식이 부모 없다 손가락질당하는 순간이었다.

그도 아내 없이 네 아이를 키웠기에 지금 이 순간을 쉬이 넘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도무지 넘어설 수 없는 산처럼 거대하게 버티고 선 그는 엄청난 기세로 송 여사를 몰아붙였다.

마주 선 그림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어서 이 순간을 끝내고 싶었다.

그것만이 송 여사의 숨이 트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므로.

그래서 송 여사는 빛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 하구나. 내가…… 정말, 미안해.”

그 사과가 진심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그동안 송말례 여사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건대, 사과 한마디가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단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건 해외토픽감이었으니까.

위태준은 그 사과를 듣고서야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는 송 여사를 향해 가벼운 목례를 했다.

“제겐 귀한 아이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여사님께서도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시지요.”

“…….”

“그럼 전 이만.”

귀한…… 아이라니.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는 송 여사로서는 그저 충격적인 한마디였다.

위태준이 다정하게 빛나의 등을 토닥이며 돌아선다.

두 사람이 카페를 나가고 나서야 송 여사의 후들거리는 다리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다시는, 꿈에서라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

“흐흑.”

그녀의 등을 다독이던 위태준의 따스한 손길이 생각나 자꾸 눈물이 났다.

-제가, 저 아이 애비라고요.

그 말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심지어 위태준은 카페를 나와서도 그녀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승희의 전화 한 통에 케이크를 사러 왔다 똥 밟았다며 우스갯소리로 그녀의 기분을 달래주었을 뿐.

임신한 딸아이의 전화 한 통에 바쁜 스케줄을 쪼개 케이크를 사러 온 위태준의 마음 씀씀이가, 그리고 기꺼이 그녀를 제 자식이라 보듬어 안은 그의 넓은 가슴이 그저 감동으로 남았다.

“언니, 나 심각하게 물어보는 건데…… 지금, 우는 거야. 아님 웃는 거야?”

적어도 곁에 있는 복실의 물음을 듣기 전까지는.

그제야 자신이 울다 웃다를 반복했단 사실을 깨달은 빛나는 룸미러를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다.

“아, 그건 그렇고…… 언니, 이거…… 끝난 일 아니었어?”

“뭐가 끝나?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어제 승현이 만나서 안 들어왔잖아! 둘이, 그 결론…… 아름답게 마무리한 거 아니었냐고.”

“무슨 소리! 승현이랑은 결론 볼 것도 없는 문제였어. 우리 둘 사이엔 아무런 문제가 없거든. 아니, 너무 좋아 탈이지!”

“근데?”

“문제는, 그년이랑 내 사이에 있는 거, 그게 바로 ‘문제’지.”

그렇게 말하며 빛나는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랬다. 빛나와 복실은 지금 K방송국 공용 주차장에서 이를 갈며 ‘그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근데 여기 오면 볼 수 있는 거 맞아?”

“확실해. 이정이 친구가 여기서 근무를 하는데 오늘 예능 프로그램 녹화가 있댔어. 이쯤이면 끝날 거야.”

“나타나면 깨워. 피곤해서 눈 좀 붙여야겠어.”

복실이 조수석 의자를 내리며 자려고 팔짱을 껸 채 폼을 잡았지만 빛나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방송국 입구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드디어 기다리던 ‘그년’이 나타났다.

어두운 지하 주차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임을 과시하듯 검은 선글라스에 모자를 쓰고, 보디가드를 거느리듯 좌 매니저 우 스타일리스트를 대동하고 나타난 이는 스캔들의 주인공 조현희였다.

요즘 스캔들로 주목 좀 받더니 얼굴 때깔마저 곱다.

조현희를 태운 차가 주차장을 매끄럽게 빠져나가자 빛나도 서둘러 시동을 켜고 급하게 뒤를 쫓았다.

끼이익!

“아아악!”

물론 그 바람에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누운 복실의 입에선 경악에 찬 비명이 튀어나왔지만, 빛나는 이 질주를 멈출 수가 없었다.

흥, 감히 내 남자를 건드렸겠다?

그래, 오늘 너 죽고 나 살자!

***

-오빠, 촬영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먼저 도착해 있을게요.

조현희는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 눈을 피해 개인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낸 후 기분이 좋은 듯 붉은 입술을 틀어 올리며 웃음을 보였다.

그러곤 운전을 하는 매니저에게 말한다.

“오늘은 지하주차장 말고 집 앞에서 세워줘.”

“왜?”

오늘따라 이상하다는 듯 매니저가 물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조현희로 말할 것 같으면 화장실 가는 것도 귀찮게 여겨 몰아서 한 번에 갈 만큼 게으름의 정석인지라 감히 집 앞이라도 계단이 있는 정문을 통해 간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집에 먹을 게 없어서. 마트 좀 들렀다 가려고.”

헐!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가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주 기가 막히다는 듯.

그러나 그녀의 말에 토를 달지는 않았다.

모처럼 일찍 놔준다는데, 조기 퇴근해 자유 시간을 만끽하리라!

“민지야, 오늘 언니 어땠니? 오늘은 나름 괜찮았지?”

“너야, 뭐. 입만 안 열면 무사통과지.”

물음은 민지에게 던졌지만 대답은 매니저에게 들려왔다.

현희는 그런 매니저를 노려보며 소리를 빽 질렀다.

“아니! 예능에서 어떻게 말 한마디 안 해? 그게 어디 예능이야? 그리고 말 안 하면 분량 안 빠진단 말이야!”

“대표님이 그러셨다. 최대한 말을 아끼되, 그렇지 못한 상황이 오면 무조건 말을 짧게 하라고.”

“그래서 짧게 했잖아.”

“아, 진짜! 그렇다고 하늘같은 대 선배한테 반말하라는 게 아니라 말을 줄여서 하라고! 모르겠어?”

“피곤해. 왜 성질이야?”

“무뇌아 소리 듣는 너, 내일이면 버르장머리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올까 무서워서 그런다!”

“흥! 그래도 요즘은 사람들이 나를 좀 다른 눈으로 보고 있어. 그렇게 무식한 캐릭터만은 아니라고. 이번 기회에 위승현을 통해서 이미지 갱생 좀 해야겠어. 무뇌아에서 독특한 사차원으로.”

“갱생이 아니고 갱신이다, 갱신!”

“어쨌든!”

“네가 위승현하고 사귀었다고 뱀이 용 되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SNS에 올린 사진 한 장의 여파가 얼마나 갈 것 같아? 그것도 그 사진 딱 한 장이라며?”

“그러니까 어제 그렇게 말한 거 아냐. 좋은 만남을 가졌다고. 오늘 기사 봤어? 이쪽 기사 절반이 나야, 나!”

그 혈압 터지는 소리에 화가 난 매니저가 급브레이크를 밟자 현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아 진짜! 이러다 가슴 터지겠어! 동네방네 자연산이라고 다 소문냈는데 이런 일로 가슴 터지면 무슨 개망신이야! 나 생매장시키고 싶어? 그럼 오빠 밥줄도 끊겨! 알아들어?”

“정말 넌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지금 위승현 위치가 어딘지 몰라서 그런 화제를 또 만든 거야? 적당히 해, 적당히! 그러다 진짜 큰코다쳐!”

“코 다치면, 또 수술하면 되지? 그게 뭐 문제라고.”

답답 터지는 현희의 무식함에 매니저는 절로 탄식이 새어 나왔다.

매니저는 이를 악물며 최대한 빨리 운전해 어서 현희를 집 앞에 내려놓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버렸다는 게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버려진 이는 그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전화하지 마! 전화 절대 하지 마! 오늘은 이걸로 끝이야!”

“알았어.”

“생리대…… 그딴 거 사 오라고 시키지도 마! 알았어? 마트 갈 때 리스트 작성해서 한 번에 갔다 와! 내일 이 자리로 내가 데리러 올 때까지 절대 전화하지 말라고!”

“아휴, 알았다니까! 나 귀 안 먹었어!”

평소 같으면 성질대로 빽빽거렸을 테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그녀에게 갖은 욕을 하는 악플러도 너그러이 보듬어 안을 수 있을 것 같은 하루였다.

왜냐고?

“앗싸! 신난다! 위승현 만나러 간다!”

그랬다. 조금 전 문자로 오빠라 불렀던 이는 다름 아닌 승현이었던 것이다.

현희는 그를 만날 생각에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 앞 자그마한 호프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칸막이가 되어 있는 곳인 데다 할머니가 운영하는 곳이라 손님의 대부분이 높은 연령층이었지만, 때문에 승현을 안심하고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보슬비가 내리는 으스스한 밤, 신난 걸음으로 현희는 언덕을 내려갔다.

앞으로 그녀에게 어떤 혹독한 운명이 닥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

자그마한 손거울을 들여다본 것만 벌써 네 번째다.

현희는 긴장을 한 듯 자그마한 칸막이 룸에서 몇 번이고 화장을 고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거울을 다섯 번째 들여다볼 때 즈음, 그녀의 테이블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림자만 봐도 행복했다.

몇 년이 지났지만 화면으로 다시 본 위승현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등에 후광을 업은 듯 빛이 찬란했으므로.

“오빠…… 왔어요?”

최대한 조신하게 보여야지.

몇 년 전과 다른 조현희의 모습을 보여주리라!

어쩌면 이미지 갱신은 물론, 잘 하면 로열패밀리 입성이 가능할지도.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조현희 인생에 있어 방송보다도 중요한 자리였다.

그러나,

그렇게 조신한 척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시선을 올린 순간, 현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웅크려야 했다.

연예인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화려한 두 여자가 눈에 힘을 바짝 주고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범상치 않은 이 아우라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참한 척 위장을 하기 위해 일부러 떨었던 눈꺼풀이 두 여자의 기에 눌려 자동으로 바이브레이션을 했다.

그러자 긴 머리의 청순녀가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허스키한 보이스로 외계어를 남발한다.

“뭐야, 쟤 왜 눈을 파르르 떨어? 지금 나한테 눈꺼풀로 욕한 거야?”

그 물음에 하늘을 찌르는 도도함으로 온몸을 무장한 여자가 우아하게 대답했다.

“아냐, 마그네슘이 부족해서 그래.”

하지만 그 우아함도 얼마 가지 못한다.

“누구…… 세요?”

겁먹은 현희의 물음에 사악하고 도도한 그녀가 붉은 입술을 틀어 올리며 본색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 인간 갱생 프로그램 전도사. 너무 무식해 니 것 내 것도 구분 못 하는 너 같은 애들이 주로 내 고객이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

“각오해. 이 언니가 오늘 네 뇌 속에 그나마 얼마 안 되는 그 주름까지도 아주 쫘-악! 펴줄게.”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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