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설레게하는 그대-73화 (73/94)

73. 지금 필요한 건, 뭐?

2018.08.15.

일주일 후.

강민식은 구속되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세상은 뒤집히기 시작했다.

잘나가는 사업가 출신의 추진력 있는 서울 시장의 두 얼굴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민심이 돌아섰다.

동정할 가치도 없다는 게 대부분의 여론이었다.

급기야는 교도소 수감을 위해 이동 도중 우연치 않게 스친 강석훈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 아비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그야말로 날개 없는 추락의 끝이었다.

그것이 우연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승현의 말에 의하면 절대 우연이 아니란다.

그의 형인 위승준 검사는 그 누구보다 심리전에 강한 사람이라며 절대 우연일 수 없다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승현의 말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 후 강석훈은 제 아비의 만행을 폭로하는 증인 대열에 합류했으니.

다음 이슈는 단연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마담 M의 진짜 신분이었다.

회사 공문 서류에도 한국 이름이 아닌 영어 이름이 올라가 있을 만큼 신분 노출을 꺼려 했던 그가 위태준의 막내아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그의 이름은 경제면이 아닌 연예면을 장식했다.

그것도 포털 사이트 검색 1위부터 3위까지 섭렵하는 기염을 토해내며, 요즘 영화계에도 진출하여 소위 대박이 난 가장 핫한 스타 조윤성이 그 뒤로 밀렸다.

기사를 보며 빛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도대체 왜 마담 M 기사가 연예면을 장식하고 있는 거야?”

그러자 은지가 혀를 차며 안타깝다는 듯 입을 연다.

“넌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니?”

“무슨 이유?”

“지금까지는 신분 노출을 꺼리는 신비주의 때문에 꾹꾹 눌러 참았던 호기심이 드디어 폭발한 거지. 승현 씨 비주얼을 봐라. 그 비주얼이 어디 경제면에 어울리는 스케일이니? 웬만한 연예인도 발라버리는 상황인데. 조윤성이 봐. 데뷔작 영화를 단번에 1000만 영화로 만들고도 뒤로 밀렸잖아.”

“그러니까 내 말이. 배우인 조윤성한테나 관심을 갖지, 왜 연예계와는 거리가 먼 승현이냐고. 그리고 승현이 국회의원 아들이라는 사실이 몇 년 전 공항 사진까지 나돌아 다시 이슈가 될 만큼 큰일이야?”

빛나는 불만스럽다는 듯 노트북 화면을 은지에게 돌리며 투덜거렸다.

거기엔 몇 년 전 승희가 국제 모델 타이틀을 빼앗기고 귀국하던 날, 위태준이 제 딸이라 밝히고 따뜻하게 포옹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문제는 그 뒤에 함께 있던 승현이 그때는 훤칠한 꽃미남 경호원정도로 알려졌다가 이제야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새삼 다시 화제가 된 것이다.

“이야, 승현 씨는 이때도 훤칠훤칠했구만.”

은지가 감탄하며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빛나의 눈썹이 대번에 치켜 올라간다.

갈수록 멀어지는 그대.

그의 신분이 화제가 되면 될수록, 빛나는 원인 모를 불안감에 시달렸다.

가뜩이나 위태준의 아들이란 사실 자체도 그녀에겐 부담인데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 어디 무서워서 연애나 제대로 하겠나.

행여나 그의 옆에 있는 그녀가 함께 이슈가 되어 제 이력이 세상에 드러날까 걱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색안경 낀 편견도 두려웠다.

제1의 송말례 여사도 있는데 제2의 송 여사, 제3의 송 여사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 걱정으로 가득 차 있던 빛나의 미간이 순식간에 펴지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끔뻑였다.

어라? 그녀가 잘못 본 것일까?

빛나는 우연치 않게 승현의 이름이 뜬 기사 하나를 클릭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믿을 수 없어 그녀는 마지막 협상을 위해 KMK컴퍼니 자료를 훑어보던 은지에게 물었다.

“은지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거, 너도 보이니?”

“뭐가?”

은지가 다가와 그녀가 들여다보고 있는 기사에 시선을 주었다.

그러다 은지도 놀랍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어라? 이게 뭐야?”

“그러니까…… 내가 물은 거잖아. 이게…… 사실이냐고.”

“말도…… 안 돼.”

은지가 어이없어하는 가운데, 사실로 확정이 난 그 기사를 본 빛나의 혈압이 최근 들어 가장 위험한 수치를 웃돌며 치솟고 있었다.

***

한편 그 시각 승현은 강민식 사건 진술을 위해 경찰서에 출두했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작스러운 유명세 때문에 많은 취재진이 몰려 겨우 빠져나온 그는 아직도 제 몸을 스쳤던 손길과 쏟아졌던 수많은 질문을 생각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휴, 하마터면 압사 당할 뻔했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덕분에 승현은 우빈의 축하 전화까지 받아야 했다.

[뭘 그 정도 가지고. 나는 예전에 화장실까지도 파파라치가 따라왔었다고.]

“너야 그게 생활화되어 있던 사람이지만 난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이런 관심, 안 반가워.”

[너무 그러지 마. 겸허히 받아들여. 알잖아,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거든. 난 항상 궁금했지. 노는 걸로는 나 못지않았던 네가 어떻게…… 그렇게 조용히 살 수 있었는지. 나는 숨 쉴 때마다 스캔들 기사가 한 번씩 났거든. 그것도 연예 면에.]

물론, 그것이 정말 축하 전화인지 그를 약 올리려는 것인지 그 의도가 의심되긴 했지만.

“그 말 하려고 전화한 거야? 강민식 건만 아니었으면 난 영원히 조용히 살 수도 있는 몸이었어. 대놓고 사고치고 다닌…… 너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그러니 비교 좀 그만해.”

[난 과거야. 넌 현재고.]

그렇게 말하는 우빈의 주변이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문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도 나고,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대성통곡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승현은 눈썹을 곤두세웠다.

“이봐, 매제. 혹시 사채 끌어다 썼나?”

[아니, 내 스케일을 뭘로 보고. 근데 그건 왜?]

“응. 지금 분명 회사에 있을 시간인데 네 주변이 무척 시끄러운 것 같아서 말이야.”

[아…… 저거. 너한테 밀려 4위가 된 남자의 설움이랄까? 괜찮아. 저 정도쯤은 네가 너 대신 충분히 감당해줄 수 있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우빈의 시끄러운 주변을 걱정해줄 처지가 아니었다.

왠지 모를 불안한 기운에 주변이 으슬으슬해지는 것 같았다.

조짐이, 좋지 않다.

도대체 왜?

[뭐, 어쨌든. 난 그 화려한 과거 덕분에 이쪽 생리는 훤히 꿰뚫고 있지. 이 세계 선배로서 말해주는 건데, 한동안 넌…… 이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근데 왜 나는 네가 굉장히 즐거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좋냐?”

[아냐. 아냐. 좋긴, 걱정이 되서 하는 말이야.]

“뭐가?”

[응. 그동안은 네가 넌 줄 모르고 연애를 했던 애들이 이제 네가 넌 줄 알았으니 가만있겠어? 한동안…… 넌 연예부 기사에서 빠지지 않는 이슈가 될 거야. 어디 네가 건드린 이쪽 애들이 한둘이어야 말이지.]

순간 승현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랬다. 우빈이 피할 수 없는 진실을 정확히 집어주고 나서야 지금 막 그에게 닥친 이 일이 얼마나 엄청난 토네이도가 되어 그를 휩쓸어버릴지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원래 이쪽 생리가 그래. 지금까지는 알아도 아는 척 못 하고 끙 앓았던 애들이 이제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할 거야. 왜냐고? 경제면을 장식하고 있는 인사와 연예면을 장식한 인물은 차원이 다르거든. 그 애들한테 넌 이제 먼 세계 사람이 아니라 자신들의 세계 사람이 된 거지. 좀 더…… 쉬운 인물. 과거…… 나처럼…… 숨만 쉬어도 스캔들 기사가 뜨는…….]

그 말에 승현은 몸을 떨었다.

과거, 화려한 그의 연애사가 드러나게 된다라…….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현실이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렸던 그의 집안사람들은 사교계 모임에도 가장 뒤늦게 합류한 케이스였다.

때문에 다른 형제들과 달리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해 화려한 연애 경력을 자랑하는 승현은 연애에 있어선 절대적인 ‘절제의 미학’을 발휘했더랬다.

연애 상대도 까다롭게 골랐다.

주로 유명세를 타지 않은 일반인이었고, 그중에서도 단정한 명문가 딸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딱 한 번, 그의 기준을 벗어난 연애를 한 적이 있었다.

바로, 승희와의 파혼 이후 우빈이 처음으로 돌아와 HS엔터테인먼트 대표 자리를 맡아 선전하던 시기였다.

그의 여동생은 말이 좋아 유학이지 거의 귀양살이와 다름없는 캐나다 생활을 아직까지 마치지 못한 시기였고, 어떻게 해서든 그런 식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우빈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랬다.

그것은, 명백한 복수였다.

그의 소속사에서 소위 잘나간다는, 또는 잘나가기 시작하는 여자 연예인들과 계획적인 썸을 타기 시작한 건.

물론 잔뜩 들뜬 그 여심에 불을 싸질러놓고 그 불씨가 타오르기도 전에 가차 없이 빠져버린 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생방송 펑크는 물론, 끙끙 앓다 쥐도 새도 모르게 잠적한 아이도 하나 있었다.

덕분에 우빈이 그 일을 수습하느라 얼마나 생고생을 했던가.

상대가 승현이라 말 못 하고 끙끙 앓았던 우빈을 생각하면 지금 생각해도 고소했다.

적어도 그에게 닥친 현실을 인지하기 전까지는.

[뿌린 대로 거두리라…….]

“설마…….”

그래. 설마 몇 년 전 일을 지금 꺼내들까.

게다가 그가 그녀들에게 몹쓸 짓을 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감정 없는 연애에 막대한 자금을 들인 건 다름 아닌 그였으니까.

그녀들로서는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단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 맺힌 여자들의 한계를 철저히 무시한 승현의 실수였다.

사실, 한 맺힌 여자들에게 한계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 몰라? 너…… 그 설마한테 잡혔어.]

“무슨 말이야?”

[조현희, 알지?]

“누구?”

[몇 년 전에 한참 잘나가는 걸그룹 출신이었는데 연기자 전향하고 발연기 때문에 욕먹느라 요즘 밥 안 먹어도 배부른 애.]

“조…… 현희?”

그가 만난 여자 중 그런 이름이 있었던가?

그 이름을 기억해내기 위해 승현은 미간을 찌푸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 있었다.

이제야 생각이 났다.

그를 만나던 그땐, 잘나가는 아이돌로 각종 CF를 섭렵해 콧대가 하늘을 치솟던 시절이었다.

그다지, 똑똑하지 않았던 아이로 기억한다.

그래서 제아무리 우빈을 향한 복수라지만 그 애만큼은 무척이나 짧게 만나고 시작도 전에 끝을 냈더랬다.

지금은 그룹에서 탈퇴 후 단독 활동을 한다는 기사만 보았을 뿐 그 후로 관심이 없어 요즘은 그녀가 뭐하고 사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연기자로 전향을 했다고? 발연기로 욕을 먹고 있다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그랬다. 전혀 상관없는 여자 이야기를 왜 꺼내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잠시 후 들려온 우빈의 한마디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일말의 관심조차도 받지 못한 그 이름 세 글자는 거대한 토네이도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응. 걔가 예전에 너랑 만났을 때 찍었던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어.]

멍-.

순간 승현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니, 시간이 멈춰버린 줄 알았다.

아니, 꿈인 줄 알았다!

[야- 너 사진발 잘 받더라.]

우빈이 다시 한 번 현실을 인지시켜 주기 전까지는.

그제야 승현은 닥친 상황을 온 몸으로 체감하며 펄쩍 뛰었다.

“뭐라고! 말도 안 돼! 그런 사진이 있을 리가 없어! 내가 얼마나 조심했는데!”

믿을 수 없어 숨이 다 꼴깍꼴깍 넘어갔다.

우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잠시 그의 소속사 연예인들과 놀아났던 건 사실이지만 그 순간에도 승현이 발휘한 절제의 미학은 거의 예술이 경지였다.

철저히 SNS를 통제했다.

뿐만 아니라 솔직히 톡 까놓고 그들과 연애를 한 건 아니었단 말이다.

책임질 일도 없었고, 이슈가 될 만한 일도 없었다.

물론 더러는 파파라치에게 잡혀 기사화가 될 뻔한 적도 있었으나, 때론 우빈이, 때론 그가 미리 통제해 사진의 원본까지 모조리 회수했더랬다.

그런데 사진이 남아 있다라?

도대체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도 웬만한 사진들은 다 회수했는데, 개인 핸드폰에 있는 사진까지는 회수를 못 했거든.]

“미안하지만 내가 남의 핸드폰에 사진을 남길 만큼 허술한 사람으로 보여?”

[아니. 하지만 사람이 1년 365일 24시간 내내 경계를 하진 않잖아. 날이 선 사람도 무뎌지는 순간이 있지. 그게…… 언제겠어?]

“뭐라는 거야?”

[잠자는 시간. 너 잠자는 모습을 기념으로 걔가 사진을 찍었어.]

“헐…… 어떻게…… 그럴 수가…….”

말이, 되지 않는다!

잠을 잘 때 찍혔다고?

언제? 내가?

그의 기억이 왜곡되지 않았다면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쯤 되자 승현은 확인사살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걔랑, 잤어?”

[아니, 그렇게 잔 거 말고. 환한 대낮에 찍힌 사진이더라고. 그것도 네 차 운전석! 상황으로 따져 봤을 때 네가 차 안에서 잠든 틈을 타 찍은 사진이 분명하므로 변명의 여지는 있어.]

“지금,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거야?”

[너한텐 열 받는 일이지만 애한텐 절실한 일일 거야. 이렇게라도 제 이미지 개선을 좀 해보고 싶은 거지.]

“너네 소속사 애잖아. 어떻게 안 돼?”

[나, 이 일에 손 뗀 거 몰라? 이제 엔터테인먼트는 내 관할이 아니라고. 그리고 내 관할이라도 해도 이젠 내가 어떻게 못 해.]

“왜?”

[조현희는 더 이상 HS엔터테인먼트 소속이 아니니까. 몰라? 얘, 계약 만기 후 그룹 탈퇴하고 소속사 벗어나 다른 소속사와 손잡고 연기자 전향한 거. 그때부터 비호감 된 거야. 나라면 이런 애 절대 연기 안 시켜. 알잖아. 얘 앨범 낼 때마다 매번 반복하는 가사도 잘 못 외워서 애먹었다고. 이런 앨, 어떻게 연기자 시키냐? 나라면 절대 안 그러지.]

“하…… 맙소사.”

[그렇게 큰일 아니야. 그리고 사람들 반응도 그리 나쁘지 않고. 워낙 네 인물이 좋으니 일반인 시절에도 연예인 만나고 다녔구나…… 하고 감탄하는 정도?]

승현은 우빈의 목소리를 들으며 차를 주차시키고 엘리베이터를 올라탔다.

회사로 들어가 직접 그의 기사를 찾아보리라 생각하며.

“그럼 사람들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은데 왜 그렇게 대단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사람 숨넘어가게 한 거야?”

[몰라 물어? 너한테 경고해주는 거야.]

“무슨 경고?”

[이 기사를 보고 제일 열 받을 사람이 누구겠어?]

“나!”

당연하다는 듯 그가 일분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자 핸드폰 저편에서 한심하다는듯 우빈이 입을 열었다.

[이런, 이기적인 자식. 넌 그래서 안 돼. 이 상황에도 너밖에 모르냐? 유빛나 씨, 성질 보통 아니던데. 너 도마에 올려놓고 그대로 회 쳐 먹을까 봐 미리 이야기해주는 거라고. 마음의 준비라도 좀 하라고.]

그 말에 승현에 코웃음을 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 빛나를 뭘로 보고. 우리 빛나는 그런 것에 질투할 만큼 옹졸한 여자 아니야. 스케일이 큰 여자라고.”

그러자 우빈은 승현보다 더 큰 코웃음을 치며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여자를 그렇게 많이 만나보고도 아직 몰라? 우리 승희…… 파혼 스캔들, 아직도 이야기 해. 내 인생 최대의 약점이라고.]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우빈과 통화 중인데 빛나로부터 전화가 들어왔다.

“빛나 전화야.”

[안 받는 게 좋을걸?]

우빈이 경고했다. 그런데 그 경고가 무척이나 가슴 속에 와 닿는다.

“어떻게 안 받아. 피한다고 될 일이야? 그게 상처가 된다면, 더 가만두면 안 되지. 오해…… 풀어야겠어.”

[미쳤어? 사람이 열 받으면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하다는 거 몰라? 오해를 풀더라도 일단 이 시기가 지난 다음에 충분히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할 때 즈음 하라고.]

말이라면 절대 지지 않는 승현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우빈에게 말이 밀리는 이유는 뭘까.

단 한마디도 토를 달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무실로 들어서기 위해 복도로 발을 내딛는 순간, 그의 회사 사무실에서 나오는 빛나를 보았다.

엘리스와 이야기하며 나오는 그녀의 모습은 늘 그랬듯 눈이 부셨다.

그러나, 오늘따라 그 눈부심이 칼바람처럼 그의 눈을 아프게 찔러왔다.

느낌일 뿐이라고, 우빈이 쓸데없는 말로 그를 긴장시켜 그런 것일 뿐이라고 위로하고 싶었지만, 아니었다.

우빈이 맞았다.

빛나는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를 쓸어 올리고 있었다.

날렵하고 보기 좋은 눈썹은 그 끝이 잔뜩 구겨졌고 입술 또한 수시로 잘근잘근 무는 등 시종일관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에 승현은 저도 모르게 거침없이 사무실로 내딛던 발길을 멈칫했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납치에 살해 협박 끝에 이제 꽃길만 걸어도 억울한 판국에,

개 파렴치한 잡아넣어 용감한 시민상을 줘도 모자랄 판국에,

이까짓 스캔들 하나로 다시 제자리걸음이라니!

고개를 든 빛나의 검은 눈동자와 그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런데 왜 자꾸 그녀의 눈빛이 살갗을 에는 것처럼 날아드는 것일까.

“나…… 어떡하지? 빛나, 바로 내 눈앞에 있다.”

[이런 젠장! 늦었잖아!]

하지만 그녀가 들고 있던 파일을 엘리스에게 거침없이 내던지며 그에게로 발길을 돌렸을 때, 승현은 닫힌 엘리베이터를 다시 뚫고 들어가고픈 심정이었다.

또각또각.

복도를 울려오는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오늘따라 크게 들려온다.

아, 그녀가 평소에도 저렇게 주먹을 꼭 틀어쥐고 걸었던가?

설마, 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저 앙증맞은 주먹으로 그의 얼굴에 어퍼컷을 날리는 건 아니겠지?

그 찰나의 순간, 정말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교차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이 상황에 대한 시원한 답이 될 순 없었다.

그녀가, 그 앞에 섰다.

“위승현…… 너…….”

그와 동시에 핸드폰 저편에서 들려오는 우빈의 다급한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때렸다.

[지금 필요한 건 뭐?]

“…….”

[스피드! 뛰어, 위승현! 뒤도 돌아보지 말고!]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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