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결혼은 언제 해요?
2018.08.08.
끼이익!
타이어와 아스팔트가 부딪쳐 나는 마찰음이 정적을 갈랐다.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급정거를 한 차에서 내려선 승현은 유난히 담이 높은 집을 흘깃 올려다보았다.
빛나가 갇혀버린 성.
위씨 집안의 본가가 남다른 위용을 뽐내며 오늘따라 유난히도 웅장해 보인다.
급한김에 대문을 열고 돌계단을 서너 개씩 건너뛰었다.
그리고 현관에 도착해 이제 막 문을 열었을 때 승현은 기가 막힌 현실에 터져 나오는 비명을 주워 삼켜야 했다.
거실 화장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족들, 그 틈으로 떨어져 나간 문고리를 손에 쥐고 있는 승주와 히스테리를 부리는 승희가 오묘하게 포착되었다.
“아니, 오빠! 미쳤어? 그 화장실 문 어제 고쳤단 말이야-아!”
그리고 굉장히 난감한 표정의 위태준이 헐레벌떡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며 하는 소리도.
“내가……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거기…… 손님 계신다고…….”
젠장, 말하지 않아도 조금 전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승현이 재빨리 모여 있는 가족들 틈으로 파고들자, 입을 틀어막은 채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은 빛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순간, 그의 입에서 끙 하고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날이 선 눈매를 돌려 승주에게 한마디 했다.
“아니, 형! 화장실 문이 잠겼으면 노크를 해야지 문고리를 잡아 빼는 사람이 어딨어!”
그러자 승주는 짙은 눈썹을 꿈틀대며 그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변명을 하듯 입을 열었다.
“너는 아직 안 왔다고 하고, 큰 형은 밖에서 한창 바쁠 테니까. 가족들 전부 거실에 있길래 누가 안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세상에, 그 와중에도 직업병이 도져 집 안 상황 파악을 정확히 했다.
그것도 인원수까지 세어가며.
문제는 유빛나라는 변수가 존재했다는 사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제 손안에 정확히 놓고 컨트롤해야만 하는 통제광 승주에게 그 변수는 그리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려셨잖아요. 여기 문 고장 나서 잘 안 열린다고.”
“그래. 그랬지! 근데 너 오늘 온다는 이야기 듣고 어제 고쳤다. 성질 못 이기고 화장실 통째로 날려버릴까 봐.”
위태준의 말에 그제야 승주는 까만 눈을 내리깔며 제 손에 덩그러니 들린 문고리를 쳐다보았다.
몹시도, 못마땅한 눈초리다.
하지만 그러한 눈매로도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아, 진짜!”
승현은 온갖 신경질을 내며 화장실로 들어가 빛나를 일으켜 세웠다.
천하의 유빛나가 떨고 있다니,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의외로 승현의 품에 들어온 그녀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전 괜찮아요. 조금 놀라서 그랬던 거예요.”
“미안해요. 진짜로 있는 줄 몰랐어요.”
“괜찮다니까요. 모르고 그러신 건데요, 뭘.”
그래. 모르고 그랬을 것이다.
물론 그랬다 하더라도 조금 전 상황이 평범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모인 가족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승현의 부축을 받고 일어난 빛나는 화장실을 나와 소파에 앉았다.
그럼에도 놀란 가슴은 진정이 되질 않는다.
심장이 가슴에 있는지 머리에 있는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뿐만 아니라 떨리는 손발도 멈추질 않았다.
두려워서 떠는 게 아니다.
너무 기가 막힌 이 상황에 온몸의 세포들이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상황에도 저쪽에선 여전히 승주를 구박하는 승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왔다.
“오빤 진짜! 내가 어렵게 모시고 온 손님인데! 이제 어쩔 거야! 오빠 무서워서 눈이라도 마주치겠어?”
“모르는 소리. 노려보기도 하는데 뭘.”
순간 빛나는 눈을 치켜뜨고 그를 당당하게 째려보았던 며칠 전을 떠올리며 떨리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못살아, 진짜! 손 씻고 옷 갈아입고 와서 예준이 동화책 읽어줘!”
“그건.”
“벌이야!”
승희가 소리를 빽 지르며 핑 돌아섰다.
그러자 승주는 눈썹을 꿈틀대며 그에게 기어 오는 어린 조카를 내려다보았다.
꼭 다문 입술이, 몹시 당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세상에나, 어린 조카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게 벌이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하지만 그보다도 더 웃긴 건, 그 말도 안 되는 벌에 천하의 위승주가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빛나가 가진 노멀한 상식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패밀리였다.
어쩌면, 그녀가 착각했던 대로 조폭 패밀리가 더 상대하기 쉬웠을 것 같다는 어이없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언니, 이거 국화차예요. 국화차가 심신 안정에 좋대요. 많이 놀랐죠, 우리 작은 오빠 때문에? 우리야 뭐 이젠 면역력이 생겨서 아무렇지 않다지만 언니는 진짜 놀랐겠다. 걱정 말아요. 제가 따끔하게 벌줬으니.”
그녀는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려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구분이 안 되는데 어찌 이 가족들은 이리도 태평할 수가 있단 말인가!
“빛나야, 청심환이다. 이거라도 먹자.”
승희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자 이번엔 승현이 곁으로 다가와 청심환 하나를 내밀었다.
내심 놀란 그녀가 걱정이 되어 소파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그였다.
“괜찮아. 청심환 먹을 정도 아니야.”
“거짓말하지 마. 웬만해선 놀라지 않는 우리 아버지도 작은형 한 번씩 들어올 때마다 이거 하나씩은 꼭 드신다. 먹는다고 흉 아니란 말이다.”
“정말이야. 나 괜찮아. 잊었어? 나 유빛나야.”
그래, 그녀는 다름 아닌 유빛나다.
이겨낼 수 있다!
이겨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의 결심은 승주가 옷을 입고 내려와 해맑게 웃고 있는 예준이 앞에서 동화책을 읽어줄 때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셋째네 집은 벽돌로 지은 튼튼한 집이라 단단해 보였어요. 맞아요.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이 튼튼했답니다.”
아기 돼지 삼 형제, 그 명작을 마치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하듯 감정 없이 읽어대는 그 특유 목소리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런데 그 순간 예준이 해맑게 웃으며 승주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목을 잡고 기어 오르려 했다.
어떻게, 아무리 애라지만, 저런 목소리로, 저렇듯 감정 없이 동화책을 읽는데, 저토록 해맑게 웃을 수 있단 말인가!
아이를 보면서 웃지 않고 뻔뻔하게 시종일관 아름다운 이야기를 잔혹 동화로 만들어버린 승주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삼촌이 좋다고 웃으며 올라타는 아이.
말도 안 되는 부조화속에 묘한 가족애를 엿볼 수 있었다.
그 모습에 그동안 줄곧 이 집에서 가장 정상적으로 보였던 예준마저도 빛나의 눈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결정타!
동화책을 다 읽은 승주가 의미심장하게 책을 덮으며 예준에게 물었다.
그것도 아이한테 마저 물음표를 달지 않은 그 독특한 어법으로.
“김예준, 이런 늑대가 찾아와 널 협박하면 넌 어떻게 해야 돼.”
아이가 웃자 승주는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자문자답을 했다.
“삼촌한테 오는 거야. 그리고 누가 널 때리면 어떻게 해야 돼. 그것도 삼촌한테 오는 거야. 널 해코지하면? 정답은 삼촌. 딴 놈 찾아가면 안 돼. 딱 삼촌한테 와야 돼. 딱, 나한테만. 그래야 내가 그놈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 옥상에 홀딱 벗겨 거꾸로 매달아놓지. 다시는 그런 짓 못 하게.”
순간 빛나는 곁에 있던 승현을 붙들고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나…… 그 청심환 먹어야 할까 봐.”
***
우여곡절 끝에 식탁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난리법석을 치르고, 무려 두 시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올라온 음식치곤 식탁 위는 무척이나 조촐했다.
비빔밥에 된장국 하나.
하지만 빛나는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허기가 졌다.
배고픔에 뇌까지 쪼그라들어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비빔밥이 아니라 맨밥에 간장만 찍어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먹을 수만 있다면 바람 빠진 듯 쪼그라든 뇌도 다시 팽팽해지고, 그렇게 되면 정상적인 사고도 가능하리라.
정신을 바짝 차리자!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다!
자신을 믿어 의심치 않은 빛나는 어서 위태준이 수저 들기만을 기다렸다.
“죄송해요. 오늘은 차린 게 없네요. 근데 제가 너무 피곤해서…….”
빛나가 들어올 때 화사하게 인사를 건네던 조금 전과는 달리 주방에서 두 시간 시달린 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아줌마가 핼쑥한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안성댁. 안색이 안 좋네.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네. 그럼 전 이만. 식사들 맛있게 하세요.”
그렇게 승희는 저도 모르는 사이 눈 깜짝할 새 9첩 반상도 차린다는 안성댁을 골로 보내버렸다.
게다가,
“자, 예준아. 삼촌 옆에 앉자.”
예쁜 조카와 붙어 있는 게 몹시도 불편해 보이는 승주 옆에 예준의 하이체어를 두고 나란히 앉히는 기염을 토해낸다.
“왜. 동화책 읽어줬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좀 친해지라고.”
“우리 친해.”
“헛!”
승희는 기가 막히다는 듯 웃으며 예준을 승주 옆에 남겨둔 채 우빈의 곁으로 가버린다.
승주는 제 곁에 남겨진 해맑은 조카를 내려다보며 입매를 굳혔다.
하지만 다행히도 승주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야, 우린 비빔밥인데 왜 넌 사골국이냐?”
“난 입덧 있어서 비빔밥 못 먹어. 그래서 나는 아줌마가 특별히 해준 거야.”
“그럼 나도 사골국…….”
승현이 일어나려 하자 승희는 단 한마디로 그를 꿇어 앉혔다.
“비빔밥은 내가! 가족들을 위해 한 거고.”
가족들을 위한다면, 제발 음식에는 손을 안 대줬으면 하는 바람이건만 승희는 진정 그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아참, 나 아줌마 허리에 파스 좀 붙여주고 올게. 먼저들 식사하세요.”
“그래. 먹자.”
위태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빛나는 수저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위태준을 제외하고든 모두들 눈앞에 보기 좋은 비빔밥을 바라만 볼 뿐 감히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순간 승현이 돌아서는 승희를 향해 물었다.
“네가 만들었다고? 그럼 널 뭘 했는데?”
“응. 고기 볶다 태워 먹어서 아줌마가 다시 하고, 나는 계란프라이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승현은 승희가 돌아서 사라지는 틈을 타 계란프라이를 조심스럽게 떠내 우빈의 그릇에 투척했다.
“나, 계란 알레르기 있어.”
헛, 순간 빛나는 헛웃음이 이는걸 참을 수가 없었다.
계란 알레르기?
며칠 전 아침에 계란말이 한 접시를 그렇게 순식간에 해치운 사람이?
하지만 놀라운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승현에 이어 승주가 자신의 계란프라이를 우빈에게 넘긴 것이다.
“넌, 왜!”
우빈이 눈썹을 곤두세우며 묻자 승주는 바라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원래 안 좋아해.”
주어 목적어, 그딴 거 필요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물음의 여지가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이쯤 되자 빛나도 들고 있던 숟가락을 멈추고 자신의 계란 프라이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왜 그들은 서로 계란 프라이를 양보하지 못해 안달인가!
더러 귀한 사위가 오면 맛있는 반찬을 밀어주는 훈훈한 광경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빛나가 생각하기에 지금 이 분위기는 맛있는 반찬을 밀어주는 훈훈함보다는 못 먹을 음식을 밀어주는 것마냥, 참으로 을씨년스럽다.
그야말로 기이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승현이 그녀의 계란에도 손을 대는 게 아닌가!
빛나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를 생각해 저녁 초대를 해준 승희에게 예의가 아닌 듯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란 요리를 맛없게 하기란 잘하는 것보다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까짓거 껍질만 안 씹히면 되지, 이보다 더 못한 음식도 먹었는데 이거 하나 소화 못 시킬까.
“후회할 텐데…….”
그의 경고가 뒤따랐지만 빛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무심코 그의 그릇을 보았는데 대충 비빈 듯 만 듯한 밥을 먹겠다고 수저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빛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인내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저놈의 성질머리, 비빔밥을 먹을 때조차 그대로 나타난다.
“이리 줘. 이거 어떻게 먹어. 반은 하얗고 반은 빨간데.”
빛나는 제 그릇을 밀치고 승현이 그릇에 있는 밥을 골고루 비벼주었다.
그 모습을 위태준이 흐뭇한 눈동자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위태준의 눈엔 참으로 예쁜 아가씨였다.
승희의 말대로라면 출신이 그러하여 조금 조심스러운 면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오늘 만나본 빛나는 그런 위태준의 걱정을 보란 듯이 뒤엎은, 그저 감사한 존재였다.
세간의 시선은 그의 자식들에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가 이뤄낸 모든 것 때문에 제 자식들이 숨겨진 끼를 얼마나 누르며 살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위태준이었다.
특히나 승현은 더 그러했다.
책임감이 막중하여 제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늘 반듯한 이미지로 살아온 큰형한테 밀려, 감정 표현이 익숙치 않아 잘 웃지 않는 작은형에 치여, 게다가 마지막으로 이모션이 풍부하다 못해 넘치는 정신 사나운 동생에 받쳐 살아온 인생이다.
때론 큰형 대신 솔직해지고, 작은형 대신 웃어줄 줄도 알며, 걸핏하면 우는 허당 여동생 대신 독해질 줄도 알지만, 정작 그는 울 줄을 몰랐다.
그랬다.
누구보다 제 자식들을 잘 알고 있는 위태준은 아내가 죽은 이후 승현이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걸핏하면 화내고, 소리도 지르고, 때론 짓궂게 장난도 잘 치지만 절대 울진 않는다.
그 사실이 못내 마음 아팠다.
하지만 누구보다 승현을 잘 알고 컨트롤 할 줄 아는 그녀라면 그의 가슴속에 쌓아둔 눈물 마일리지를 이번 기회에 청산할 수 있지 않을까.
“자, 천천히 먹어. 급하게 먹다 체하지 말고.”
“응.”
그렇게 말하며 빛나는 물을 그의 옆으로 밀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막 제 밥그릇으로 수저를 뻗으려던 찰나, 위태준이 입을 열었다.
“혹시, 계란 좋아하나?”
“네?”
“특별히 좋아하는 거 아님, 그 계란 프라이 내가 먹을까 하고. 나는 특별히 좋아해서 말이지.”
그 말에 빛나가 멈칫하는 사이 위태준은 벌써 빛나의 계란을 제 그릇으로 가져왔다.
그 모습에 이 기회다 싶어 우빈이 제 밥그릇도 내민다.
“아버님, 그럼 제 것도?”
“자네 건 자네가 먹게. 나는 계란프라이도 못하는 딸을 낳은 죄, 자네는 그런 여자를 와이프로 맞이한 죄. 달게 받아야지.”
헐, 그런 계란이라면 위태준에게 미룰 수 없었다.
빛나는 죄송스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제건 제가…….”
“아니야, 아니야. 그러다 또 누구처럼 승희가 해준 음식 한 번에 우리 집에선 절대 밥을 안 먹는 사태가 발생하면 안 되니까.”
“누가…….”
“어, 강복실이.”
망설이는 빛나의 물음에 승현이 입에서 대답이 반자동으로 튀어나왔다.
“걘 절대 우리 집에서 밥 안 먹잖아. 승희가 또 밥 해줄까봐.”
헐! 빛나는 기가 막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근데 뚝딱하면 9첩 반상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우리 아줌마가 어떻게 하면 요거 만들고 저렇게 나가떨어져? 이게 말이 돼?”
“아버님, 제가 이번에 아주머니 보너스 좀 두둑이 챙겨주겠습니다.”
“다행이네. 그나마 둘 중 하나는 양심 있어서.”
승현의 투덜거림에 우빈이 자진 납세를 했다.
하지만 ‘잘생긴 바보 온달’이라 불리우는 김우빈은 여기서 아내 사랑 바보의 끼를 물씬 발산한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오랜만에 승희가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했는데 이렇게 나한테 다 미뤄버리면.”
“좀 전에 아버지가 하신 말씀 못 들었어? 요리 못하는 와이프랑 결혼한 죄.”
“사람이 어떻게 완벽해? 요리 못하는 것쯤이야, 흠도 아냐. 그리고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일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행사인데, 그것도 못 받아줘?”
“이보세요, 매제. 당신이 자꾸 그러니까 쟤가 신사임당인 줄 착각하는 거 아냐.”
“저만하면 신사임당이지 뭘. 내조를 얼마나 잘하는데! 이번에 딸도 낳아주잖아!”
“에이, 확! 또 아들이여 버려라!”
우빈이 승현을 보며 눈을 부라렸지만 그때 승희가 돌아와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빛나는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위태준의 대쪽 같은 이미지답게, 또는 이 웅장하고 세련된 집답게, 식사하는 자리도 경직되고 어려울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엉망진창 소박한 식사에 투덜대는 막내아들과 사위를 바라보는 위태준의 모습은 긴장감으로 바짝 물들었던 그녀를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게다가,
“어서 먹어요. 오늘은 일단 이거 먹고, 다음엔 내가 진짜 맛있는 저녁 사줄 테니.”
그녀를 배려하는 센스까지.
언론에 노출된 위태준의 이미지 때문에 한없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그녀의 예상이 깡그리 뒤엎어지는 순간이었다.
다행이다.
숨이 막히지 않아서.
위태준의 따스한 배려에 마음 한켠이 물렁해졌다.
그러자 순식간에 허기가 밀려와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맛은 어쩔지 몰라도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담백한 나물 냄새가 어우러져 그녀의 후각을 제대로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 이제 먹자.
그렇게 빛나가 이제 막 한 수저를 입안으로 밀어 넣던 찰나였다.
유빛나 수난시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니.
이제 막 자리에 앉은 승희가 무심한 듯 다음과 같은 말을 툭 내뱉었다.
“음, 근데 언니…… 오빠랑 결혼은 언제 해요?”
“푸헉!”
아무래도 오늘 그녀는, 밥을 먹을 운명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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