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이미지 메이킹의 진수
2018.08.01.
“오늘 아침 형사 소송으로 넘어갔어!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자네가 힘을 써보란 말일세. 석훈이 좀 빼낼 수 있게!”
[저도 그렇고 싶은데요, 지금 제 코가 석 자입니다. KMK 건 감사 들어왔다구요!]
김병훈 검사였다.
핸드폰 저편의 김병훈 검사 목소리는 강민식만큼이나 다급했다.
[게다가…… 제가 손을 쓸 수 없는 선까지 올라가 버렸습니다. 도대체…… 위승준 검사가 왜 그 일에 관심을 보이는 겁니까?]
그의 집안사람이긴 했지만 그놈의 강직한 성품과 올곧은 성격이 늘 문제가 되었었기 때문에 김병훈 검사에게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알려줘야 할 때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혼자 해결하기엔 이미 그 불씨가 너무 커져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승현의 신분을 폭로하는 것도 그것이 옳은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 망설이는 판국에 조금 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기도 했다.
“하…… 그게, 석훈이가 건드린 놈이…… 위태준의 막내아들이라네.”
[뭐…… 라구요?]
“그 마담 M이 위태준의 막내아들이라고!”
[아니…… 아니, 그러니까…… 아니, 형님! 도대체 어쩌자고!]
김병훈 검사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감탄사만 남발했다.
그런데 그때 서랍 속 핸드폰이 진동한다. 박 실장과 연락하는 핸드폰이 울리고 있는 것이다.
“일단, 그리 알고 있어. 어떻게 해서든 석훈일 빼내야 하네. 내가 다시 연락하지.”
[아, 형님!]
절박한 김병훈 검사의 외침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고 강민식은 또 다른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내가 연락할 때까진 연락하지 말라고 했잖나.”
[죄송합니다. 하지만 급한 일이 있어서요.]
“급한 일?”
도망 다니는 놈이 급한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대번에 강민식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가뜩이나 석훈의 일로 머리가 돌 지경인데 박 실장까지 더불어 그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돈이 필요하다면…….”
[돈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시장님 신변과 관련이 있는 겁니다.]
“말해봐.”
[제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사무실이 하나 있습니다. 빈 건물에 있는 사무실인데, 저희가 비공개적으로 진행해야만 했던 일을 주로 거기서 처리했어요.]
“뭐라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강민식은 안경을 한번 치켜 올리며 귀를 기울였다.
[처리해야 할 증거라든지, 보관해야 하는 정보를 따로 모아 놨어요. 다른 곳에 두는 건 위험할 것 같아서. 사실적으로는 가장 안전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잡혀 들어간 놈들 중 하나가 그 장소를 알아요.]
“그걸 왜 이제야 이야기해!”
[죄송합니다. 만일, 사무실에 있는 서류가 공개되면 정말 큰일 납니다. 그동안 우리 조직이 비밀리에 진행했던 일들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셈이니까.]
“그래서?”
[태워 없애야지요. 빈 건물이라 증거 인멸은 쉬울 겁니다. 다만…… 제가 도망 중인 몸이라 시장님이 직접 하셔야 할 것 같아서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그가 처리해야 할 문제였다.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박 실장이 묶여버린 지금,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민식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 실장에게 물었다.
“거기가 어딘가!”
***
자동문이 열리며 빛나가 한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아기자기한 소품이 이국적인 카페로 치즈케이크가 무척이나 유명한 곳이다.
뿐만 아니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원준과 자주 왔던 단골 카페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발길을 뚝 끊어버린 지 오래였지만.
[지금 어디라고?]
그녀는 핸드폰 저편에서 들려오는 승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카운터로 걸어갔다.
“단 게 먹고 싶어서. 치즈케이크 하나 사려고. 저녁에 늦어?”
[음, 글쎄. 최대한 빨리 끝내볼게. 며칠 쉬었더니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서 말이야. 근데…… 이번 주에 혹시 시간 돼?]
“이번 주? 왜?”
[아, 승희가 한번 보자고 그래서.]
“아…….”
그녀의 입에선 쉽사리 그러자는 대답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대신 작은 감탄사가 그 자리를 메운다.
아직까지는 그녀에게 승현의 가족은 더없이 어려운 존재였다.
게다가 그의 신분을 알고 난 지금, 더더욱 그러했다.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수십 번, 수백 번 생각해봤지만 도무지 답이 그려지질 않았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았는지 핸드폰 저편에서 차분한 승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다음에 만나도 되고. 천천히 해. 우리…… 시간 많으니까.]
“고마워.”
[그 대신에 주말에 우리 놀러 가자. 어때?]
“어디로?”
[어디든, 일 생각 안 하고 우리 둘만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좋지. 그래, 그럼.”
빛나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케이크를 주문해 계산하고 그 케이크가 포장될 때까지 잠시 테이블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귓전을 울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어머, 빛나 언니!”
상대를 마주한 빛나는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렸다.
“언니 맞네, 맞아! 안 그래도 연락하려 했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감히 용기가 나질 않아 만남마저 피했던 승희였다.
그랬다. 그녀는 승현이 입원한 첫날부터 꾸준히, 그리고 계획적으로 그의 집안사람들을 피해왔더랬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승희를 마주하게 되다니!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빛나에겐 정말이지 최악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긴 어떻게…….”
“여기 치즈케이크 완전 유명하잖아요! 임신하니까 단 게 너무 먹고 싶어서 먹으러 왔죠.”
승희는 유난히도 친근감 가게 빛나의 손을 꼭 잡으며 대답을 했다.
그 따스함에 빛나는 흠칫 놀랐지만 손을 빼내진 않았다.
승희의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그 온기가 좋았다.
그녀에겐 한없이 어렵고 또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따스함만큼은 마치 오래전 알고 지내왔던 사람처럼 친근했다.
“남편이랑 같이 온 거예요?”
“아뇨. 우리 오빠는 너무 바빠서. 오늘은 다른 사람이랑 데이트했어요.”
“다른 사람? 누구?”
의아함에 되묻는 빛나에게 승희는 눈을 찡긋하며 애교스럽게 대답했다.
“우리 아빠.”
순간, 빛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 이거 꿈 아니지?
“아빠! 아빠! 여기요!”
설마, 설마…… 그분이 여기 오셨단 말인가?
빛나는 불안한 동공을 들어 주변을 훑어보았다.
“아빠! 여기…… 우리 빛나 언니! 얼굴 처음 보죠? 막내 오빠 여자친구!”
결국 빛나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주워 삼키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등 뒤엔 단단한 벽이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었다.
결국 뒤로 쓰러지지도 못하고 위태준을 마주하게 된 빛나가 유체를 이탈하려는 멘탈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유빛나라고 합니다.”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위태준의 현명한 눈동자가 반짝 빛나는가 싶더니, 곧 아빠 미소를 보이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아들놈 병원에서 나만 온다고 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던 그 아가씨! 이제야, 얼굴을 보게 되네. 바쁜 내 대신 우리 승현이 돌봐준 거 고맙단 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
얼떨결에 위태준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의외로 그가 내민 손은 더없이 따뜻했다.
TV로만 보아오던 이미지대로라면 대쪽같이 올곧은 성품에 엄할 거라 예상했던 그녀에게 그가 가진 체온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게…… 그게 아니라…….”
“하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어쨌든 지금이라도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요.”
위태준의 인사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카운터에서 그녀를 불렀다.
“포장 나왔습니다.”
그제야 뒤를 돌아 케이크를 들고 왔지만 그 자리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언니도 케이크 샀구나. 뭐예요?”
“블루베리 치즈케이크요.”
“어머, 나도 그거 완전 좋아하는데! 저도 그거 사려고 온 거예요, 여기.”
“아, 그래요? 그럼 이거 가져가요.”
빛나는 선 듯 케이크를 내밀며 말했다. 그러나 승희는 한사코 거절을 한다.
“아니에요. 이거 언니가 먹으려고 산 거 아니에요? 언니, 먹어요.”
“난 또 사면 되죠, 뭐.”
“어머, 아니라니깐요.”
포장된 케이크가 두 사람 손에서 밀고 당겨졌다.
그리고 그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빛나의 성화에 못 이겨 케이크를 받아든 승희가 정말 기절초풍할 제안을 하고 말았으니.
“그럼, 우리 이렇게 해요.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먹어요!”
“음, 헛! 네-에?”
잘못 들은 줄 알고 되물었다.
설마,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니?
“안 그래도 오빠들이랑 아빠랑 저녁 식사 같이하려고 했거든요. 우리 같이 저녁 먹고 디저트로 이거 먹으면 되겠다. 그쵸, 아빠!”
“아, 하…… 아니, 나는…… 아가씨…….”
“어-맛! 나보고 아가씨래! 아빠 들었어요? 나보고 아가씨래요! 나도 이제 새언니 생겼어! 꺄아악! 완전 좋아!”
승희가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불쑥 튀어나온 아가씨란 호칭에 너무 좋아 까무룩 넘어가는 그녀에게 차마 아니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사이, 승희는 마치 평생 같이 자라온 피붙이 자매처럼 너무도 다정하게 팔짱을 꼈더랬다.
그런데 그 눈물겹도록 다정한 팔짱이 왜 빛나에겐 도망갈 수 없도록 옭아매는 수갑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그렇게 피했건만, 결국 빛나는 본의 아니게 위씨 집안 가족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승희는 좋아 어쩔 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승희에게 붙들려 나가는 빛나의 뒷모습은 마치 경찰에 연행되어 가는 범죄자처럼 시꺼멓게 죽어가는 흙빛이었다.
***
빈 건물 주차장으로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섰다.
그곳에서 내린 이는 다름 아닌 강민식이다.
박 실장의 말을 듣고 증거 인멸을 위해 그가 일러준 건물로 직접 차를 몰고 온 것이다.
이제 다섯 시, 길어진 해가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지만 강민식은 어딘지 모르게 으슬으슬한 기운을 느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손엔 휘발유 한 통이 들려 있었다.
“어디 보자. 지하 1층이라고 했던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건물이라 강민식은 비상구 계단 쪽으로 몸을 옮겼다.
사람이 없는 건물이라 그런지 무척이나 으쓱하고 섬뜩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렇게 이제 막 세 번째 계단을 내려서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려왔다.
모르는 번호가 뜬 것을 본 그는 행여나 도망 중인 박 실장이 아닌가 싶어 전화를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위승현입니다.]
순간 계단을 내딛던 강민식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뭐, 누구라고?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들려온 승현의 목소리는 결코 환청이 아닌 현실이었다.
[설마, 벌써 잊으신 거 아니죠?]
“내 번호는 어떻게…….”
[시장님께서는 절 납치도 하셨는데 이깟 번호 알아내는 거야 뭐가 대수겠습니까?]
“무슨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아들놈이 벌인 일은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
이놈, 감히 어린놈이 그런 식으로 유도신문을 하려고?
어림도 없다.
하지만 의외로 승현은 차분한 목소리로 다음 말을 이어간다.
[아닙니다. 시장님께 그런 사과나 듣자고 전화를 한 게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그럼?”
[저번에 저를 찾아와 제안하신 내용 말입니다. 시장님을 제2의 조나단 케이너로 만들어달라고 했던……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미지 메이킹 해드리겠다구요.]
이놈이 미쳤나!
박 실장에게 머리를 잘못 맞은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정신 나간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강민식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미친놈 목소리치곤 너무도 진지하게 살벌하다는 점이었다.
발길을 멈추었던 강민식이 다시 걸음을 떼며 짜증스러운 듯 승현의 목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얼마나 헛소리를 해대나, 한번 들어보기 위해서다.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아시다시피 시장님이 무척이나 건실한 이미지잖습니까? 인정 많고, 사람 좋고, 거기다 결단력 있고. 도저히 흠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흠 없는 사람은 더러 사람 같지 않아 보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미지 메이킹이란 명목 아래 시장님을 조금 더 사람답게 자그마한 흠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도대체 뭐라고 지껄이는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강민식이 듣거나 말거나, 핸드폰 저편의 목소리는 쉼 없이 자신의 계획을 살벌하고 은밀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금 아드님이 성폭행에 납치, 공갈 협박까지. 그야말로 요즘 가장 큰 이슈가 아닙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납치, 공갈 협박은 아들이 아닌 아비 죄라…… 물론 아비는 극구 부인을 하겠습니다만 증거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날 납치 현장에서 있었던 녹음 파일부터, 납치한 이들의 증언까지.]
“녹음…… 파일?”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귀가 솔깃해지는 부분이었다.
[네. 녹음 파일. 그날 사건 현장에 불행하게도 그 망나니 아들이 나타나 서슴없이 제 아비가 벌인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게 고스란히 핸드폰에 녹음이 됐지 뭡니까? 그것도 동영상으로?]
“뭐…… 라고?”
[일단, 그걸로 납치, 공갈 협박에, 살인 미수 혐의 인정! 두 번째로는 그간 서민들 편에 서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진짜 시장님의 정체입니다. 사회복지라는 명목 아래 보육원 양로원 리스트 만들어 지원자금 늘린다더니, 반대로 한두 곳 지원자금 늘리면서 그 배가 되는 사회 복지 시설을 강제 철거하게 만든 거. 더불어 시민 복지 차원에서 공원 조성한답시고 업체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고 부당하게 업체 선정을 한 거, 뭐 말로 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 대충 생략하더라도 이쯤이면 서울 시장직에서 물러나야겠죠? 그런데 그렇게 시장직 반납하는 걸로 끝나느냐, 절대 아니죠. 그렇게 무너진 시장님 편들어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이리하여, 시장님 대신 죄 뒤집어쓰고 콩밥 먹는 그들이 맘 달리 먹고 KMK 공금 횡령 사건에 대해서 증언을 하게 됩니다. 아시죠? 아직 회수 못 한 금액 230억 원, 제가 조사해보니 시장님 꽁쳐둔 재산까지 전부 몰수하면 대충 금액 매울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이쯤 되니 강민식은 웃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승현의 목소리가 미친놈치곤 너무 진지하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협박하는 거냐?”
[어허! 제 말 아직 안 끝났습니다. 끝까지 들으셔야지요. 감상 소감은 그다음에 듣는 걸로.]
“너 이놈…….”
[제일 중요한 거, 남았거든요.]
이가 바드득 갈렸지만 승현의 목소리가 더욱 은밀해져 그 소리를 놓칠 수가 없었다.
[사실은 과거 건실한 사업가인 줄 알았던 서울 시장 강민식이 알고 보니 ‘무엇이든 다 해드립니다’라는 심부름센터에서 시작했다는 거. 강간, 협박, 살인 미수 등등…… 말 그대로 돈만 주면 무엇이든 다 해주는 그 심부름센터가 예상외로 성황이라 사업을 확장하다 보니 비밀스러운 조직이 되고, 이젠 간이 배 밖으로 나와 살인 청부까지 하는 거대 조직으로 커버린 거죠. 하지만 어두운 음지보다는 밝은 양지에 서고 싶었던지라 건실한 사업가였던 것으로 신분 세탁을 하고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여기까진, 기가 막힌 전략이었어요. 적어도…… 날 건드리기 전까진.]
소름이 돋았다.
그가, 모든 걸 알고 있다!
철저히 가려왔던 강민식의 과거까지 모두다!
“감히…… 네가! 어디서 주어들은 이야기로 날 엮긴 힘들게다!”
[주워듣긴, 증거가 버젓이 있는데. 건실한 사업가에 서민 정치를 했던 서울 시장 강민식, 알고 보니 사람 할 짓 못 할 짓 다 해본 천하의 악질에 제 아들도 버린 생양아치라. 훗, 대선 출마를 하겠다고? 아니, 대선 출마는커녕 앞으로는 햇빛 보기도 힘들걸?]
섬뜩한 승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민식은 박 실장이 일러준 지하로 내려와 유일하게 탄탄한 철로 된 문 앞에 우뚝 섰다.
이 방이 바로 박 실장이 말한 그 사무실이다.
이 안에 있는 증거만 인멸하면 어떻게든 살아 나갈 수 있으리라.
[하루하루가 지옥이 될 거야. 지금부터 내가 말한 내용은 모두 현실이 될 테니까.]
“헛소리 집어치워!”
그렇게 말하며 강민식은 무거운 철제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빛 한 점 새어 들어오지 않는 그 방으로 들어서는 그 순간, 검은 그림자가 파일철 하나를 빼들고 손전등을 비춘 채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박 실장의 말대로라면 이곳을 아는 이는 없을 텐데, 그렇다면?
“박…… 실장?”
행여나 박 실장인가 싶어 불러보았다.
하지만 대답은 엉뚱한 승현에게서 흘러나온다.
[박 실장 찾지 마. 지금쯤 제 발로 경찰서에 들어가 자수하고 있을 테니.]
“뭐……라고?”
말도 안 된다.
그렇다면 저 음침한 그림자의 정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서서히 그 그림자가 강민식을 향해 돌아섰다.
승현의 말처럼 그 그림자의 정체는 박 실장이 아니었다.
박 실장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였으며 범생처럼 생긴 그에 비해 이 남자는 어느 모로 보나 시선을 끄는 훈남이었다.
게다가 건장한 체격까지.
그런데, 이 모습이 낯설지 않다. 도대체 어디서 봤더라?
[당신이 저번에 그랬지. 내가 하는 일은 단순한 광고 마케팅이 아니라고. 한 사람의 인생을 설계하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힌 편견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것! 그게 바로 내가 하는 일이라고. 그래서 당신을 위해 준비한 거야. 당신이, 몰락하는 과정……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설계해봤어.]
승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앞의 남자가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서울 중앙 지방 검찰청, 특수 범죄팀에 있는 위승준 검사입니다.”
뭐라고?
강민식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는 승준이 모습에서 저도 모르게 서너 발자국 물러섰다.
어찌하여 사람의 웃는 모습이 저런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섬뜩할 수가 있을까.
참으로 신기한 재주였다.
“왜…… 이제 오셨습니까, 한참을 기다렸잖습니까. 자, 이제 이 증거물들 옮깁시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승준이 박수를 치자 장갑을 낀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빈 건물이라 여겼건만,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숨어 있었단 말인가.
“아차, 그리고 시장님께서는 이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싶으시다면 여기까지 오신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겁니다. 저를 이해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설득력 있는 것으로.”
그렇게 말하며 승준이 돌아서는 순간, 너무 놀라 아직까지도 귓전에 대고 있던 핸드폰에서 승현의 목소리가 똥꼬 발랄하게 들려왔다.
[어때, 내 이미지 메이킹…… 완전 죽이지 않아. 응?]
죽이냐고?
죽이다마다!
죽이다 못해, 인간 위승현은 이미지 메이킹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