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설레게하는 그대-67화 (67/94)

67. 폭풍 전야

2018.07.25.

“어디야? 여기야?”

승희와 함께 병원으로 온 빛나는 병실 문 앞에 서 있는 복실을 보고 승현의 병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 언니. 잠만. 할 이야기가 있어. 승현이가 지금 막 진통제 맞고 잠이 들었어. 그러니까…….”

“진통제?”

그렇지 않아도 걱정으로 파르르 떨리던 빛나의 눈썹 끝이 구겨졌다.

“도대체 상태가 어떻길래…….”

“어쨌든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그것만 알아두라고.”

복실이 차분하게 이야기하며 빛나를 달랬지만 곁에 있는 승희까지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미 그녀는 승현의 모습을 보기도 전에 그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 있었으니까.

“뭐야, 우리 오빠 그렇게 많이 다친 거야?”

“언니는 들어가도 되지만 승희 넌 여기 있는 게 좋겠어.”

“아니, 왜?”

“임신했잖아.”

“그 정도야? 내가 보면 안 될 정도?”

“아니. 그 정돈 아닌데, 네 신랑한테 들으니 요즘 들어 너 감수성이 무척이나 예민해졌다면서?”

“어머, 아냐!”

“아니긴 뭘 아냐. CF 보고도 운다던데.”

“우리 오빠가 그런 이야기까지 했어?”

극구 부정하고 싶었지만 우빈 때문에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들통 난 승희는 눈물을 훔치며 못마땅한 듯 팔짱을 꼈다.

우빈은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회사로 들어갔지만 승희를 위한 뒤처리는 언제나처럼 말끔히 해놓았다.

덕분에 복실은 그 어떤 압박에도 절대 승희를 들여보내지 않을 기세다.

“그래요. 오빠도 안정을 취해야 하고 임신 때문에 감정의 기복도 심하니 아이를 위해서라도 여기 있는 게 좋겠어요.”

“흠, 나도 오빠 걱정되는데…….”

빛나도 저렇게 이야기하는 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복실이 웬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승희로서는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

“좋아요. 오늘은 여기서 기다릴게요. 오빠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니까. 내가 울면 그마저도 못할 테니.”

그렇게 빛나는 커다란 병실에서 만 하루 만에 보는 승현과 조용히 대면할 수 있었다.

몇 번의 심호흡으로 뛰는 심장을 달래며 병실 문을 열었다.

짧은 복도형 입구를 지나 탁 트인 VIP 병실은 그녀의 아파트만큼이나 넓다.

하지만 이 넓은 공간에 유일하게 들려오는 소음이라곤 가습기가 돌아가는 소리뿐이다.

그곳에서 빛나는 죽은 듯 누워 있는 승현을 보았다.

순간, 그녀는 새어 나오는 비명소리를 집어삼키고자 제 입을 틀어막아야만 했다.

“흡…….”

몇 시간이 지나 붓기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지만 말간 얼굴을 차지하고 있는 멍과 상처는 그에게 있어 지난 24시간이 얼마나 혹독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곁으로 다가가 가만히 손을 잡아보았다.

시체처럼 누워 있었지만 상처가 난무한 그의 손은 살아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무척이나 따스했다.

다행이다.

그가…… 살아 있다!

“흐흑……….”

결국 빛나는 또 한 번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흐흑, 우리 승현이…… 어디 보자, 어디를 다쳤나.”

그녀는 조심히 이불을 들추고 그의 몸 구석구석을 훑어보았다.

꼭 두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어디를 얼마만큼 다쳤는지.

그렇게 얼마나 더듬었을까.

줄곧 그녀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던 병실 안에 짤막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으, 유빛나…… 네가 그렇게 더듬으니까, 잠을 잘 수가 없잖아.”

그녀의 흐느낌에 정신을 차린 승현이 엄살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연 것이다.

그 목소리에 빛나는 고개를 번쩍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일어……났어? 일어난 거야? 어디야, 도대체 어딜 얼마나 다친 거야, 응?”

“많이 안 다쳤어. 얼굴만 이 모양이야. 안으로 곪은 데 없으니 괜찮아.”

“정말이야? 정말? 아니, 왜 얼굴만 이 모양으로 만들었대?”

“얼굴만 때리지 말랬더니, 얼굴만 때리더라고. 나쁜 새끼.”

“아니, 그 와중에도 얼굴은 때리지 말라고 했다고? 도대체 제정신이야? 응?”

빛나는 얄미워 죽겠다는 듯 그의 가슴을 내리쳤다.

그러자 승현은 앓는 소리를 내며 엄살을 피운다.

“윽. 아직 나 환자야.”

“미안,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그녀는 미안하다는 듯 그의 가슴을 매만졌다.

아직도 눈에 가득 찬 울음에 승현은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다.

지난 24시간 동안 이를 악 물며 버틴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그도 눈물이 나려 하고 있었다.

“보고 싶어 죽겠더라. 눈을 감아도…… 떠도…… 너밖에 생각 안 나더라.”

“그걸 말이라고. 위승현만 치명적인 줄 알아? 나도 한 ‘치명’ 하는 여자야. 이거, 왜 이래.”

빛나가 곱게 눈을 흘기며 제 볼을 감싸 쥐고 있는 그의 손을 따뜻하게 붙들었다.

하, 이제야 살겠다.

비록 쥐어 터진 모습이지만 눈앞에 승현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빛나에겐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겨버렸다.

“나,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눈앞에 뵈는 거 없었다고. 너 어떻게 되면…… 나도…… 흑…….”

“쉬. 됐어. 이렇게 살아 돌아왔고, 덕분에 누가 진짜 적인지 알았잖아.”

“하지만…….”

“우리 빛나, 한번 안아보자.”

승현은 그녀를 달래려는 듯 긴 팔을 벌리며 넓은 가슴을 내주었다.

그러자 그간 그녀의 가슴 졸였던 원망과 서러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물론 그녀가 안겨 오자 승현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며 비명을 집어삼켰지만 지옥 같았던 24시간에 비하면 지금 이 순간은 천국이었다.

“아, 고생 끝에 낙이 오는구나.”

“이렇게 쥐어터지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그래도 이겨냈으니까.”

“다음부턴 절대 그러지 마. 그런 미련한 생각이 어딨어? 네가 직접 미끼가 돼서 거길 기어들어가? 그게, 제정신인 사람이 할 짓이야?”

“이 게임을 빨리…… 끝내야 했으니까.”

“정말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당했으면 어쩔 뻔했어? 모기만 물려도 난리법석이면서, 도대체 얼굴이 이렇게 될 때까지 어떻게 참았대?”

빛나는 여기저기 흔적이 남은 그의 얼굴이 안타까운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이야기했다.

그녀의 손끝이 터진 입술로 향하자 그가 잠시 인상은 찌푸렸지만 그것을 거부하진 않았다.

대신, 제 입가에 머물러 있는 그녀의 손을 따스하게 붙들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뭐가! 뭐가 고마운데! 만신창이가 된 사람은 넌데! 왜 나한테 고마운 거냐고!”

고맙단 한마디에 미안함이 더 커져버린 빛나에게서 원망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이에 승현은 뜻밖의 말을 건넨다.

“네가…… 날 버틸 수 있게 해줬으니까.”

“응?”

“아파 죽겠는데,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너만 생각나더라.”

그랬다.

지옥 같던 그 찰나의 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

모두 그녀 때문이었다.

통증으로 터질 것 같은 머릿속을 깨끗이 비워냈다.

그리고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했다.

그녀의 웃는 모습, 우는 모습, 화내는 모습…… 마지막으로, 이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린 그들의 첫 만남까지.

그녀와의 모든 순간들이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더랬다.

그 결과,

“네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고, 유빛나.”

이렇게 살아서 그녀를 다시 안아볼 수 있지 않나.

이거면 됐다.

그녀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순간들은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 되어버렸으니까.

“흐흑…… 너 끝까지…….”

승현은 울고 있는 그녀를 달래고자 슬며시 입술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녀의 보드라운 입술에 닿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물러선다.

“으윽…… 이 새끼들, 얼굴은 때리지 말라니까!”

입안의 터진 상처들 때문에 후끈한 열기를 머금고 있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자마자 발작을 일으키듯 통증을 전달했던 것이다.

그 모습에 빛나는 울화통을 터트렸다.

“아니, 하필이면 얼굴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놨대? 이 나쁜 새끼들…….”

이제 어쩌면 좋나.

시간만 나면 물고 빠는 게 취미인 그에게 키스도 못 하는 이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이 씨…….”

통증에 절로 튀어나오는 욕을 쓰게 삼켰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생각에 그가 묻는다.

“참, 그나저나…… 강석훈이는 어떻게 됐어?”

“걱정 마. 내가 누구야. 네가 거기서 이 꼬라지로 나왔는데 나는 가만 있었을 것 같아? 제대로 물어줬지. 아주, 제대로.”

“후훗. 그래야 내 여자지.”

의미심장한 빛나의 웃음에 승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러게 경고하지 않았나.

빛나를 너무 몰아세우면 되려 문다고.

하지만 그 경고를 무시한 건 다름 아닌 강석훈이었다.

한마디로 그렇게 당해도 싸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우리 빛나, 오늘 이래저래 정말 많이 놀랐겠네.”

“말이라고. 천국과 지옥을 오간 기분이야. 더불어 이상한 나라 엘리스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미안. 우리 집에 대해 미리 말 못 해서.”

“아냐. 나도 묻지 않았으니까.”

“좋은 사람들이야. 절대 너 상처 줄 사람들 아냐.”

승현이 그녀의 손을 매만지며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천천히 밝히려 했던 그의 내력이 본의 아니게 오늘 같은 날 한꺼번에 그녀에게 몰아닥쳤다.

물론 덕분에 모든 일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지만, 지금 그녀가 어떤 심정인지는 감히 짐작도 해볼 수가 없었다.

“우리,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 네 몸부터 회복하고 나서.”

“그래. 우리 당장 잡아야 할 놈도 있으니까. 일단 좀 쉬고. 나 화면발 좀 잘 받게 되면 그때 움직이자고. 지금 당장은 너무 졸려. 진통제 놔달랬더니 수면제 놨나 봐.”

“나도 졸려. 어제 한숨도 못 잤거든.”

빛나가 눈을 감으며 말하자 승현은 끙 소리를 내며 자리를 옆으로 옮기며 제 옆을 토닥였다.

“이리 와. 같이 자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빛나는 승현의 병실 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VIP실이라 그런지 침대도 꽤나 넓어 기본 신장을 훌쩍 넘기는 두 사람이 편안하게 누울 수 있었다.

그제야 두 사람의 눈에 잠이 몰려왔다.

하지만 승현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빛나가 자꾸 그의 곁으로 들어와 붙는 바람에 진통제로 간신히 눌러 놓았던 통증이 다시 찾아왔기 때문이다.

“으윽…….”

“아파?”

“좀. 안 되겠다. 빛나야, 너 침대에서 내려가야 할 것 같아.”

“싫어! 절대 한 침대에서 자야 한다고 말했던 건 너야! 못 물러!”

“그게, 좀…… 내 갈비뼈가…….”

“싫어! 싫다고옷!”

어림도 없다는 듯 그녀는 다시 그의 품에 쏙 안겨온다.

물론 그 바람에 부러진 갈비뼈에 찌릿한 통증이 찾아오긴 했지만 승현은 껌딱지처럼 딱 달라붙은 그녀가 싫지만은 않았다.

물론 몸은 아프다.

하지만 그는 즐거운 통증에 행복한 엄살을 부리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사랑스러워 더욱 꼭 안아주지 못하는 지금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좀 움직이지 마.”

“안 움직였는데?”

“움직였잖아. 아프단 말이야.”

“그냥 침대가 흔들린 거야.”

어두운 병실.

속닥이는 듯한 두 사람의 목소리.

어제까지만 해도 인생 최악의 쓴 맛을 맛보았던 그들에게 더 없이 달콤한 시간이었다.

그래. 딱 오늘까지만 쉬는 거다.

내일부턴 진짜 전쟁의 서막이, 화려하게 오를 테니까.

***

서울 한 외각에 외치한 고급 한정식 레스토랑, 그곳에서 은밀한 급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강민식은 졸라 맨 타이가 삐뚤어지지 않았나 손으로 점검하며 앉은 자세까지 바로 했다.

평소 그답지 않게 잔뜩 긴장한 느낌이다.

그의 앞엔 나이를 먹은 한 남자가 앉아 있었지만 강민식이 긴장한 건 그 늙은 남자 때문이 아니었다.

국회의원 위태준.

그토록 만나길 염원하던 ‘그’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기대했던 만큼 직접 마주한 위태준의 위엄은 상상을 초월했다.

왜, 정치인들이 그토록 위태준의 이름 석 자를 입에 올리기도 두려워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발육 상태가 좋은 요즘 젊은이들을 능가하는 당당한 풍채 때문이 아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대쪽 같은 분위기가 보는 이의 숨을 턱턱 조여왔다.

게다가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앉아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강민식조차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만큼 그 위용이 남달랐다.

가시 방석에 앉은 느낌이다.

올곧은 그 눈동자에 발가벗겨지는 것 같았다.

과연 강민식은 이 남자와 인연을 맺을 수 있을까.

“감사합니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의 앞에서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잔주름이 잡힌 눈매였지만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현명한 눈이 인사를 건네는 강민식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탐색전을 끝낸 위태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제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오늘 막내 아들놈이 병원에 있어서.”

그래도 서울 시장인데 처음 만난 자리에서 조금 예의 없다 싶을 만큼 무심한 말투였다.

그 말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쩌겠는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하는 것을.

상대는 다름 아닌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 천재지변이 있지 않는 한 다음 대통령이 될 그와의 친분은 그다음 정권을 이어받는 데 가장 유리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강민식은 그 점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아이고, 의원님 아드님이 어디 아프십니까?”

강민식보다 더 놀란 건 곁에 있던 박 의원이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런 말이 없었기에, 게다가 자식들 이야기라면 극히 말을 아끼는 위태준이 이러한 자리에서 아들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대해 조금 의아했기에.

“아직 상태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가봐야지요.”

“이런…… 그렇게 바쁘신데 저한테 시간까지 내주시고.”

강민식은 몸둘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의 잔에 술을 채웠다.

하지만 위태준은 단번에 그 술잔을 거절하며 다시 강민식에게 내밀었다.

“술은 됐습니다. 그저…… 시장님의 얼굴을 한번 뵙고 싶었을 뿐입니다.”

순간, 그 한마디에 강민식은 이상하리만치 소름 돋는 전율을 느꼈다.

과연 술 한잔할 시간도 없을 만큼 팍팍한 스케줄 속에 병원에 있는 아들도 마다하고 이 자리에 올 만큼 지금 이 시간이 위태준에게 중요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좀처럼 그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었다.

고대했던 만남이지만 뭔가 개운치 않은 찜찜함이 남았다.

속을 알 수 없는 저 현명한 눈에 압사할 것 같았다.

그러나 강민식은 모처럼 잡은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맨손으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

이미지 세탁을 위해 제 신분도 버리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하지만 이젠 고지가 눈앞이다.

강민식의 뛰어난 처세술로 눈앞에 있는 저 남자와의 인연만 잡을 수 있다면 힘들었던 지난 세월을 모두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모든게 잘 풀리려 하고 있었다.

적어도 석훈에게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정말 그렇다 생각했다.

“좀 전부터 자꾸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리는데, 강 시장님 전화 아닙니까?”

박 의원이 묻자 강민식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렇지 않아도 울리는 진동을 무시하고 있는데 박 의원이 그 사실을 꼭 집어준 것이다.

반갑지 않은 지적이었다.

강민식은 핸드폰을 슬쩍 보더니 이내 무시해버렸다.

“아들놈입니다. 받지 않아도 되니 염려 마십시오.”

말 그대로 애가 타게 전화를 해대는 놈은 다름 아닌 강석훈이었다.

이런 눈치 없는 자식 같으니! 지금이 어느 때인데 타이밍 하나 제대로 못 맞추고 전화질이란 말인가.

가뜩이나 위태준 앞에서 위축된 상황에 그 불똥이 죄 없는 석훈에게 튀었다.

그러나,

“전화 받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자식만큼 귀한 존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위태준은 처음과 다름없는 차분한 목소리로 강민식이 전화를 받을 것을 권유했다.

아마도 아들이 병원에 있는 상황에 애타는 아비 마음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리라.

강민식은 그 말을 거절해 좋을 것 없다 판단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잠시만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이를 악 물고 일어난 강민식은 미닫이문을 열고 나가 전화를 받았다.

“안 받으면 그만할 것이지 뭣 때문에 이렇게 전화질이야!”

[아버지!]

전화기 너머 석훈은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런 젠장!

조짐이 좋지 않다. 또 사고를 친 건가?

강민식은 석훈이 용건을 꺼내기도 전에 머리가 지끈 아파옴을 느꼈다.

“애비 지금 바쁘다. 용건이 있으면 나중에 이야기해라.”

[아뇨, 아버지! 지금 해야 돼요. 지금!]

“뭐라고? 그래도 이놈이…….”

안경 너머 강민식의 작은 눈이 분노로 번뜩였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석훈은 여전히 전화를 끊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숨을 헐떡였다.

[큰일났다구요. 큰일!]

“또 사고 친 게냐? 이런, 버러지만도 못한 녀석! 지금이 어느 땐데…….”

[그 자식! 마담 M 말이에요! 아버지가 박 실장한테 처리하라고 잡아 온 그놈!]

“뭐?”

[이름이 위승현이에요. 위승현!]

너무 흥분을 한 나머지 석훈은 앞뒤 없이 횡설수설이었다.

위승현이 어쨌다고?

아니, 그 모든 걸 다 떠나서 도대체 석훈은 그가 박 실장에게 내린 지시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일에 참견 말라, 그렇게 일렀거늘.

이번에도 석훈이 주제넘게 굴었다 생각했다.

분노가 앞섰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따끔하게 한마디 해줘야겠다 생각하고 입을 열려던 그 순간 그가 좀 전에 나왔던 미닫이문이 열리며 머리 위로 내려온 발을 걷어낸 위태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렇게 마주선 위태준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어찌나 섬뜩하던지.

동시에 석훈의 마지막 한 방이 귓속을 아릿하게 파고든다.

[그 자식이…… 그 자식이…… 국회의원 위태준의 아들 위승현이라구요, 아버지!]

순간 머릿속이 까맣게 암전되었다.

저도 모르게 시선을 들어 위태준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넋 나간 강민식을 마주한 위태준은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여기 온 의도를…… 이제야 파악하셨나 봅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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