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밤
2018.03.21.
스르륵.
현관문이 닫히며 도어록이 자동으로 잠겼다.
두 사람이 바람처럼 밀려들어오자 자동 센서가 현관문을 밝혔지만 그들은 서로를 정신없이 탐하느라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
빛나의 입술이 벌어지며 열에 들뜬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낮고, 은밀하고, 섹시한 음성이었다.
이에 승현은 그녀의 목에 묻었던 뜨거운 입술을 열고 부드럽게 그녀의 피부를 쓸어내렸다.
그러자 생크림 같은 그녀의 피부가 파르르 떨린다.
그도 느낄 있을 만큼 생생한 떨림이었다.
“승현아…….”
빛나는 그의 부드러운 베이비 펌에 손가락을 묻으며 그의 머리를 제 입술로 끌어당겼다.
멈추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 순간이, 영원했음 좋겠다.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은 격정적인 키스가 계속되었다.
빛나가 긴 다리를 들어 올려 그의 허벅지를 쓸어내리자 승현의 뜨거운 손이 원피스를 밀어 올렸다.
그의 숨결이 그녀의 입안을 부드럽게 헤집어놓았다.
작은 숨결 하나까지도 모두 제 것으로 만들려는 듯 적극적이고 야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빛나도 만만치 않았다.
그가 그녀를 향해 달아 오른 만큼 그녀도 그를 향해 열정적으로 제 몸을 불사르고 있었으니.
대담한 그녀의 손길이 승현의 맨가슴에 와 닿았다.
늘, 셔츠 위로 느끼는 그의 심장은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녀만 보면 설렌다는 그의 말을 증명하려는 듯.
하지만 맨가슴 위로 느끼는 그의 심장의 움직임은 거칠다 못해 아플 만큼 섹시했다.
어쩌면 딱 벌어진 어깨와 단단한 가슴 근육이 한몫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숨이 차올랐다. 서로가 서로를 찾아드는 손길에 거침이 없었다.
승현의 커다란 손이 원피스를 과감히 들추고 들어오자 그 손길이 스치는 곳곳에 불에 덴 듯 뜨거운 흔적이 남았다.
잠시 후 성질 급한 그에 의해 원피스가 한 번에 벗겨졌다.
그러자 얼마 전 보았던 그녀의 탐스러운 몸매가 그의 눈앞에 환상적으로 펼쳐졌다.
빛나가 네발로 그의 현관문을 기어 들어온 그날, 승현은 이 몸을 보고도 그냥 스쳐 지나가야 했으니 그 고충이야 말로 오죽했을까.
그날은 그의 30년 인생을 통 틀어 가장 길고 힘든 밤이었더랬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감겨 오는 그녀 때문에 적어도 오늘 밤만은 그의 인생에 가장 불꽃같은 짧은 밤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넌…… 내가 이 순간을 얼마가 기다려왔는지 절대 모를걸.”
“모르긴 왜 몰라. 나도 알아.”
“알아?”
“당연하지. 나도 같은 마음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승현의 한쪽 가슴이 물을 머금은 듯 뭉클해졌다.
이제 빛나는 알코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그를 예쁘게 올려다 볼 수 있었다.
술이 아닌, 사랑의 힘으로.
하지만 눈앞에 있는 서로의 존재가 안 믿어지긴 빛나도 마찬가지.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순간이기에 더욱더 가슴 벅찬 순간이기도 했다.
때문에 빛나는 굳이 그의 심장박동을 느끼며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제 이거…… 절대적으로 내 거야.”
“처음부터 네 거였어, 유빛나.”
“그러니까 내 것도…… 가져가.”
서로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그 역동적인 움직임이 그제야 진정으로 서로의 것이 되었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승현은 다시 빛나의 입술을 거침없이 파고든다.
이에 빛나는 승현의 심장을 쥐어뜯을 듯 그의 가슴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싸한 느낌이 그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뭐, 같은 마음이라고?
아니다, 절대 빛나는 승현과 같은 마음일 수가 없다.
그는 10년 전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려왔으니, 절대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승현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러자 빛나는 유연한 긴 다리를 들어 그의 허리를 부드럽게 휘어 감았다.
그녀의 입술을 떠난 그의 입술이 길고 우아한 그녀의 목덜미에 머물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어슴푸레한 불이 켜진 그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에 의해 들려오는 서걱거리는 침대 시트 소리마저도 섹시한 밤이다.
붉은 불빛에 반사된 승현의 모습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었다.
이마 위로 자연스럽게 흩어진 베이비 펌이 무척 부드러워 보였다.
오늘 밤 빛나는 저 머리칼에 제 손가락을 원 없이 묻어 볼 것이다.
빛나가 두 팔을 벌려 그를 재촉했다. 그러자 승현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가늘어진다.
“너 진짜…….”
예뻐 죽겠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이렇게 적극적인 유빛나를.
지나갈 때마다 칼바람을 일으키고, 앉은 자리에선 고드름이 열릴지도 모른다던 도도의 여왕 유빛나가 저렇게 간절한 모습으로 그에게 팔을 벌리고 있다니.
화장기 없는 얼굴과 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침대에 누워도 한 치의 흩어짐이 없는 그녀의 완벽한 몸매가 그를 애태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인내심에 불을 지핀 건,
“안아줘…….”
자신을 내건, 그녀의 그 한마디였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승현은 간신히 붙들고 있던 이성의 그림자를 미련 없이 놓아버렸다.
그녀의 몸 위로 그의 묵직한 체중이 실렸다.
그런데 빛나는 자신을 압박하는 그 묵직함이 좋았다.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무게감.
그제야 빛나는 그의 집에 들어선 이래 일어난 이 모든 일들에 대해 언제가 경험해본 적 있는 익숙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꿈…….’
그랬다. 술에 취해 들어와 제 집인 줄 알고 세상모르게 그의 침대에서 잔 그날, 비슷한 꿈을 꾸었다.
그 지독했던 악몽이 데자뷔처럼 되풀이되고 있었다.
물론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현실은 지독한 악몽이 아니라는 점.
“승현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했다.
아, 정말. 예뻐 죽겠네.
그를 온전히 담고 있는 그녀의 시선이 너무 사랑스러워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런 여자를 어떻게 10년 동안 내버려둘 수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때문에, 더 애틋하게 사랑할 것이다.
죽도록 사랑하다 펄떡이던 심장이 못 버텨 터져버린다 할지라도, 절대 이 사랑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승현은 그날 밤, 빛나를 더 없이 사랑했다.
“사랑해…….”
그 말을 누가 내뱉었는지 모른다.
십여 년 동안 그녀를 가슴에 품고 있던 승현이 내뱉은 말인지,
뒤늦게 그를 받아들였지만 그가 품었던 십년의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정신없이 내달린 빛나가 내뱉은 말인지.
하지만 누가 했든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작은 승현이 먼저였지만, 어쨌든 지금은 서로를 향한 같은 생각으로 시선을 나란히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더 없이 행복하고, 더 없이 따뜻했다.
그토록 몸서리 쳐졌던 그 지독한 악몽이,
“나도…… 사랑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밤이 되는 순간이었다.
***
아침 햇살이 살짝 열린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 들어와 침대를 밝혔다.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그 햇살에 빛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음…….”
그러나, 일어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그의 체온이, 가슴 위에서 느껴지는 그 손길이 그녀를 움직이지 못하게 철저히 옭아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뜨거웠던 어젯밤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에게 남은 건 오로지 하나였다.
-안아줘…….
-빨리.
평소 도도하던 유빛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오로지 그에게 매달려 얼마나 칭얼대고 얼마나 재촉했는지.
게다가 승현을 상대로 했던 그녀의 대담한 행동들은…….
“으흐…….”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아찔했다.
도저히 그녀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이지 않았던가.
그가 뭐라고 생각할까.
얼굴이 붉어지는데 몸에 둘러져 있던 승현의 손이 살짝 움직였다.
순간 놀라 움츠러들었던 빛나는 잠시 후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그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끄러울 것 없다!
사랑하는 남녀끼리 자연스러운 거니까.
게다가 위승현, 더 했음 더했지 절대 못 했던 인간이 아니니까.
고로, 그녀는 당당해질 수 있는 거다!
빛나는 승현이 깨지 않도록 그의 손을 살짝 치우고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곤 어디에 벗어두었는지 모를 원피스를 찾아보았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게 발이 달렸나. 도대체 어디…….”
“뭐 찾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빛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돌아섰다.
잠이 든 줄 알았던 그가, 그녀에게 팔을 두르고 엎드려 자던 그 자세 그대로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 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잠이 덜 깬 몽롱한 눈동자가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겠다. 물론 그의 몸을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무색해지지만 말이다.
“그, 그게…… 원피스…….”
“거실에.”
세상에나, 잠이 덜 깬 와중에도 그는 어젯밤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디테일하게 기억하는 모양이다. 빛나에겐 그저 꿈만 같은데.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슬로모션처럼 비쳐졌다.
흩어진 그의 머리카락에 고스란히 드러난 상체가, 아직까지 덜 떠진 눈이, 몸만 다 자란 아기 늑대 같았다.
“웃지 마.”
왜 그가 웃고 있다 생각했을까.
아무래도 저렇게 잠에 취한 눈을 하고서도 살짝 치켜 올라간 입꼬리 때문이리라.
그리고 괜스레 심술을 부리고 싶었던 탓도 있다.
“안 웃는데?”
“안 웃긴? 입꼬리가 벌써 하늘로 승천하는데!”
“몰라? 나 입꼬리 원래 살짝 들렸어. 웃는 인상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승현은 이번엔 진짜 웃음을 보였다.
그의 시선 안에서 오지도가지도 못한 채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예뻤던 탓이다.
“원피스 가져올 거야.”
“가져다줄까?”
“아니, 내가 가져올 거야.”
빛나는 도리질을 하며 재빨리 그에게서 몸을 돌렸다.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끌었다간 그의 시선에 자꾸 어젯밤 뜨거웠던 그 순간이 떠올라 피부가 오그라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끄럽고 낯 뜨거운데, 승현은 어쩜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지 모르겠다.
저게 바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여유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섹시한 그의 모습이 괜스레 더 얄미웠다.
그래서 빛나는 침실을 나가기 전 다시 침대로 돌아와 그의 얼굴 정면에 베개를 던지고 나와 버렸다.
퍽!
“야! 유빛나!”
등 뒤로 잠이 덜 깬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그리고 부끄러움에 바닥에 떨어진 원피스를 꿰어 입고 돌아선 순간, 빛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탁 트인 거실 베란다 창문으로 보이는 세상이 그림 같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세상이 온통 하얗다. 하지만 하늘은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듯, 입자가 굵은 함박눈을 한없이 날려 보내고 있었다.
빛나는 저도 모르게 베란다로 다가가 투명한 유리 너머로 보이는 그 세상에 시선을 주었다.
차가운 한기가 몸을 파고들었지만 그 냉기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세상에…… 예뻐라.”
작은 감탄사가 튀어 나왔다.
이렇게 세상이 예뻐 보였던 게 언제였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 눈이네.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언제 나왔는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온 승현이 그녀의 등 뒤로 다가와 따스하게 감겨왔다.
그러자 유리를 통해 들어오던 냉기가 뜨거운 그의 체온에 의해 소리 없이 사라졌다.
이불 끝을 잡고 그녀를 감싸 안은 승현의 모습이 투명한 유리에 반사되었다.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겨든 그녀의 모습도.
“눈 온다. 눈…….”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렇지 않아도 치켜 올라간 그의 입꼬리가 더욱더 승천하는 것으로 보아 기분이 좋아도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다.
“눈 좋아하나 보네? 애기 같아.”
빛나가 돌아 그의 허리를 껴안으며 물었다.
아이처럼 눈을 보며 좋아하는 그의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다 큰 남자가 이러면 제대로 된 반칙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잠시 잊었다.
이 남자가 생긴 것만 이렇지, 얼마나 음흉한 늑대인지를.
“눈 좋지. 눈이 오면 차가 막히고 사고 날 위험도 많아지고.”
“뭐야?”
“때문에, 오늘 멋진 저녁 식사를 위해 레스토랑을 예약해뒀지만 그건…… 취소하는 걸로.”
“왜?”
돌아선 그녀의 입술에 쪽 소리가 날 정도로 귀여운 입맞춤을 한 승현은 참고 있던 시커먼 흑심을 폭발시켰다.
“우리는 하루 종일 집에 있을 예정이니까.”
“하지만…….”
“메리크리스마스, 유빛나…….”
낮으면서도 온몸을 녹이는 그 달콤한 목소리에 빛나는 결국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말았다.
이제야 알겠다.
살면서 몇 번이나 있었을 화이트 크리스마스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이 그토록 특별했던 이유.
바로, 사랑하기 때문이란 걸.
“그래, 메리크리스마스. 위승현…….”
* * *
한편 그 시각, 그 아름다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지켜보는 이가 한 명 있었으니.
“뭐야, 저주받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네.”
솔로여서 외로운 복실이었다.
그녀는 뜨거운 티를 한 잔 가지고 베란다 근처로 와서 하얀 세상을 마주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사람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눈길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심통이 나 마구 휘젓고 싶은 생각이 든다.
머릿속에 온갖 잡다한 생각이 난무했다.
세상은 이렇게 깨끗한데 그녀의 머릿속만 난장판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예정보다 빨리 일에 복귀하기로.
핸드폰을 든 복실은 신호음이 떨어지고 상대편이 전화를 받자마자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은밀한 제안을 했다.
“저예요. 예상보다 빨리 복귀해야겠어요. 팀…… 꾸려주세요.”
***
다음 날, 생애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빛나는 여지없이 현실로 돌아와 이정을 마주했다.
이정은 9시가 넘은 늦은 시각, 그녀를 이 높은 지대까지 끌고 나왔다.
빛나의 차가 주차해 있는 곳은 작은 등산로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날이 어둡고 추워 그들 외엔 단 한 대의 차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여긴 왜 오자고 한 거야?”
의아함에 빛나가 묻자 이정은 유난히도 초췌한 얼굴로 입을 연다.
“너, 마담M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고 했지?”
“응. 그래서, 알아봤어?”
“당연하지. 넌 내 얼굴이 왜 이렇게 됐다 생각하냐. 근데…… 쟤는 왜 저러는 거냐?”
차 밖을 내다보던 이정은 밖에서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방 뛰어다니는 복실을 보며 물어왔다.
“쟤 무슨 홍삼이나 산삼, 요런 거 먹이냐?”
“아냐. 실연당해서 그래. 냅 둬.”
“아, 실성한 거구나.”
그제야 이정은 이해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잘 들어. 사실, 나도 알아낸 건 공식적인 부분밖에 몰라. 말이 많이 도는데 반해, 너무 신비주의라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이 대부분이거든.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하는 건, 사실적으로 확실한 부분만 할 거야. 마담M, 그 사람 데뷔작이 뭔지 아니?”
“데뷔작?”
이정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빛나의 귀가 쫑긋했다.
“프랑스 간접흡연 공익 광고였어. 그 공모전이 그 사람 데뷔작이었다고. 덕분에 프랑스 흡연율이 5%나 줄어드는 기염을 토해냈고. 그다음은 음주 운전, 그 역시 효과 대박!”
“공익 광고를 주로 했단 말이야?”
“데뷔작이 그렇다 이 말이지. 그 덕분에 유명해진 것도 있지만. 더 무서운 건, 보고 듣는 것이 광고의 전부가 아니라며 마케팅 전반적인 분야에 직접 참여했다는 거야. 그리고 지금은…….”
이정의 시선이 천천히 창밖으로 넘어갔다. 그 시선을 좇아 빛나도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까만 밤하늘 아래, 예쁘게 빛나는 서울 시내 일부분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이정은 그 많은 반짝임 중에서 유난히 큰 전면 광고판 하나를 손가락질하더니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저 광고판 보이지? 자세히 봐, 뭐가 보이니?”
꽤 먼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밝혀진 그 광고판은 어마 어마한 크기 때문에 한 눈에 쏙 들어왔다.
암사자와 함께 의자에 앉아 있는 섹시한 남자, 곁에 문구를 보아하니 향수 광고다.
“남자…….”
“그렇지, 남자! 그리고 딴 거는?”
“딴 거?”
빛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아주 심오하게 광고판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망설이듯 대답한다.
“아주…….”
“그래, 아주!”
“…… 섹시한 남자.”
“지랄도 진짜 풍년이다. 야, 넌 저 유명한 광고에서 딸랑 남자만 보이냐?”
“그럼 뭘 봐야 하는데?”
“저게 향수 마니아 틈에선 굉장히 유명한 광고라고. 일명 악마의 향수로 불리우지. 저 광고 문구 봐. 문구 자체도 악마의 페로몬이잖아.”
“그러네.”
“향수 광고는 다소 선정적이야. 섹시한 남녀가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하지만 저렇게 악마를 컨셉으로 향수 광고에 동물이 등장하는 경우는 없었어. 동물과 향수 광고는 좀 안 어울리잖아. 때문에 일반인들은 모르겠지만 향수 업계에선 아주 유명한 파격적인 광고라고.”
“그래서?”
“모르겠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설마…….”
빛나가 다시 광고판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광고의 전반적인 컨셉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악마를 모델로 한 광고답게 남자의 눈동자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황금빛이다.
그냥 섹시한 남자가 아닌 악마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악마는 광고에 전무하고 향수에 관심이 없는 빛나조차도 한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악마의 페로몬, 이성을 홀린다는 그 페로몬을 향기가 아닌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맞아. 저게 마담 M의 최근 작품이야. 하지만 그 여자…… 광고만 코디한 게 아냐. 향수 이름부터 컨셉까지, 전반적인 마케팅이 모두 그 사람 손을 거쳤다고. 덕분에 지금 저 향수는 예상했던 실적대비 150%의 매출 상승률을 보이고 있어.”
그 말에 빛나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더 놀라운 건, 여기까지 올라서는데 단 4년이 걸렸다는 것.”
“…….”
“유빛나, 네가 누굴 상대하고 있는지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광고판을 바라보는 빛나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황금빛 매력적인 그 눈동자가 마치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밤기운에 한층 하얗게 빛나는 복실이 칠흑처럼 까만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벤치에 기대자 광고판 남자에게 기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 모습이 너무 신비롭고 예뻤다.
마치 처음부터 그 광고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처럼.
하지만 낮고 진지한 이정의 목소리가 그녀의 현실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마케팅 업계의 황금손, 혜성처럼 나타난 루키.”
“…….”
“그게 바로…… 마담 M이라고.”
그것도 아주 섬뜩하리만치 사실적으로.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