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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설레게하는 그대-25화 (25/94)

25. 희대의 사기꾼

2018.02.28.

이성을 날려버린 승현은 그녀의 턱을 치켜 올리며 그대로 입술을 내렸다.

그날 이후, 몇날 며칠을 아픈 사람 마냥 끙끙 앓게 만들었던 그 입술을 다시 한 번 맛보는 순간이었다.

뜨겁고, 부드러웠다.

짜릿하고, 섹시했다.

결국 그의 기억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의 입안에 뜨거운 숨결을 토해낸 순간, 그날의 기억을 남은 한 올까지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

두 사람의 숨결이 그녀의 입안에서 진하게 엉켜 들었다.

턱에 머물러 있던 그의 손이 어느새 목뒤로 옮겨가는 것을 느끼며 빛나 또한 간신히 붙들고 있던 멘탈을 저 멀리 날려 보냈다.

첫 번째 키스는 빛나에게 선택 사항이 없었다.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와 겉잡을 수없이 빠져 들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그녀에게 엄연히 선택 옵션을 주지 않았나.

-싫으면…… 밀어내.

언제라도 밀어낼 수 있는 키스였다.

그러나 빛나는 밀어내는 대신, 그의 목에 팔을 감고 더욱더 그의 입술에 가까이 가기 위해 까치발을 들었다.

그렇게 그들의 두 번째 키스는 첫 번째 키스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번엔 승현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 함께 하는 키스였기에.

이쯤 되자 승현은 이 키스에 대해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마치 키스를 처음 해본 사람처럼, 그녀가 주는 생소한 느낌에 굶주린 듯 덤벼들었단 말이다.

아플 만큼 참았던 키스였기에 터져버린 열망도 컸다.

그렇게 그의 키스는 데일 듯 뜨겁다가도 생크림처럼 부드러웠다.

온 몸의 혈관이 팽팽하게 부풀어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짜릿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솜털이 곤두설 만큼 섹시하기도 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에 빛나는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감히 밀어 낸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을 만큼.

결국 먼저 입술을 떼어 낸 건 승현이었다.

그의 입술이 멀어지자 빛나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차가운 공기가 잔뜩 부풀어 오른 그녀의 입술을 무섭게 할퀴고 지나갔다.

아직까지도 그의 키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빛나를 내려다보며 승현이 잔뜩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더 가면…… 내가 못 참을 것 같아.”

말을 마친 그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그녀의 가느다란 목선에 얼굴을 묻었다.

“나,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그를 밀어낼 생각 따윈 애초에 없었다.

아니, 오히려 빛나는 그의 목에 둘렀던 팔을 부드러운 베이비 펌으로 옮겨 다독이며 제 감정을 조용히 인정하는 중이었다.

어쩌면 좋나.

이 녀석이 진짜로…… 탐이 나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굴만 봐도 혈압이 솟구쳤던 바로 이 녀석이 말이다!

***

“그래서, 조현성이는 뭣 때문에 만났는지 알아냈어?”

모처럼 승준과 마주한 승현은 취조를 하듯 물어왔다.

그 태도가 몹시 불편할 만도 하건만, 승준은 시종일관 사람 좋은 웃음이다.

“어지간히도 좋은가 보네. 오자마자 그 질문부터 해대는 것을 보니. 어제 하루 종일 궁금해서 어떻게 참았대?”

“어제는 어제대로 나름 바빴어.”

그렇게 말하는 승현의 입가에도 기분 좋은 웃음이 매달렸다.

넌지시 보였던 빛나의 감정을 눈치 챈 것만으로도 어제는 꽉 찬 하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몹시 힘들었던 하루이기도 했다.

타고난 인내력 결핍장애가 젖 먹던 인내심까지 끌어 모아 그녀로부터 벗어나야 했던 하루였으니까.

덕분에 승현은 오늘 아침 그녀에게 간단한 메시지조차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그녀를 향한 감정이 펑, 터져 버릴 것 같아서.

“자세한 건 잘 모르겠고, 조 검을 통해서 다른 검사를 만나려고 했던 모양이야.”

“그래?”

“그나저나, 언제 말할 거야?”

“뭘?”

“네가 누구라는 거.”

승준의 물음에 승현이 멈칫했다. 어떻게 알았느냐는 눈치다.

“딱 보면 척이지. 네가 누군지 알았다면 에둘러 조검 만날 필요가 뭐 있어? 나한테 부탁했겠지.”

“하긴.”

“왜 말 못 해? 네 조건이 흠이 되는 건 아닐 텐데.”

“그런 조건에 혹 하는 여자 아니야. 오히려 도망갈지도 몰라. 그래서…… 말하기 무서워.”

사실이 그러했다.

어제도 파혼 사실을 조용히 털어놓던 여자가 아닌가.

이제야 그녀가 조금 마음을 열었다 생각했는데 제 감정을 온전히 알기도 전에 도망갈 핑계를 만들어주고 싶진 않았다.

“보통 여잔 아닌가 보네. 하긴…… 어제 보니, 확실히 보통은 더 되더라.”

승준은 건물을 벗어난 후에도 발을 동동 구르며 분풀이를 하던 빛나를 떠올리며 싱긋 웃어보였다.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힌 명장면이 아닌가.

“우리 빛나가 어제도 반짝반짝했나 보지?”

“당연하지. 조검 같은 인간들은 감히 눈부셔서 쳐다도 못 보겠던데?”

“말이라고. 어딜 감히.”

그가 당연하다는 듯 말하며 입꼬리를 치켜 올리자 승준의 축 처진 눈매가 반짝 빛났다.

연애야 쉬지 않고 해온 승현이었지만 이토록 몸 달아 죽는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 승현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응? 빛나다. 형, 나 이 전화 받아야 돼.”

그렇게 말하며 승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승준은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중얼거렸다.

“잘 하면, 우리 아버지 소원성취 하시겠네.”

아버지인 위태준의 간절한 소망, 그것은 승현의 영원한 독립이었다.

승현이 결혼만 하면 한 큐에 해결해버릴 수도 있는,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소박하지만 정말 어려운 소망.

***

점심시간.

어제의 달뜬 흔적이 가시지 않은 빛나는 충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으나 거의 반 협박에 의해 결국 끌려 나오고 말았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인간이 바로 이정과 복실이었다.

승현과 그녀의 첫 데이트가 궁금해, 데이트를 한 당사자보다도 더 들뜬 표정으로 잠 한숨 못 잔 얼굴이었다.

“어땠어? 어땠어? 어제, 완전 좋았어?”

흥분한 이정이 발을 동동 구르며 물어오자, 빛나가 정색을 했다.

“좋긴. 그냥 저녁 한 끼 한 건데.”

“그래도, 첫 데이트잖아. 키스는 했어? 응? 했어?”

순간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이정 때문에 그녀는 표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키스라는 단어만 들어도 어제의 그 느낌이 생생이 떠올라 뺨이 붉게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이정이 그 모습을 놓쳤을 리 없다.

“미쳤어? 왜 그런 걸 물어봐! 그건 데이트가 아니라 그냥 아는 십년지기끼리 밥 한 끼 한 거라니까.”

“에-이, 그냥 밥 한 끼 했는데 왜 얼굴은 빨개져?”

“내 얼굴이? 설마!”

“알지? 내 눈 양쪽 2.0이다. 이걸로 여지껏 먹고산 사람이야, 내가.”

“애 있는데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어떻게든 그 주제에서 벗어나고자 복실의 핑계를 댔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냈다.

“애라니! 이렇게 서른 살 먹은 올드한 애도 있어?”

알건 다 안다는 이야기다. 짝사랑만 20년째라고 무시하지 말란 이야기다.

결국 빛나는 다른 주제를 찾아야만 했다.

“지금 그게 급한 게 아니야. 도무지 김 검사를 만날 수가 없단 말이야. 난관봉착이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어.”

“뭐야, 김 검사는 또 누구야? 승현이랑 삼각관계야?”

“삼각관계는 무슨…….”

“미리 경고하지만 승현이를 상대로는 그런 꿈은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 김 검산가 뭔가 하는 사람을 위해서.”

KMK컴퍼니 건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하는 복실이 비장하게 이야기하자 이정이 바로 잡아주었다.

“김 검사는 그런 사람 아냐. 빛나가 사건 때문에 만나야 하는 사람이라고.”

“아, 그래? 난 또, 말도 안 되는 삼각관계에 한 사람 죽어 나가나 했지.”

복실은 안심을 하며 두 사람의 말을 경청하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죽겠다. 돌파구가 없어.”

“에이, 뭘 그런 것 가지고 또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고 난리야? 유빛나답지 않게스리. 걱정 마. 이 언니가 누구냐? 안 그래도 너 조현성 때문에 혈압 터질까 봐, 다시 한 번 알아봤지.”

“뭐야. 그쪽에 아는 사람 있어?”

“아니, 그쪽에 아는 사람은 아니고. 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으랬다. 검찰청 쪽에 아는 사람이 없으면 우회해서 가면 되잖아.”

“우회해서 가자고? 어떻게?”

“이건,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인데 말이야.”

이정은 정말 중요한 비밀 이야기가 있는 듯, 빛나에게 손짓을 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내가 알아봤는데 김병훈 검사가 결혼 10년째인데 자식이 없단다. 그래서 조카들에 대한 사랑이 좀 끔찍하더라고.”

“조카라고?”

“응. 좀 꺼림칙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 조카만 잘 구워삶으면 김병훈 검사 만나는 건 쉽지 않겠냐?”

“그 방법이 먹혀들기는 해?”

“거의 90%? 시도도 안 해보고 포기하는 것 보단 낫지.”

그때 빛나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그 잘잘한 희망이 그녀에겐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그 조카를 어떻게 만나는데?”

“하, 그게 문제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조카가 유명한 트러블 메이커라 쉽지가 않단 말이지.”

이정이 탄식을 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문제아이기에 이정이 저토록 한숨을 내쉰단 말인가.

빛나로서는 도무지 상상 불가다.

“여자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고, 약도 좀 빨고.”

“엉? 뭐야, 범죄자야?”

“야, 김병훈 검사가 누군데 자기 조카를 범죄자로 만들겠냐? 보니까 아주 뒤치다꺼리 다 해주고 다녔던데.”

“그럼, 못 만나는 거야?”

“아니. 만날 순 있어.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그 자리에 낄 수 있느냐는 건데…….”

이정이 막막하다는 듯 자신의 턱선을 매만지며 말을 망설였다.

그 모습에 빛나는 애가 탔다.

김병훈 검사만 만날 수 있다면, 지옥불에라도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빨리 말해봐. 나 숨넘어가겠어!”

“그 조카놈이 엄청난 파티광이야. 파티만 하면 여자에 술에 약에, 뭐 부족한 게 하나도 없으니까.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그 파티에 참석할 수 있느냐는 건데.”

“뭐야, 파티? 그거 아무나 갈 수 있는 거 아냐?”

“술과 여자만 있는 파티라면 그렇겠지만 약까지 있는 파티라면, 그 ‘아무나’가 우린 아니겠지. 그리고 꼴에 권위의식 쩔어서 나름 물 관리도 철저하대요.”

한껏 부풀었던 풍선에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희망으로 가득 찼던 빛나의 가슴이 오그라들고 있었다.

“아, 파티만 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떻게 가. 너나 나나, 그런 파티랑은 애초부터 거리가 먼 사람들인데.”

좋다 말았다는 생각에 그녀의 얼굴이 금세 쌜쭉해졌다.

그런데, 그때.

줄곧 듣고만 있던 복실이 턱을 괸 채 무심한 한마디를 툭 내뱉는다.

“아니, 언니. 위승현 카드 뒀다 어디다 쓰남?”

그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복실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그녀는 턱을 괴고 있던 팔을 풀어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승현이가 그런 파티를 좋아한단 이야기는 아니고. 아니, 좋아하긴 했지. 왕년에는. 지금은 정신 차려서 아닐 거야. 그런데, 승현이가 정신 차렸다고 그 녀석 친구까지 정신 차린 건 아니거든.”

“무슨…… 소리야?”

빛나의 되물음에 복실은 씨익 웃으며 속삭이듯 다음 말을 이었다.

“있어. 정오라고, 파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개망나니. 위승현의 절친. 늙어 죽을 때까지 파티만 하다 죽을 거라는 평생 철없는 놈. 아마 그 바닥에서 벌어지는 파티는 걔가 다 꿰고 있을 걸?”

순간 빛나와 이정의 눈이 반짝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

정오와 통화를 하는 승현의 표정에 짜증이 잔득 올라왔다.

승준과 이야기를 하다 걸려온 빛나의 전화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하늘을 날 것 같았는데, 막상 이런 부탁을 받고 보니 탐탁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는 놈이라고, 모르는 놈이라고?”

그렇게 정오를 향해 툭 던진 승현의 물음에, 곁에 있던 빛나와 이정이 더욱 긴장을 탔다.

복실의 말을 빌리자면, 평생가도 철 안 드는 이 파티광이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알기야, 알지. 근데 질이 워낙 안 좋은 놈이라. 근데 갑자기 강석훈은 왜?]

“그 자식, 따로 자리 마련해줄 수 없어?”

[음, 나도 별로 안 친해서. 안면만 트고 있는 정도거든.]

“그 자식도 너처럼 파티라면 환장한다며? 거기 가면 만나볼 수 있으려나?”

[아, 그렇지. 강석훈도 나 못지않은 파티 광이지. 그리고 걔가 또 모델을 그렇게 좋아해요. 왜, 네가 요전번에 내쳤던 지수현이 있잖아. 걔도 강석훈이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애잖아.]

“그런 건 알고 싶지 않고. 강석훈을 만나볼 수 있을 만한 그런 파티 없나?”

[있지. 왜 없어. 안 그래도 삼 일 후에 그 녀석이 주최하는 파티가 하나 있어.]

“그래? 그 녀석이 직접?”

[응. 생일이거든. 그 허세에 또 얼마나 화려하게 하겠냐? 근데 너 가려고? 네 취향 아닐 텐데. 그 자식이 좀 험하게 놀아서.]

“언제라고 했지?”

[삼 일 후. 목요일 오후 8시부터.]

젠장.

승현은 속으로 낮은 욕설을 내뱉으며 빛나를 바라보았다.

목요일이면 미팅이 잡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참석할 수 없는 그 광란의 파티에 그녀만 보낸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결국 승현은 그녀를 조용히 불러내 대화를 시도했다.

“꼭 거길 가야겠어?”

애가 탔다. 도대체 강석훈을 통해 누구를 만나려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림짐작해 보건데, 어제 조현성을 만난 일과 그리 거리가 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라면 큰 형인 승준을 통해 다리를 놔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의 집안에 대해 빛나가 알게 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과연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겁이나 상상도 하기 싫었다.

“왜, 안 되겠대?”

그렇다고 조심스레 묻는 그녀의 반짝이는 눈을 무참히 짓밟을 용기도 없었다.

“아니, 그건 아니고. 좀 험한 파티라고 해서.”

“괜찮아. 나, 산전수전 다 겪은 이혼 전문 변호사야. 그 정도쯤이야.”

“왜, 이마에 변호사라고 쓰고 다니게? 거긴 네가 상상하는 그런 곳이 아닐 수도 있어. 그러니까 조심해야 돼.”

“당연하지. 그런 걱정 말라니깐.”

“술은 입에도 대지도 말고, 남이 주는 음료도 마시지 마.”

“알았다니까.”

“이번 주 목요일 8시.”

“와, 정말? 대박! 진짜 된 거야?”

정말 될 거라 예상치 못한 시도였기에 빛나는 신이 났다.

그곳에 그녀를 홀로 보낸다는 생각에 그의 가슴은 새까만 잿더미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꺄악! 신나!”

너무 기쁜 나머지 빛나는 승현에게 팔을 둘러 매달리는 것으로 격한 감정을 표현했다.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쪽에 잔뜩 끼어 있는 먹구름과는 달리 기분은 묘하게 좋았다.

“정말 고마워. 너 진짜 착한 일 한 거야. 이번 일만 잘되면 여러 사람 살릴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빛나에게 승현은 사정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들을 살리기 전에, 그 먼저 살려달라고.

“그나저나, 어제는 잘 잤어?”

어젯밤 키스를 떠올리게 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생각만 해도 짜릿했던 그 순간의 감정이 불시에 그녀를 잠식해갔다.

“잘 잤지. 못 잘 건 또 뭐 있나.”

“오늘 하루는 어땠고?”

“나쁘지 않았어. 점심은 이정이랑 복실이 와서 같이 먹었어.”

어제 첫 데이트의 여파 때문일까.

냉랭했던 평소와 달리 빛나는 잘잘한 이야기들로 그 대답을 채워갔다.

승현에게는 그러한 작은 변화가 몹시도 크게 느껴졌다.

적어도 이젠 그녀의 예쁜 눈에서 번쩍 하는 불꽃을 보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쉴 새 없이 재잘대는 그녀의 모습은 생각보다 귀여웠다.

그리고 빛나가 예뻐 보이면 예뻐 보일수록 목요일을 향한 그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다.

그의 눈에 예뻐 보이는 여자, 남의 눈에 안 예뻐 보일까.

아무래도 안 되겠다.

그가 가지 못하면, 그녀를 위한 보험 정도는 들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목요일 날, 복실이도 같이 가.”

“응? 복실이도? 왜?”

“그냥. 복실이가 정오도 잘 알고 있고, 데리고 가는 게 나도 안심이 될 것 같고.”

“그래. 복실이만 시간 괜찮다면.”

“집에서 놀고 있는 애라, 가자고 하면 잘 따라 나올 거야.”

그나마 개복실 동행이라면 안심이다.

누가 뭐래도 유빛나 지켜내는 데는 개복실만 한 안전장치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뭐, 또 있어?”

“당연하지. 제일 중요한 거.”

승현은 팔짱을 끼고 서서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봐야 곱슬거리는 앞머리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강아지상이었지만 말이다.

“뭔데?”

“옷, 단정하게 입어. 화장도 얌전히 하고.”

“아휴, 당연하지. 나 파티 즐기러 가는 거 아냐. 일하러 가는 거라고. 어디까지나 일의 연장!”

그녀가 자신 있다는 듯 가슴을 내리치며 호언장담을 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승현은 차마 그녀를 안 믿을 수가 없었다.

일 하나는 야무지게 하는 유빛나!

그래, 그녀의 말처럼 일의 연장이니 어쩌면 의외로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의 착각, 너무 중요한 사실을 잠시 간과했다.

일뿐 아니라 노는 것도 야무진 유빛나라는 사실을, 미팅 도중 도착한 메시지를 보고 깨달았단 말이다!

카톡!

[우리 완전 얌전히 잘 놀고 있어. 강석훈인가 뭔가 하는 자식 아직 안 보여서.]

복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날아들어 온 한 장의 이미지.

승현은 슬쩍 테이블 아래로 내려 그 메시지를 확인하다, 저도 모르게 의자에서 튕겨 일어났다.

“에이- 진짜!”

빛나와 복실, 그리고 이정.

일하러 가는 거라며 그렇게 사랑스러운 얼굴로 그를 안심시켜놓고, 완전 제대로 놀고 있다!

그것도 그의 경고는 철저히 무시한 채 그 어마어마한 몸매를 다 드러내는 미니 드레스를 입고서!

세상에, 사기꾼도 이런 사기꾼이 따로 없었다!

감히 위승현을 속여 먹다니!

그렇게 세 여자가 그에게 손키스를 날리는 사진은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그의 혈압을 제대로 폭발 시켰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미팅을 하다 얼굴이 허옇게 질려 튕겨 일어난 승현을 보며 함께 화상 회의를 하고 있던 상대방이 물어왔다.

하지만 승현은 그 물음에 대답해줄 정신이 없었다.

지금 당장, 이 희대의 사기꾼 유빛나를 잡지 않으면 치솟은 혈압으로 뒤통수가 뚫릴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너 오늘 아주…… 딱, 걸렸어! 유빛나!”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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