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를 설레게하는 그대-19화 (19/94)

19. 심장 폭행죄

2018.02.07.

“나도…… 안아줘…….”

빛나가 팔을 벌리고 느릿하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복실로 인해 잔뜩 열이 올랐던 그의 심장이 펑, 터져버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멈추었다.

뺨에 차갑게 와 닿던 공기도, 으르렁 대는 복실의 외침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오직 이 순간, 이 공간에 존재하는 건 두 사람뿐.

흩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아련하게 보이는 그 눈동자가,

빨갛게 달아오른 그 수줍은 뺨이,

이 시간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녀가 술에 취해 저런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승현은 취한 그녀가 너무 예뻐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안아달라는 그녀를 마주한 순간, 멈춰버린 시간과 함께 그동안 긴가 민가 했던 그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바보야, 그거…… 사랑이라고.

복실이 맞았다.

사랑이다.

그제야 모든 것을 인정해버린 승현은 두 번 생각 하지 않고 안고 있던 복실을 놔버렸다.

“아아아-악!”

졸지에 바닥으로 떨어진 복실의 입에서 비명과 함께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지만 승현의 귀엔 들릴 리 만무했다.

이미 유빛나로 인해 두 귀 두 눈이 모두 막혀버린 탓이다.

두 손이 자유로워진 승현은 망설임 없이 빛나를 껴안았다.

그의 품에 쏙 들어오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럽고 예뻤다.

그리고 그 순간,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빛나의 손이 그의 허리를 살포시 껴안은 것이다.

“하…… 유빛나, 진짜 미치겠다…….”

그는 흐물거리는 빛나가 주저앉지 않도록 더욱 제 품으로 끌어당기며 든든히 버텨주었다.

혼자 키스하고, 혼자 연애했던 그였기에 서로 함께하는 이 포옹은 의미가 남달랐다.

가슴 한쪽이 저릿저릿하다.

그녀의 팔을 붙들고 다시는 놓지 말라 사정하고 싶을 만큼 그녀의 손길 한번이 애틋했다.

포옹 한 번으로도 이렇게 미치겠는데, 그녀와 함께하는 연애는 얼마나 달콤할까.

감히 상상도 할 수도 없었다.

“아이고, 허리야…… 으, 이 자식이 감히…… 날 던져?”

뒤늦게 몸을 일으킨 개복실이 품에 안은 빛나 때문에 감격에 젖어 있는 승현의 등 뒤로 분노 게이지를 한껏 끌어 올렸다.

물론 복실을 일으킨 이정이 곁에 붙어 진땀을 흘렸지만 분노의 화신으로 변한 그녀를 막기엔 무리가 있었다.

“복실아! 진정하자! 이 언니가 대신 안아줄게. 이 언니, 가슴 넓다?”

여자가 가슴 넓은 것이 결코 자랑은 아닐 텐데, 이정은 스스로 자폭했다.

물론 어림도 없는 가슴이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복실을 막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이 자식! 가만 안 둘 거야!”

분노로 인해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다.

그제야 승현은 살벌한 살기에 뒤를 돌아보았다.

“쟤, 쟤 좀 붙들어주세요!”

“아, 붙들고 있다고요! 근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던졌냐? 야, 니가 나를 던졌어?”

“던진 게 아니라 빛나도 안아달라고 하니까!”

“그러니까 방금 우리 20년 우정을 길바닥에 패대기친 거잖아! 인마!”

어찌나 힘이 좋은지 버티고 있는 이정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아, 누가 봐도 이 난리법석은 절대 정상이 아니다.

세상에서 개빛나가 술버릇 제일 더러운 줄 알았더니, 개복실이 그 역사를 새로 썼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복실을 막아서고는 있었지만 이정의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으로 보아 언제 무너질지 모를 일이었다.

언젠가 이정은 왜 그들을 ‘C-Sisters’라 부르는지 궁금해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빛나는 끝끝내 그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았었다.

그리고 이 난장판이 벌어진 지금 이정은 깨달았다.

“그 C가 Crazy였어. 미친…… 자매…….”

정말이지, 값진 경험으로 얻은 깊은 깨달음이었다.

이정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렇게 이정이 힘겨워 하는 모습이 승현의 눈에도 보였다.

이제 이정이 무너지면 복실의 분노는 토네이도처럼 승현을 휩쓸어버릴 것이다.

승현은 품에 있는 빛나를 더욱 꼭 껴안았다.

이대로 복실을 두고 달아나고 싶었지만 그나마 20년 우정이 돌아서는 그 발길을 붙들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게 망연자실한 그들 앞에 검은 차량 한 대가 스윽 나타났다.

그 낯익은 차량을 본 승현은 구세주를 본 것마냥 순식간에 표정이 밝아졌다.

그런데 그런 그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 차량은 곧 바로 후진을 시도했다.

그 모습을 본 승현이 절박하게 외쳤다.

“아아-악! 형! 안 돼-에!”

너무 절박해, 보는 사람의 가슴이 찢어질 정도였다.

“한 번만…… 나, 한 번만 살려줘…… 형.”

승현에겐 목숨을 건 한마디였다.

그런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기라도 하듯, 후진하던 차량이 멈추었다.

그리고 멈춰 선 차량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승주였다.

내려선 승주는 검은 점퍼에 검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지옥에서 이제 막 튀어나온 저승사자 같았으나 그 검은 모자로도 다 가리지 못한 날렵한 턱 선은 누가 봐도 잘생김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복실이…… 형, 복실이…….”

승현은 차마 이 상황을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하고 그저 손가락질로 복실을 가리킬 뿐이다.

그러자 승주의 감정 없는 까만 눈동자가 복실에게로 향하며 그 특유의 억양 없는 음색을 내뱉었다.

“드디어 네가 미친 거냐.”

질문이 아니다.

확신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상황이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짜…… 진짜 내가 오죽하면 형을 불렀겠어. 이번 한번만 도와줘. 응? 어차피 우리 집이랑 같은 방향이잖아.”

“넌 뭐하고.”

“보다시피 내 품에도 강아지가 한 마리 있어서 말이야.”

그제야 승주의 검은 시선이 승현의 품에서 탐스럽게 흘러넘치는 갈색 머리에 머물렀다.

얼굴을 볼 순 없었지만 으르렁대는 복실로부터 지키려는 폼이 그녀의 존재를 가늠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 강아지가 네 강아지야?”

“응. 그리고 쟨…… 형 거.”

승현이 복실을 가리키며 말하자 승주의 눈썹 끝이 살짝 구겨졌다.

“나는 강아지 같은 거 안 키워. 알레르기 있어.”

“와웅- 오빠! 우리 오빠 왔네!”

가만히 있음, 반이라도 가지.

승주의 시선과 마주치자 반가운 듯 복실은 손을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이에 승현은 다시 한 번 눈을 감는다.

조용히 잠만 자도 승주 차에 탈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에 저렇게 반 미친 정신 상태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오빠! 저 배신자가 나를 바닥에 던졌어! 이 배신자!”

게다가 고자질까지.

승주는 말이 없었다.

하긴, 싸늘한 시선으로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것 같았다.

승주의 입장에선 이렇게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승현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정말이지,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개복실과 함께 버려질 확률이 99.9%다.

“형! 그렇게 싫으면 동네 아무 데나 버려놔도 쟨 알아서 잘 찾아 갈 거야. 제발, 플리즈…….”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취한 빛나를 보듬어 안은 상태에서 미친 개복실과 길바닥에 홀로 버려지는 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복실이가 개냐? 동네 아무 데나 버리게.”

줄곧 움직임이 없던 승주가 그 말 한마디와 함께 천천히 복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그러자 복실은 곁에 있던 이정을 저만치 밀쳐버리고 재빨리 승주의 품으로 와락 안겨 들었다.

물론, 승주가 다시금 그녀를 밀어 일정한 거리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많이 마신 거야.”

“오늘 기분 좋아서 쬐-에-금!”

“알았으니까, 빨리 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친 난봉꾼 같았던 개복실은 순식간에 얌전한 요조숙녀가 되어 말없이 승주의 차에 올라탔다.

여우도 저런 여우가 없었다.

그렇게 개복실과 승주가 사라졌다.

승현은 그제야 제 품에 안긴 빛나를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있는 그녀는 잠이 든 것 같았다.

좀 전부터 흐물흐물 쓰러지는 게 어쩐지 그런 것 같더라니.

“아, 빛나야…… 이제 우리도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자야지.”

그는 품에 있던 빛나를 들쳐 업었다.

조금이라도 그녀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한쪽에 넋이 나가 있는 이정도 놓치지 않았다.

“지금 빛나 상태가 이래서…… 택시라도 잡아 드려요?”

하지만 이정은 대답 대신 그에게 손짓으로 어서 가라 한다.

“그래도 택시는 타야…….”

다시 말했지만 이정은 여전히 넋 나간 눈동자로 손짓만 한다. 이에 승현은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나마 세 사람 중 가장 멀쩡했으니 이정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빛나는 제가 챙길게요.”

승현이 돌아섰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도 이정은 넋을 놓은 채였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바 안에서 한 커플이 하하 호호 웃으며 나왔다.

그제야 줄 곧 움직이지 않던 이정의 눈동자에 서서히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방금…… 내가 뭘 본 거지?”

그녀의 시선은 조금 전 승주의 차량이 사라진 그곳으로 향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커플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방금 그 남자 봤어요?”

당연히 봤을 리 없다. 그때 그 커플은 바 안에 있었으므로.

그러나 이정에게 그런 전후 사정은 문제 되지 않았다.

“못 봤다구요? 아니, 어떻게 그걸 못 봐? 그냥, 후광이 번쩍 번쩍한데?”

“어머, 저 여자 취했나 봐. 자기.”

커플은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피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정은 그들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은 채 입가에 정체 모를 미소를 띄웠다.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더니!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결국 이정은 조금 전 시작도 하지 못한 사랑에 실연 당한 아픔 따윈 깡그리 잊어버린 채, 너무 흥분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웃으며 소리쳤다.

“움하하하- 심-봤-다-아-아!”

***

한편, 그 소리는 싸늘한 공기를 타고 넘어 빛나를 업고 가는 승현의 귓가에도 들려왔다.

“에이, 그나마 제일 멀쩡한 줄 알았는데…… 언제 취했지?”

승현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물론 이정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그냥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빛나의 친구인데 너무 방치했나 싶었다.

게다가 저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더 그러하다.

“돌아가?”

택시라도 태워 보내야 했나 보다.

그렇게 돌아가려는데 목덜미에 그녀의 따뜻한 숨결과 함께 간질이는 목소리가 살포시 와 닿았다.

“음…… 안아줘…….”

그 웅얼거림이 얼마나 달콤한지 모르겠다.

맨 정신에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그러고 싶다.”

아무래도 빛나는 지금 좋은 꿈을 꾸고 있나 보다.

결국 승현은 이정으로부터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지금 그녀가 꾸고 있는 단꿈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만일 그녀가 좋은 꿈을 꾸고 있다면, 도대체 그 꿈엔 누가 등장하는 것일까.

“위…… 승현.”

“…….”

“승현…… 아.”

순간, 집으로 향하던 그의 발길이 뚝 멈추었다.

차가운 공기가 바람처럼 그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 안아줘.”

그가, 그녀의 꿈속으로 들어갔다.

“하, 유빛나. 네가 진짜 오늘…… 나를 여러 번 죽이는구나.”

병 주고 약 주고.

만지지 말라, 쳐다보지도 말라, 까칠하게 굴 때는 언제고.

이렇게 그의 심장을 사정없이 폭행하다니!

위승현 심장 폭행죄, 유빛나.

그대는 여지없는 유죄! 땅! 탕! 탕!

그렇게 승자가 된 승현은 그날 밤 최고의 꿈을 꾸었다.

그러나, 반대로 유죄 판결을 받은 빛나는 뒷날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가뜩이나 과음으로 인해 필름까지 끊긴데다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에 가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승현이 씨익 웃으며 믿을 수 없는 아침 인사를 건넸기 때문이다.

“안녕, 개빛나 씨?”

“으-아악!”

***

-안녕, 개빛나 씨?

하루 종일 쫓아다니던 그 아침 인사 때문에 빛나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조기 퇴근을 했다.

물론 지독한 숙취도 한 몫을 했지만 어젯밤의 충격이 컸다는 건 무시할 수 없었다.

어쩌자고 승현의 앞에서 그렇게 술을 마셔버린 건지.

“아, 어떻게 이런 일이.”

빛나는 제 머리를 감싸 쥐며 다시 한 번 넋을 놓았다.

어젯밤 바를 나와 어떻게 집에까지 갔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렇게 불안한건 또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자꾸 복실과 승현이 서로를 다정하게 토닥이던 그 장면만은 뇌리에 각인된 듯 선명히 떠올랐다.

“어떻게, 어떻게 그게 위승현일 수 있어?”

살다 보니 이런 기가 막힌 우연도 있다.

복실과 승현이 알고 있는 사이라는 것도 기절초풍할 일인데, 그동안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짝사랑 상대가 바로 위승현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당이 안 되는데 다정한 두 사람을 보며 그토록 말도 안 되는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에 그녀의 멘탈은 거의 쑥대밭이 되었다.

“아, 뭔가 집중할 만한게 필요해.”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두 사람의 모습을 지우기 위해 제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보게 된 것이 바로 얼마 전부터 염두 해 두었던 KMK컴퍼니 건이다.

회사에서 정식 승인이 떨어지기 전까진 집에서 조용히 준비하는게 좋을 것 같아 장부장이 준 서류뭉치를 들고오긴 했지만 역시나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사고를 할 수 있는 뇌가 딱 멈춰버린 느낌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하나, 뇌를 혹사시키지 못한다면 몸을 혹사 시켜라!

그래서 빛나는 재빨리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제대로 혹사시키기 위해.

***

“아,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단 말이지.”

어제는 그토록 안아들라 사람을 애 닳게 만들더니, 오늘 아침 빛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소리부터 질러댔다.

“진짜 유빛나 어려워. 난제야, 난제.”

승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사물함 문을 닫았다.

그리곤 운동을 하기 위해 탈의실을 나왔으나 머릿속은 온통 어제 본 빛나의 모습을 가득 찼다.

-나도…… 안아줘…….

어떻게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변할 수 있나.

“그럴 줄 알았으면 어제 더 꽉 안아보는 건데.”

진짜 그럴걸.

승현은 아쉬움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웨이트운동을 위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오늘따라 헬스장의 공기가 남달랐다.

평소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이 시간대는 헬스장이 늘 붐볐으나,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한산했다.

“무슨 날인가?”

그가 시선을 돌리며 평소와 다른 틀린 그림 찾기에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이유를 찾았을 땐 승현의 고개가 궁금증으로 인해 삐딱하게 기울었다.

여전히 붐비는 헬스장, 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도 한쪽으로 편마 된 남성 회원들 때문에 승현이 있는 곳이 한가한 것이었다.

“뭐야, 저 좁은데 다닥다닥 붙어서?”

그도 그럴 것이, 바로 그 자리는 PT가 이루어지거나 가벼운 워밍업을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남자보다는 주로 여성 회원들이 사용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 여성들의 공간을 남성 회원들이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승현은 빌어먹을 호기심에 저도 모르게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도대체 뭐한다고 저 좁은 장소에 옹기종기 모여 잘나지도 않은 근육 자랑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느릿느릿 다가갔다. 그러자 그들의 부자연스러운 행동만큼이나 시선 처리 또한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승현은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요가나 여성들을 위한 클래스를 진행하는 스페셜 룸이 있었다.

벽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투명한 유리 덕에 안의 모습이 고스란히 다 보이는 상황이었다.

“도대체, 뭐야?”

쫌생들 같으니, 보려면 대 놓고 볼 것이지 뭐 한다고 저렇게 힐끔거리는지 모르겠다.

그는 남자들이 힐끗거리는 것의 정체를 알기 위해 대 놓고 유리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남자들이 시선을 한 번에 끌어 모았던 그 누군가를 볼 수 있었다.

요가 클래스 전, 몸을 풀기 위해 다른 여성회원들과 몸을 풀고 있는 그 ‘누군가’였다.

그녀 주변으로 몇몇 여성 회원들이 더 있긴 했지만 대번에 그 주인공임을 알 수 있을 만큼 확연히 남달랐다.

매트위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는 팔 다리, 요가용 레깅스와 브라탑만 입은 관계로 멀리서도 볼 수 있는 허리 라인이 아주 기가 막히다.

“예쁘죠? 우리 헬스장 남성 회원들의 영원한 비너스입니다. 요즘 통 안 보이더니 오늘 오셨네요.”

어느새 다가온 헬스 트레이너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 말에 승현의 시선이 트레이너에게서 다시 그녀에게로 옮겨갔다.

나무 자세를 하고 있는 덕에 그녀의 뒤 라인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가느다란 어깨선과 길고 우아한 목, 그리고 한껏 틀어 올린 당고머리가 인상적이었다.

“뒤태만큼이나 이 얼굴도 기가 막힙니다.”

굳이 트레이너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럴 것 같았다.

그런데 승현은 내심 찜찜한 기운을 덜어낼 수가 없어 팔짱을 낀 채 그녀의 뒷모습에 집중했다.

누가 봐도 흠 잡을 곳 없는 저 완벽한 뒤태가 유독 낯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 문득 스치는 기억 하나가 순식간에 그의 몸에 있는 혈관 하나하나를 위험수위까지 팽창시켰다.

“설마…….”

그리고 그 설마가 사람 잡았다.

그 주인공이 자세를 바꾸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돌린 순간, 승현은 한껏 부풀어 올랐던 혈관이 폭발하는 것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유리창에 붙었다.

“저게…… 진짜 미쳤나!”

유빛나였다!

거의 벌거벗고, 유연한 요가 동작으로 헬스장의 모든 남자들의 심장을 폭행한 이는 바로 다름 아닌 유빛나였단 말이다!

세상에나!

어제에 이어 빛나는 오늘도 여지없이 그의 심장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심장 폭행으로 사람을 벌할 수 있다면, 그녀는 무기징역감!

결국 승현은 그녀를 훑고 있는 수많은 눈들을 돌아보며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독보적인 소유욕을 폭발시켰다.

“전부 다 눈 감아-아아!”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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