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수컷.
2018.01.21.
두 사람은 집에 오는 내내 말이 없었다.
숨 막히는 고요함 속에 빛나는 아직까지도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자신의 입술을 느낄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강렬한 키스였다.
10년 전 오만하기 그지없던 위승현을 생각한다면 그녀를 상대로 이러한 열정을 품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시 생각해도 살 떨리는 키스였단 말이다.
빛나는 저도 모르게 부풀어 오른 입술을 혀로 축여야 했다.
후끈한 열기로 인해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이 가뜩이나 키스로 인해 예민해진 승현의 신경을 자극했나 보다.
결국 그가 먼저 이 어색하고도 살벌한 정적에 마침표를 찍었다.
“자꾸 그럴 거야?”
날이 선 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조금 전 키스로 인해 오감이 열린 빛나에겐 그 어느 때보다 낮고 섹시한 목소리로 들렸다.
“내, 내가…… 뭘?”
반사적으로 놀라 그녀가 되물었다.
그것도 평소 유빛나답지 않게 말까지 더듬으면서.
“몰라 물어? 그거 말이야, 그거! 혀로 자꾸 입술 축이는 거.”
“내가 언제?”
“안 그랬다고 해라.”
그렇게 말하며 승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시선 하나에도 빛나는 피부 밑이 근질거리는 걸 느꼈다.
머리끝에서 시작된 짜릿한 감각이 발끝까지 전달되었다. 정말 온몸이 쫄깃해지는 순간이었다.
“운전 중이잖아! 앞 보고 운전해! 집에 안 갈 거야?”
“신호 대기 중이거든.”
운전대에 한 손을 얹은 채 아예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려 대놓고 바라보는 승현 때문에 빛나는 질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게 다 그 키스 때문이다.
빌어먹을 이 자식은 뭐든지 잘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키스까지 잘한다.
빛나는 최대한 승현에게서 몸을 멀리한 채 시선을 정면에 고정했다.
그가 신호를 안 보고 있으니 그녀라도 봐줘야 뒤늦은 출발로 인해 클랙슨이 울려오는 것을 예방할 것이 아닌가.
헌데 눈앞을 왔다 갔다 하는 와이퍼에 중독되어 그녀조차도 신호를 감지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와이퍼는 엄청난 속도로 유리창 앞을 왔다 갔다 했고, 밖은 퍼붓는 비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빛나는 이 퍼붓는 비에 감사함을 느꼈다.
이 비가 아니었다면 그들의 뜨겁고 섹시한 키스는 지금까지도 계속되었을지 모를 일이니까.
옷이 젖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들은 비가 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만큼 그 키스에 몰두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을 만큼 아찔한 순간이었다.
‘세상에 내가…… 위승현이랑.’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왜 밀어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막심했다.
“출발하자. 신호 바뀌었어.”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여전히 몸을 최대한 그로부터 멀리한 채.
하지만 그렇게 굳어 있는 그녀를 보고 있는 승현의 눈동자에 묘한 의구심이 솟구쳤다.
어차피 멀리 피해도 차 안인데 머리 좋은 그녀는 어쩌자고 이 좁은 차 안에서 저렇게 차 문에 딱 붙어 있는 것일까.
그래봐야 승현이 손만 뻗으면 한 번에 안아볼 수 있는 거리인데 말이다.
귀여워 죽겠다. 이 빌어먹을 비만 아니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한 번 그녀를 끌어안고 싶을 만큼.
승현은 차를 천천히 출발시키며 그녀의 기분을 살폈다.
그만큼이나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머리를 쓸어 올리는 폼이 산만하다 못해 초조해 보였다.
비만 아니었으면 그는 그녀를 한 번 더 훔쳤을 테지만, 이 비만 아니었으면 빛나는 당장 이 차안에서 뛰어 내렸으리라.
집에 도착했다.
무슨 정신에 운전을 하고 왔는지도 모를 만큼 승현의 머릿속은 조금 전 빛나와의 키스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심장은 여전히 펄떡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살아 숨 쉬는 심장이 결코 그녀를 향한 화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설렘일까? 여자와 첫 키스하던 그 순간처럼?
아니다. 분명 그의 첫 키스 경험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오늘처럼 심장이 아플 만큼 펄떡이진 않았다.
승현의 시선이 빛나에게로 향했다.
아니, 어쩌면 애초부터 그의 시선은 그녀로부터 떨어져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시종일관 초조하고 예민한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그가 빛나에게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엘리베이터 벽으로 붙으며 날을 세웠다.
“왜, 또!”
“층수…… 안 눌렀잖아. 엘리베이터에서 밤샐 거야?”
아, 젠장.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옛말, 다 헛것이 아니다.
어찌하여 우리 조상님들은 그토록 현명한 말씀을 하셨단 말인가.
빛나는 승현이 엘리베이터 층수를 누르기 위해 몸을 기울이는 그 찰나의 순간 동안 저도 모르게 숨까지 멈추었다.
뭔가 달라진 그의 모습이 여전히 불안감으로 남아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빛나는 번개처럼 내려서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렀다.
너무 서두른 나머지 어렵지도 않은 비밀 번호 0000을 두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 성공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현관문이 열리고 드디어 그와 같이 있는 이 공간에서 해방되려는 순간,
쾅!
바로 눈앞에서 문이 닫혀버렸다.
넋이 나간 빛나가 잠시 사태 파악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옆으로 보이는 승현의 긴 팔이 원인임을 깨달은 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나랑, 연애하자.”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빛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나, 지금 잘못 들은 거 맞지?
빛나는 놀란 눈으로 서서히 몸을 돌려 그를 마주했다.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듯.
“우리…… 연애하자고.”
이런 젠장!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순간 빛나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리며 널뛰던 심장이 뻥 터져버렸다.
“이, 이런 미친…….”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키스에 이어 사귀자는 말까지 남발할 수가 있단 말인가.
키스는 실수였으나, 이쯤 되면 그녀를 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했다.
“너…… 미친 거야.”
“아니, 나 멀쩡해. 그 어느 때보다 확실히.”
“그런데 멀쩡한 정신에 그런 소리를 해? 너, 날 보면 심장이 뛴다고 했니? 그게 설레서 뛰는 건지 화가 나서 뛰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내가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려줄게.”
빛나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러곤 단호하게 다시 입을 연다.
“그거, 열 받아서 뛰는 거야. 너 그 개 같은 성질머리에 나만 보면 화가 나서, 그래서 심장이 나대는 거라고!”
그렇게 말하며 빛나는 긴장을 했던지, 버릇처럼 붉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그 뭣 모르는 습관이 그를 미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승현의 내리 깐 시선이 키스로 인해 더욱 도톰해진 그녀의 입술에 머물렀다.
제 흔적이 남은 그 입술을 보고 있자니, 묘하게 솟구치는 소유욕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리고 그 소유욕은 그다음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키스를 하니 연애가 하고 싶어졌다.
물론 그 연애가 어디서 끝날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가보지 않고는 그 답을 찾을 수 없는 거니까.
“내 심장이야. 설레서 뛰는지 화가 나서 뛰는지는, 내가 판단해.”
“착각하는 거야, 너. 오늘 그 키스 때문에.”
“너도 싫진 않았잖아. 날, 밀어내지 않았으니까.”
얄미운 그 말에 빛나는 승현의 가슴을 작은 주먹으로 있는 힘껏 후려 갈겨주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 그래서 지금 나도 후회 중이야! 왜 널 밀어내지 못했을까! 그 죄로, 네 귀싸대기 한 대 후려 갈겨주고 싶지만 간신히 참고 있는 거고! 이번 건, 쌍방 실수니까!”
“누가 그래? 실수라고.”
“실수야.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지금 당장이라도 또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말하며 승현의 입술이 다가오자 빛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혈관이 터질 만큼 짜릿했기 때문이다.
이성은 아니라고 아우성인데 몸이 그를 향해 곤두섰다.
그런 빛나의 반응을 눈치챈 승현의 눈매가 더욱 촉촉하게 가라앉았다.
자꾸 훔치고 싶다.
한 번만 더 맛보고 싶었다.
하지만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눈꺼풀에 승현의 입술은 탐스러운 이브의 사과를 눈앞에 두고 그대로 멈춰버렸다.
오늘, 한 번 더 그 이브의 사과를 맛본다면 이번엔 절대로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다.
그만큼 그녀와의 키스 한번은 너무도 강렬한 감각으로 그를 훑고 지나갔다.
그래서 놓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한번 들어선 금단의 영역에서 그는 헤어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침없이 내려앉을 거라 생각했던 그의 입술 대신, 작은 한숨이 와 닿자 꼭 감았던 그녀의 눈꺼풀이 서서히 열렸다.
그러자 그녀의 입술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간 그의 입술이 그녀의 귓가에 머물며 미치도록 달콤한 숨결들을 토해냈다.
“내가…… 잘할게.”
너무 달콤해서 모든 걸 놓고 그 유혹에 걸려들고 싶을 만큼.
“제발…….”
빛나가 사정을 하듯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이놈은, 어느 순간 어떤 말을 해야 여심을 자극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선수다.
말리지 말자. 현혹되지 말자.
빛나는 승현을 바라보는 눈에 힘을 팍 주고, 이를 앙물었다.
“키스 한 번으로 착각하지 마. 남녀 사이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고 한 번으로 네 감정을 착각할 만큼 너 어린 애 아니잖아.”
“네 눈엔 내가 아직도 10년 전 위승현으로 보여?”
“아니. 달라졌으니 이성적으로 사고하란 말이야.”
그녀는 밀리지 않기 위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승현을 설득시키기엔 무리였다.
“유빛나, 기억나? 내가 10여 년 전 너한테 했던 말.”
“무슨…….”
도대체 어떤 순간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그와 함께 마주한 시간은 찰나의 순간처럼 짧았지만 그래서인지 10여 년 전 기억조차도 무척이나 선명했다.
마치 지울 수 없게 아로 새겨져버린 흉터처럼.
“10년 전에도 물었잖아. 나랑 사귀자고.”
그제야 가장 최악의 그날, 장난처럼 들렸던 그 말이 생각났다.
-나랑…… 사귀자.
“그건…….”
“그때도 했던 말, 나 지금 또 하고 있는 거야. 이래도 순간 설레는 마음 때문에 그런다, 모른 척 할래?”
“…….”
“10년 전에도 같은 마음이었고 지금도 같은 마음이면, 그거 진심 아냐?”
빛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10년 전 그날의 기억이 선명히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때 난 그 말에 대한 대답을 영영 듣지 못했어. 그리고 그게 너랑 나, 그나마 다정했던 마지막 대화였고. 그 이후론 나만 보면 파르르 떠는 너 때문에 나도 모르게 물러섰으니까.”
“…….”
“미안. 그땐 어렸어. 그래서 지랄 맞은 자존심에 빨리 인정하지 못했어. 너만 보면 펄떡이는 심장이 화가 나서 그런 거라고 내 자신에게 둘러댔던 거라고. 하지만 이젠 확실해졌어.”
“…….”
“이성적으로 사고할래. 난 10년 전 어린애 아니니까.”
“위승현, 너…….”
더욱 위험해진 그를 밀어 내기 위해 빛나는 그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이번엔, 대답 따윈 필요 없어.”
그의 눈을 마주 본 순간, 빛나는 지금까지 무엇이 그토록 승현을 달리 보이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년 전 위승현이 아니다.
철없고, 오만하고, 하는 짓마다 본의 아니게 그녀의 혈압을 올려놓던 위승현은,
“나 너랑…….”
눈빛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심장을 들었다 놓는,
“…… 연애해봐야겠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수컷이 되어 있었다.
***
뒷날 빛나는 어제 모임을 했던 장소에서 차를 픽업해야 하는 관계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일찍 일어난 보람도 없이 현관문과 거실을 30분째 오가고 있었다.
문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밖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지만 쉽게 나가질 못했다.
어제 잔뜩 달아 오른 승현을 남겨두고 어떻게 현관문을 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미친놈이란 말만 반복했던 것 같다.
-나 너랑…… 연애해봐야겠어.
그런데 머릿속을 맴도는 그 한마디는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그 말은 물음이 아니었다. 그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문제는 그 중얼거림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은 아닌데 심장 끝이 쫄깃해진다는 것.
귓가에 내려앉았던 그 마지막 말은 밤새도록 그녀에게 달콤한 고문을 했더랬다.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친 거야.”
승현만 미친 게 아니라 그 말에 현혹된 그녀 스스로도 제정신은 아니라 생각했다.
때문에 우연이라도 승현을 마주하게 된다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것 같아 쉽사리 집을 나설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현관문 앞을 서성일 순 없지 않은가.
결심한 그녀는 용기를 내어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이 천년만년 같았다.
옆집 문을 얼마나 곁눈질을 했는지 눈이 양옆으로 쫙 찢어지는 느낌이다.
무사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아파트 입구를 나서기까지 빛나는 360도로 주변을 경계를 해야 했다.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다행히도 승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휴, 십 년 감수했네.”
심호흡으로 벌렁이는 심장을 가다듬고 빛나는 핸드백을 제대로 쥐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를 한 번 돌아보는 걸 잊지 않았다.
저곳을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정신이 없었던 탓이다.
덕분에 빛나는 아파트를 나선 직후부터 지금까지 차량 한 대가 그녀의 곁으로 따라 붙었단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였다.
“으이구…… 진짜! 이게 뭐하는 짓이야! 아침마다 평생 이렇게 살 순 없잖아?”
그녀가 혼잣말을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우연이 그녀의 뒤를 걷던 남자가 잠시 흠칫했지만 빛나는 혼자만의 고민에 빠져 남자의 이상한 눈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다.
“아호! 짜증나-아!”
저도 모르게 비명을 빽 지르자 그녀와 우연히 방향이 맞아 뒤따라오던 그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멈춰선 그녀를 피해가기 위해 느릿한 걸음으로 우회를 한다.
그 순간, 조금 전부터 그녀와 속도를 맞추며 서행하던 차의 창문이 스윽 내려가며 승현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가 씨익, 웃으며 아직까지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을 하는 그녀에게 소리쳤다.
“야, 유빛나! 타, 데려다 줄게.”
“으-아아-악!”
미처 생각지 못했던 순간이라 빛나는 없던 애도 떨어질 만큼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제 내 차 타고 오는 바람에 너 차 없잖아.”
이런 젠장, 헛것을 본 게 아니구나!
헛것이라고 하기엔 승현의 모습은 아침부터 너무 샤방샤방했다.
“어떻게…… 어떻게…….”
분명 못 봤는데, 분명 360도 경계 태세로 주변을 살폈는데 도대체 그는 언제 여기까지 쫓아왔단 말인가!
그녀가 망설이는 사이 승현이 차를 세우고 내려섰다.
빛나는 자신에게 다가서는 그의 훤칠한 그림자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안 탈 거야?”
“내가 왜 네 차에 타야 하는데!”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승현의 두 눈에 장난기가 반짝 한다.
어제 진지했던 그는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예전의 위승현으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말 안 듣는 7살 사내아이 같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어제의 그 느낌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위승현은 ‘위험한 수컷’이다.
언제라도 변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수컷.
아니나 다를까, 그는 씨익 웃으며 위험스러운 대답을 읊어냈다.
“네가 네 발로 안 타면, 내가 안고 태울 테니까.”
빠직!
빛나의 이마에 실핏줄이 돋았다.
그러나 어제의 교훈은 그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라는 걸 알려주었다.
때문에 빛나는 장난스럽게 스치듯 내뱉은 말이라도 그의 말을 그저 흘려들을 수 없었다.
“안 타? 좋아, 그럼 내가…….”
“아악! 알았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내 몸에는 손대지 마!”
“진작 그럴 것이지. 좋아, 네 몸에 손 하나 까딱 안 할 테니, 곱게 날아서 예쁘게 타.”
“내가 나비야? 곱게 날게? 진짜!”
빛나가 신경질적으로 외치며 돌아서 차로 다가갔다.
그렇게 차 문에 손을 뻗으려는 순간, 빛나의 등 뒤로 그의 긴 팔이 나타나 차 문을 대신 열어주었다.
그사이 그와 본의 아니게 몸이 스치자 그녀는 발작을 하듯 물러서며 입을 열었다.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말란 말이야! 뒤로 물러서.”
“아니, 나는 차 문 열어주려고.”
“미안하지만 다른 여자 같았으면 네 매너에 감동이라도 먹었겠지만, 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서 말이야. 그래봐야 네 화려한 연애 전력만 들통 나는 거라고.”
“역시 유빛나. 참신해서 맘에 들어.”
날이 선 그의 말을 순순히 인정하듯 칭찬 한마디를 남기며 승현은 양손을 번쩍 들고 두 발자국 물러섰다.
그러자 빛나는 보도블록에 있는 경계선을 구두 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다시 한 번 경고했다.
“잘 들어. 거긴 네 자리, 여긴 내 자리! 선 넘지 말란 말이야, 더 이상은.”
그녀는 짐짓 엄한 표정으로 그를 도도하게 올려다보았다.
이쯤 했으니 알아들었겠지, 하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이는 천하의 위승현을 너무 우습게 본 결과였다.
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가 싶더니, 그녀가 구두 끝으로 툭툭 건드렸던 그 보도블록의 경계선에 보란 듯 제 발끝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헤헤, 미안해서 어쩌나. 나 벌써 넘어버렸는데…….”
“이, 이…… 망할 자식이!”
빛나의 혈압이 대폭발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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