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 (19/43)

19.

‘…열망의 선물입니다.’ 붉은 보석을 신에게 바치자 낮은 절반이 되었다. ‘이것은 너와 같지 아니하구나.’ 신이 말했다.

“그동안 사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불안하게 중얼거린 사제의 말이 무색하게도 건물 안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북적거리는 인파는 하나같이 사제복을 입은 사람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작업은 대체 언제 시작할 수 있는 겁니까?”

“아직도 진전이 없어요?”

“침착하세요, 다들.”

“제발 내려가게 해 주세요. 호수 근처에만 가면 미칠 것 같아요!”

쿵쿵 책상을 치는 소리, 한탄과 겁박이 한 걸음마다 들렸다.

‘대체 이게 무슨 소란이야?’

눈이 휘둥그레진 투이나가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호위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바짝 붙어서 따라오던 라카인이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작업이 중단돼서 다들 난리도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일은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는 건데도 말이에요.”

사제가 딱딱거렸다.

못마땅한 말투여야 어울릴 텐데 너무 작아서 오히려 겁먹은 것처럼 들렸다.

시끌시끌하던 실내는 곧 시커멓게 큰 남자의 등장으로 조용해졌다.

라카인이 이목을 끈 덕에 투이나의 등장은 천천히 알려졌다.

“루가 님?”

“설마, 세상에.”

“루가 님이 오셨어!”

날카로운 속삭임이 퍼져나갔다.

앉아 있던 사제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어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호수 일을 해결하려고 오셨군요!”

사제들의 상반된 반응은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금방 번져나갔다.

우르르 투이나를 향해 다가오는 인파에 호위들이 얼른 무기를 치켜들었다.

“물러나십시오!”

“천천히, 진정하세요! 여러분의 얘기를 들으려고 온 거예요!”

투이나가 호위들부터 말리며 외쳤다.

웅성웅성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로 열띤 감정이 번져 나갔다. 드디어 그들의 희망을 책임져 줄 만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함부로 오시면 위험합니다. 왜 직접 오셨습니까!”

“아르힘 님은 같이 오지 않으셨습니까?”

“네, 네, 네. 저도 만나서 기뻐요.”

투이나가 연달은 질문을 긍정으로 이어 가며 인사했다.

머리를 박박 깎은 사제가 이마를 짚었다.

“우선 자세한 설명부터 들어야겠어요.”

“안 그래도 다시 상세한 보고서를 작성하던 중이었습니다. 이 난리 통에는 제대로 상황을 듣는 것조차 힘겨우니, 원.”

“간단히 요약해 드릴게요, 루가 님.”

사제들이 막 모여든 사람들을 흩어 버리려고 했을 때였다. 저 멀리 뒤쪽에서 손 하나가 올라왔다.

“괜찮으시다면 그건 저희가 하고 싶습니다.”

굳은살이 잡힌 손바닥이 어딘가 익숙했다.

갑작스런 발언에 얼른 비켜나는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손의 주인이 드러났다.

‘어어?’

진심으로 깜짝 놀란 투이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빠?”

호위들의 목이 홱 돌아갔다. 분명히 하나쯤은 부러졌을 법한 속도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그가 어색한지 주춤 물러섰다.

그러자 가려져 있던 다른 사람도 드러났다.

투이나는 입까지 벌렸다. 환하게 미소 지으려고.

“언니!”

* * *

“네가 올 줄은 몰랐다.”

투이나의 언니, 올루사가 가만히 말했다.

사제들은 두 사람이 투이나의 가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급하게 방 하나를 빌렸다.

그러곤 일단 호위와 함께 가족들을 방에 밀어 넣은 다음, 상황 설명까지 맡겨 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투이나의 형제자매는 상당히 어색한 상황부터 시작해야 했다.

“너무 오랜만이야!”

물론 투이나는 예외였다.

격하게 반가워하는 그녀를 두 사람이 어색하게 마주 안아 주었다.

“잘 지냈니.”

투이나의 오빠 데눔이 그나마 부드럽게 인사를 건넸다.

올루사와 데눔은 그다지 병사들이나 신전 사람들과 가까이 할 기회가 없었다.

때문에 두 가지 조건을 다 만족하는 호위들이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는 게 꽤 부담스러워 보였다.

“아, 소개를 잊었네요. 여긴 첫째 언니 올루사, 넷째 오빠 데눔이에요. 이쪽은 호위분들이야. 모하세스에서 온 라카인, 창을 잘 쓰는 호루니, 뭐든 열심히 하는 스카차.”

“반갑습니다.”

“아, 넷. 네엡.”

투이나의 소개에 얼굴이 달아오른 호위들이 얼른 악수했다.

사실 어색한 건 호위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지하게 궁금하긴 했지만.

호루니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가족분들이셨군요.”

“네. 저도 여기서 일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투이나가 싱글벙글 웃었다.

그들이 나란히 서 있으니 제법 닮은 것도 같았다.

여기서 가장 연장자인 올루사는 투이나와 나이차가 많이 나 보였다.

딸까진 아니더라도 투이나가 동생이라고 선뜻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에 비해 데눔은 투이나의 바로 위라 그런지 가장 또래 같았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른 수염만 빼면 투이나와 얼굴이 비슷해 보일 것이다.

“전에 일하던 곳보다 보수가 좋아서 옮겼다. 데눔도 내가 소개시켜 준 거야.”

“그랬구나!”

환하게 웃는 투이나가 어색한지 올루사는 자꾸 창밖을 힐긋거렸다. 이제 곧 어둑어둑해져서 볼 게 없는데도 말이다.

데눔도 애매하게 투이나의 어깨를 토닥거리다가 급히 뺐다.

“아, 이제 루가 님이니 함부로 하면 안 되겠지.”

“아냐! 괜찮아, 오빠. 오빠인걸, 뭐.”

투이나는 얼마든지 더 해도 된다는 것처럼 어깨를 내밀었지만 데눔은 그냥 의자로 돌아갔다.

“앉는 게 좋겠다. 그, 호위분들도 말이에요. 얘기가 길어질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호루니와 스카차가 앉는 동안 라카인은 고집스럽게 계속 서 있었다.

“저분은…….”

“저 사람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호루니가 차갑게 말했다.

눈짓으로 그들을 보던 올루사가 입을 열었다.

“투이나가 있는 자리니 말을 편하게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설명하자면 그게 익숙해서요.”

“알겠습니다.”

“음…….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처음 실종된 건 체로니였어요.”

데눔이 말을 받아 이었다.

“누님과 비슷할 때부터 있던 사람인데, 밤에 산책하는 습관이 있다고 하더군요.”

“밤의 호수는 꽤 눈부셔. 꼭 체로니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종종 호숫가에서 만났지.”

확실히 소금이 반짝이는 호수는 밀회하는 연인이 만나기엔 근사한 장소였다.

투이나는 이미 이곳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상품이 더럽혀질 수 있으니까 호수에서 씻는 건 금지야. 소금물이니 별로 개운하지도 않고. 그래도 체로니는 종종 호수에 몸을 담갔지.”

“그래서 그녀가 실종되었을 때 사람들은 호수에 빠져 죽은 게 아닌가 몹시 걱정했습니다.”

사람이 죽은 것도 죽은 거지만, 입에 들어가는 소금에 시체가 빠지면 나라간 분쟁으로 일이 커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날 일꾼들은 전부 일손을 놓고 체로니를 수색하는 작업을 했다.

“여기서 내려가는 길은 딱 하나야. 체로니가 살았다면 말없이 사라질 사람은 아니었고, 죽었다면 호숫가로 떠밀려 왔을 테니 모두 기다렸지.”

“이런 때를 위해 준비된 배를 띄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체로니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산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그녀를 찾지 못하자 사람들은 사제에게 답을 요구했어. 조사해 보겠다고 하더군. 하지만 때마다 바뀌는 사제들이 여기 붙어사는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잘 알겠어.”

“사제들을 욕할 생각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누가 사라졌는지 인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수색을 한 날 일꾼 둘이 더 사라졌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어쩔 수 없는 실망이 그들의 말투에 깔렸다. 투이나조차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냥 사라져 버렸단 말이야?”

“완전히. 흔적조차 없이.”

올루사가 담담히 긍정했다. 데눔도 눈가를 찌푸렸다.

“그때부터 호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고 하는 사람이 생겼어.”

“사라진 일꾼 두 명을 마지막으로 본 게 소금 호수라고 증언하는 사람들도 많았지.”

“불길해진 사람들이 호수로 가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했지만 사제들은 두려워할 게 없다고 말했어. 아르힘 님이 돌보시는 땅에서 뭐가 잘못될 리가 없을 거라고.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는 말이잖아.”

투이나의 가족이니 그들 또한 신앙심이 강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올루사와 데눔의 얼굴은 씻을 수 없는 침울함으로 가득했다.

“사제들은 겁먹은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따로 인원을 뽑았지. 혹시 마법사나 수호신이나 다른 어떤 것이라도 발견할 수 있도록 사제 하나, 무사제 하나, 일꾼 하나를 골라서.”

“하지만 돌아온 건 사제뿐이었다.”

데눔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러다 문득 자기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 깨닫고는 다시 존댓말로 돌아갔다.

“당연히 사람들은 엄청나게 화를 내며 당황했습니다. 이 모든 게 사제 탓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사제였기 때문에 호수에서 돌아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차라리 그때 멈추는 게 좋았을 거야.”

올루사가 중얼거렸다.

“겁먹은 사람들은 사제들이 수도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았어. 그들을 지켜 달라고. 그 방법은 꽤 오래 갔지. 미리 옮겨 둔 호수 물도 많았으니 당장 호수에 갈 필요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물은 언젠가 바닥납니다. 슬슬 호숫가 근처에서 암염이라도 끌어올려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소리가 나올 때쯤에 신전에서 사제 하나가 새로 왔습니다.”

자신감에 가득 찬 데다 솔선수범의 정신까지 투철한 자였다고 한다.

그는 아르힘 님이 계신데도 호수에 저주가 걸렸다느니 하는 사람들의 미신 같은 말에 기절할 만큼 놀랐다.

그 사제는 사람들이 생각을 고쳐먹도록 직접 호수에 들어갔다 나올 결심을 했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의 도전을 환영했다.

그리고 기대와 불안이 섞인 시선 속에서 그는 다시는 수면 위로 나타나지 못했다.

“맙소사…….”

완전히 넋이 나간 투이나가 신음 같은 소리를 흘렸다.

올루사는 잠깐 울컥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가려 버렸다.

“그래도 사제들은 여전히 저주를 믿지 않아. 여긴 아르힘 님의 땅이니까.”

데눔은 루가인 투이나 앞에서 이런 말을 해도 좋을지 한참을 고민하다 말했다.

“그냥 그 사제가 특별히 수영을 못했을 거라고 하더군요.”

“웃기는 소리지. 저긴 소금 호수야. 어린애를 던져 놔도 물에 떠.”

올루사가 단호하게 덧붙였다.

이제야 그들의 불안이 투이나에게 제대로 옮겨 붙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무심코 생각하던 투이나는 곧 자신이 되살아난 뒤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아르힘 님이 여길 오시지 않았지? 다른 어떤 곳에 이것보다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

혼란스러워하는 동생을 두 사람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약간은 안타깝게.

“솔직히 말이다, 투이나.”

올루사가 손을 모았다.

“네가 와도 무언가 달라질 거란 생각은 안 해.”

투이나는 얼굴에서 당황의 빛을 지웠다.

‘언니를 걱정시켰구나.’

투이나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와야 했어.”

“휴우…….”

올루사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더 말릴 생각이 없어 보이자 데눔이 어색하게 분위기를 풀었다.

“그럼 오늘 여기서 하룻밤 묵고 가는 거니?”

“응, 그러려고.”

“괜찮을지 모르겠다. 요즘은 다들 밤까지 소란스러워서.”

“걱정 마. 저녁은 먹었어? 언니는? 아직 안 먹었으면 같이 하자.”

“아냐. 호위분들도 계신데. 신경 안 써도 돼.”

데눔이 사양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올루사가 호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예?”

“저희 말씀이십니까?”

“네. 가능하면 따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올루사의 요청에 호위들이 망설였다.

특히 호루니는 투이나의 가족에게서 얘기를 더 듣고 싶은 눈치였다.

투이나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전 괜찮으니까 다녀오세요. 잠깐이잖아요. 그동안 오빠랑 있으면 돼요.”

“아, 네. 이쪽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데눔이 맞장구를 쳤다.

라카인은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려고 했지만, 투이나가 부드럽게 권유하는 소리까지 외면할 순 없었다.

“가도 돼요.”

그래서 그는 다른 호위들과 함께 복도로 나왔다.

올루사는 좀 더 조용한 곳을 찾는지 두리번거렸다.

라카인이 말했다.

“루가 님이 여기 계시니 멀리 갈 수 없습니다.”

“아, 그런가요.”

고민하던 올루사가 좁고 긴 복도 쪽으로 약간 걸어 나갔다. 그녀는 바깥으로 나오자 한결 편해 보였다.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녀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투이나랑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호위라고 하니 따로 부탁드리고 싶었어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봐서 알겠지만 우린 그다지 투이나와 가깝지 않아요.”

올루사의 얼굴에 약간의 죄책감과 성가심이 엉겨 붙었다.

“그 애가 태어날 때부터 병에 걸려있었기 때문에 다들 금방 죽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정을 붙이지 않으려고 했어요. 먹고 살기 바쁘기도 했고.”

그녀가 마른 숨을 삼켰다.

호위들이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아르힘 님이 그 애를 데려가서 살려 놓으셨죠. 그리고 무려 루가 님이 되었잖아요?”

호루니에게서 조금씩 실망한 기색이 내비치기 시작했다. 그녀가 기대했던 대화는 이런 게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튼 투이나가 태어났을 때부터 우린 그 애를 잘 몰랐고, 이제는 루가가 되어 알아 갈 방법도 영영 잃었다고 생각해요.”

“저, 지금이라도 루가 님과 화해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해를 못 하시네요. 싸운 적이 있어야 화해를 하지요.”

스카차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올루사가 단호하게 대꾸했다.

“이제 신의 뜻을 따르는 아이니 굳이 발목을 잡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저 아이가 좀 그래요. 잘 대해 준 적도 없는 우리를 여전히 가족으로 아끼더군요.”

올루사의 표정이 한순간 복잡해졌다.

“우린 그 애에게 줄 게 없어요. 그러니 혹시라도 투이나가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하지 말아 주세요.”

“…….”

“루가로 사는 걸 힘들어하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뜻입니다.”

올루사의 말이 끝나자 오랜 침묵이 맴돌았다. 호루니와 스카차도 경직된 표정을 약간 풀었다.

“루가 님을 걱정하시는군요.”

“……내겐 그보다 큰 걱정들이 많아요.”

올루사가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도 동생을 만났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이 올루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녀는 곧 남아 있던 감정을 깡그리 치워 버리고는 다시 방문을 열었다.

“얘기 끝났어.”

“벌써?”

투이나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올루사는 짧게 끄덕이고는 데눔에게 눈짓했다.

“일어나. 가야지.”

“아, 응. 투이나,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다.”

“벌써 가려고?”

투이나가 아쉬운 소리를 냈다.

데눔은 머쓱해 보였지만 몸은 이미 빠져나온 뒤였다.

“그래. 다음에 또 보자.”

데눔이 어색하게 투이나의 머리를 토닥였다.

몇 달 뒤일지 몇 년 뒤일지 모르는 약속이다.

투이나는 그걸 알았기에 믿었다.

손을 흔들며 언니 오빠를 배웅한 투이나의 관심이 호위들에게로 옮겨졌다.

“그래서 무슨 얘기했어요?”

반짝반짝 호기심을 드러내는 눈을 보며 호위들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게…….”

“루가 님을 잘 부탁한다고, 그리 말씀하셨어요.”

호루니가 어물거리는 스카차의 뒷말을 잽싸게 낚아챘다.

곧장 환하게 밝아지는 투이나의 표정에 적절한 대답이라 스스로 만족하면서.

그러나 라카인은 아무리 해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직접 만나 본 투이나의 가족이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게 뭐 그리 큰 충격이라고.

하지만 그 생각은 투이나가 죽는다고 해도 그들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질 일이 없다는 뜻도 되었다.

투이나의 가족들은 금방 그녀의 죽음을 툭툭 털고 일어날 사람들이라는 게 분명해졌다.

원래라면 살인자의 죄책감을 덜어 줄 그 문장이 라카인을 미칠 것처럼 구석으로 몰아갔다.

신은 그에게 명령을 거부할 양심의 가책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양심을 조롱하듯이.

네게는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라카인은 자꾸만 피가 식어 버리는 것 같았다.

일이 쉬워질수록 흥미를 잃어버리는 살인마도 아니면서, 그는 왜 괴로워지는가?

“여러분이 나가 있을 때 저도 오빠랑 잠깐 얘기를 했어요.”

낭랑한 투이나의 목소리가 라카인을 다시 깨웠다. 그는 진땀이 흐른 몸을 식히며 소리에 집중했다.

“호수에서 사람들이 사라진 건 확실하니까 거길 조사하지 않을 순 없겠더라고요.”

“설마 직접 가시겠다는 말씀은 아니시죠?”

“아직은요.”

투이나가 사람 기겁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다음 덧붙였다.

“유일하게 호수에서 돌아온 사제님이 계시다고 했었죠? 오빠가 이름을 알려 줬어요. 일단 그분부터 만나 봐요.”

알고 보니 그 사제는 맨 처음 투이나 일행을 맞으러 나왔던 자였다.

“저, 저를 찾으셨다구요?”

사제가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호수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그곳으로는 다신 안 갑니다!”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진 사제가 소리를 꽥 질렀다. 핼쑥한 뺨이 팽팽한 가죽 부대처럼 펴졌다.

“아무리 루가 님이라도 저를 그리로는 못 보내십니다!”

“안 보내요!”

덩달아 놀란 투이나가 양손을 펼쳤다.

“절대로 그러지 않을게요! 그냥 그곳에서 있었던 일만 말씀해 주세요.”

“…….”

사제는 불안하게 눈을 굴리다가 겨우 투이나가 루가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말했다.

“분명 제 말을 못 믿으실 겁니다.”

“믿어요.”

“아무리 루가 님이라도 저를 허튼소리 한다고 내쫓아 버릴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지 않을게요.”

투이나가 단단한 다짐을 건넸다.

“이곳에는 사제님을 믿으려고 온 거예요.”

그 말에 방어적으로 올라가 있던 사제의 두 팔이 천천히 내려갔다. 한참 눈치를 보던 그가 말했다.

“……호수 밑에 괴물이 살고 있습니다.”

사제는 몹시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떤 괴물이죠?”

“백 개의 얼굴이 달린 괴물. 천 개의 목소리를 지닌 괴물. 소금물에도 뜨지 않는 괴물. 무거운 탐욕이 가득한 것. 그건 사람들을 홀려 잡아먹는 게 틀림없습니다.

사제가 횡설수설 중얼거리더니 파드득 고개를 떨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배를 타고 갔을 때, 처음 출발했을 때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실종된 사람을 소리쳐 부를 때까지 호수는 잔물결 하나 없이 고요했습니다.”

퀭한 사제의 눈 밑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때 무사제가 작은 속삭임을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말하는 것 같다고. 실종된 사람이 말하는가 싶어서 우린 모두 귀를 기울였습니다. 목소리는 물 밑에서 들려왔죠.”

그래서 그들은 호수 아래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만약을 대비해 밧줄도 가져갔습니다. 우리는 배에 몸을 묶고 호수로 들어갔죠. 하지만 잠수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힘을 풀면 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으니까요.”

사제도 수영을 할 줄 알긴 했지만 능숙하진 않았고 몸도 가벼웠던 터라 결국 배 주변에 머물며 다른 사람이 떠오르면 같이 건져 주기로 했다.

“혼자 하얀 호수에서 기다리려니 조금 무서워졌습니다. 그들이 어디까지 왔는지 궁금해져 다시 배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머리만이라도 물속에 넣어서 상황을 보려고 했죠.”

“뭘 보셨죠?”

“공허입니다.”

사제는 회색빛으로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출렁이는 호수물의 중간 중간이 어디로 사라진 것처럼 뻥 뚫려 있었습니다. 그런…… 그런 건 난생처음 봤습니다. 빈 공간으로 다른 물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오로지 목소리만이 들리더군요.”

“뭐라고 했습니까?”

잔뜩 긴장한 스카차가 무심코 물었다.

사제는 무례를 탓할 정신도 없이 패인 입술로 대답했다.

“이리 와.”

“…….”

“내게, 내게 들어오라고 키득거리며 속삭였습니다. 어린애였다가, 노인이었다가, 내, 내 목소리 같기도 한 게 계속 속삭였습니다.”

다시는 떠올리기도 싫은 경험에 사제는 몸서리쳤다.

“같이 갔던 사람들은 다 그것에게 먹혀 버렸습니다. 틀림없어요. 왜냐하면 그, 그게, 그 공허가 허우적거리며 올라오려던 무사제를 향해서 움직였습니다.”

그가 치를 떨었다.

“호수에 남아 있던 빈 공간에 닿자마자 무사제는 사라졌습니다. 묶여 있던 밧줄까지 함께요.”

“……!”

“저는 배에서 내릴 때야 그걸 알았습니다. 밧줄의 끝은 호수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그걸 묶어 놓았던 기둥까지 멀쩡했는데…… 그냥 없어져 버렸단 말입니다.”

그리고 사제의 시야를 가릴 만큼 부글거리며 마구 올라오던 무사제의 숨 거품마저 사라져버렸다.

사제는 그렇게 존재가 지워지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죽음마저도 시체를 남기건만,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니.

그러나 무사제가 사라지면서 또렷해진 시야는 정직했다.

“……무사제가 사라졌을 때서야 비로소 보였습니다. 호수 바닥에 그 괴물의 심장이 있었어요. 시뻘건 보석처럼 어둠 속에 박힌 그게 나를 노려보았습니다.”

사제는 공포에 질린 두 눈동자를 천천히 떨었다.

“괴물은 있습니다, 루가 님. 저는 깊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예요. 공허는 깊은 곳에 있었어요. 그 괴물은 호수 바닥에 있습니다.”

그리고 사제는 다시 입을 꽉 다물어버렸다.

충격에 빠진 호위들이 모두 말을 잃어버린 동안 투이나는 혼자 다른 놀라움에 빠져 있었다.

그의 이야기가 어딘가 익숙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그대로 얘기하셨나요?”

“예, 루가 님.”

“그래도 다른 말씀은 안 하셨단 말이죠. 모르시니까.”

“그……렇죠?”

사제는 갑자기 생각에 잠긴 투이나를 불안하게 흘끔거렸다.

‘호수 밑의 심장과 실종된 사람들이라면 짚이는 구석이 있어.’

투이나가 입술을 눌렀다.

‘하지만 그가 할 수는 없었을 텐데? 그여서는 안 되잖아.’

설령 그녀의 추측이 맞을지라도 걸리는 점이 남아 있었다. 그것만 확인한다면…….

투이나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얘기해 주셔서 고마워요, 사제님.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아요!”

“그, 그게 정말이십니까?”

믿지 못하고 눈이 휘둥그레진 사제가 투이나의 팔을 붙들었다.

라카인이 굳은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

“네, 걱정 마세요.”

투이나가 떨어지기 직전에 말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알려면 빨리 시작해야겠어요.”

결심한 뒤에는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녀는 반대를 무릅쓰고 배를 띄웠다. 당연히 사제들부터 우르르 쫓아 나왔다.

“가시면 안 됩니다!”

“절대로 루가 님까지 잘못되실 수는 없습니다!”

선착장에서 배를 붙든 그들이 농성을 펼쳤다.

소란에 몰려나온 일꾼들이 웅성거리며 그들을 둘러쌌다.

이미 어둠이 내린 호숫가는 사람들이 들고 나온 등불로 환했다. 하늘은 흐렸지만 그들의 빛 때문에 호수가 여전히 하얗게 보일 만큼.

호위들은 시야 확보를 위해 배에 등불을 잔뜩 실으면서도 기름을 흘릴까봐 불안해했다.

빨리 다녀오려던 투이나는 발이 붙잡히자 곤혹스러웠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사제님. 제가 아는 일이에요.”

“아직 추측이실 뿐입니다!”

“괴물이라는 소리는 믿을 수 없지만 어쨌든 사람이 사라지는 호수 아닙니까!”

“쉬이잇.”

투이나가 다급하게 손가락을 올렸다.

거리는 꽤 있었지만 일꾼들 사이에는 올루사와 데눔도 있었다.

맨 앞으로 나온 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걱정스럽게 투이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들 듣고 있잖아요. 걱정을 부추길 말은 안 하기로 한 거 아니셨어요?”

“저자들이야 듣든 말든…….”

홧김에 튀어나온 소리에 투이나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사제님, 저분들을 진정시키려고 하셨잖아요. 호수는 안전하다고 말이에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겁니다.”

“게다가 결국 마지막으로 들어간 사제가 안 돌아왔단 말입니다!”

격하게 항의하는 사제를 보던 투이나가 천천히 말했다.

“저 수영 잘해요.”

“루가 님!”

“아무리 잘하셔도 사라지실 위험을 감수할 정도는 아닙니다!”

“설마 저희가 둘러댄 얘기가 잘못되었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그래서 화나셨어요?”

“아뇨, 알아요. 결국은 서로를 믿어 달라는 이야기잖아요.”

투이나는 결연하게 말했다.

“저도 똑같아요, 사제님. 이대로 사람들이 계속 사라지도록 둘 순 없어요.”

“하지만…….”

“게다가 책임을 질 사람도 필요하잖아요.”

투이나가 크게 팔을 돌렸다.

물에 뛰어들기 전에 하는 준비 동작에 걸린 사제가 어, 하는 사이에 밀려났다.

그 틈을 타서 투이나가 훌쩍 배 쪽으로 달려갔다.

껑충 뛰어간 그녀가 바로 배 안으로 착지했다. 밧줄과 커다란 천을 싣고 있던 스카차가 휘청거렸다.

“조심하세요, 루가 님!”

“미안해요.”

흔들리는 배를 같이 붙잡아 준 투이나가 무릎을 굽혔다.

완전히 배로 넘어간 자세에 사제들은 더 말리지 못했다.

“이번엔 누가 남기로 했어요?”

“저예요.”

호루니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라카인을 남겼겠지만 안타깝게도 신뢰를 잃은 그는 반드시 옆에 누가 붙어 있어야 할 처지였다.

투이나를 직접적으로 해친 적은 없으니 마지못해 보내기는 하지만, 배신자를 옆으로 보낸다는 모순에 호루니는 혼자 괴로워했다.

결국 믿을 건 스카차와 아르힘뿐이라는 결론을 내린 호루니가 당부했다.

“나 대신 잘 지켜봐, 스카차.”

“그래. 알았다.”

비스듬히 노를 잡은 스카차가 막중한 책임을 넘겨받은 사람처럼 대답했다.

호위들이 비장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음에도 투이나와 라카인은 배의 안전만 확인하기 바빴다.

“셋이 타도 괜찮겠죠?”

“……예.”

라카인은 껄끄러운 가시를 삼킨 사람처럼 말했다.

“호수를 확인할 거라면 두 사람만 가도 됩니다.”

“배를 지킬 사람이 있어야죠.”

라카인은 그 말에 내심 안도했다.

호수에 들어갈 사람 하나, 배를 지킬 사람 하나, 거기에 루가를 포함하면 딱 셋이니까.

적어도 호수에 직접 몸을 던질 만큼 무모하지는 않다는 계산이 된다.

물론 투이나의 계산법은 좀 달랐다.

“갑니다.”

투이나 일행을 태운 배가 부드럽게 뭍에서 떨어졌다.

창끝으로 그들이 떠나는 걸 도운 호루니가 얼른 허리를 폈다.

“너무 깊이 들어가시면 안 돼요!”

투이나가 머리 위로 양손을 흔들었다. 호루니는 그걸 긍정적인 대답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배는 바닥이 깊지 않았다. 물살을 탈 때마다 흔들리는 등불이 고스란히 수면 위로 반사되었다.

심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소금 호수의 풍광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호수의 바닥은 겉이 오돌토돌한 하얀 바위로 가득했고, 물고기가 살지 않는 투명한 물이 넓게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게다가 여러 곳에 올려둔 등불이 하늘과 수면을 동시에 은은하게 밝히는 모습이 어딘가 신비롭기도 했다.

‘예쁘다.’

투이나가 천천히 뱃머리에 몸을 기댔다.

‘배에 잔뜩 담아 가는 불빛만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녀와 반대로, 라카인은 배에 실린 등불들이 얼마나 환하든 희미하기 짝이 없는 불빛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일을 저지르기로 마음먹는다면 누구라도 그걸 볼 수 있을 만큼 밝지가 않았다.

은밀하게 해치워 버리라는 듯이.

어두운 밤에서 투이나의 등만 희게 빛났다.

그녀 주위로 퍼져나가는 물살은 유혹하는 것처럼 일렁거렸다. 빠트려도 좋다는 듯이.

밤은 비밀을 잘 지킨다.

저도 모르게 노를 잡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꼭 지금 가셔야 하셨습니까.”

무심코 튀어나온 말에 라카인이 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닙니다. 잊어 주십시오.”

“하긴 그렇습니다, 루가 님.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더 좋았을 텐데요.”

“딱 하룻밤만 묵기로 했었잖아요.”

쿵쿵 뛰는 라카인의 심장과는 반대로 투이나는 아무 의심 없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물에서 나온 뒤에는 다시 분칠을 해야 하는데, 자고 일어나서 호수로 가면 양이 모자라요. 그럴 바에는 한꺼번에 해결하는 게 낫죠.”

“예에? 설마 호수에 직접 들어가실 생각이십니까? 저는 루가 님이 확인만 하러 오신 줄 알았는데요.”

“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끝을 흐리던 투이나가 갑자기 입을 멈췄다.

“……들었어요?”

놀란 그녀가 황급히 물었다.

“사제님이 말했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거 같아요.”

“정말이십니까?”

스카차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고, 라카인은 투이나에게만 쏠려 있던 주의력을 천천히 바깥으로 돌렸다.

그제야 예민한 귓바퀴를 타고 낯선 이의 목소리가 휙 쓸었다.

“또 왔네?”

“……!”

라카인이 움찔했다.

세 사람이 모두 동시에 움직였다는 사실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말이었어.’

투이나가 조심스레 상체를 바깥으로 빼내었다.

공기 중에 퍼지는 소리와 달리 울림이 심한 음성이었다.

그녀가 등불 하나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천천히 떠밀려온 배는 조금만 더 가면 바로 호숫가의 중앙에 닿을 것이다.

투이나가 허리를 기울여 가며 소리에 집중했다.

“살아서는.”

“어제도 보고, 오늘도 보고, 내일은 못 봐.”

“콧잔등에 내려앉은 재채기가 나를.”

‘역시…….’

그들의 속삭임을 들은 투이나가 확신했다.

‘시드룬의 비늘을 만졌을 때랑 똑같아.’

영혼의 세계에서 들리던 소리들이다.

투이나는 등불을 내렸다. 맑은 수면 아래로 텅 비어 있는 공간이 흐리흐리하게 비쳤다.

‘영혼의 세계를 여는 방법은 마법이 아니야.’

처음엔 시드룬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을 볼수록 의문이 풀렸다.

‘그때 수리시가 뭐라고 했었지?’

영혼의 세계를 열어 보려고 사람들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한꺼번에 죽여 볼까 고민했다고 했다.

소금 호수에서 몰살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없었으니 다른 방법일 텐데.

지금까지 시드룬의 연구에서 성공했던 방법은 영혼의 세계에서 온 물건과 투이나가 만나는 것이었다.

만약 어떤 이유로 영혼의 세계에서 온 물건이 호수에 빠졌고, 무언가 투이나랑 똑같은 작용을 했다면?

‘설명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야.’

투이나의 맥박이 빨라졌다.

사제가 보았다는 호수 밑의 심장.

즉각 생각나는 심장의 주인이 하나 있었다.

‘그게 시드룬의 심장이라면?’

불가해한 비밀이 호수에서 소용돌이쳤다.

투이나의 턱이 굳어 갔다.

신이 가져간 마법사의 심장이 왜 여기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가장 유력한 가설은 그것뿐이다.

‘왜 거기 있는지, 어떻게 영혼의 세계를 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건 나중에라도 알아볼 수 있어.’

일단 지금은 기현상을 막아야 했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무겁죠?”

물어보며 고개를 돌린 투이나가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누가 봐도 라카인이 덩치가 더 크고 무거웠던 것이다.

“라카인, 잠수할 줄 아나요?”

“예.”

라카인이 노를 놓았다.

곧장 호수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그를 보며 투이나도 두건을 벗었다.

당연히 호위들이 주춤했다.

“루, 루가 님? 라카인만 내려가면 되잖습니까?”

“제 짐작이 맞다면 두 사람이 가야 해요.”

투이나가 두건을 둘둘 말아 머리끈 대신 사용했다. 호수 안에서 머리카락이 눈을 가리면 곤란했다.

“스카차는 등불을 맡아 주세요.”

“정말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십니까?”

“네.”

투이나가 잠깐 말을 골랐다.

“바깥에서 말할 수 없는 비밀이 그때 그렇게 얘기했어요. 돌아오는 방법은 두 사람이 가야 한다고.”

“……아!”

어리둥절해하던 스카차가 입을 벌렸다. 이해와 동시에 경악한 그가 더듬거렸다.

“그럼, 이게, 그거입니까? 저를 두고 가셨던 그때!”

“네. 스카차는 자세한 설명은 못 들었었죠.”

“그자가 이런 일을 꾸미다니!”

“직접 저지른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알아봐야죠.”

투이나가 질끈 허리에 밧줄을 감았다.

스카차가 서둘러 등불을 집어 들었다. 그가 빠르게 등불 아래쪽에 돌을 매달고 칭칭 밧줄로 감았다.

“덮개 위까지 막아 놔서 오래 켜 있진 않을 겁니다. 불이 꺼지면 곧장 다른 등불을 내려 보내겠습니다!”

“고마워요, 스카차.”

“…….”

라카인이 굳은 얼굴로 등불을 받아 들었다.

입 밖으로 반대 한 마디를 꺼내지 않았지만 겉옷을 벗는 그의 손엔 주저함이 서려 있었다.

“미안해요, 라카인. 정 힘들면 스카차와 역할을 바꿔도 돼요.”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라카인은 다만 밤공기에 드러난 어깨가 흉측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가늘고 우아한 몸과 거리가 먼 단련된 몸을 대부분 싫어했으니까.

그렇게라도 그녀가 꺼려 준다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투이나는 그걸 신경 쓸 정신이 아니었다.

“제가 신호하면 호수 아래에서 뒤를 돌아봐 주세요. 음, 물속에서는 뒤가 아니라 위가 되려나? 어쨌든 둘 다 시도해 볼 수 있겠어요?”

“예.”

라카인이 대답했다.

그러자 투이나는 그를 데리고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차가운 물살이 순식간에 온몸을 감쌌다.

‘윽, 어두워!’

투이나가 숨을 참으며 부르르 떨었다.

다행히 라카인도 제법 수영을 잘했다. 그가 깔끔한 동작으로 물속에서 다가왔다.

‘내려가요.’

말을 못 하니 손가락으로 아래만 가리켰다.

라카인이 품에 안고 있던 등불을 조심스럽게 당겼다. 다행히 등불은 물이 새지 않아 계속 밝았다.

두 사람은 등불에 달린 줄을 잡고는 계속 아래로 잠수했다.

한줄기 빛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자 절대로 빛이 번지지 않는 공간이 나타났다.

사제가 말했던 텅 빈 공간이었다.

투이나는 물이 뻥 뚫린 공간을 담고 있으면서도 왜 그쪽으로 휩쓸려 가지 않는지 궁금했다.

‘저기도 영혼의 세계일까? 비늘을 만졌을 때 봤던 통로와 비슷하게 생기긴 했어.’

첫 번째 등불의 빛이 약해졌다.

그걸 알아차린 순간 머리 위쪽에서 두 번째 등불이 물을 가르고 내려왔다.

스카차가 미리 내려 보낸 것이다.

라카인이 불이 꺼진 등불에 달린 돌을 떼어내고 위로 올려 보냈다.

투이나가 살짝 위로 떠올라 두 번째 등불을 잡았다.

‘어쨌든 조심해야 해.’

사제의 말대로 그 공허는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투이나와 라카인은 서로의 무게를 이용해 가며 닿지 않도록 위치를 조절했다.

곧 호수의 바닥이 보였다.

투이나는 점점 뻑뻑해지는 눈으로 아래쪽을 훑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여.’

그때 라카인이 첫 번째 등불에서 떼어냈던 돌을 그대로 두 번째 등불에 묶었다.

라카인의 눈짓에 투이나가 잡고 있던 밧줄을 놓았다. 그러자 무게가 더해진 등불이 천천히 그들을 지나쳐 내려갔다.

그리고 부드럽게 심장 옆으로 떨어졌다.

“……흐급!”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입 안에 든 숨을 다 뱉을 뻔했다.

‘정말 있었어!’

호수 바닥에서 손바닥만 한 심장이 새빨갛게 뛰고 있었다.

두근두근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심장이 움직일 때마다 호수 바닥에서 고운 모래가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라카인마저 놀람을 감추지 못할 정도였다. 물속에서 흐트러진 그의 앞머리가 어지럽게 흐느적거렸다.

‘살아 있는 심장이야.’

투이나가 서둘러 심장 쪽으로 잠수했다.

‘시드룬이 아직 살아 있으니까 저 심장도 함께 뛰는 걸까?’

분명히 어떤 마법이 저기 걸려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여전히 아르힘이 시드룬의 심장을 지켜 주는 걸지도 모르고.

‘어쨌든 돌려줘야 해.’

투이나가 양팔을 뻗었다. 심장은 얌전히 그녀의 손에 잡혀 주었다.

그러나 그 뒤까지 얌전하진 않았다.

“……!”

투이나가 물속에서도 소스라쳤다.

따듯하던 심장이 그녀의 손이 닿자마자 회색빛으로 변해 갔던 것이다.

‘어째서……?’

회색빛 심장이 점점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까맣게 타들어갈 것처럼.

‘안 돼, 시드룬!’

투이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지금 내가 그를 죽여 버린 건가?’

투이나는 똑같이 심장이 멎어 가는 기분에 휩싸였다.

투이나의 입에서 남은 호흡이 마구 터져 나왔다. 비명 대신 거품이 쏟아져 나왔다.

라카인은 지금이야말로 기다리던 절호의 기회라는 걸 알아차렸다.

루가는 충격을 받았다.

그가 손 쓸 필요도 없이 내버려 두면 그녀는 죽을 것이다.

‘명령이 우선이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미 앞으로 쏠린 뒤였다.

그녀는 내버려 둬도 죽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러니 따라야 할 명령은…….

‘올라가야 한다.’

흐늘거리는 투이나의 몸을 붙잡은 라카인이 돌덩이처럼 굳은 심장까지 챙겼다.

심장이 왜 변한 건지 상관없었다. 궁금하지도 않았다.

단지 주군이 원한 물건이니까.

단단히 투이나를 껴안은 그가 우선 명령대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런데 호수 위에 무언가 있었다.

“……!”

갑자기 라카인은 몸이 뒤로 끌려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호수 전체가 끌려가고 있었다.

빛을 향해서.

“라카인?”

그의 품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투이나는 정신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호수와 허공이 한꺼번에 뒤섞여 올라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그 사실 하나만 마음에 박혔다.

“뒤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네? 그게 무슨…….”

투이나가 그의 어깨를 붙든 순간 수면 바깥으로 두 사람이 솟구쳤다.

엄청난 물방울이 사방으로 터져 나왔지만 그 순간 라카인은 이상하게도 데일 듯이 뜨거운 열기를 느꼈다.

비명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물속으로 들어가요, 라카인!”

투이나가 그의 가슴을 밀친 순간 둘은 분리되어 떨어졌다.

다시 호수 아래로 떨어지면서 라카인은 살갗을 불태울 것처럼 이글거리는 열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추락하기 전까지 투이나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

‘……꼬마?’

풍덩!

호수가 머리부터 그를 집어삼켰다.

그러자 모든 소리가 그를 버리고 나가떨어졌다.

급한 김에 그를 떠밀긴 했지만 투이나는 라카인에게 오래 신경 쓸 수 없었다.

눈앞에 떠 있는 작은 소년 때문이다.

“아르힘 님……!”

소년이 싱긋 웃었다.

솟구쳤던 호수가 출렁이며 바닥으로 다시 떨어졌다. 출렁이는 물보라가 거세게 퍼져 나갔다.

‘아르힘 님이 오셨어.’

거센 안도감이 파도쳤지만 휩쓸릴 수가 없었다.

여전히 신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도 아래쪽을 내려다보려는 충동이 너무 강했다.

‘다들 무사한 걸까?’

얼핏 배 위에 늘어진 스카차가 보인 것도 같았다. 기절한 게 분명했다.

라카인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서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투이나는 제발 그가 무사하기를 간절히 빌었다.

‘또다시 화상을 입힐 순 없어.’

결단코 그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투이나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르힘 님이 소년 모습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신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을 줄 알았어.’

성인이 된 아르힘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녀 자신도 기절했었다.

그래서 아르힘과 대화할 때는 힘을 억제해 그녀를 배려하고 있는 것이라 확신했건만.

소년의 모습으로도 사람들은 쓰러져갔다.

‘하지만 이상해. 아르힘 님이 여전히 힘을 쓰고 계신 거라면 왜 난 여전히 대화할 수 있는 거지?’

지금까지 아르힘이 그녀를 배려한 게 아니었다면…….

‘내가 무엇이기에?’

가장 어두운 밤에도 아르힘이 있는 곳은 눈부시게 밝았다. 이제야 그 빛이 보였다.

“아이야.”

아르힘이 소금물에 젖은 투이나의 머리를 천천히 턱에서 떼어냈다.

“왜 여기서 헤매고 있느냐.”

밤공기가 호되게 젖은 피부에서 열기를 빼앗아 갔다.

그 추위에 투이나는 신을 보자마자 타들어 갔을 라카인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르힘 님! 제발…… 그들을 살려 주세요!”

소년은 웃기만 했다.

다행히 아르힘은 투이나의 숨이 넘어가기 전에 대답해 주었다.

“그들은 이미 살아 있다.”

“안전한가요?”

“네가 가진 심장의 주인만큼.”

물속을 가르고 회색빛 심장이 뛰쳐나왔다.

투이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건 이미 심장이 아니라 돌에 가까워 보였다.

“제가, 제가…… 그의 심장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아니다.”

소년의 모습을 한 아르힘은 자기 손보다 더 큰 심장을 잡았다.

“너의 병이 그리하였지.”

심장이 크게 꿈틀거리더니, 투이나를 치료했을 때와 똑같이 회색빛이 아르힘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원래의 새빨간 빛깔을 되찾을 때까지.

투이나가 멍하니 응시했다.

‘시드룬을 치료하셨어.’

그는 얼룩병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병을 치료한 거라면…….

“왜…….”

머리가 어지러웠다.

‘얼룩병은 만져서 옮는 병이 아닌데.’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왜 저만 치료가 가능했던 건가요? 이렇게……. 시드룬도 치료하실 수 있는 분이신데.”

투이나는 자신이 호수 위에 아르힘과 함께 떠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말을 이어 나가기 위해 애를 썼다.

“혹시…… 저도 마법사인가요? 그래서 병이 치료되는 거라면…….”

“아니다.”

아르힘은 차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년의 눈에 약한 연민이 드러난 것 같았다.

“너는 마법사가 될 수 없다. 그러기엔 네가 지고 있는 짐이 너무나 많구나.”

소년이 슬프게 미소 지었다.

“너의 병은 죽은 자가 만든 것이다. 마법사들은 병든 영혼을 가졌기에 어떤 신이라도 간섭할 수 없지. 언제나 인간이 그들을 죽일 것이다.”

소년이 슬프게 미소 지었다.

“마법사들은 영원히 신을 볼 수 없다. 나 또한 마법사들을 볼 수 없지. 그래서 이 호수에서 있었던 일을 이제야 알았구나.”

“하지만 시드룬과 계약하셨잖아요. 그가 신전을 떠나지 않도록 심장을 가져가신 게 아닌가요?”

“그건 그자가 영혼의 세계에 다녀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르힘이 자꾸만 높아졌다.

투이나는 그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는 걸 느리게 알아차렸다.

“마법사들은 그들이 자신의 영혼에 저지르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악행을 반복하고 있다.”

“그게 무슨…….”

“아이야, 그들을 가여워해도 좋다. 사랑해 주어도 좋다. 허나 믿지는 말거라.”

소년의 눈이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 부드러움처럼 빛났다.

“마법사의 손상된 영혼은 존재를 믿을 수 없게 되어 믿음을 증명할 때까지 한없이 인간을 사용할 것이다.”

그녀는 신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추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영원히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리라.”

아르힘의 음성이 정수리를 타고 흘렀다.

“너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무거운 음성과 함께 투이나의 발이 배에 닿았다.

마지막 파문이 그녀를 통해 퍼져나갔다.

내내 목에서 뭉쳐 가던 아뜩한 질문이 자꾸만 속을 달구었다.

투이나는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하지만 사제님들은요?”

그분들이 정말 마법사인가요?

바깥으로 울려나오지 못한 내면의 질문은 아르힘에게 기도의 형태로 닿았다.

그렇기에 소년은 답했다.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자들이 더 자주 상처를 입지.”

소년의 모습에 안타까움이 깃들었다. 천진난만하던 앳된 얼굴이 잠시 심장을 어루만졌다.

그녀가 계속 보고 있었는데도, 언제 소년의 손에서 심장이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아르힘이 빛을 거두었다.

밤을 차지하던 신의 낮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신의 광휘를 두르고 있던 소년은 빠르게 평범함을 되찾았다.

다만 여전히 사람의 몸을 떨리게 하는 목소리만 남아 있었다.

“두 번 다시는 여기서 잃어버린 것을 찾지 말거라. 이제 어느 생에서든 결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르힘은 사라졌다.

투이나는 한참 동안 허공을 올려다보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스르륵 주저앉았다.

흐느껴 울기 위해서.

라카인은 하염없이 호수 위를 올려다보았다.

물속을 헤엄치면서도 그는 떠오르는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투이나에게 떠밀려 호수로 들어갔을 때 아르힘이 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루가를 죽일 기회는 사라졌다.

라카인은 숨을 참으며 태양처럼 밝은 빛을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은 사라졌다. 

그러나 올라가도 좋을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때 두 손이 수면 위로 내려왔다.

순간 가슴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꽉 억죄었다.

너무도 쉽게 알아본 탓일까. 라카인이 몹시 주저하며 팔을 뻗자 그 손은 너무도 쉽게 그를 끌어올렸다.

“…….”

라카인이 오랫동안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들이마실 수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을 끌어올린 자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사해요?”

새빨개진 얼굴로 투이나가 줄줄 눈물을 흘렸다. 라카인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녀는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라카인의 얼굴을 보더니 참지 않고 흐느낌을 터트렸다.

다행스럽게도 다친 곳이 없었던 것이다.

“흐윽……. 올, 올라와요.”

투이나는 울면서 그를 끌어당겼다.

얼굴을 닦지도 않았다. 어차피 물을 잔뜩 뒤집어쓴 몸이라 달라질 것도 없었다.

라카인은 멍한 충격 속에서 본능적으로 배 위로 몸을 올렸다.

철퍽하고 어깨부터 떨어진 뒤에도 라카인은 고장 난 시계처럼 시선을 움직이지 못했다.

뒤늦게 라카인이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지만 꽤 볼썽사나운 꼴이 되고 말았다.

이상하게 팔다리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질 않았던 것이다.

“아르힘 님은 가셨어요.”

투이나가 몹시도 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훌쩍이며 커다란 천을 가져올 때까지 라카인은 공황 상태에 빠져있었다.

“왜…… 왜 울고 계십니까.”

간신히 그 질문을 던졌지만 투이나는 그다지 귀담아듣는 기색이 아니었다.

라카인은 자꾸만 입으로 흘러들어오는 짭짤한 액체에 정신이 더 혼란스러웠다.

두 사람 다 푹 젖어 버린 한심한 꼴이다. 하지만 투이나는 벌겋게 부어오른 눈으로 꿋꿋하게 천을 펼쳤다.

눈물을 숨길 생각도 없는데 왜 그녀의 눈가가 부풀어 오르는지.

너무나 아파 보였다.

“왜 우냐구요?”

투이나가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 순간 흰 천을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위태롭게 보여 라카인은 자신의 질문을 몹시 후회했다.

“그야 좌절했으니까요!”

투이나가 천과 함께 와락 라카인을 껴안았다. 그는 몸 한쪽이 탈골될 만큼 놀랐다.

곧 투이나가 그를 붙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구할 수 없대요.”

그녀는 방금 호수에서 건져낸 남자를 붙잡고 서럽게 울음을 토해냈다.

“라카인이 내가 여기서 구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이래요.”

투이나의 말이 라카인을 따끔하게 찔렀다.

라카인이 굳어 있는 사이 투이나는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보드라운 감촉과 온기가 그를 감싼 채 울고 있었다.

라카인은 축축하게 스며드는 물기에 어마어마한 죄책감을 느꼈다.

라카인은 얼른 천을 꾹 움켜쥐어 주먹에서 물기를 짜내었다. 적어도 등을 두드려 줄 거라면 건조한 손이 낫다.

단단히 잠긴 목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까?”

“신께서 알려 주셨어요.”

실종된 사람들을 찾을 수 없다는 신의 확언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다.

‘어째서 주군은…….’

라카인은 목 안쪽이 꽉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이럴 때 적당한 위로 한마디조차 생각나지 않다니.

그는 울고 있는 등을 토닥이는 것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긴장한 채로 두드렸다가 투이나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허윽, 하고 앞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거의 계란을 쥐듯이 살살 힘을 빼야 했다.

한참 만에야 요령이 생긴 라카인이 주저하며 말했다.

“……저는 구하셨잖습니까.”

“…….”

“루가 님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라카인이 한 마디씩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이걸로 그녀가 울음을 그치는 일은 없겠지만. 견딜 수는 있길 바라면서.

투이나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가는 물줄기가 흐른 얼굴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라카인은 등을 두드리던 동작도 잊어버렸다.

“그래요.”

투이나는 문득 라카인의 눈이 아주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젖은 머리 때문에 평소보다 더 얼굴을 알아보기는 어려웠지만.

차츰 눈물을 거두며 투이나는 라카인의 눈에 집중했다.

생명력이 넘치는 까만 눈동자.

‘예뻐.’

투이나가 저도 모르게 살짝 웃었다.

라카인은 그대로 숨이 멎을 뻔했다.

“그래요. 라카인이 무사하니까.”

그녀는 우느라 휘청거렸던 몸을 다시 똑바로 세웠다. 그러고는 제대로 라카인을 꽉 끌어안아 주었다.

“살아 주면 그걸로 됐어요.”

따듯한 체온에도 불구하고 라카인은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너무도 인간적인 접촉인데도, 겨우 그 정도에도…… 몸속에서 무언가 끓어올랐다.

문득 깜짝 놀란 투이나가 그에게서 떨어졌다.

“어어, 열이 좀 나는 것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라카인이 간신히 말을 만들어냈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투이나의 시선을 견디며 그가 필사적으로 침착함을 가장했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루가 님. 이제 돌아가셔야지요.”

“아, 참, 네! 스카차!”

투이나가 등을 돌렸다.

비로소 라카인은 머릿속을 혼탁하게 만들던 긴장 상태에서 풀려났다.

몸이 뜨거웠다.

그러나 투이나가 걱정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투이나를 위로한 것과 반대로 그는 죽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싶은 고통과 함께.

그는 감히 신을 부를 수조차 없어 양손으로 무뢰한의 얼굴을 짓눌렀다.

스카차는 얌전히 흔드는 것만으로도 깨어났다.

갑작스런 기절이었지만 누가 다녀갔는지 알자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아르힘 님이 왔다 가셨다뇨!”

흥분한 그가 일어서느라 배가 흔들렸다.

스카차가 불끈 주먹을 쥐었다.

“역시 그분이 구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투이나는 그냥 씁쓸함을 혀로 눌러 으깨었다.

“돌아가서 사람들에게도 알려야겠죠.”

“예. 다들 납득할 겁니다.”

얼른 맞장구를 치던 스카차가 풀이 죽은 투이나와 라카인의 분위기에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저자는 누구한테 맞았습니까?”

“…….”

라카인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시선을 내렸다.

덩달아 투이나까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아까보다 얼굴이 조금 부었나?’

누가 손가락으로 꽉 누른 것처럼 라카인의 턱과 이마에 빨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시선을 느낀 그는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에서 물기를 털어내며 그 자국을 가려 버렸다.

라카인은 평소처럼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루가 님, 돌아가시기 전에 몸을 가리셔야 합니다.”

“아아, 맞아요.”

투이나가 고스란히 얼룩이 드러난 몸을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소금물에 계속 휩쓸리는 바람에 분칠이 몽땅 지워져 있었다.

“안 그래도 설명할 게 많은데 이거까지 더해 줄 순 없겠죠.”

“제가 기절한 사이에 아르힘 님이 어떤 중요한 말씀이라도 하셨습니까?”

“아주 많이요.”

물이 마른 그녀의 몸이 차츰 노곤해졌다.

라카인은 말없이 그녀의 머리부터 천을 둘러 주었다.

“으음, 호루니한테 설명하는 연습도 할 겸 지금 말을 정리해 볼까요.”

투이나가 노를 젓는 스카차의 옆에서 쪼그렸다.

“사제님은 마법사가 맞았어요.”

“컥, 크헉!”

순간 팔에 힘을 잘못 준 스카차가 정통으로 노에 배를 찔렸다.

“괜찮아요?”

“예에……. 아니, 저야 아무래도 좋습니다. 루가 님. 설마 사제님들에게 그대로 말씀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안 되겠죠.”

투이나가 턱을 괴었다.

“그 얘기를 하다 보면 시드룬의 이야기도 해야 할 테니까.”

그녀가 배 옆으로 흐르는 물살을 응시했다. 보다 심각한 분위기를 알아차린 스카차가 입을 다물었다.

“실종된 사람들을 다시는 찾을 수 없대요.”

“…….”

“대신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사라지는 일도 없을 거예요.”

“그건 다행이군요.”

‘이걸 대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나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으리란 말은 좀처럼 그녀에게서 뽑혀 나가지 않았다.

투이나가 무릎을 끌어안았다.

‘마법과 신의 힘은 서로 간섭하지만 서로 볼 수는 없다면……. 마법과 신의 힘이 거부당하는 것으로 존재를 느낄 수는 있어도 각자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어.’

그래서 시드룬도 아르힘도 이 소금 호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했다면 말이 된다.

‘하지만 이 논리가 가능하려면 내게도 신의 힘이 깃들어 있어야 해.’

투이나는 손등을 들었다.

아직 가려지지 않은 회색 얼룩이 얌전히 흔들렸다.

죽은 자의 얼룩.

시드룬은 영혼의 세계에 드나들 수 있는 건 신뿐이라고 말했다.

‘내가 되살아났을 때 아르힘 님이 나를 바꿔 놓은 걸까?’

투이나가 손등을 감싸 쥐었다.

‘죽은 뒤에도 영혼의 세계에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투이나는 병에 걸린 손가락을 입술로 깨물었다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죽기 전과 같은 사람이다.

영혼과 마법이 잡힐 듯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투이나가 한숨을 쉬며 생각을 털었다.

‘시드룬에게 마법사가 되는 방법을 물어봐야 해.’

거기에 실마리가 있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배는 곧 호숫가에 가까워졌다.

투이나는 얼룩투성이 몸을 끌어당겨 천을 통째로 뒤집어썼다.

“루가 니이임!”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까지 뜬눈으로 기다리던 호루니가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엉겁결에 투이나가 따라 손을 흔들려다 얼른 자제했다.

‘그래도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돌아왔어.’

투이나는 몸에 감기는 천을 단단히 붙잡았다.

‘더는 사람들이 위험해지는 일도 없겠지.’

그 정도라도 올 가치가 있었다.

오랜만에 살갗 하나 드러내지 않은 채로 그녀가 폴짝 배에서 뛰어내렸다.

눈치 빠른 호루니는 투이나가 얼굴을 가린 것만으로도 상황을 이해했다.

“물러나세요! 루가 님이 돌아오셨으니 이제 쉬셔야 합니다.”

“잠깐만 비켜 보거라!”

“너도 아까 보지 않았느냐!”

그 와중에 사제들이 기를 쓰고 엉겨 붙었다.

“루가 님, 저희도 빛을 보았습니다!”

“호수에 나타나신 게지요?”

사제들의 눈에서 번득이는 과하게 열정적인 희망을 본 투이나가 선뜻 자신이 배에 싣고 온 희망을 나눠 주었다.

“네. 이제 아무도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투이나가 가려진 얼굴로 말했다.

“사라진 사람들은요?”

“어디로 간 겁니까?”

“아르힘 님께서 찾아 주셨어요?”

사람들은 쉽게 만족하지 못했다.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다는 아르힘의 말을 전하려던 투이나가 멈칫했다.

그들의 아우성처럼 자신의 마음에도 걸림돌이 있었다.

그녀는 그대로 잃어버린 사람들을 포기해 버릴 수가 없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하셨지만 죽었다고는 안 하셨어.’

마법사는 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투이나는 신의 루가다.

마법사의 도움을 청한다는 것만으로도 파멸할 수 있었다.

「그들을 가여워하고 사랑해도 좋다.」

투이나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의 불안을. 호수에서 사라진 희망을.

「하지만 믿지는 말거라.」

아르힘의 경고가 마음을 떠돌다가 흩어졌다.

* * *

투이나는 소금 호수가 안전해졌다는 소식만 전하고 곧장 떠날 준비를 했다.

설명을 끝낼 쯤에는 날이 밝았으므로 사제들이 조금이라도 자고 갈 것을 권했지만 투이나는 사양했다.

“아직 못 끝낸 일이 있어서요.”

하지만 투이나가 마차에 올라탔을 때는 너무 졸렸다. 호수에서 있었던 일은 그만큼 진이 빠졌던 것이다.

‘한참 동안 잠수한 데다가 소금물을 씻는 것도 오래 걸렸고, 분칠까지 했지.’

게다가 우는 것만큼 지치는 일이 없었다. 라카인이 없었다면 우는 데에 남은 체력을 다 써 버렸을 것이다.

라카인도 분명 놀랐을 텐데.

차분히 감정을 가라앉힌 그의 눈동자가 그녀를 진정시켜 주었다.

흔들림 없는 눈매는 시선을 잡아 둘 만큼 아름다웠다.

‘왜 눈을 가리고 다닐까?’

묵묵한 라카인의 등짝을 보고 있던 투이나가 늘어져라 하품을 했다.

“흐아암…….”

“주무세요, 루가 님.”

호루니가 자리를 바꿔 앉았다.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드릴게요.”

단단한 팔이 붙잡자 투이나가 안심하고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고마워요, 호루니. 도착하면 꼭 깨워 주셔야 해요. 신전으로 돌아가도 시드룬이랑 만날 시간이 부족할 테니까…….”

“그럴게요.”

중얼거리던 투이나가 금세 나가떨어졌다.

색색거리며 잠든 그녀를 흘긋 본 스카차가 슬쩍 마차 속도를 늦췄다. 조금이라도 오래 자길 바라서였다.

라카인은 계속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저 바깥에서 루가를 죽일 기회를 잃었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 외에 다른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호수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투이나가 잠든 걸 확인한 호루니가 물었다.

스카차가 불편한 얼굴로 고삐를 잡아당겼다.

“나도 기절해서 잘은 몰라.”

“…….”

호루니는 답을 알고 있을 자의 등을 잠깐 노려보았다.

신이 왔다면 그가 불타 버렸어야 하는데 라카인은 여전히 멀쩡해 보였다.

그의 신앙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

불가능한 일이다.

호루니는 그냥 투이나만 붙들었다.

스카차도 아니고 라카인이 멀쩡하게 모든 걸 보고 돌아왔다는 사실이 분했다.

그래 봤자 아르파인인데.

어차피 모하세스한테 쪼르르 달려가 말해 버릴 텐데.

하긴 덩치가 큰 라카인이 쪼르르 달려간다는 건 어감이 좀 이상했다.

불신 속에서 호루니가 유일한 믿음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믿음은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마음이 복잡해진 호루니는 그냥 빨리 신전에 도착하기만 바랐다.

최소한 투이나가 편하게라도 잠들 수 있도록.

* * *

신전으로 돌아온 투이나는 간략하게 호수에서 있었던 일을 전달했다.

사제들은 당황했으나 아르힘의 이름으로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다.

“추모회를 열어야겠군요.”

한 사제가 씁쓸하게 말했다.

실종된 사람들에게 사망 선고를 내린 셈이다.

투이나는 그들을 말릴 수 없었다.

방으로 돌아온 투이나는 혼자 있고 싶다며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시종들은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한다며 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시종들의 생각처럼 비애에 잠겨 있진 않았다.

‘그럴 시간이 없어.’

곧장 등불을 챙기는 투이나를 보며 호루니가 중얼거렸다.

“조금만 쉬었다 가시지…….”

“마차에서 충분히 잤는걸요.”

투이나가 가볍게 답했다.

사실 마차를 타고 오느라 어깨와 허리가 욱신거리고 눈꺼풀이 무거웠다. 그래도 아직 편하게 눕고 싶지 않았다.

“시드룬만 만나면 꼭 쉴게요.”

“이번엔 저도 가고 싶어요, 루가 님.”

호루니가 선수를 쳤다. 호수에서 혼자 있던 시간이 충분히 힘겨웠던 모양이다.

혼자 남겨질까 봐 스카차가 성급하게 끼어들었다.

그도 기절해 있는 동안 있었던 일이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저희 모두 데려가실 수도 있습니다. 호수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서 당분간 아무도 루가 님을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럴까요?”

투이나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시드룬의 마법은 빨랐으니까.

실종된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 없다, 대답만 듣고 나면 돌아올 생각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투이나가 등불을 켜고 올리자 곧 마법이 나타났다.

“루가.”

시드룬이 평소와 똑같은 얼굴로 마법진 너머에 나타났다.

“오늘 연구를 도와줄 준비가 되었습니까?”

“아뇨. 대신 질문을 가져왔어요.”

시드룬은 군말 없이 그들을 마법진 너머로 데려갔다.

이번에는 제대로 마법진을 연결했는지 바깥이 아니라 시드룬의 집 안이었다.

투이나는 무심하게 서 있는 시드룬을 보자 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아르힘의 소금 호수에 영혼의 세계로 가는 통로가 열렸어요.”

그의 비스듬한 자세가 단번에 풀렸다.

“호수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사라져 버렸고요. 당신이 그들을 찾을 수 있나요?”

“더 자세히 얘기해 보십시오.”

투이나는 호수에서 보았던 것과 아르힘이 왔다는 이야기까지 모두 얘기했다.

다만 심장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아르힘 님은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시는 거지?’

아르힘은 심장을 가져가고, 그다음에 어떻게 할지는 투이나에게 맡겨 두었다.

신에게서 얻은 답에 만족할 수 없어 마법사를 찾아온 자신을 탓하실까 생각하자 투이나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하지만 신이 그녀를 데려온 이유는 사람들을 돌보라는 뜻에서였다.

맡겨진 임무가 그러했다.

‘어쩌면 신을 따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사람의 차이일지도 몰라.’

대화는 긍정과 부정을 모두 품고 있다.

마디악이 결코 왕이 나와선 안 된다고 했던 얘기처럼 아르힘은 신도들에게 반대할 권리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오해가 아니라면 좋겠어.’

시드룬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당신이 보았던 현상은 모두 영혼의 세계와 일치합니다. 하지만 호수에서 있었던 원인을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두 가지가 빠져 있는데, 내가 뭔가 놓친 게 있다면…….”

그의 눈동자가 투이나를 향해 빙글 돌았다.

꽤 무서웠다.

“혹시 소금 호수에서 태어났습니까?”

“아뇨. 전 수도 출신이에요.”

망설이던 투이나가 결국 털어놓았다.

“……원인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호수 밑으로 내려갔을 때 심장 하나를 발견했어요.”

투이나가 살짝 숨을 참았다.

“전 아무래도 그게…… 시드룬의 심장 같아요.”

투이나는 경악하는 호위들을 보며 시드룬도 놀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시드룬은 전에 투이나를 충동적으로 붙잡았던 것처럼 격렬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묘하게…… 덤덤했다.

“그렇군요.”

“음……. 시드룬? 당신 심장이 없는 줄 알았어요?”

“몰랐습니다.”

“그런데 안 놀라네요?”

‘누가 보면 평소에도 심장을 흘리고 다니는 줄 알겠어.’

시드룬이 당황스러울 만큼 평이하게 말했다.

“당신이 짐작해 냈다면 옳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그가 훅 치고 들어오자 투이나는 완전히 어리둥절해졌다.

“절 그렇게 믿었어요?”

“믿음이 아니라 직관에 가깝습니다.”

시드룬이 삐걱거리는 의자를 옮겼다.

투이나는 자신의 옆에 나타난 의자를 당겨 앉았다. 얘기가 길어질 거란 신호였기 때문이다.

“영혼은 육체입니다.”

시드룬이 무표정하게 설명했다.

“영혼이 몸에 간섭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몸 또한 영혼에 간섭할 수 있습니다. 신과 마법의 관계처럼.”

신이 마법을 보지 못하듯, 마법사가 신을 가질 수 없듯, 육체는 영혼을 볼 수 없고 영혼은 육체를 볼 수 없다. 서로 분명히 연결되어 있는데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다.

투이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죠?”

“전쟁으로 다친 자들은 영혼까지 손상되기 쉽습니다. 영혼을 다친 자들은 육체의 통증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시드룬이 말했다.

“마법사들을 연구하러 다닐 때 나는 많은 마법사들이 전쟁터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분포는 수호신을 가리지 않더군요.”

당장 투이나의 머릿속으로 레이벡이 떠올랐다.

도망자 마법사.

그리고 이 마을은 도망친 마법사들의 마지막 피난처였다.

“많은 증거 자료가 수집되어 있으니 원한다면 보여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아니에요. 하지만 영혼은 죽을 때가 아니면 볼 수 없잖아요.”

“일반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시드룬의 말에 투이나의 눈썹이 모였다.

“당신도 이미 영혼의 존재를 증명할 다른 두 가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신과 마법.

투이나가 무의식적으로 입을 가렸다. 생각이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었다.

“아르힘 님께서 마법사들은 영혼이 병든 자들이라 하셨어요.”

“그런 표현도 가능합니다.”

시드룬은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영혼이 신과 마법을 선택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의 입장으로는 마법이 병처럼 보이겠군요.”

투이나는 너무도 깊이 그의 설명에 공감하고 말았다.

‘둘 다 사람의 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해.’

수호신이라는 기적 때문에 마법사들의 마법은 상대적으로 낮게 취급되었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은 세계의 상식을 파괴할 수 있었다.

시드룬처럼.

투이나는 가렸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시드룬은 아까 영혼은 육체라고 했었죠. 영혼이 우리에게 신과 마법을 준다면……. 영혼이 정말로 육체의 일부라면…….”

투이나가 한순간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의 육체를 가져간다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소리인가요?”

“그렇습니다.”

시드룬의 눈빛이 깊어졌다.

“당신이 호수에서 보았던 심장이 정말로 영혼의 세계를 열었다면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것뿐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세계를 열 때 필요한 건 비늘이라면서요? 일단 다른 원인을 빼 놓고서라도 보라색 비늘이 아니면……!”

다급하게 말하던 투이나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크게 떠진 그녀의 두 눈이 시드룬의 머리카락에 고정되었다.

그도 보라색이다.

‘설마…….’

투이나는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시드룬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도 연한 보라색이다.

“시드룬.”

투이나가 넋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 어떻게 살아 있는 거죠?”

“…….”

시드룬은 끝없이 펼쳐진 공허처럼 말없이 투이나를 응시했다. 그는 이미 그녀가 답을 알았다는 걸 이해했다.

투이나는 빠져나갔던 물살이 한꺼번에 그녀를 덮치는 것 같았다. 물에 들어가기 직전에 내는 숨소리처럼 그녀가 헐떡였다.

“그 비늘이 한때는 당신의 육체였나요?”

“예.”

“그럼 지금 당신은 무엇이 되어 있나요?”

시드룬은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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