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예? 누가 실종됐다고요?”
아르망은 책상 위에 어지럽게 쌓여 있던 서류들이 바닥으로 흩어지는 것조차 모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앞에 선 하인트가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영주님께서 실종되셨다는...... 웬델 경의 밀서가 도착했습니다. 저도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확인해 보았지만 전부 사실이었습니다.”
“허.......”
아르망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터트리며 제 머리를 아무렇게나 쑤석였다.
‘실종?’
입술을 잘근 깨문 그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1급이건 2급이건, 아무리 위험한 마물이라고 한들 그 마물보다도 위험한 것이 에드윈 클로비스라는 사람이었다. 마물에게 삼켜졌다면 그 배와 내장을 모조리 찢어 가르고 바깥으로 나올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런 그가, 실종됐다고?
“이건 말도 안 돼.”
아르망은 자신에게 되뇌듯 그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그 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하인트 또한 말없이 허리를 숙일 뿐이었다.
똑똑.
“아르망 님. 헤일리 힐데트 양과 베아트리스 힐데트 양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시종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정신을 차린 아르망은 잠시간의 고민 끝에 책상을 돌아 나갔다.
“......응접실로 가지. 마침 패트릭 경 쪽으로 보낼 물품에 관한 이야기도 나눠야 했으니.”
“안내하겠습니다.”
하인트 또한 금세 충격을 갈무리하고 정중한 태도로 돌아와 집무실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슬픔을 숨기고 억누르는 데 지독히도 익숙한 사람이었다.
아르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응접실에 다다랐다. 소파에 앉아 있던 베아트리스가 그의 등 뒤로 문이 닫히자마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영주님께서 실종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그녀의 낮은 물음에 아르망이 이마를 짚었다. 옅은 침음을 흘린 그가 걸음을 옮겨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생각보다 빨리 알아채셨군요. 또 누가 알고 있습니까?”
“저희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수 있었던 건 카라스테 상단의 정보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에게까지 소식이 퍼져 나가려면 못해도 일주일은 더 있어야 할 것이라 자부할 수 있어요.”
베아트리스가 언뜻 오만하게도 느껴지는 어조로 답했다. 그러나 그 말은 과장 한 점 없는 진실이었다. 그제야 안도한 아르망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영애들께서 직접 찾아오실 정도라면...... 더 볼 것도 없이 사실이 확실하겠군요.”
아르망은 드물게도 힘없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거뭇거뭇한 눈그늘이 그의 피로와 초조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베아트리스와 시선을 한 번 교환한 헤일리가 입을 열었다.
“영주님께서 실종되신 곳이 제르쉬 평원이라고 했던가요?”
“예. 당시 이유 모를 빛이 터져 나오고 1급 마물들이 황급히 사라지면서 땅을 좀 더 헤집어 놓기는 했지만, 아마도 그 근처일 겁니다.”
손끝으로 눈가를 몇 번 문지른 아르망이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당장은 수색 인원을 충원할 만큼의 여력이 없는데.......”
현재 유스티아의 경계를 지키고 있는 병력은 최소한의 수치다. 만약 수색대를 차출하게 된다면 경계의 방비에 구멍이 생긴다.
물론 거의 모든 병력이 호노라투스에 집중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누군가 유스티아를 침략해 올 가능성은 무척 낮았지만, 마물 또한 경계 대상에 속했기에 완전히 경계를 늦츨 수는 없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르망이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또다시 한숨을 쉬던 차였다.
“그러니까 저희가 이렇게 찾아온 것 아니겠어요.”
생긋 웃음 지은 베아트리스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제르쉬 평원과 호노라투스의 중간 지점에 카라스테 상단 지부가 하나 있어요.”
그 말에 아르망이 고개를 홱 들어 올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부터 들고 본 그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그에 베아트리스와 닮은 미소를 설핏 흘린 헤일리가 그녀의 말을 받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기사나 병사보다 오히려 저희 쪽 직원들이 더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영주님을 찾는 건 저희에게 맡겨 주세요.”
그녀의 입에 걸린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단단했다.
“이건 누구 혼자만의 싸움이 아닌, 저희 모두의 싸움이기도 하니까요.”
* * *
눈을 뜨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침침한 어둠이었다.
‘......어디지?’
레이린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눈을 몇 번 깜박여 몽롱함을 떨쳐 내고는 소리 없이 눈을 굴려 주변을 살폈다.
저 멀리서 똑, 똑, 하며 물 떨어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차갑고 축축한 공기에 그녀가 느리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딘지 루나를 생각나게 하는 짙은 약초 향이 물씬 풍겨 왔다.
‘지하인가.’
땅이 무너지는 틈으로 에드윈과 함께 떨어졌으니, 이곳은 아마도 땅 아래, 혹은 동굴쯤 되려나.
‘-에드윈은?’
직후 머릿속에 벼락이 꽂히듯 에드윈의 이름이 퍼뜩 떠올랐다. 레이린은 반사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전신이 비명을 지르듯 욱신거렸으나 그것은 사소한 관심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언뜻 공포에 질린 듯이 보이기까지 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흠칫하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
흐릿한 주홍색의 촛불이 위태롭게 일렁이는 오두막의 저편. 레이린 자신이 누워 있던 곳과 같은, 일견 해먹처럼 보이는 침상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레이린은 잠시간 멍하니 그 모습을 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숨을 죽이고 에드윈의 곁으로 다가간 그녀가 손가락을 뻗어 그의 코밑에 대었다.
“......에드.”
에드윈이 느리게나마 일정하게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휘청거리며 바닥으로 무너져 내린 레이린은 에드윈의 침상 옆에 무릎을 꿇은 채로 그의 손을 더듬더듬 움켜쥐었다. 거친 손을 절박하게 감싸 쥔 그녀가 그의 손에 제 이마를 가져다 대며 이를 악물었다.
‘살아 있어.’
살아 있다. 늦지 않았다. 아직은, 미안하다는 말을 전할 기회가 있다. 그 사실이 이처럼 감사할 수가 없었다.
레이린은 필사적으로 숨을 고르며 속에서 울컥 치받는 감정을 다스리려 애썼다. 이윽고 완전하게는 아니나 어느 정도 이성을 되찾은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황금색 눈이 오두막 곳곳에 걸려 있는 말린 약초, 그리고 에드윈의 몸에 감겨 있는 약초와 붕대를 차례로 훑었다.
에드윈의 환부에 붙어 있는 약초를 확인한 레이린이 설핏 미간을 좁혔다.
‘어쩐지.......’
루나가 생각나는 치료 방식인데.
“일어나셨습니까.”
그때, 불쑥 인기척과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레이린이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며 몸을 일으켰다가 전신을 강타하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일찍 깨어나신 것은 다행인 일입니다만, 그렇게 갑작스러운 움직임은 몸에 무리를 줍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신 것이 아니니까요.”
레이린은 그제야 제 몸에도 붕대와 약초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든 직후, 숨을 멈췄다.
오두막의 문을 열고 들어온 노인의 손에는 간단한 식사 거리와 약초, 새 붕대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레이린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그의 손에 들린 바구니 따위가 아니었다.
“......수인족?”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려 중얼거렸다. 잔뜩 긴장해 허리춤으로 향해 있던 손이 저도 모르게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 말에 머리카락 위로 비죽 솟아 있는 귀를 한 번 쫑긋거린 노인이 긴 꼬리를 살랑이며 테이블 위에 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온전한 혈통의 수인족은 이제 찾아볼 수 없지요. 저희는 미욱하게나마 그 피를 이어받은 자들일 뿐입니다.”
노인의 말에 문득 낯선 얼굴들이 레이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살고 싶어요.’
체념과 좌절이 깃들어 있던 얼굴. 그러나 삶에 대한 의지로 형형히 빛나던 눈. 오브리 샌더슨을 구하기 위해 찾았던 경매장에서 보았던 수인족 혼혈들. 노인은 레이린이 그때를 떠올린다는 것을 눈치챈 듯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일전에 저희 식구들이 큰 은혜를 입은 적이 있었지요. 이렇게나마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부터 돌아온 호의에 레이린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나 곧 습관처럼 동요를 억누른 그녀가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루나를 알고 있나?”
아까부터 들었던 의문을 꺼내어 놓자 노인이 빙그레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와 한 식구처럼 지냈고, 제 손으로 직접 가르쳤던 아이입니다. 모를 리가 없지요.”
그제야 기이하리만치 익숙하던 치료법이 이해가 갔다.
‘저를 팔겠다고 했던 성에 도착하기 하루 전날 밤에, 어떤 사람들이 용병단을 습격했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저를 구했죠.’
‘그들은 어린 저를 대가 없이 보살펴 줬어요. 입히고, 먹이고, 약초에 대해서도 가르쳐 줬죠.’
더불어 루나가 그리 말한 은인들이 누구인지도.
“다 커서는 인간인 자신이 이 마을에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며 제 발로 떠나가 버리긴 했지만, 여전히 제 자식처럼 여기고 있는 아이입니다.”
“.......”
“앞으로도 루나를 잘 부탁드립니다, 이 땅의 마지막 신이시여.”
레이린은 초연한 태도로 제게 고개를 숙여 보이는 촌장을 무감하게 응시하다가 물었다.
“......이곳은 어디지? 우리가 이곳으로 떨어진 지는 얼마나 지났고?”
노인은 예상했다는 것처럼 담담하게 답을 돌려주었다.
“이곳은 제르쉬 평원 지하에 있는 저희의 마을입니다. 두 분께서 지하로 떨어지신 이후로는 사흘가량이 지났지요.”
사흘. 레이린은 저가 정신을 잃기 직전의 상황과 날짜를 재빨리 가늠해 보았다.
‘지금쯤이면 엘빈이 라그나르를 도와서 호노라투스 쪽으로 합류했겠군.’
라그나르.
“.......”
그 이름을 떠올리자마자 속이 묵직하게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칼리고.’
‘린, 도망.......’
레이린은 머릿속을 두서없이 울리는 목소리에 눈을 꾹 감고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만약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물어야 할 말이 여럿 생겨 버렸다.
왜 나한테 그렇게 잘해 줬어? 왜 그렇게까지 나만을 위해서 살았어? 나를, 그때의 우리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
“......나는 호노라투스로 가야 해.”
레이린은 눈시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는 호흡을 골랐다.
“내 손으로, 내가 직접 끝마쳐야 할 일이 있어.”
복부를 관통하던 검, 찢어질 듯하던 통증. 그것들을 상기하자 뜨겁게 달아올랐던 마음이 순식간에 식어 내렸다. 어느새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의 레이린이 눈가를 짚던 손을 내리며 눈을 떴다.
“혹 전쟁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나?”
그 물음에 노인이 눈썹을 슬쩍 일그러트렸다.
“현재 에르치니아 연합군은 주술사들의 방어에 막혀 잠시 물러난 상태이고, 유스티아군과 마티아스군이 짧은 교전을 반복하며 호노라투스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인자한 인상의 얼굴이 오묘한 기색으로 물들었다.
“지금 바로 떠나시려는 겁니까?”
레이린은 그 말에 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 창백한 얼굴로 쥐죽은 듯 누워 있는 에드윈의 모습이 닿았다.
“......내가 언제, 어디로 떠났는지는 말하지 말아 줘. 부탁하지.”
자그마한 읊조림이 빠르게 허공으로 퍼지며 흩어졌다. 황금빛 머리칼과 눈을 지닌 여인의 옆얼굴이, 실바람에 위태롭게 일렁이는 촛불처럼 느껴져서일까. 노인은 답지 않게 또다시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말을 덧붙였다.
“좋으신 분입니다.”
“알고 있어.”
“또한 좋은 인연이기도 합니다. 두 분께서는.......”
“아니.”
레이린은 더 듣기 힘들다는 듯 강한 어조로 노인의 말을 끊었다.
내내 굳어 있던 입가에 시린 자조가 스쳤다. 그녀는 저 자신에게 잊지 말라 당부하듯이 다시금 말했다.
“나와 엮이면 죽을 남자야.”
자신만 아니었다면 에드윈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볼품없이 나락까지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머리 꼭대기에서,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굳건하게 서 있었을 것이다.
기실 에드윈을 찾아 달려올 때까지만 해도, 함께 죽어달라 애원하는 한이 있어도 그의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미안하다, 아가.’
자신에게 묶여 있는 수많은 생명의 무게를 깨달아 버린 지금은, 차마 그때와 같은 마음일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게 맞아.”
행여 나의 죽음과 불행에 이 사람이 휘말리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정말로 견딜 수가 없어질 테니까.
레이린은 차마 손은 뻗지 못하고 눈길로만 가만히 에드윈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안타까운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인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비록 미약하긴 하나, 저희는 수인족의 특성을 일부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자연재해를 느끼는 짐승과 같은 기감 또한 포함되어 있지요.”
“.......”
“두 분께서는 서로를 살릴 인연이십니다.”
레이린은 저를 위로하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는 말에 끝내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고맙네.”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에드윈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오두막을 나서기 위해 발을 옮겼다.
그때, 촌장이 그녀의 팔을 붙들었다.
“정 그러시다면 제 아들을 붙여드리겠습니다. 길눈이 밝은 아이이니 군대의 눈을 피해 호노라투스까지 안전하게 도착하실 수 있을 겁니다.”
레이린은 차마 그 부탁까지는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락을 표한 그녀는 이내 검은 로브로 온몸을 휘감고는 노인의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틀 후.
“.......”
사방이 침침한 어둠 속에서, 에드윈이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