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87)

* * *

저벅-

적막한 복도에 묵직하고 정갈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표정뿐 아니라 생기마저 모조리 사라진 듯 보이는 얼굴의 에드윈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왕궁의 복도를 가로질렀다.

「 긴히 나눌 말이 있으니 궁으로 오도록. 」

약 이틀 전, 왕은 무례하리만치 짤막한 말이 담긴 서신을 은밀히 전달해 왔다. 왕의 서신을 본 아르망은 조소를 숨기려는 노력조차 없이 비아냥댔다.

‘이번엔 또 무슨 지랄병이 도져서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건지. 쯧.’

그에 반해 에드윈은 동요 한 점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신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차분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유를 궁금해하지도, 싸늘히 미간을 좁히지도 않았다. 그는 아무런 반응도 내비치지 않고 묵묵히 떠날 채비를 할 뿐이었다.

아르망은 그런 그의 모습에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벌렸다가, 끝내는 앓는 소리만 흘리며 제 머리칼을 헝클었다.

우뚝.

“.......”

에드윈은 알현실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제 앞을 가로막은 고풍스러운 문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가, 이내 문에 손을 올렸다. 잘 관리된 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그리고 열린 문 너머로, 기다란 비로드 끝의 왕좌에 앉은 바로크 드 루에이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왔나, 에드윈 클로비스.”

평소보다 한참이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텅 빈 알현실의 천장을 울렸다.

알현실의 유리창을 통해 주홍색 햇볕이 쏟아져 내렸다. 벌써 노을의 끝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음에도 알현실 내부는 불이 밝혀지지 않아 어둑한 상태였다.

에드윈은 거만한 자세로 한쪽 팔걸이에 턱을 괸 바로크를 향해 고개를 슬쩍 까딱였다.

“폐하를 뵙습니다.”

그 목소리가 지나치게 무감하지만 않았더라도 벌컥 화를 낼 만큼 성의 없는 태도였다. 바로크의 눈썹이 한순간 와락 구겨졌다. 그의 머릿속에서 저 또한 에드윈을 호칭조차 생략한 채 불렀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존재도 하지 않았다는 듯 사라진 채였다.

그러나 그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몇 번이나 심호흡을 반복하며 제 속내를 다스린 그가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그대도 피차 시간 낭비하기 싫을 테니 본론만 말하지.”

바로크는 요 며칠 잠을 설쳐 부쩍 까칠해진 눈 밑을 세게 문질렀다. 날 선 연푸른색의 눈동자가 제 앞에 조각상처럼 미동 없이 서 있는 청년을 찌르듯 노려보았다.

“어디에 숨겼나.”

마치 목소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이 금방이라도 마주 보는 상대의 목을 꿰뚫을 듯 살벌했다. 그러나 에드윈은 여전히 무표정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딱딱한 말을 뱉어냈다.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인위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무미건조한 반응이 돌아오자 바로크는 낮게 이를 갈며 경고했다.

“......이제 와 잡아뗄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레이린 아제트리아가 자네 옆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은 진즉 알고 있었으니까. 어디에 숨겼나.”

바로크의 입에서 ‘레이린 아제트리아’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에드윈의 눈에 조금이나마 빛이라는 것이 돌아왔다. 기민하게 에드윈을 주시하고 있던지라 그것을 곧장 눈치챈 바로크가 조용히 이를 갈았다.

며칠 전, 바로크는 유스티아에 심어 둔 심복에게서 레이린 아제트리아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고는 찰나 눈앞이 아찔해지는 감각을 경험했다. 자신이 일궈온 모든 것을 무너뜨릴지도 모르는 자가 제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것은 그에게 생각보다 큰 공포를 선사했다.

바로크는 레이린 아제트리아가 일말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증발할 수 있게 일조한 것이 에드윈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고작 계집 하나가 제 심복들의 눈을 피해서 그렇게 감쪽같이 유스티아를 빠져나갈 수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바로크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유스티아의 고위 귀족들이 입을 닫음으로써 무언의 압박을 표한 탓에 축제 첫날의 소동에 관한 이야기가 외부로 일체 새어 나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여 바로크는 온전한 내막까지는 알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그저 ‘에드윈이 제 의중을 알고 한발 먼저 레이린을 숨겼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를 불러들인 것이었다.

“.......”

에드윈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바로크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자 두 사람 사이에 자리하고 있던 적막이 커다랗게 몸집을 부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끝내 초조함을 이기지 못한 바로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침묵을 깼다.

“여러 번 말하지 않겠다. 레이린 아제트리아의 신병을 내게 넘겨라. 그렇게만 한다면 일전의 무례는 없던 일로-”

“거절하겠습니다.”

“......뭐?”

바로크는 저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실핏줄이 불거진 연푸른색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확장되었다. 그에 반해 선명한 푸른색의 눈은 심해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삽시간에 울컥 솟아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한 바로크가 버럭 입을 열었다.

“지금 뭐라-”

“몇 번을 물으셔도 제 답은 같습니다. 거절하겠습니다, 폐하.”

“에드윈 클로비스!”

콰앙!

여태 삐딱한 자세로 앉아 있던 왕이 자세를 바로 하며 팔걸이를 세게 내리쳤다. 그로 인해 주름이 진 주먹이 벌겋게 달아올랐으나 그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형형히 눈을 번득였다.

“이건 그간 내게 허울뿐인 예나마 지켜 왔던 널 위해 보이는 마지막 자비다!”

말이 이어질수록 격앙되는 목소리가 텅 빈 알현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너는 아무것도 몰라! 그 계집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것들을 숨기고 있는지!”

“.......”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할 테지.”

아까까지만 해도 잘도 그의 말을 끊어 먹던 에드윈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생기라고 할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은 새하얀 얼굴은 고요한 조각 같았고, 새파란 눈동자는 사파이어를 깎아 놓은 듯 무감하기만 했다. 그 모습에 비릿하게 입매를 뒤튼 바로크가 사람을 홀려 잡아먹는다는 마물처럼 속삭였다.

“너, 그 계집을 믿나?”

“.......”

“그 계집이 정말 믿을 만한 존재인 것 같으냐? 네 모든 것을, 네 아비가 평생을 바쳐 지키려 하던 유스티아를 걸 수 있을 만큼?”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에드윈의 눈썹이 찰나 움찔 구겨졌다. 그러나 그 미세한 움직임까지는 미처 포착하지 못한 바로크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재차 입을 열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계집이야.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그년을 내게 넘겨라.”

“.......”

“이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다.”

연푸른색의 눈이 어둠 속에서 저 홀로 빛을 내듯 섬뜩했다.

그 눈을 동요 없이 마주 보던 에드윈의 입술이 마침내 움직였다.

“저는.”

“.......”

“폐하께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실만을 말씀드렸습니다.”

천천히 말을 뱉어내던 에드윈의 턱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저는 모릅니다.”

지독하게도 한결같은 대답. 그에 차갑게 얼굴을 굳힌 바로크가 낮게 경고했다.

“후회하게 될 거다.”

에드윈은 답하지 않았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붉은색의 비로드 위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래도 초대받은 입장에서 빈손으로 올 수는 없어 시종장에게 맡겼던 찻잎이 문득 머릿속을 스쳤다.

“.......”

잠시 느려졌던 발걸음은 곧 제 속도를 찾았다. 에드윈은 그대로 알현실을 나섰다.

* * *

에드윈은 시간이 늦었으니 하루 묵고 출발하라는 시종장의 제안을 물리고 왕궁을 벗어났다.

새벽 내내 말을 몰아 유스티아로 돌아온 그는 곧장 게오르크 안토니아, 펠릭스 에르멧, 패트릭 웬델을 호출했다.

“흐아암.”

졸린 눈의 아르망이 입을 쩍 벌리며 하품했다. 새벽 일찍 호출을 듣자마자 급하게 집무실로 달려온 탓에 그의 매무새는 썩 단정치 못했다.

아르망은 눈을 깜박여 애써 졸음을 떨쳐 내며 물었다.

“영주님, 중앙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에르멧 공까지 다 부르시고.......”

그의 질문에는 의아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하지만 에드윈은 모든 이가 도착할 때까지 묵묵히 입을 닫고 있었다.

이윽고 아르망과 마찬가지로 동이 트기 전부터 영주의 호출을 받은 세 사람이 차례로 집무실에 당도했다.

“영주님, 이 시간부터 어쩐 일로.......”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한 펠릭스 에르멧을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이 집무실에 발을 들였다.

새파란 눈동자가 느릿하게 집무실을 훑었다. 직후, 이제껏 의자에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던 에드윈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전쟁에 대비하라.”

“......예?”

저마다 충격으로 굳어진 이들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게오르크였다. 게오르크는 에드윈의 입에서 나온 말에 제 귀를 의심했다.

“영주님, 제가 방금.......”

“전쟁이라니요. 국왕이 드디어 미쳐서 선전 포고라도 한 겁니까?”

게오르크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어물거리는 사이 아르망이 눈을 세모꼴로 뜨며 물었다.

“당장은 아니다. 하지만 늦어도 사흘 안에는 일이 터질 것 같군.”

“대체 왜.......”

“글쎄. 하지만 새삼스럽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

에드윈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무감한 대꾸를 흘렸다.

그는 국왕이 기이하리만치 레이린을 의식한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사실 굳이 레이린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이번 대의 국왕은 유달리 유스티아를 탐탁지 않아 했으니 이것은 언제고 일어났을 일일 뿐이었다.

무거운 침묵이 집무실 안을 휩쓸었다. 그러나 충격은 금세 가셨다. 빠르게 침착을 되찾은 게오르크가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카라스테 상단주와 접촉하여 최대한 빠르게 물자부터 확보하라 이르지요. 켈레마에서 마지막으로 사들인 주술석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조사해 보아야겠군요.”

그의 뒤를 이어 펠릭스와 패트릭 또한 군사의 수를 정확히 파악해 보고하겠노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에드윈이 그들에게 몇 가지를 추가로 지시하는 사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아르망이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다른 도시에도 서신을 보내실 겁니까? 마티아스야 당연히 국왕 편에 서겠지만, 나머지 셋은 다르잖습니까.”

“맞습니다. 에르치니아와 벤투스의 발을 묶어 두는 것만으로도 국왕에게는 큰 부담이 될 듯합니다만.”

그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게오르크는 이내 카힐라 힐데트에게 가 보아야겠다며 집무실을 벗어났다. 아르망은 하인트에게 창고를 정비하라는 말을 전하고 오겠다며 빠른 걸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어 펠릭스와 패트릭마저 해야 할 일을 처리하기 위해 사라지자 집무실에는 에드윈만이 남았다. 그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에르치니아와 벤투스라.’

새파란 눈이 깊게 침잠했다.

확실히, 에르치니아와 벤투스가 군사를 움직이지 않게만 만들어도 유스티아의 승산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그러나 국왕은 욕심이 많을지언정 멍청이는 아니었다. 그 또한 에르치니아와 벤투스가 유스티아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간밤의 태도로 보아, 그는 이미 유스티아에서 두 도시로 가는 길목에 제 끄나풀들을 숨겨 놓았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아마 목숨을 걸고서라도 서신을 빼앗아 유스티아를 고립시키려 하겠지.

톡, 톡.

에드윈은 평소와 달리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오래도록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것을 끊어 낸 것은 불현듯 노크 소리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였다.

“주군. ......리오넬입니다.”

-톡.

책상을 내내 두드리던 손가락이 작은 소음과 함께 멈춰 섰다.

“들어와라.”

에드윈은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풀며 그의 방문을 허락했다. 말이 끝나자 집무실의 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리오넬이 들어왔다. 그의 등 뒤로 문이 탁, 소리를 내며 틈 없이 닫혔다.

“.......”

리오넬은 문을 등진 곳에 뿌리내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먼저 만남을 요청한 사람의 태도답지 않게 입술은 꾹 다물고 있었다.

에드윈은 최근 들어 급격히 말수가 줄어든 리오넬을 빤히 바라보았다. 엘빈과 함께 기사단 내의 소란을 담당하던 그의 얼굴은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늘 결 좋게 빛나던 청록색 머리카락은 윤기를 잃고 푸석해져 있었고, 자색 눈은 묘하게 생기를 잃은 채였다.

그런 얼굴로, 한참이나 망설이던 리오넬이 어렵사리 입술을 달싹였다.

“......주군.”

“말해.”

“갑작스럽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하지만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어서.......”

그의 목소리는 어딘지 꽉 막힌 듯이 들렸다.

에드윈은 독촉도, 추궁도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침묵했다. 짙푸른 색의 눈은 잠잠했다. 그 어떤 것도 흠집 하나 낼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견고함이었다.

리오넬은 끝내 그 무거운 침묵에 등 떠밀려 고해하듯 말을 토해 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뻣뻣이 굳었던 혀는 한 번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어 내자 언제 그랬냐는 듯 교활하고 유려하게 움직였다.

“단장님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오는 길입니다. 제가, 제가 에르치니아와 벤투스에 사신으로 가겠습니다.”

“왜?”

“그것만이.......”

리오넬은 에드윈의 목소리가 담담하다는 사실에 더욱 못 견뎌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감히 주군을 배반한 죄를 조금이나마 대신할 수 있을 테니까요.”

소름 끼치는 적막이 숨통을 죄였다. 에드윈은 늘 그렇듯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리오넬을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애초에 일말의 기대조차 갖지 않았기에 덤덤할 수 있는 것인지, 혹은 지나친 분노 탓에 말을 잃은 것인지. 리오넬은 눈꺼풀을 들어 올려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워 눈을 감은 채로 힘겹게 입을 움직였다.

“어릴 적, 저와 제 여동생은 이드리스 프리조프 덕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

“하여 저는 여덟 살이 되는 해에 그의 명에 따라 검은 땅 인근의 마을로 향했고, 그곳에서...... 당신을 만났습니다.”

열 살. 에드윈은 그의 말을 조용히 입 안에서 굴리며 생각했다.

‘......14년인가.’

에드윈이 영주의 자리에 오르고 1년이 지난 후, 처음으로 마물 토벌을 떠난 길에 리오넬을 만나 그를 거두었으니, 이드리스 프리조프는 햇수로 따지자면 무려 14년간이나 에드윈의 곁에 리오넬을 심어 두기 위해 준비한 셈이다.

‘대체 왜?’

에드윈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그는 타인에게 지독하리만치 무심했기에 구태여 의식하지 않으려 했을 뿐,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드리스 프리조프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에드윈을 적대시했다.

‘당신이.......’

에드윈이 영주의 자리에 올라 처음으로 참석한 영주 회의. 그곳에서 이드리스 프리조프는 차마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하며 그리 중얼거렸었다. 아마 그때부터이던가. 묘하게 신경이 거슬리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꼬리를 남길 정도는 아닌 일들이 유스티아에 연이어 벌어지던 게.

잠시 상념에 잠겼던 에드윈을 깨운 것은 반쯤은 우는 듯, 반쯤은 웃는 듯한 리오넬의 목소리였다.

“저는 임무만 끝마치면 곧장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

“차마 떠날 수 없게 되어 버려서.......”

끝내 감은 눈에서 투명한 물줄기가 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리오넬은 작게 숨을 몰아쉬며 입술을 꾹 말아 물었다. 그는 제 물기 어린 숨소리를 제외하고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아 불안해하면서도 동시에 겸허하게 마음을 다스렸다.

‘전부 내 잘못이다.’

사실 이조차도 에드윈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여 리오넬은 묵묵히 기다렸다. 그는 행여 에드윈이 이 자리에서 죽으라고 명할지라도 곧장 그리할 생각이었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하지만 직후 들려온 대답에, 리오넬은 저도 모르게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들었다.

“죽지 말고 살아 돌아와라.”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새파랗게 가라앉은 눈이었다. 그 푸르름이 뇌리에 날카롭게 새겨지는 듯한 기분에 리오넬은 찰나 숨을 멈추었다.

에드윈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가 죽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그러니 살아 돌아와.”

“.......”

“대답은.”

리오넬은 잠시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멍하니 에드윈을 응시했다.

하지만 곧 혼란스럽게 뒤엉켰던 머릿속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신 리오넬 제스.”

그는 천천히, 흔들림 없는 동작으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주군의 명 받들어, 반드시 살아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리오넬이 에르치니아와 벤투스로 떠난 지 정확히 사흘째가 되던 날. 유스티아 영주가 진상한 찻잎에 섞여 있던 독으로 인해 왕과 공주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는 소식이 헤르기아스 대륙을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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