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87)

* * * 

하인트가 기억하기로, 클로비스 저택의 분위기가 이리 얼어붙었던 것은 꼭 5년 만의 일이었다.

‘끄아아악!’

어느 오전. 평화롭기 그지없던 저택에서 들려온 비명에 놀라 달려갔을 때. 당시 클로비스 저택의 하인이었던 하인트는, 차마 신음성조차 내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졌다.

‘.......’

아침 햇살이 선명히 내리쬐는 방 안. 그곳에는 흡사 짐승과도 같은 모양새로, 피 웅덩이 한가운데에 웅크려 앉은 소년이 있었다.

‘......도련님?’

흡사 맹수에게 목을 물어뜯긴 것처럼 보이는 집사의 시체, 그리고 검에 심장을 꿰뚫린 여인의 시체. 그 가운데 주저앉아 있던 소년의 새파란 눈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하인트는 한평생, 어쩌면 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까지도. 저 눈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끼익-

상념에 잠겨 있던 하인트는 문이 삐걱대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영주의 침실 문을 조심스레 닫고 나오는 루나의 모습을 발견한 그가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제트리아 님의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루나 양.”

걱정이 담긴 목소리의 끝이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루나는 한쪽 손에는 핏물로 그득한 대야를, 다른 쪽 손에는 빈 약병을 받쳐 든 채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고비는 넘겼습니다. 아마 조금 있다가 잠깐이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싶어요.”

불과 몇 시간 전.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엘빈이 다짜고짜 저를 붙잡아 클로비스 저택까지 끌고 왔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가.

처음에는 엘빈이 레이린에게 고백했다가 차인 뒤, 그에 대한 화풀이로 뒷골목 치료사인 저를 고발하려는 줄 알고 미친 듯 발버둥 쳤다.

‘이 미친놈아! 놔! 놓으라고! 네 순정은 고작 그만큼밖에 안 되냐!’

루나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렸지만 엘빈은 평소와 달리 반쯤 넋이 나간 듯 그녀의 반항을 모조리 무시한 채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그렇게 반강제로 발을 들인 곳에서, 언젠가 보았던 것처럼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누워 있는 레이린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져 내리는 줄로만 알았다.

‘레이린!’

루나는 이곳이 영주의 저택이라는 것도 잊은 채 곧장 엘빈을 내팽개치며 침상으로 달려갔다. 정신없이 레이린의 상태를 살피던 그녀는,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 어깨를 굳혔다.

‘루나 아미크 양.’

당장에라도 사람을 목 졸라 죽일 것처럼 무정한 목소리에, 심장이 조금 전보다도 한층 커다란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루나는 본능처럼 굳어지는 어깨에서 힘을 풀려 노력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침상 위에 누워 있는 레이린만큼이나 핏기없는 얼굴의 청년이 시야에 들어왔다.

에드윈은 시체보다도 차가운 얼굴로 입술만 달싹였다.

‘제일 먼저 주치의에게 보였으나 타나토스의 해독은 본인의 능력 밖이라 하더군요.’

‘.......’

‘살리십시오.’

살릴 수 있겠느냐, 라는 물음조차 아닌.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리라는 명령.

루나는 이것이 허가 없이 치료사로 활동하던 제 존재를 앞으로도 묵인해 주겠다는 말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리 말씀하시지 않으셔도 그렇게 할 겁니다.’

간신히 대답을 흘린 루나는 곧장 한쪽에서 어깨를 움츠리고 있던 주치의와 사용인들을 진두지휘하며 해독제를 찾아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클로비스 저택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희귀한 종류의 약초까지 모두 구비되어 있었으며, 그보다도 귀한 마물의 부산물들이 창고에 차고 넘쳤다.

루나는 꼬박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고생한 끝에 만들어 낸 약을 조금 전 레이린에게 먹이고 나오는 길이었다. 해독제를 흘려 넣자마자 거칠던 숨소리가 편안해지는 것을 듣고 나서야 루나의 심장 또한 잠잠해졌다.

‘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린 탓인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루나는 잠시 망연한 기색으로 레이린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지금껏 미동도 없이 침상 옆을 지키고 있던 청년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그 말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지만, 자진해서 몸을 일으킨 루나는 침대 위에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던 물건들을 챙겨 바깥으로 나왔다.

에드윈의 시선은 줄곧 레이린에게 고정되어 있던 터라 그에게서 무어라 압박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숨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않으며 레이린의 얼굴만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니 그러지 않을 수가 없어졌을 뿐.

‘......이따금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도 조금 이상하다 싶긴 했었는데.’

이건 제 생각보다도 훨씬 더.......

‘좋지 않아.’

루나는 또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문득 하인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집사님.”

“편히 하인트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하인트 님. 혹시 주치의께서 영주님께 별다른 말씀을 하시지는 않으시던가요?”

루나는 경계심을 숨긴 채로 지나가듯이 물었다. 다급함이 가시고 나자, 레이린이 이곳에서 제 신분을 감추고자 자신을 고용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오른 탓이었다.

그런 그녀가 현재 에드윈과 레이린만을 방 안에 남겨 둔 것은, 그가 레이린에게 함부로 손대지 않을 사람임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혹 엘빈이 자신을 데려오기 전, 한발 먼저 레이린을 진찰하던 주치의가 무언가 기이함을 눈치채고는 영주에게 고하기라도 했으면 곤란했다.

‘도착했을 때 본 광경대로면 흉터까지 발견하지는 못했을 것 같기는 한데.’

루나는 목 안으로 초조함을 삼키며 하인트의 답을 기다렸다.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던 그는 이내 유감스럽다는 듯 고개를 내저어 보였다.

“외상이 없으셨기에 해독제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는데, 주치의께서 찻잔에 묻어 있는 독이 타나토스라며 달리 방법이 없다 하신 탓에.......”

“범인은요?”

안도의 숨을 삼킨 루나는 당장에라도 범인의 멱을 따버리겠다는 듯 사납게 되물었다. 본래는 이조차도 기밀이었으나, 루나의 기세가 워낙 험악했던 데다가, 엘빈으로부터 루나와 레이린이 절친한 친구 사이라는 것을 미리 전해 들었던 탓에 그는 적당한 선에서 설명해 주었다.

“벤투스 쪽에서 보내온 암살자의 시체는 따로 수습해 두었고, 다른 관련자들은 지하에서 심문을 받고 있습니다.”

에드윈은 내내 레이린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범인에 대해 잊은 것은 아니었다. 루나가 치료제를 찾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직후. 곧바로 패트릭을 불러들인 에드윈은 무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찾아라.’

패트릭은 일순, 이것이 제게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았음에도 목덜미로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살기를 그대로 빚어낸 듯한 목소리가 흉흉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설령 연관된 것이 가주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반항한다면 팔을 자르고, 도망치려 한다며 힘줄을 잘라서라도 끌고 와.’

‘.......’

‘알아들었나.’

‘존명.’

패트릭은 제 주인이 그 어느 때보다 형형한 눈을 하고 있음을 눈치채고는 잠자코 고개를 숙이며 복종을 표했다.

평소 레이린을 기껍게 여기던 클로비스 기사단은 무섭도록 날뛰며 유스티아 전역을 헤집었고, 결국 두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패트리샤가 이 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영주님을, 영주님을 뵙게 해 주십시오! 저는 억울합니다!’

클로비스 기사단에게 양팔을 붙들린 패트리샤는 홧김에 가벼운 마비약을 타라는 지시를 내렸을 뿐이라며 발악했다. 하지만 에드윈은 짤막한 고갯짓 한 번으로 그녀의 항의를 일축하고는 시셀리 가문의 모든 자를 지하에 처넣으라 명령했다.

평소와 달리 아주 약간의 인간성조차 모두 놓아 버린 듯 날 선 모습. 그 모습에서 ‘무언가’를 기민하게 읽어낸 하인트 또한 끝내 낮은 탄식을 흘렸다.

“......부디 두 분 모두 괜찮으셔야 할 텐데요.”

나직한 중얼거림이 허공을 얼마간 맴돌다가 스러졌다.

이윽고 표정을 갈무리한 하인트가 루나에게 정중히 손을 내밀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미크 양. 잠시라도 좋으니 이만 눈을 붙이심이 어떠십니까. 아제트리아 님께서 깨어나시면 곧장 기별을 드리겠습니다.”

한없이 부드럽고도 세심한 배려의 말에, 루나는 레이린이 깨어날 때까지 이곳에 있겠다며 고집을 피울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배려 감사드려요.”

결국 불안한 눈빛으로 침실을 흘긋대던 그녀는 마지못한 얼굴로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 * * 

레이린이 눈을 떴을 때는 사방이 어둠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눈을 뜨자마자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이 물밀 듯 밀려오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독, 암살자. 몇 가지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현실감이 훅 끼쳐 왔다. 곧장 튕기듯 상체를 일으키려던 그녀는, 문득 지척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반사적으로 몸을 굳혔다.

“.......”

시야가 차츰 어둠에 익숙해지며 대략적이나마 사물의 형체가 구분되었음에도 여전히 암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숨소리마저 기억에 박아넣기라도 했던 것일까. 레이린은 기이하리만치 차분한 심정으로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영주님.”

의문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숨소리 한 자락, 옷깃이 스치는 소리마저 이제는 본능처럼 느껴지는 사람.

이윽고 그녀의 확신에 답하듯, 잠잠한 음성이 새카만 어둠을 울렸다.

“......몸은.”

“.......”

“좀 어떻습니까.”

끝이 조금 갈라진 목소리는, 그 자체로 깊고 깊어 그 끝을 짐작할 수 없는 무저갱 같았다.

레이린은 그 물음을 듣고 나서야 목 안쪽이 타는 듯 쓰라리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연달아 기침을 토해 냈다. 그러자 소리 없이 다가온 손길이 상체를 일으키는 것을 도와주고는 손에 물 잔을 쥐여 주었다.

“......감사합니다.”

기침 사이로 간신히 말을 내뱉은 레이린이 미지근한 물을 머금어 삼켰다. 기실 그마저도 고통이었지만 순간적인 통증이 지나간 후에는 조금이나마 상태가 나아졌다.

“.......”

곧이어 물이 찰랑이는 소리마저 들릴 만큼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레이린은 이불 위로 손을 내려 말없이 물잔을 만지작거렸다. 어둠 속에서 비스듬히 내리깔린 속눈썹이 힘없이 팔랑거렸다.

‘추궁당하려나.’

지금까지 일이 있을 때마다 순간적인 기지, 혹은 엘빈의 공이라는 핑계를 대며 넘어갔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일반인이라면 단번에 즉사할 만큼의 타나토스를 섭취한 상태에서, 상대의 공격을 저지하고 손목의 힘줄에 정확히 단검을 꽂아 넣는 것. 그것은 ‘우연’과 ‘재능’만으로는 오롯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눈 가리기 용으로 얼마간 엘빈에게서 호신술과 검술 등을 수련받았다고는 하나 그조차도 평범한 수준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상대가 에드윈인 만큼, 그녀의 움직임이 평범한 이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들켰으리라.

‘녹스는...... 괜찮겠지.’

레이린은 반쯤 체념 어린 심정으로 가만히 눈꺼풀을 닫았다. 만일 붙잡혀 고문당하게 되더라도 그녀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며, 자잘한 흔적들은 적령 쪽에서 끊어 줄 것이다.

물론 이드리스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지만. 그렇지만 부디 라그나르와 키안만큼은 무사했으면 좋겠는데.

레이린은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문득 헬레나를 구하려 했던 것이 제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스스로의 모순과 위선적임이 역겨워 그들을 걱정하는 일조차 그만두었다.

작게 숨을 고른 그녀는 제게 추궁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

기이함을 깨달은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난 후였다. 레이린은 불현듯 찾아든 의문에 슬쩍 미간을 좁혔다.

‘왜.......’

일말의 살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레이린 아제트리아.”

바로 그때. 탄식 어린 부름이 귓가를 파고드는 것과 동시에, 오른쪽 어깨로 무언가 툭 닿아 왔다. 레이린은 제 목덜미를 간질이는 날숨의 감촉에 반사적으로 호흡을 멈추었다.

그녀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에드윈이 나직이 말을 토해 냈다.

“죽지 않겠다는 약속.”

“.......”

“지키지 않을 생각입니까.”

내뱉는 말 한마디, 내쉬는 숨 한 자락이 그대로 전신을 옭아매 가두려는 듯 진득했다. 레이린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물음에 잠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나는.”

조용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귓가를 파고드는 말들이 심장을 단단히 얽매었다.

“분명 내 사람이 되고 싶다면 멋대로 죽지 말라 말했고, 당신은 그렇게 하겠다 약속했습니다.”

본래의 그답지 않은 말투, 눈빛, 호흡, 기척이 까마득하게 낯설기만 했다.

“그런데 왜.”

조금 격앙되어 이어지던 말이 칼로 베어내듯 뚝 끊겼다. 갑작스러운 침묵에 방 안의 어둠이 혼란스럽게 일렁거렸다.

레이린은 그 어둠만큼이나 혼란스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가. 돌연 등줄기를 꿰뚫는 깨달음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아.’

정녕 이 땅에 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녀는 당장에라도 그 멱살을 틀어쥐고 심장을 뜯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질 나쁜 장난은 우습지도 않다고, 제 속에는 이미 너무 많은 죽음이 매달려 있다고, 그러니 당장 그만두라고. 누군가 본인의 마음을 제게 내맡기는 것, 그 마음에 자신이 동요하며 결국에는 더욱 처절하게 진심이 되는 것. 그리고 끝내 진심이 되어 버린 마음을 잃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당신은 모른다고.

그렇게 울며 소리치고 싶었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고 손안에 남은 것은 비겁한 두려움밖에 없는지라.

“......그러지 마.”

결국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것은 이런 속삭임뿐이었다.

“그러지 마.......”

나는 그런 진심을 받을 만한 사람도, 감당할 그릇도 못 되거니와, 어차피 이번 겨울이 가기 전에 스러질 사람이다.

그러니까 당신만은 나를.

‘......그러지 마, 데릭.’

사랑하지 않았으면 해.

레이린은 차마 끝까지 내뱉지 못한 말들을 심장 깊숙이 눌러 삼켰다.

“.......”

에드윈은 레이린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기색도, 무언가 답하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호흡했다.

잠시 침묵하던 레이린은 이내 제 어깨를 간질이는 검은 머리카락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고요히 얽혔다가 풀어지기를 반복하는 숨결, 포근한 어둠, 머리카락이 손끝에 스치는 소리가 한데 뒤엉켰다.

짧고도 위태로운 평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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